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자유는 결코 모든 식민지 나라에 손쉽게 넘겨지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격렬하고 활기찬 투쟁 이후에 얻어졌을 뿐이었다. 식민지들의 교육적 후진성 때문에 민중의 다수는 문맹이어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행동--뿐이었다. (436)

은쿠르마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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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문맹이었던 케냐 민족주의자들은 가비의 신문 [니그로 세상]의 독자 주위에 모여 기사를 두번 세번 듣곤 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숲을 가로 질러 여러 방향으로 달려가 자신들을 사로잡고 있던 노예 의식에서 벗어나게 해 줄 정치적 주장들에 굶주린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그들이 암기한 내용 전체를 신중하게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C. L. R 제임스 독본] (1992) /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385쪽에 재인용 (번역 수정)

 

 

 

 

메이지 시대 중반까지 소설은, 신문소설도 그랬지만, 한 사람이 소리내어 읽고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소설은 묵독에 적합한 것입니다. 근대소설을 읽으면 내면적이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남에게 등을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내면적인 소설을 소리내어 읽기는 어렵습니다.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말" 4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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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예술품 수집에 대한 인류학자 샐리 프라이스의 서술"

"흰 개미와 자연의 힘에 노출된 본래의 장소에서 구출된 물체들은 제3세계의 전쟁고아들처럼 서양 소유주의 손에 안전하게 맡겨져서, 서늘하고 건조하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보존되고 사랑받고 감상된다."

--샐리 프라이스 [문명화된 장소 속의 원시 예술] / 레이 초우 [디아스포라의 지식인] 72-73쪽에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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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는 평생 동안 침대 밑에 추리소설을 놓아두고 잠들기 전까지 읽곤 했다. 특히 그는 영국의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연극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인물들의 심리가 아니라 플롯의 논리적 전개였다.

"추리 소설은 논리적 사고를 키워주고 감상주의를 없애준단 말이야!!" (55)

서사극은 관객들이 예술로부터 받는 것과 같은 대리 만족을 못받도록 해야 돼. 이런 것들은 인류의 운명을 증진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야. (78)

전통적 연극[은] 관객의 행동 능력을 소모시킨다.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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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동자 작가는 문화적 헤게모니 속으로 자신의 글쓰기를 진입시킨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 여성들은 자신을 도외시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시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아로새기는 데 자서전 형식을 택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290)

자서전은 자기표현의 더없는 상징으로서 그 자체가 실로 오랫동안 이들을 무시해온 세상에 저항하는 거점이었다. 그러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문학으로서 이들 자서전은 엘리뜨적 '고급문화'와의 단순한 이분법적 관계, 혹은 1980년대 국가의 엄격한 문학검열에 대한 전복으로만 볼 수 없는 훨씬 복잡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책들이 출간되던 당시에는 전두환 장군 치하 (1980-88) 의 국가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발버둥쳤을 뿐 아니라, 이 시기의 '고급문화' 혹은 최소한의 문단 문화의 한 흐름이 바야흐로 노동자 서사와 민중미술 운동을 새로운 활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었기 떄문이다.  (292)

나는 이 작품들에 한국문학 정전 속에서의 소수의 목소리나 다른 어떤 것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정치와 문학의 접점에서 이 작품들이 그 자체로 얼마나 힘있게 서 있는지 입증하고자 한다. (290-91)

장남수는 경삼남도 밀양군의 시골에서 성장하던 무렵 자신의 가족의 상황을 말하면서 자서전 [빼앗긴 일터]를 시작한다. 책의 첫장에서부터 장남수는 당당하게 자신의 가족관계를 봉건적이라 판단하고, 춘궁기를 못 견뎌 아버지가 서울로 상경해야 할 때 "노동자 1대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고 기술한다. 학교에 대한 그녀의 기억은 생생한데, 그녀는 (자신이 최고점을 받았는데도) 부잣집 딸이 우등상을 받는 것을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제약된 삶의 지평을 깨닫는다. 그녀가 학창 생활의 갑작스런 중단에 대해 회한을 적고 있는 부분은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제1장 도입부의 두어 면에 걸쳐 장남수는 광범위한 어휘를 구사한다. 그녀는 마치 농부인 양 농촌생활을 묘사하고, 마치 운동단체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처럼 자신의 처지를 분석하지만, 독자를 향해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쓴다. 시골의 목가적 생활 가운데 나무 위에 걸터앉아 [테스]를 읽고 있는 장남수의 모습에서 독자는 이 자서전에서 처음으로 예기치 않은 충격을 받는다.

이 순간이야말로 문학에서 노동계급과 농촌여성을 말없는 희생양의 이미지로, 자신들의 엄청난 곤경을 의식조차 못하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통념을 장남수가 교묘하게 거부하고 있음을 독자가 처음으로 흘끗 보는 순간이다. (293-94)

루스 베러클러프 "한국 여성노동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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