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죽네 사네 할 때* 우리 집 양반이 군대 갔었대요. 나 만나기 전이지. 법성으로 군인 갈 사람들 배로 싣고 가므는 젊은 여자들이 그 배를 잡고 물 속에 빠져 죽게 생겼는 데까지 깊은 디로 들어가서 다시는 안 온다고 그릏게 울고 난리 아니었어. 같이 군대 간 사람 다 죽고 둘이 살아왔어. 우리 집 양반이 그때 살아왔어. 그마만큼 어매가 공을 들였다요. 밤이나 낮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에서 공을 들였어. 긍께 아들 살아온 것이 그 공들인 덕이여. 시어매도 젊었을 땐 그렇게 했다요.

처음에 군대 간 사람은 제주도**래나 저 아래 어디로다 그리 훈련을 받으러 갔다요. 처음에 훈련을 받아야 군대생활 안 하요. 훈련받는 디서 밥을 먹는디 똥이라도 있으믄 먹는다요. 그때는 얼매나 배가 고프고 먹을 것이 없어갖고, 그 간빵(건빵) 몇 개나 주믄 그것이 양이 찰 거요? 높은 산으로 돌아댕김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험서 배가 얼마나 고플 것이여. 큰 가매솥에서 된장국을 허는디 큰 쪽박으로 휘 젓으므는 밀건 물에 콩나물은 서넛이 나오고 밥을 준다는 것이 주먹으로 하내나 주므는 양이 차겠어유? 그것을 전디고 살아야 하는디 그것을 못 전딘 사람은 배고파서도 죽었다고 안 허요. 그 송장 누여 놓고 밥 먹고 송장 우로 총 쏘러 댕기고 송장 욱으서(위에서) 자고 그랬다요. 배고파서 근력이 없응께 총 한 방 쏘믄 그놈 맞고 그양 죽지. 저놈 이놈 막 싸웅께 총으로 싸서 퉁탕퉁탕 쏘니께 그것 안 맞을라고 숨어댕기고 그 통에 살아왔다요. 그때 세상에 우리 집 양반이 군대 갔다와서 나하고 만났어요. 나하고는 열 살 차이 나유. 그렇게 마이 먹은 사람한티 왔으니 이렇게 늙어요. (80-82)

*옛날에 죽네 사네 할 때: 한국전쟁 당시를 말함
**제주도: 본디 훈련소는 제주도의 모슬포에 있던 강병대가 제1훈련소이고 논산의 연무대는 제2훈련소임. 강병대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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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경북 봉화 임기 간이驛 이야기 
[한국일보 2003-03-23 17:40] 
산골靜寂에 묻힌 탄광 추억 완행汽笛에 봄잠을 깨고…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이어져 마을을 둘러 안은 곳. 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작은 역사(驛舍)가 동그마니 올라앉았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임기2리에 있는 임기역(林基驛)이다.

봄 기운은 어느새 산간에도 스며들어 봉우리 사이 좁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한낮의 햇볕은 벌써 나른하다. 대합실은 텅 비고, 역 앞 마을 오솔길에도 인적이 끊겼다. 살랑 스치는 바람소리에도 고개가 돌아갈 만큼 사위는 한 없이 조용하다. 간혹 적막을 깨는 것은 무심히 지나는 열차 뿐. 그러나 여기서는 기적도 낮고 얌전하다. 고요한 산중에서 들리는 기적소리만큼 애잔한 것이 또 있을까.

세상이 어지럽고 살아가는 일이 힘겨울 때면 문득 마음 속 고향처럼 선연히 떠오르는 곳. 젊은 날 한번쯤은 아련한 추억이 있었을 것만 같은 곳. 간이역은 그 이름만으로도 애틋하다. 임기역은 그런 곳이다.

동해바다 푸른 파도가 발끝에 와 닿는 정동진역, 섬진강 아침 안개가 피어 오르는 수묵화 같은 풍경 속의 압록역,…. 그러나 임기역은 그 역들처럼 아름답지 않다. 그저 골짜기의 낡은 집 몇 채와 언덕배기 텃밭이 배경의 전부다. 그렇게 평범해서 오히려 간이역다운 곳이다. 거기 봄날 햇빛 속에 서서 하염없이 철길을 바라보노라면 난데없는 외로움에 눈물이 돋는다.

