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 의복 경연 대회
무모한 스튜디오 지음, 김동환 그림, 김진희 글 / 하빌리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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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정교한 삽화와 화려한 옷의 향연

-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상상력 넘치는 책



처음 '금수 의복 경연대회'를 받았을 때,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양장본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주는 묵직함과 만족감이 있었고, 표지와 내지도 정성스럽게 만들어져 있어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이미 마음이 설렜다.

요즘은 전자책으로 빠르게 읽는 경우도 많지만, 이 책만큼은 꼭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이드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책을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정교한 삽화였다. 단순히 내용을 보조하는 그림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일부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림들이었다.

의복을 묘사한 장면을 읽고 나서 삽화를 보면 글과 그림이 서로 보완하며 완벽한 하나의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았다.

다 읽고 난 후에도 나는 책을 덮지 못하고 삽화만 다시 넘겨보았다.

어떤 선으로, 어떤 디테일로 그려졌는지 눈길이 자꾸 머물렀고, 또 그것을 어떻게 문장으로 풀어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엄마에게도 보여드렸는데, 엄마 역시 "그림이 세밀하고 특징 표현이 잘 되었다고, 참 괜찮은 책이네"라고 감탄하셨다.

세대가 달라도 감각적인 그림 앞에서는 똑같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삽화만이 다가 아니었다. 이 책의 매력은 본문 속 의복 묘사에서도 또 한 번 드러난다.

의복경연대회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옷들은 글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책 속에서 의복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옷감의 질감, 자수의 무늬, 장식의 화려함이 글자 속에서 살아났다.

단순한 텍스트의 묘사를 넘어서서 상상력을 폭발시키는 힘이 있었고, 나는 실제로 화려한 패션쇼의 객석에 앉아 옷을 감상하는 관객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늘 한 가지 질문이 맴돌았다. 이 옷들을 실제로 본다면 얼마나 감동적일까?라고...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옷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이렇게까지 환상적이고 정교하게 끌어올린 작품은 흔치 않다.

단순히 옷이 아니라 상징적이고 화려한 세계관 속에서 의복은 그 자체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수많은 동물과 의복이 어우러지는 장면은 한 편의 패션쇼 같으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설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패션쇼이자, 감각적인 판타지 무대라고 부르고 싶었다.

이 책은 쉽게 넘길 수 없는 책이다. 읽다 보면 문장과 그림이 던지는 밀도 높은 상상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고, 그림과 문장에 대한 미련이 발목을 잡는다.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그림을 먼저보고, 문장을 먼저보고, 그림과 문장을 비교해보고 몇 번이나 페이지 페이지마다 머물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본 것이 아니라, "책이 줄 수 있는 경험의 끝"을 맛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가 동시에 충족되는 드문 책이었다.

삽화가 전달하는 시각적 충격과 문장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파동이 맞물리며, 자신도 모르게 그 세계 속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단순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보고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책. 그래서 이 책은 독서 후의 시간이 더 즐거운 책이었다.


​이 책은 결국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을 넘어, 상상력의 무대를 펼쳐 보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읽는 동안은 물론이고, 다 읽고 난 후에도 그림과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 재생된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이 책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이유겠지.


문학과 예술이 만났을 때, 그리고 그것이 정교하게 엮였을 때 얻을 수 있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이 책이 보여준 것 같다.

나에게 '금수 의복 경연대회'는 단순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하나의 전시회, 하나의 패션쇼 같은 경험이었다.


언젠가 다시 꺼내 보고 싶고, 책장에 오래도록 두고 싶은 책.

나는 앞으로도 가끔씩 이 책을 펼쳐 삽화를 들여다보고, 화려한 문장을 곱씹으며 또다시 상상력의 무대로 들어갈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감탄하게 하고,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책이고, 패션, 판타지, 감각적인 묘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만나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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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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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SF의 매력, 그래서 더 빛나는 것

- SF의 중심에서 대전환을 외치다!



요즘 나는 SF 소설과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몇 권의 작품을 읽고 나니까 이제는 복잡한 세계관도, 낯선 과학 용어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우주와 과학, 상상력으로 빚어진 SF 세계의 매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대전환'을 마주하고 나서 그 생각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내가 알던 SF의 세계는 그저 입구에 불과했고, 여전히 그 세계는 무궁무진했으며, 끝을 알 수 없는 깊고도 방대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은 출간 소식과 함께 이미 여러 평론가들과 사람들에게서 호평을 받았는데, 직접 읽어보니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는지가 단번에 이해됐다.

