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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퐁듀를 먹으러 왔는데요
성보미 지음, 성효진 그림 / 라이크북 / 2025년 3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여행에 대한 꿈은 가지고 있다.
나 역시도 여행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있지만, 사실 여행을 갈 상황도 아닌 데다가
여행을 가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피곤해지기 때문에 여행을 피하게 된다. 가고 싶지만 가기 싫은 너무나 아이러니한 감정이다.
이건 내가 집순이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건강 문제 탓이 크다.
차나 의자에 30분만 앉아 있어도 다리가 붓고, 골반과 허리, 꼬리뼈까지 전해지는 통증이 너무 아프다.
앉아도, 서 있어도, 누워도 계속되는 고통은 여행의 낭만보다 고통을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6월엔 가족 모임이라며 2시간 거리로 떠났다가, 후유증으로 일주일 동안 앓은 적도 있다.
몸과 마음이 같이 무너지며, 여행은 내게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여행기를 통해 다녀온 듯한 감정을 대신 채우곤 했다.
미디어의 힘 덕분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곳의 공기와 이야기를 내가 마치 경험한 것처럼 얻어낼 수 있다.
여행 준비를 하는 친구들에게 정보를 전해줬을 때, 여행 많이 다닌 사람보다 정보가 많다는 말을 들으면, 지식이란 참 고마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 또한 새로운 여행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펼쳐들었다.
성보미 작가의 진짜 퐁듀를 먹으러 왔는데요는 표지부터 내면에 따뜻한 빛이 감도는 듯했다.
일러스트는 몽글몽글한 감성을 최대한 끌어올렸고, 표지에도 귀엽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입혔다.
책 곳곳에 그리고 사진 속에 등장한 일러스트들은 책을 감상하는 재미를 더했다.
여행의 첫 시작은 프랑스의 몽블랑이었다. "익스큐즈미"라는 대사로 시작된 에피소드는, 내 마음에 꼭 박힌 웃음 버튼을 눌렀다. 스무 살, 비행기도 제주도 한 번 타본 게 전부였던 작가님은 첫 해외여행부터 실수가 많았다.
호텔 방 열쇠를 방 안에 두고 나와 난장판을 만들고, 메뉴 주문 하나 못 해 식은땀을 흘리며 주문한 퐁듀 앞에서 당황한다.
퐁듀를 시키고 등장한 낡은 버너, 찌그러진 냄비, 꼬치에 꽂힌 생고기. "이게 진짜 퐁듀 맞아?"라는 질문에 종업원은 싸늘한 태도로 "맞다"라고 답하고, 그 서늘한 순간이 긴장과 웃음으로 남는다. 하지만 여행이란, 이렇게 엉망이 된 순간까지도 지나고 나면 즐겁고 친근한 기억으로 남는다.
참고로 작가님이 시켰던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치즈 퐁듀가 아니라 오일 퐁듀라고 한다. 퐁듀에도 종류가 참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대만 타이베이에서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해 질 무렵 한 사찰에 올라가던 길, 비는 내리고 어둠은 깊고, 땅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때 나타난 낯선 할아버지.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작된 장면에서 할아버지는 중국어로 뭔가 말하면서도 곁을 떠나지 않는데,
어쩐지 그 존재는 무섭기도 하고 동시에 웃기기도 하다. 여행이란 이런 순간들이 있어 줘야 완성된다.
미리 예측할 수 없는 감정, 불안과 위안이 함께하는 순간들 말이다.

이 책은 프랑스, 대만, 일본, 중국, 독일, 영국, 캐나다, 몽골, 베트남, 크로아티아까지
이어지는 열 개의 나라 여행기를 담고 있다.
특히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서 '빨간 머리 앤'을 떠올리는 장면은, 소녀 감성과 상상을 현실로 불러오는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그 이야기 속 섬을, 실제로 마주한 순간의 떨림이 글에 깃들어 있었다. 말 그대로 성덕의 모습이었다.
그런 장면들은 단순한 장소의 기록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감정까지 공유 받는 일이 되었다.

나는 여행지의 풍경보다 책 속 일러스트에 더 크게 웃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마주한 그림들에 "너무 귀엽다"라고 웃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보여줬다.
다들 여행기라면 진짜 그대로의 사진만 생각하는데 일러스트 하나하나가 주는 따뜻함에 공감하며 좋아했다.
역시 사람들의 보는 눈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의 이야기는 따뜻하다. 작가님이 따뜻한 사람이라서 일까?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쁘고 따뜻하고 감성적이라서 좋았던 것 같다. 여행 에세이인데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감성 에세이가 곁들여진 것 같은 느낌이 많았다.
작가님의 상황 묘사도 예뻤고, 꼼꼼했고, '꺄르르 웃었다' 같은 표현이 너무 좋았다.
단순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것 같아서... 잘 꾸며진 문장이 아니라 정말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미있게 따라갈 수 있었다.
이 책이 내게 준 건, 혼자 조용히 여행을 다니고 싶은 마음에 힘이 실렸다는 것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것은 누군가와 함께 가는 여행보다,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그저 나 혼자만의 여정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혼자서 여행하는 작가님의 모습에서 조심스러운 용기가 스며들었고,
나도 언젠가 준비가 된다면 조용히 떠날 수 있겠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봐도 나는 역시 대문자 I인 것 같다.
이 책은 풍경보다 확실히 이야기 중심이다.
여행의 순간들이 작가님의 내면과 맞닿아 표현되는 방식은, 화려한 장면보다 공감과 웃음으로 가득하다.
엉뚱한 장면에서 피식 웃고,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하며, 중간중간 나를 돌아보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내가 편하게 떠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이 책 속 작은 장면들이 떠오를 것이다.
진짜 퐁듀 한입, 낯선 할아버지와의 어색한 동행, 엄마 여행을 챙기며 흘린 눈물 같은 기억들.
진짜 여행의 이야기는 이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