겉으로 보이는 풍경은 고즈녁해도 정작 임기역 식구들은 한가로움을 즐길 틈이 없다. 역무원이라야 역장을 포함해 고작 6명.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니 근무인원은 늘 3명 뿐이다. 임기역은 영주와 강릉 사이 오지를 달리는 영동선에 있다. 이 역에 서는 통일호 완행열차는 하루 왕복 4편에 불과하지만 종일 오가는 열차는 35~39편이나 된다.

열차가 통과할 때마다 사령실과 매표실, 업무실까지 겸한 서너평 남짓 역무실은 부산해진다. “542 발차.” 앞선 역에서 열차가 떠났다는 무전이 오면 역장 최용수(崔龍水·55)씨와 권형택(權亨澤·37) 주임은 모자를 눌러쓰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푸른 재킷에 빨간 넥타이, 회색 바지차림의 유니폼이다. 2~3분 뒤 “땡땡땡땡” 소리가 스피커로 울려퍼질 때 쯤이면 둘은 이미 철로 변에 차렷자세로 서 있다.

S자로 크게 휘어진 철로를 따라 열차가 산 구비를 돌아나오면 역장은 손에 감아 쥔 붉은 깃발로 크게 원을 그린다. 그러면 화답하듯 길게 기적이 운다. “혹 기관사가 졸지않나 점검하는 것이지요. 기적은 ‘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다’하는 뜻이고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냥 의식(儀式)이지요.”

열차가 스쳐 지나갈 때면 역무원과 기관사는 경례를 교환한다. 워낙 속도를 낼 수 없는 구역이라 잠깐사이 안부도 오간다. “역장님, 별일 없읍니꺼.” “그래, 수고해라.”

열차가 역을 들고날 때 역장은 교통정리 하듯 손을 뻗어 앞뒤로 열차를 가리킨다. 육안으로 보아 열차의 앞뒤 상태에 이상 없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영화 ‘철도원’ 속 호로마이역 사토(佐藤) 역장의 몸짓과 그대로 닮았다. 그러고 보니 기차가 안 보일 때까지 꼿꼿이 제자리를 지키고 선 최 역장의 단단한 뒷모습도 마찬가지다. 다만 영화의 눈 내리는 배경이 쓸쓸한 봄날의 햇빛으로 바뀌었을 뿐.

수시로 철로에 나가 이물질 유무를 점검하고 조임 상태 등을 확인하는 것도 역무원의 일이다. 폭설과 영하 20도 밑 강추위가 이어지는 겨울에는 납땜에 쓰는 토치램프를 들고 나가 일일이 선로전환 구간에 낀 눈과 얼음을 밤새 녹인다. 봄부터 가을까지 간이역 철로변마다 화사하게 피는 꽃들도 역무원들이 직접 씨 뿌리고 가꾸는 것이다.

임기역 역무실 벽 한켠에는 일일 영업목표가 붙어있다. 거기 적힌 하루 차표 판매액 목표는 7만원. 서울이나 강릉까지의 장거리 승객 너댓명만 있어도 훌쩍 넘길 액수지만 요즘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 마을에 어디 다녀올 일이 없는 노인들만 남은 때문이다.

찾은 날은 마침 10여분 거리에 있는 춘양에 장이 서는 날. 아침 10시30분 열차를 타러 9명이나 대합실에 나왔다. “반찬거리라도 사러 가야지.” 그래 봐야 모두 경로우대 승객이니 반액 할인해 600원씩, 모두 5,400원이다. 수입에 도움은 안돼도 오가는 말 인정만큼은 푸짐하다. “할머니, 이따 맛있는 거 많이 사갖고 오이소.” “응, 그려. 나눠 줄 테니 기다려.” 하루 해가 넘어갈 무렵 장에 갔다 온 이들이 돌아오면서 역은 딱 한번 더 수런거린다. 이날 승객은 이 들이 전부였다.

“제가 9년 전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작아도 아주 잘 나가가는 역이었어요.” 그러나 주변 탄광, 석회광들이 줄줄이 폐광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떠났고, 일자리가 없어진 마을 청년들도 하나 둘 대처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300호 남짓한 마을은 태반이 비었다. 500명쯤 남은 노인들은 산 경사면을 따라 고추, 담배를 심어 생계를 잇는다. 동안(童顔)의 권 주임은 이 마을에서 가장 어린 주민이다. 역사 철로변에 살면서 쉰살 안팎의 몇몇이 가입해 있는 ‘임기2리 청년회’ 일을 맡아보고 있다.