그건 단순히 흥미롭거나 재밌어서가 아니라, 작품 자체의 밀도와 체계, 그리고 하드 SF 장르의 본질을 충실히 구현한 서사의 힘 때문이었다.

SF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 즉 지적인 긴장감과 철저한 설정, 그리고 그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이야기가 모두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재밌다는 차원을 넘어서 끝까지 생각하게 만들고, 다시 돌아가서 읽게 만들면서 상상력을 머릿 속으로 되뇌이는 과정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짧은 페이지의 책이 아니라 방대한 페이지와 이야기를 가진 책이라서 중간중간 쉼표는 있었지만, 끝내 따라가도록 이끄는 힘이 있었다.


소설의 첫 장면은 19세기 범선 ‘데메테르호’에서 시작된다.

균열 너머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나선 보조의사 사일러스 코드는 난파선과 조우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얼핏 평범한 탐험 소설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수 세기에 걸쳐 반복된다.

범선에서 증기선, 비행선, 그리고 우주선으로 진화하는 운송 수단은 단순한 배경 장치가 아니라,

인류의 지적 호기심과 기술 발전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였다.

이 과정에서 레이놀즈는 천체물리학자 출신답게 과학적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인류의 모험심과 두려움, 욕망을 녹여낸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구면 전환'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지도 제작자 뒤팽이 연구하는 위상수학적 개념인 구면의 안팎이 바뀌는 전환,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드러나는 '모린 표면'은 단순히 수학적 이미지로 머물지 않는다.

거미와 문어 같은 괴상한 형상으로 묘사되는 이 장면들은 현실 자체가 비틀리고 뒤집히는 듯한 감각을 준다.

처음엔 이 부분이 너무 어려워서 인터넷으로 구면 전환이나 모린 표면에 대해서 검색하고 찾아봤는데, 여전히 완벽한 이해는 쉽지 않다.

이처럼 과학적 개념과 감각적 체험을 동시에 던져주는 장치는, 하드 SF가 왜 특별한 장르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설정이 치밀하다'는 것 이상의 몰입을 주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나는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당장은 이해되지 않는 개념과 조각들이 책 속에 흩어져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들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큰 그림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그 모든 조각들이 거대한 전환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모일 때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받았다. 평론가들이 이 소설을 두고 "쉽게 풀리지 않아 짜증 나도록 매혹적이다"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끝까지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여정을 통해 아, 이게 진짜 사람들이 말하던 SF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또 SF 장르와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나의 안일함을 흔들어 깨우며, 여전히 배울 것도, 탐험할 것도, 놀랄 것도 끝없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유행을 따라 가볍게 즐기는 SF라기보다는, 장르의 뿌리 깊은 매력을 정공법으로 담아낸 작품이라는 게 정말 좋았다.


과학적 상상력, 철저한 설정들 그 속의 과학에 집착하거나 풀어나가는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들. 이런 전형적인 SF의 느낌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강하게 다가왔다. 

최근에 유행하는? 나름 특이한 설정들 사이에서, 장르의 기본기, 장르가 가진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사실 이 책은 가볍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다. 때로는 버겁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확신을 준다.

SF라는 장르는 끝없이 확장되는 우주처럼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여정은 힘들지만, 그 마지막 순간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SF라는 장르가 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왜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찬사를 보냈는지를 직접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소설이야말로 지금의 SF 장르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점 같은 작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나는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SF장르를 대하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SF소설들을 피하지 않을 예정이다.

마주보고, 끝까지 읽으며, 받아드릴 각오를 하고 있다. 어렵지만 포기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장르기 때문이다.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한 번은 읽고 넘어가야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지금의 내가 이 책을 달리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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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의 동물수첩 - 인생에 꼭 한번, 사막여우와 카피바라에게 말 걸기
박성호 지음 / 몽스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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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물, 그리고 오래된 꿈의 부활

- 여행보다 따뜻한 만남, 동물과 함께한 기록



책장을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단순히 누군가가 여행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 많은 곳을 여행하며, 그곳에서 마주한 수많은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을 기록했다는 사실이 나를 흔들었다.

내가 언젠가 꿈꿨던 길을, 누군가는 실제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오랫동안 책장을 붙들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많이 키우기도 했었고, 지금도 도마뱀과 달팽이, 팬더마우스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작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와 함께한 16년은 내 삶에서 가장 따뜻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단순히 활자가 아니라,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며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 느껴졌다.

