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 삶을 통과하는 깨달음의 여정
헤르만 헤세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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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필사로 새롭게 시작한 '싯다르타'



나는 올해 2월 말부터 나는 '싯다르타' 통필사를 하고 있었다.

이북리더기를 이용해 민음사의 번역본을 한 글자씩 따라 적고 있었는데, 필사의 특성상 단순히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나는 '싯다르타'라는 인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친구인 고빈다에게 더 마음이 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같은 길을 걷는 듯하지만 끝내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수행자라는 모습에서도 고빈다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통필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읽는 속도가 제한된다.

그날 적은 만큼만 읽게 되기 때문에, 뒤의 이야기를 미리 볼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자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도 넘길 수 없고, 그저 한 문장씩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스타북스에서 출간된 싯다르타를 읽게 되면서, 처음으로 통필사보다 앞선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중학생 때 한 번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독서는 처음 읽는 것과도 비슷한 기분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번역의 차이였다.

민음사의 싯다르타가 원문에 충실한, 말 그대로 ‘번역’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스타북스의 번역은 조금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읽혔다.

같은 내용인데도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분위기가 달라서, 읽는 경험 자체가 꽤 다르게 느껴졌다.

이걸 보면서, 같은 이야기라도 번역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로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런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글이라는 언어가 가진 표현의 폭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읽는 내내 예전에 했던 생각도 다시 떠올랐다.

수행자, 즉 사문이라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는 사문이라면 조금 더 겸손하고, 비워내는 방향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싯다르타를 다시 보면서, 여전히 그에게서는 오만함에 가까운 태도가 느껴졌다.

스스로 깨달음을 찾겠다는 의지는 분명하지만, 타인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싯다르타라는 인물을 좋아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고빈다는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배우려는 태도와 겸손함을 유지하는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주인공 버프’를 걷어낸다면

싯다르타는 과연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끝까지 자기 확신 속에서만 길을 찾으려는 인물일까? 이 질문은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물론 싯다르타라는 인물 자체가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도 통필사는 진행 중이다. 여전히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만큼 더 깊게 읽고 있다는 감각은 분명하다.

이번에 다른 번역의 '싯다르타'를 함께 읽게 된 만큼,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독서는 단순히 한 작품을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과정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종종 다시 찾아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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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이는 사람 - 달달북다 앤솔러지
김화진 외 지음 / 북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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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북다 시리즈는 작년에 단권으로 따로 접해본 적이 있었다.

제일 처음 만났던 건 '애정망상' 그리고 '잠보의 사랑'

꽤나 마음에 들었던 주제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신기한 로맨스라서

동네 도서관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가 입고 되자마자 빌려 읽었다.


​하지만 전편을 다 챙겨보지는 못했던 터라 늘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렇게 앤솔러지 형태로 묶여 나오다니... 그 자체로 반가운 책이었다.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한 권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훨씬 좋아졌고,

무엇보다 읽는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여러 이야기가 모인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고,

한 편이 끝나면 다음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서 읽게 되고, 그 리듬이 계속 유지된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각각은 독립적인 이야기지만, 읽는 동안에는 하나의 감정선처럼 이어져 더 몰입하게 된다.

그래서 한 편만 더, 한 편만 더~ 하다가 결국 끝까지 읽게 되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짧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책에는 총 12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각각 결이 전혀 다르면서도 ‘로맨스’라는 주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맞물린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이 오히려 하나의 큰 주제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읽는 내내 로맨스라는 주제를 이렇게도 풀 수 있구나라는 감탄이 이어졌다. (특히 추천하는 건 '애정망상'이긴 하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형적인 로맨스가 아니라,

예상 밖의 전개와 감정선으로 다가오는 이야기들도 많아서 더 흥미롭게 읽혔다.

어떤 이야기는 담담하게, 어떤 이야기는 기묘하게, 또 어떤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다가오면서,

같은 로맨스라는 장르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또한 여러 좋은 작가님들의 글을 한 번에 접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앤솔러지의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각 작가마다 문체와 감정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한 권 안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한 작품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여러 세계를 짧게나마 여행하고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신경 쓰이는 사람'이라는 제목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이 꼭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아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여러 이야기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분명 좋아한다고 단정 짓기 어려운데 계속 마음에 남는 사람, 애매한 관계 속에서도 점점 커져가는 감정들.

