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자 작가는 문화적 헤게모니 속으로 자신의 글쓰기를 진입시킨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 여성들은 자신을 도외시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시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아로새기는 데 자서전 형식을 택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290)

자서전은 자기표현의 더없는 상징으로서 그 자체가 실로 오랫동안 이들을 무시해온 세상에 저항하는 거점이었다. 그러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문학으로서 이들 자서전은 엘리뜨적 '고급문화'와의 단순한 이분법적 관계, 혹은 1980년대 국가의 엄격한 문학검열에 대한 전복으로만 볼 수 없는 훨씬 복잡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책들이 출간되던 당시에는 전두환 장군 치하 (1980-88) 의 국가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발버둥쳤을 뿐 아니라, 이 시기의 '고급문화' 혹은 최소한의 문단 문화의 한 흐름이 바야흐로 노동자 서사와 민중미술 운동을 새로운 활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었기 떄문이다.  (292)

나는 이 작품들에 한국문학 정전 속에서의 소수의 목소리나 다른 어떤 것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정치와 문학의 접점에서 이 작품들이 그 자체로 얼마나 힘있게 서 있는지 입증하고자 한다. (290-91)

장남수는 경삼남도 밀양군의 시골에서 성장하던 무렵 자신의 가족의 상황을 말하면서 자서전 [빼앗긴 일터]를 시작한다. 책의 첫장에서부터 장남수는 당당하게 자신의 가족관계를 봉건적이라 판단하고, 춘궁기를 못 견뎌 아버지가 서울로 상경해야 할 때 "노동자 1대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고 기술한다. 학교에 대한 그녀의 기억은 생생한데, 그녀는 (자신이 최고점을 받았는데도) 부잣집 딸이 우등상을 받는 것을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제약된 삶의 지평을 깨닫는다. 그녀가 학창 생활의 갑작스런 중단에 대해 회한을 적고 있는 부분은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제1장 도입부의 두어 면에 걸쳐 장남수는 광범위한 어휘를 구사한다. 그녀는 마치 농부인 양 농촌생활을 묘사하고, 마치 운동단체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처럼 자신의 처지를 분석하지만, 독자를 향해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쓴다. 시골의 목가적 생활 가운데 나무 위에 걸터앉아 [테스]를 읽고 있는 장남수의 모습에서 독자는 이 자서전에서 처음으로 예기치 않은 충격을 받는다.

이 순간이야말로 문학에서 노동계급과 농촌여성을 말없는 희생양의 이미지로, 자신들의 엄청난 곤경을 의식조차 못하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통념을 장남수가 교묘하게 거부하고 있음을 독자가 처음으로 흘끗 보는 순간이다. (293-94)

루스 베러클러프 "한국 여성노동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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