여우, 말, 돌고래처럼 내가 좋아하는 존재들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동물 친구들이 등장할 때는 특히 더 반가웠다.


​읽는 내내 웃음이 번지기도 했다. 책 속 동물들의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모습,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유쾌한 시선 덕분이었다.

마치 친구가 여행담을 들려주듯 편안했고,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사람은 복잡하고 힘들지만, 동물은 늘 유해하다라는 내 오래된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인간 사회의 관계는 언제나 어렵고 지치게 하지만, 동물들의 세계에는 꾸밈이 없다.

동물들은 그저 맹목적으로 사랑 만을 준다. 그 단순한 존재감이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읽으면서 속상한 마음도 있었다. 나는 여성이고, 그래서 현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안전하다고 손꼽히는 한국도 여성이 타깃인 범죄가 많다.

물론 해외는 누구나 위험하지만 그럼에도 여성보단 편하게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위험과 제약을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님이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이 더욱 대단해 보였고, 나로서는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부러움은 배가 되었고 씁쓸한 체념이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 뒤에는 묘한 위로가 따라왔다. 누군가 용기 있게 세상으로 걸어나가고, 그것을 기록해 준 덕분에,

내가 직접 가지 않아도 여러 나라의 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마음속에 새길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 속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여행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마치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는 듯한 몰입이 생긴다.

동물이 무심하게 건네는 눈빛, 사막을 달리는 여우의 가벼운 발걸음, 초원을 가득 메우던 바람까지 고스란히 옮겨온 듯했다.

색다른 삽화들은 눈까지 즐겁게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내가 잊고 있던 감각을 되살려주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오랫동안 도시의 일상 속에 묻어둔 본능과 꿈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내 안에 오래 묻어둔 꿈을 다시 꺼내어 보게 만들었다.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마음, 동물 관리사가 되고 싶었던 열망

그리고 언젠가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동물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던 꿈.

책을 읽는 동안 그 모든 조각들이 다시금 선명하게 살아났다.

당장은 갈 수 없는 길일지라도,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동물에 대한 사랑, 자유를 향한 동경,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용기에 대한 기록이다.

책을 덮고 나니 마음속이 조금은 투명해진 것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흐리지 않은 샘물을 한 모금 마신 듯,

내 안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나도 언젠가, 나만의 방식으로 동물들과 더 가까이 만나고 싶다는 다짐을 새겼다.


​뜨거운 햇살, 초원의 바람, 그리고 수많은 생명들이 내 마음속에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이 책은 내게 단순한 독서 경험을 넘어, 오래된 꿈을 다시 꺼내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책을 덮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언젠가는 나도 언젠가 길 위에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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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퐁듀를 먹으러 왔는데요
성보미 지음, 성효진 그림 / 라이크북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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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여행에 대한 꿈은 가지고 있다.

나 역시도 여행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있지만, 사실 여행을 갈 상황도 아닌 데다가

여행을 가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피곤해지기 때문에 여행을 피하게 된다. 가고 싶지만 가기 싫은 너무나 아이러니한 감정이다.


​이건 내가 집순이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건강 문제 탓이 크다.

차나 의자에 30분만 앉아 있어도 다리가 붓고, 골반과 허리, 꼬리뼈까지 전해지는 통증이 너무 아프다.

앉아도, 서 있어도, 누워도 계속되는 고통은 여행의 낭만보다 고통을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6월엔 가족 모임이라며 2시간 거리로 떠났다가, 후유증으로 일주일 동안 앓은 적도 있다.

몸과 마음이 같이 무너지며, 여행은 내게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여행기를 통해 다녀온 듯한 감정을 대신 채우곤 했다.

미디어의 힘 덕분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곳의 공기와 이야기를 내가 마치 경험한 것처럼 얻어낼 수 있다.

여행 준비를 하는 친구들에게 정보를 전해줬을 때, 여행 많이 다닌 사람보다 정보가 많다는 말을 들으면, 지식이란 참 고마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 또한 새로운 여행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펼쳐들었다.


성보미 작가의 진짜 퐁듀를 먹으러 왔는데요는 표지부터 내면에 따뜻한 빛이 감도는 듯했다.

일러스트는 몽글몽글한 감성을 최대한 끌어올렸고, 표지에도 귀엽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입혔다.

책 곳곳에 그리고 사진 속에 등장한 일러스트들은 책을 감상하는 재미를 더했다.