그 미묘한 감정의 결을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읽고 나니 이런 형태의 앤솔러지가 앞으로도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과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앤솔러지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달달북다 시리즈를 이미 접해본 사람이라면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나처럼 일부만 읽어봤던 사람들에게는 전체적인 매력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구성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로맨스를 한 권 안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시작했다가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책이라고 느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다가오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감정들.

이 책은 그 예상 밖의 즐거움 덕분에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물론 내가 지금 당장에 로맨스를 꿈꾸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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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 관리 본부 수사 일지 : 천해 편
신유수 지음 / 네오오리지널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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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신수와 수호령이 공존하는 영계 수사 기록



이 책은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흥미를 끌었다.

영계와 수사 일지라는 단어들이 나란히 놓인 조합은 평소 내가 좋아하던 장르적 요소들을 정확히 건드리고 있었다.

오컬트적 세계관에 수사물의 구조를 얹은 이야기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쉽게 보지 못한 설정이라 자연스럽게 기대가 생겼다.


영계 관리 본부 수사 일지는 영계라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다루면서도 그 세계를 지나치게 신비화하지 않는다.

영계 역시 관리되고, 기록되고, 조사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판타지를 읽고 있으면서도 사건 기록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좋았던 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신수와 수호령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으로 등장한다.

각각의 존재가 가진 의미와 역할이나 다양한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들이 체계적으로 설명되고 있어서

정말 잘 짜여진 이야기란 생각도 들었고, 조금 어려워할 사람들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물론 평소 신수나 수호령, 인간과는 다른 질서를 가진 존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오컬트 매니아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굉장히 즐거웠다. 새로운 걸 배우고 공부하는 기분!


이 세계에는 이런 존재도 있겠구나, 이 영계는 이런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겠구나 하는

상상 역시도 계속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욱 재밌었다.


천해편이라는 부제처럼 번 이야기는 거대한 세계관의 시작점에 가까운 느낌이다.

하나의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천계 관리 본부라는 조직의 성격과 역할,

그리고 인간 세계와 영계가 맞닿아 있는 방식이 조금씩 드러난다.

오컬트적인 요소가 있지만 공포를 앞세우기보다는

기묘함과 질서, 그리고 그 안의 균형에 더 초점을 맞춘다.



글의 분위기 또한 전반적으로 담담하다.

감정을 과하게 끌어올리기보다는 사건을 차분히 기록하듯 풀어내서

설정과 세계관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신수와 수호령 같은 존재들도 막연히 무섭거나 신비로운 대상이 아니라

이 세계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강한 자극이나 화려한 판타지를 기대하는 사람들보다는

오컬트, 미스터리, 세계관 중심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잘 맞을 것 같다.

나처럼 이런 장르적 요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상상력을 발휘하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하나의 사건 기록이자 신수와 수호령이 살아 있는 영계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은 이야기다.

다음 편이 있다면 이 세계가 어떻게 더 확장될지 계속 지켜보고 싶어진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어딘가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묵묵히 영계의 질서를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상상을 조용히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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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의 아이들
변윤하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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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식물이 마법이 되는 학교에서

- 한국 판타지가 보여준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


나는 국내 판타지 소설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아직 한국 판타지는 성장 중인 장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뻗어나가면 정말 멋진 세계관을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감들 그 설렘 때문에 자연스럽게 찾아 읽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아벨의 아이들'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한국 작가가 쓴 마법 학교물’이라는 단순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가면서 느낀 건 이것이었다. 이건 내가 아는 판타지물이면서 뭔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특히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식물과 마법이 결합된 독특한 설정이었다.

식물을 기반으로 한 마법 학교라니, 이런 상상은 해외 판타지에서도 흔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한국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요소다.



평소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나처럼 정원, 식물, 자연 관련 콘텐츠에

눈길이 많이 가는 사람들은 이 세계관 자체만으로도 이미 상상력이 펼쳐진다.


​"만약 내가 저 학교에 다닌다면 어떤 마법을 쓸 수 있을까?"

"식물의 성질과 마법 능력이 연결된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식물을 이용해서 공격 마법을 한다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마법을 쓸 수 있을까?"


이런 식의 즐거운 상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게 바로 식물 기반 판타지 세계관의 강점이다.

화려한 주문이나 거대한 전투가 아니라 자연과 생명에서 비롯된 마법이라는 설정이 주는 신선함.