임기역에 낯선 손님들이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방학이나 휴가철이다. 관광지가 없으니 놀러왔을 리는 없고, 대부분 깜빡 졸다 허겁지겁 잘못 내린 승객들이다. 마을에 여인숙이 없어 다음날 열차가 올 때까지 꼬박 역사에서 밤을 새운다. 내심 이들이 반가운 역무원들은 고구마, 옥수수를 내놓으며 외지 얘기를 듣는다.

간혹 한밤에 어린 중고생이 불쑥 찾아들 때도 있다. 인근 또 다른 산간마을에서 가출한 아이들이다. 외부로 나가는 통로가 여기 뿐인 까닭이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온다. “우리 아이가 도망갔는데 좀 잡아 주이소.” 동틀 녁까지 설득해 부모에게 넘겨준 적이 여러 번이다.

“한번은 눈이 펑펑 오는 밤에 잘 차려입은 중년 부인과 젊은 여자가 내렸어요. 여기엔 택시도 없는데 그 시간에 해발 1,000m가 넘는 일월산의 ‘황씨 부인당’ 암자에 가야한다는 겁니다. 아들 낳는 전설이 있는 곳이지요. 할 수 없이 차에 태워 가다 고개를 못 넘고는 돌아와 역에서 재운 뒤 다음날 새벽 군 차량에 부탁했습니다. 나중에 서울에서 ‘고맙다’는 편지는 왔는데 글쎄, 아들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어요.”

마을 노인들에게 임기역 직원들은 단순한 역무원 이상이다. 독거 장애노인을 매일 돌봐주는 보호자이기도 하고 온갖 궂은 민원을 찡그리지 않고 받아주는 젊은 일꾼들이기도 하다. “전화 고장 났는데 어디 신고 좀 해주소.” “여기 서울인데예. 할머니가 전화를 안 받아요. 무슨 일 없나 좀 가봐 주이소.” 고구마 몇 알에 서류, 편지 대필 부탁도 들어온다. 그 뿐이 아니다. 마을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 보니 뜻밖에 소방서 일도 한다. 피어 오르는 연기를 보고 사이렌을 울려 의용소방대를 출동시킨 적이 벌써 세번이다.

따뜻한 마음을 근엄한 표정 뒤에 감춘 최 역장은 전국 간이역을 지키는 역장 가운데 최연장자다. 철도에 들어온 지 35년. 역시 철도원이 된 큰 아들은 매일 아버지가 일하는 역을 지나는 영동선 부기관사다. 최 역장은 새벽에 영주 집을 나서 꼬박 24시간을 일한 뒤 이튿날 아침 퇴근해 잠깐 쉬고는 다음날 새벽 또 집을 나선다. 일하는 날 세끼는 역사에서 직접 끓여 먹는다. 달리 틈을 낼 방도가 없어 제사니, 휴가니 하는 것들은 남의 일이 된지 오래다.

아마 몇 년 뒤면 임기역에서 더 이상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최 역장은 2년 뒤면 정년을 맞고, 권 주임도 초등학생 딸이 마을 분교를 졸업하면 중학교가 있는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 무엇보다 철도 민영화니, 공사화니 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익 없는 임기역이 얼마나 버텨낼 지 걱정이다. “그 생각만 하면 울적해 집니다. 고향처럼 정이 든 곳인데…. 여기는 워낙 외진 곳이어서 버스도 들어오지 않아요. 역이 폐쇄되면 노인들은 꼼짝할 수도 없지요.” 최 역장의 눈가에 쓸쓸한 그림자가 어린다.

일상의 삶에 지치고 상처를 입으면 한번쯤은 무작정 영동선 열차를 타볼 일이다. 구비구비 산허리를 하염없이 돌아가다 문득 임기역에 이르면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려 찾아보라. 당신들의 마음의 고향을 지키는 이들이 거기 서 있을 터이니. 혹 시간이 있다면 내려서도 좋을 것이다. 그리하면 사람 좋은 권 주임과 함께 개울에 내려가 고기잡으며 구수한 간이역 이야기에 취해볼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편집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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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1. 그들이 다른 도시로 갔는데, 거기에는 마음 속에 저주받은 반역자 사탄이 들어 있는 여자가 살았다.