​여행의 첫 시작은 프랑스의 몽블랑이었다. "익스큐즈미"라는 대사로 시작된 에피소드는, 내 마음에 꼭 박힌 웃음 버튼을 눌렀다. 스무 살, 비행기도 제주도 한 번 타본 게 전부였던 작가님은 첫 해외여행부터 실수가 많았다.

호텔 방 열쇠를 방 안에 두고 나와 난장판을 만들고, 메뉴 주문 하나 못 해 식은땀을 흘리며 주문한 퐁듀 앞에서 당황한다.

퐁듀를 시키고 등장한 낡은 버너, 찌그러진 냄비, 꼬치에 꽂힌 생고기. "이게 진짜 퐁듀 맞아?"라는 질문에 종업원은 싸늘한 태도로 "맞다"라고 답하고, 그 서늘한 순간이 긴장과 웃음으로 남는다. 하지만 여행이란, 이렇게 엉망이 된 순간까지도 지나고 나면 즐겁고 친근한 기억으로 남는다.

참고로 작가님이 시켰던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치즈 퐁듀가 아니라 오일 퐁듀라고 한다. 퐁듀에도 종류가 참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대만 타이베이에서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해 질 무렵 한 사찰에 올라가던 길, 비는 내리고 어둠은 깊고, 땅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때 나타난 낯선 할아버지.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작된 장면에서 할아버지는 중국어로 뭔가 말하면서도 곁을 떠나지 않는데,

어쩐지 그 존재는 무섭기도 하고 동시에 웃기기도 하다. 여행이란 이런 순간들이 있어 줘야 완성된다.

미리 예측할 수 없는 감정, 불안과 위안이 함께하는 순간들 말이다.



이 책은 프랑스, 대만, 일본, 중국, 독일, 영국, 캐나다, 몽골, 베트남, 크로아티아까지

이어지는 열 개의 나라 여행기를 담고 있다.

특히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서 '빨간 머리 앤'을 떠올리는 장면은, 소녀 감성과 상상을 현실로 불러오는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그 이야기 속 섬을, 실제로 마주한 순간의 떨림이 글에 깃들어 있었다. 말 그대로 성덕의 모습이었다.

그런 장면들은 단순한 장소의 기록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감정까지 공유 받는 일이 되었다.



나는 여행지의 풍경보다 책 속 일러스트에 더 크게 웃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마주한 그림들에 "너무 귀엽다"라고 웃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보여줬다.

다들 여행기라면 진짜 그대로의 사진만 생각하는데 일러스트 하나하나가 주는 따뜻함에 공감하며 좋아했다.

역시 사람들의 보는 눈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의 이야기는 따뜻하다. 작가님이 따뜻한 사람이라서 일까?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쁘고 따뜻하고 감성적이라서 좋았던 것 같다. 여행 에세이인데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감성 에세이가 곁들여진 것 같은 느낌이 많았다.

작가님의 상황 묘사도 예뻤고, 꼼꼼했고, '꺄르르 웃었다' 같은 표현이 너무 좋았다.

단순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것 같아서... 잘 꾸며진 문장이 아니라 정말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미있게 따라갈 수 있었다.


이 책이 내게 준 건, 혼자 조용히 여행을 다니고 싶은 마음에 힘이 실렸다는 것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것은 누군가와 함께 가는 여행보다,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그저 나 혼자만의 여정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혼자서 여행하는 작가님의 모습에서 조심스러운 용기가 스며들었고,

나도 언젠가 준비가 된다면 조용히 떠날 수 있겠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봐도 나는 역시 대문자 I인 것 같다.


이 책은 풍경보다 확실히 이야기 중심이다.

여행의 순간들이 작가님의 내면과 맞닿아 표현되는 방식은, 화려한 장면보다 공감과 웃음으로 가득하다.

엉뚱한 장면에서 피식 웃고,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하며, 중간중간 나를 돌아보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내가 편하게 떠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이 책 속 작은 장면들이 떠오를 것이다.

진짜 퐁듀 한입, 낯선 할아버지와의 어색한 동행, 엄마 여행을 챙기며 흘린 눈물 같은 기억들.

진짜 여행의 이야기는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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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희 최광희입니다
최광희 지음 / CRETA(크레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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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만남, 의외의 호감

매불쇼도, 최광희도, 처음이었습니다



'미치광희 최광희입니다'는 책은 이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사실 자기 이름 앞에 '미치광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것이 단순한 자학이나 유머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선언문처럼 느껴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미치광희'라는 단어 안에는 익살과 도발이 섞여 있지만, 그걸 그냥 장난으로만 넘길 수 없는 무게가 있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건, 이 제목이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말장난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과 태도의 압축이라는 사실이었다.