다정하면서도 강한 마법이라는 느낌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아벨의 아이들'은 마법 학교라는 익숙한 틀을 쓰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다.

서양식 마법 세계관의 구조를 따라가지만 감정 표현, 관계의 밀도, 세계가 흘러가는 방식 등

곳곳에서 한국 작가가 쓴 판타지라는 정체성이 분명하게 느껴졌고, 그 점이 너무 좋았다.


한국 판타지가 꾸준히 다양해지고 있다는 걸 이 작품을 읽으며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한국 판타지가 특정 장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최근 작품들은 감정선도 훨씬 섬세하고 세계관의 폭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 책은 그 흐름 속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물론 읽다 보면 세계관을 조금 더 확장시키면 더 풍부해지겠다는 생각도 들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더 깊어질 여지도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 이어질 시리즈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연결된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국 판타지가 앞으로 더 다양한 세계관으로 뻗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마법 학교물도, 고전적인 서사도 한국 작가의 손을 거치면

이렇게 새롭고 살아 있는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국내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또는 기존 마법 학교물에 익숙해 지루함을 느낀 사람이라면,

아벨의 아이들은 충분히 새로운 즐거움을 줄 것이다.


​식물 기반 세계관의 매력은 생각보다 강력하고,

한국 판타지의 가능성은 여전히 확장 중이라는 걸 느낀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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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 - 개정판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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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내 입맛엔 별로지만, 역사엔 너무 중요했던 생선들

- 청어와 대구가 바꾼 세계의 숨은 이야기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물고기가 세계사를 바꿀 정도의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식량으로써의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려나?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점 진지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청어가 북유럽의 경제를 움직이고, 대구가 유럽 식민지 확장의 핵심 식량이었다는 사실.

어느 순간부터 생선이 단순히 식탁 위의 반찬이 아니라 전쟁, 정치, 종교, 무역의 한가운데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역사는 생각보다 비린내가 났다 는 말이 떠오를 정도였다.

(물론 예술적인 부분에서도 일정부분 기여를 했고 말이다.)​


책을 읽으며 제일 신기했던 건,

이 작고 평범한 생선들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바꾸고, 사람들의 삶의 방향까지 결정했다는 사실이었다.

청어 하나로 도시가 흥했고, 대구 한 마리로 전쟁이 지속되었으며,

심지어 ‘금식’이라는 종교적 제약이 생선 산업을 성장시켰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는 청어 과메기를 제외하고 청어를 이용한 요리를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흔한 생선이 아니기도 하고, 솔직히 대구 쪽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대구탕, 대구전, 대구지리.... 맛있다는 사람도 많지만, 내 입맛엔 뭔가 맞질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세계사를 뒤흔든 물고기인데, 그래도 난 대구는 별로야.라고


​하지만 한편으론 좀 충격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역사를, 음식이라는 익숙한 형태 속에서 그냥 지나치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말이다.



특히 이 책은 단순히 생선의 생태나 요리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생존, 탐욕과 신앙, 전쟁과 무역이 모두 물고기라는 자원을 중심으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읽는 내내 느꼈다. 우리가 식탁 위에서 먹는 한 조각의 생선이

누군가의 노동, 시대의 흐름, 그리고 인간의 생존 본능의 결실이라는 것을.

단순한 요리 재료가 아니라 역사를 이끈 힘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책의 구성도 흥미롭다.

생선을 중심으로 시대별 사건을 짚어주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한 몰입감이 있다.

세계사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이 작고 비린 존재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졌는지를 하나씩 보여준다.


​읽고 나서 나는 냉장고를 열어 생선을 보며 잠시 멈췄다.

이 녀석이 혹시 내 인생을 바꿀 수도 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아무리 그래도 대구는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이제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역사 한 페이지가 같이 떠오를 것 같다.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 이야기는 단순한 물고기의 이야기도 식량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미세한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 균형을 움직이는 힘이 때로는 청어 한 마리, 대구 한 마리였다는 걸 일깨워주는 책이다.


​읽고 나면 생선을 다시는 예전처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이제 시장에서 대구를 볼 때, 살까 말까 고민하는 대신 이렇게 중얼거릴 것 같다.

그래, 넌 내 입맛엔 안 맞지만… 세상은 네 덕에 굴러갔으니까. 정말 훌륭한 생선이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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