2. 이 여자는 물을 길러 갈 때 옷을 걸치지 않았고, 어느 집에서도 가만히 들어앉아 있지를 못했다. 그리고 쇠사슬과 밧줄로 자주 묶어두었지만 끊어버리고는 사막으로 달아났다. 가끔 교차로에 서 있거나 무덤에 가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돌을 마구 던졌다.

3. 성모 마리아가 이 여자를 바라보면서 동정심을 느꼈다. 그러자 여자한테서 사탄이 나와 청년의 모습으로 변하여 날아가면서 "마리아, 당신과 당신 아들 때문에 내가 저주를 받았소."라 말했다.

4. 고통에서 해방된 여자가 자기 몸이 나체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옷을 걸친 뒤에 집으로 돌아간 여자가 아버지와 친척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 도시의 상류층인 그의 아버지와 친척들이 요셉과 성모 마리아를 최대한으로 정중하게 모셨다.

5.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충분히 선물받고 다음날 요셉과 마리아가 떠났다. (하략) (80)

 

*) 이 장은 성모 마리아의 기준에 맞추어 여성의 정체성을 조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머니와 아내 이외의 정체성은 깎여 나간다. 여성 안의 남성성을 쫓아내고, 여성에게 결혼 제도 안에서 말하게 하고 (결혼 이데올로기의 내면화와 그 상징질서 내부로의 진입), 여성의 성을 통제한다. . .

 "교차로에 서 있거나 무덤에 가 있는" 여자가 마리아와 그의 아들을 만난 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옷을 걸친 뒤에 집으로 돌아간" 여자로 변한다. . . 어떤 여자들은 잘 알고 있다. 자기 마음 속에 "저주 받은 반역자 사탄"이 들어 있다는 것을. (내가 쓴 이 마지막 두 문장은 마치 김혜순 시에나 나올 법한 구절이다.. 그러고보면 시보다는 설화나 산문이 더 다가오는 느낌이다. 시는 어쩐지 독자를 속이는 것 같고 더 나쁜 경우에는 시인 혼자 열에 들떠 있고 주변 사람들은 썰렁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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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_and_naru 2005-12-0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글쓴이는 여성해방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굴절에 의해 진리를 외곡하고 있다고 본다.

왜냐면 윗장을 최소한 사회학적 또는 인문학적으로 해석을 하고 싶었다면 글쓴이는 "성모 마리아에(기독교에)의해 인간의 정체성이 조각되어졌다" 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생각엔 글쓴이는 1. 의복, 2. 쇠사슬과 밧줄, 3. 사막, 4. 교차로나 무덤에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짐, 5. 사탄이 나와 청년의 모습으로 변하여, 이렇게 다섯가지 여자의 행동이 마리아와의 조우 이후 사라진것을 바탕으로  여성의 어머니와 아내 이외의 정체성이 깍여 나갔다고 주장한다.

1. 의복

글쓴이는 의복을 안입고 있다 마리아와 조우 이후에 의복 착용을 어머니와 아내 이외의 정체성 상실로 규정하고 있는건데 그렇담 어머니와 아내이외의 여성들은 의복을 입고 있지 않단 말인가? 또한 글쓴이는 "옷을 걸친후 여성으로 돌아갔다" 고 했는데, 그렇담 남성들은나체주의자란 말인가? 여성과 남성을 통틀어 의복착용은 성을 떠난 인간적은 행위다. 만약 윗장에서 "그 여자가  물을 길러 갈때 남자의 의복을 입었다" 라고 했다면 글쓴이의 주장이 타당할수도 있겠으나 여기선 "그 여자"가 여자옷을 고사하고 남자옷도 입지 않았었다., 옷을 입지 않은게 남성적이라는 주장의 타당성을 증명하지 못하는한 글쓴이는 스스로를 남성비하주의자라고 주장하는것에 불과하다. 왜냐면 남자들도 옷을 입고 다니고 옷을 입지 않고 다니는 남자도 미쳤다고 많은 인간사회는 보기 때문이다. 

2. 쇠사슬과 밧줄,  &  3. 사막

글쓴이는 "쇠사슬과 밧줄"을 여성을 얽매는 상징으로 봤다고 생각된다. 아마 쇠사슬과 밧줄을 결혼, 육아, 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사회성으로 본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글쓴이는 인간의 정체성의 확립이 아닌 여성의 정체성의 확립으로 곡해하고 있다. 왜냐면 결혼과 육아는 단지 여자들만의 몫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아들의 경우 아버지(남자)가 교육을 시켜야만 하는 부분이 많고 결혼과 육아는 남자들도 얽매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번돈을 자신 혼자만을 위해 쓰는가? 정상적인 사회에선 남자의 번돈은 가족의 부양(결혼과 양육)에 쓰인다.)  또한 남자들 역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사회성에 얽매이기 마련이다.