​최광희는 스스로를 미치광이처럼 보일지언정, 적어도 자신이 믿는 가치와 이야기를 향해 한 치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 과정에서 온갖 부침과 굴곡을 겪으면서도 '나'라는 존재를 버리지 않았다. 그게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크게 와닿은 부분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그가 매주 금요일 '매불쇼'라는 채널의  '시네마 지옥'이란 코너에서 활동하는 코믹 평론가라는 사실과,

그 채널이 유튜브와 팟캐스트로 운영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코믹 평론가라는 말 때문에 코미디를 평론하는 사람인가?라는 오해를 했지만,

그저 영화를 재미있고 날카롭게, 때로는 통렬하게 평론하고 추천하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영화평론가였다.

솔직히 조금 당황하기도 했고, 나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호기심만으로 책을 들었다는 생각에 자기반성도 하게 되었다.


​물론 매불쇼라는 프로그램이나 최광희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해서 책의 이해에 문제가 되는 건 전혀 아니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프로그램이나 취향이 다르고,

나 같은 경우는 공포, 미스터리, 흉가 다큐나 게임, 애니메이션, 공예, 그림 등

시청하는 콘텐츠가 편향되어 있으니 자연스레 매불쇼는 내 알고리즘에 들어올 일이 없던 채널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채널도 최광희라는 사람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찾아보니 이 매불쇼라는 채널은 '본격 루저 갱생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연애 관련 토크가 주 내용이라

나처럼 연애 예능을 전혀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채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연히 만난 최광희라는 사람은 매우 유쾌하고 솔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매불쇼에서 그가 진행하는 부분만 따로 볼 수 있다면 한 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책은 에세이 형식을 가진 일대기? 자서전 느낌이다.

전형적인 회고록이 아니라, 각 시기마다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과 기억, 그리고 그에 얽힌 사람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그래서 단락마다 분위기가 바뀌고, 톤도 농담에서 진지함으로, 또다시 자조적인 유머로 훅훅 전환된다.

어떤 순간에는 라디오 진행자 특유의 입담이 느껴지고, 어떤 순간에는 영화평론가로서의 비평적 시선이 번뜩인다.

그런데 이런 변화무쌍한 문장들이 오히려 이 사람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미치광희'라는 별명은 이렇게나 다층적인 한 사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울리는 절묘한 단어였다.


나는 특히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외부 세계와의 부딪힘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방송계, 영화계, 언론계 등등 작가님이 발을 디딘 곳마다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은 때로는 명예와 커리어를 갉아먹었지만 동시에 단단하게 만들었다.

남들이 외면하거나 타협하는 순간에 오히려 더 세게 부딪히는 모습은, 읽는 내내 이건 용감한 건가?

아니면 그냥 무모하고 열정적인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곧 그 둘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기 확신을 밀어붙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용기이고 무모한 열정을 가진다는 거니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이 책이 단순히 성공담을 그려낸 에세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패, 좌절, 우울, 심지어 자기혐오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일반적인 자서전은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많이 강조하고 사람들에게 교훈처럼 알리려고 하지만, 이 책은 그 반대다.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시간, 모든 게 무너져버린 순간, 사람들에게 잊히거나 버려진 경험들을 낱낱이 꺼내놓는다.

그런데 그 어두움이 지루하거나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그 안에 여전히 유머와 자기 풍자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아마도 최광희라는 사람의 생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웃으면서 버티고, 비틀면서 전진하는 것.


​읽다 보면,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나 역시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고집을 부리고, 때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 하고,

때로는 웃음으로 가린 절망을 안고 살아가니까.

그래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던지는 말들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는 여전히 싸우고 있고, 여전히 버티고 있고, 여전히 자신을 미치광희라 부르며 살아간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패배의 선언이 아니라,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그게 조금은 부러웠다는 나는 여전히 버티고는 있지만 싸움에서는 벗어나고 싶어서 도망쳐 버린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미치광희라는 별명이 단순한 캐릭터 설정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하나의 언어였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미치광이 기질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숨기거나 다듬어서 보일 뿐.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기꺼이 꺼내 보이고,

그 기질로 세상과 싸우고, 그 싸움을 기록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록이다. 웃기면서도 진지하고,

가벼우면서도 묵직하며, 무엇보다 솔직하다. 그 솔직함이 나를 끝까지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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