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주인공 아까가끼씨는 중년의 백수, 재산도 없으면서 일하기는 무지하게 싫어해서 날이면 날마다 빠찡꼬와 마작으로 소일하며 대충대충 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낙이자 자랑거리는 두 남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 하지만 부식비는 한 끼 1인당 100엔(1100원)을 넘길 수가 없다. 버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해서 이 남자의 요리 목표는 이것이다. "100엔을 절대 넘지 않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자!"
혹시 이 책 제목을 궁상스럽다고 느꼈다면,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이 만화엔 요리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고급요리나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호화로운 요리가 별로 없다. 게다가 재료비를 맞추기 위해서 통조림은 물론이고,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 음식들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맛의 달인』이나 『미스터 초밥왕』의 애독자라면, 그러니까 "오염과는 거리가 먼 청정지역에서 유기농법으로 키운 순수한 재료들을 엄선하여 손이 많이 가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여 만드는 궁극의 맛의 세계"를 좋아한다면, 이 만화의 음식들은 먹을 게 못된다고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빈민의 식탁』은 완벽한 맛의 세계를 추구하는 탐미적인 요리만화가 아니다. 이 만화의 강점은 어떤 요리가 맛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요리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먹을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어떻게' 아주 쉽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정성껏 만들어서 같이 나눠 먹는 것이다. 엄선된 재료? 그냥 냉장고에 조금씩 남은 것이라도 상관없다. 전통의 방식? 고정된 레시피는 없다. '형식은 파괴'될 뿐. 식탁매너? 즐겁게 맛을 즐길 수 있으면 된다. 이렇게 하면 한 끼에 100엔도 안되는 싸구려 음식이라도 결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음식의 맛은 요리사의 손끝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만들고 먹어치우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통 요리 세계의 예술가들과 비교해보면 아까가까씨는 주어져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필요한 물건들을 급조해내는 손재주 꾼에 가깝다. 그의 요리도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브리꼴라주(bricolage)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예술작품이 주는 감동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까가끼씨의 요리들은 그런 궁극의 맛을 추구하는 요리들이 주는 감동과는 전혀 다른 쪽에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작품으로서의 요리가 일상의 세계를 벗어나는 맛을 제공한다면, 아까가끼씨의 요리는 일상의 한가운데서 일상을 살아가는 맛을 제공한다.
『22XX』와 『빈민의 식탁』은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만화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엔 먹는 것과 관련해서 우리가 외면할 수 없고 외면해서도 안되는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 바로 '먹는 일은 사는 일이다'라는 것. 먹기와 살기. 비록 그 먹거리가 『22XX』에서처럼 '사람'이라는 극단적인 것이든, 『빈민의 식탁』에서처럼 편의점에서 파는 참치캔, 베란다 화분에 매달린 방울토마토 같은 빈약한 것이든, 우리는 식사를 통해 그 재료들과 교감하고 또 식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이다.
본래 삶이 그런 것 아닌가. 극한적으로 보일 때도, 아주 비루해 보일 때도, 우리는 먹고 산다. 화려한 음식이 요리의 본질이 아니듯, 화려한 인생도 생의 본질은 아닌 것이다.
- 한영주 화려한 음식이 요리의 본질은 아니다 [창비 웹매거진/20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