글쓴이의 주장이 맞을려면 윗장은 "그 여자가 자신의 아이와 남편을 내 팽개치고" 라고 했어야 했다.

그런 관점에서 사막또한 쇠사슬과 밧줄을 끊어 버린것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할것이다. 사막이란 여기선 "은둔"이라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또는 인간세상에서 벗어나 사람과 같이 사회안에서 사는것이 아닌 홀로 살아가는것의 상징) 하지만 이 역시 인간적인것으로 봐야지 (왜냐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깐.) 여성적이나 남성적으로 구분해 보는것은 오류이다. 남자도 여성도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4.  무덤이나 교차로에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짐.

이것이 그나마 글쓴이의 주장중에 설득력이 조금은 있는것이지만 이 역시 글쓴이의 곡해에 지나지 않는다. 글쓴이와 생각처럼 실제로 남성의 폭력성과 여성의 비폭력성이 어느정도 사회에 의해 인간에게 세뇌되어진것은 부정할수 없고 그럼으로서 여성의 폭력성이 부정되어진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의 폭력성도 많은 사회에선 터부시 되어온건 사실이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남성이나 여성을 떠나서 폭력성보단 타협과 공존이 많은 전통적인 사회에서의 이상이였다. (실예로 많은 사회에선 문이 무를 지배해야한다고 봐왔던것도 사실이다.) 만약 윗장에서 "그여자가 남자들에게 힘겨루기나 씨름들을 도전해왔다"라고 한다면 글쓴이의 주장이 타당할수도 있었겠지만...

5. 사탄이 나와 청년의 모습으로 변하여.

글쓴이는 아마도 "청년의 모습으로 나왔다"를 가지고 어머니와 아내 이외의 정체성이 깍였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또한 그로인해 여성의 남성성을 부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구분짓는 것은 누구인가?

글쓴이는 사회나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나 이는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우선 여성의 남성성을 사회가 인정안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어쨌단 말인가 자신이 원한다면 사회의 백안을 무시하고 남성성을 유지하면 될것이 아닌가? 실제로 "주위의 눈을 신경쓰지말고 대범해져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성성의 기본이다. 여성이 진정으로 남성성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런 대범함을 우선 가져야하는게 아닐까? 사회가 청안으로 봐주길 바라는것 자체가 이미 스스로의 남성성을 버리는것이 아닌가? 그렇담 결국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구분짓는건 바로 여성 스스로가 아닌가?

그렇담 결국 글쓴이의 주장은 허무맹랑한것에 불과했다고 볼수도 있고 윗글을 정확히 사회학이나 인문학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인간성의 확립이라고 봐야 할것이다. 

 

 

 


killjoy 2005-12-0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곡 -> 왜곡
 

 

 

 

 

알렉산더는 다음과 같이 쓴다.

"어떤 조직화된 대상이건 간에, 내적 요소들의 극단적인 구획화와 분리는 다가올 파멸에 대한 첫번째 신호다. 한 사회에서 분리란 무정부적인 상태다. 그리고 한 개인에게 있어 분리란 정신분열증과 임박한 자살에 대한 표시다." (98)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도시는 나무가 아니다 (2부)" [아키텍처 포럼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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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7-25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거 두 개 똑같은 페이퍼가 나란히 올라와 있어요.
한 개는 없애시죠?^^;

killjoy 2005-07-2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얼른 지웠습니다!

2005-07-31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ung Korean women hired in the sex industry and in electronics assembly are recruited from high schools, educated for the integrated circuit. Literacy, especially in English, distinguishes the "cheap" female labor so attractive to the multinationals.(32)

성산업과 전자제품 조립 라인에 고용된 젊은 한국 여성들은 고등학교에서 모집되어 이러한 집적 회로를 위해 교육받는다. 문자 해독 능력, 특히 영어 사용 능력으로 인해 이 "값싼" 여성 노동은 다국적회사들에게 남달리 매력적이다.

"A Manifesto of Cyborgs" The Harraway Reader (NY: Routledge,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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