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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5년 7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전형적인 SF의 매력, 그래서 더 빛나는 것
- SF의 중심에서 대전환을 외치다!

요즘 나는 SF 소설과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몇 권의 작품을 읽고 나니까 이제는 복잡한 세계관도, 낯선 과학 용어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우주와 과학, 상상력으로 빚어진 SF 세계의 매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대전환'을 마주하고 나서 그 생각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내가 알던 SF의 세계는 그저 입구에 불과했고, 여전히 그 세계는 무궁무진했으며, 끝을 알 수 없는 깊고도 방대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은 출간 소식과 함께 이미 여러 평론가들과 사람들에게서 호평을 받았는데, 직접 읽어보니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는지가 단번에 이해됐다.
그건 단순히 흥미롭거나 재밌어서가 아니라, 작품 자체의 밀도와 체계, 그리고 하드 SF 장르의 본질을 충실히 구현한 서사의 힘 때문이었다.
SF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 즉 지적인 긴장감과 철저한 설정, 그리고 그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이야기가 모두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재밌다는 차원을 넘어서 끝까지 생각하게 만들고, 다시 돌아가서 읽게 만들면서 상상력을 머릿 속으로 되뇌이는 과정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짧은 페이지의 책이 아니라 방대한 페이지와 이야기를 가진 책이라서 중간중간 쉼표는 있었지만, 끝내 따라가도록 이끄는 힘이 있었다.


소설의 첫 장면은 19세기 범선 ‘데메테르호’에서 시작된다.
균열 너머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나선 보조의사 사일러스 코드는 난파선과 조우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얼핏 평범한 탐험 소설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수 세기에 걸쳐 반복된다.
범선에서 증기선, 비행선, 그리고 우주선으로 진화하는 운송 수단은 단순한 배경 장치가 아니라,
인류의 지적 호기심과 기술 발전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였다.
이 과정에서 레이놀즈는 천체물리학자 출신답게 과학적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인류의 모험심과 두려움, 욕망을 녹여낸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구면 전환'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지도 제작자 뒤팽이 연구하는 위상수학적 개념인 구면의 안팎이 바뀌는 전환,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드러나는 '모린 표면'은 단순히 수학적 이미지로 머물지 않는다.
거미와 문어 같은 괴상한 형상으로 묘사되는 이 장면들은 현실 자체가 비틀리고 뒤집히는 듯한 감각을 준다.
처음엔 이 부분이 너무 어려워서 인터넷으로 구면 전환이나 모린 표면에 대해서 검색하고 찾아봤는데, 여전히 완벽한 이해는 쉽지 않다.
이처럼 과학적 개념과 감각적 체험을 동시에 던져주는 장치는, 하드 SF가 왜 특별한 장르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설정이 치밀하다'는 것 이상의 몰입을 주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나는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당장은 이해되지 않는 개념과 조각들이 책 속에 흩어져 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들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큰 그림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그 모든 조각들이 거대한 전환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모일 때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받았다. 평론가들이 이 소설을 두고 "쉽게 풀리지 않아 짜증 나도록 매혹적이다"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끝까지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여정을 통해 아, 이게 진짜 사람들이 말하던 SF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또 SF 장르와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나의 안일함을 흔들어 깨우며, 여전히 배울 것도, 탐험할 것도, 놀랄 것도 끝없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유행을 따라 가볍게 즐기는 SF라기보다는, 장르의 뿌리 깊은 매력을 정공법으로 담아낸 작품이라는 게 정말 좋았다.
과학적 상상력, 철저한 설정들 그 속의 과학에 집착하거나 풀어나가는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들. 이런 전형적인 SF의 느낌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강하게 다가왔다.
최근에 유행하는? 나름 특이한 설정들 사이에서, 장르의 기본기, 장르가 가진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사실 이 책은 가볍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다. 때로는 버겁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확신을 준다.
SF라는 장르는 끝없이 확장되는 우주처럼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여정은 힘들지만, 그 마지막 순간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SF라는 장르가 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왜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찬사를 보냈는지를 직접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소설이야말로 지금의 SF 장르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점 같은 작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나는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SF장르를 대하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SF소설들을 피하지 않을 예정이다.
마주보고, 끝까지 읽으며, 받아드릴 각오를 하고 있다. 어렵지만 포기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장르기 때문이다.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한 번은 읽고 넘어가야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지금의 내가 이 책을 달리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