도쿄의 마야 Maya in Tokyo K-픽션 27
장류진 지음, 채선이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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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고 있을, 특히 일본에 살고 있을 많은 한국인이 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정체성, 그것과 관계없이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른 시각. 장류진의 <도쿄의 마야>는 바로 이 시각에 대해 담백하게 풀어 놨다. 몇 장 되지 않는 단편 속에 많은 행간을 넣어두면서, 독자로 하여금 더욱 깊은 생각으로 이끄는 공간을 열어 뒀다.


<도쿄의 마야>는 '경구형'에 대한 이야기이자, '경구형'의 딸 '마야'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속 화자 '나'는 결혼 후 처음 맞는 아내의 생일을 맞아 도쿄 여행을 떠난다. 항공권 사이트에서 저렴한 도쿄행 티켓을 발견하고, 도쿄에 가보고 싶다던 아내의 말을 떠올랐으며, 부부가 낸 연가에 주말을 끼워 '생일 여행'이라고 이름 붙인 여행에 나서면서 책은 시작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도쿄에 있는 '경구형'을 떠올린 것은 거의 마지막 단계다.



'경구형', 한국이름 '안경구'는 나의 나이많은 대학동기다. 자신의 이름을 비롯해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재일교포 경구형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에 대한 시선은 '다른 동기들'과는 다르게 출발한다. 해외교포라는데서 오는 선입견, 우리와는 다른 옷차림과 말투. 


'저 사람은 한국 사람에 가까울까, 일본 사람에 가까울까'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시작된다.


'경구형'이 보여주는 모습역시 일관적(?)이지 않다. '씨발'이라는 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모습에서 친근감을 주다가도, 위화감을 가질만큼 지나친 개인주의적인 면을 기습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냥 발음 좋은 '도쿄'가 아니라 진짜 일본사람의 '도쿄'가 입에서 나올 때면 한참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그러다가도 어눌한 말투로 "나카타 좆밥, 박지성 짱짱."이라며 웃어보일 때는 '울트라 닛폰'이 아닌 '붉은 악마'다.


현지인들이 찾을 법한 스시집에 데려간 경구형과의 대화.


"여기가 진짜 맛집이야. 아베의 입맛이 있는 집이거든."

"아베가 단골인가봐?"

"아닌데."

"총리 세프인가?"

"아닌데."


몇 차례 '아닌데'가 이어진 후에야 내려진 결론은 '총리가 먹는 좋은 김을 쓰는 스시집'이라는 뜻이란다. 이 간단한 말조차 재일교포와의 대화는 어렵다. 스시를 손으로 집어 먹는 일본 사람들, 그 속에 젓가락을 쓰는 나는 이유없을 위화감을 갖는다. 아내처럼 그냥 일본 사람을 따라 손으로 먹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말을 알아듣기는 하지만, 입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경구형'의 아내역시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사이에 놓여 있다. 이름은 분명 한국 사람이지만, 나와 아내에게 먼저 다가오는 모습은 '거의 일본 사람'이다. <도쿄의 마야>는 마지막 부분 의외의 메시지를 갑자기 툭 던져 놓는다.


"일본 사람들은 듣던 대로 정말 친철하네요."라는 아내의 말에 '경구형'은 "원래 일본놈들이 겉으론 친절해요."라고 답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일본놈'이라는 말은 '거의 일본사람'이라는 오해를 벗어놓기에 충분할 지 모르지만, 반대로 '거의 한국사람'과 사이에 놓인 '경구형'의 위치가 그대로 드러난다.


경구형이 안고 있던 아기 '마야'. 마야역시 경구형의 사촌 누나처럼 일본 성, 일본 이름 모두 따로 갖고 있다. '거의 경구형'의 얼굴을 하고 있는 조그만 생명체, 지금은 '마야'라고 불리고 있는 아기에게 나는 질문한다.


"아가야, 이름이 뭐라고?"

뺨에 눈물자욱이 말라 있던 마야는 이제 말없이 웃기만 한다.


서울에, 도쿄에, 그리고 그 어딘가에 많은 '경구형'이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 조차 누구에겐 또 다른 '경구형'으로 비쳐지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거의 어디 사람'이 아닌 그냥 '경구형'이길, 마야역시 그저 '마야'로 존재하길 <도쿄의 마야>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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