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라이언 - 스스로를 찾아가는 라이언의 모험
카카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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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벽에 걸린 꿈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포기하려 했던 꿈, 꿈을 지켜주려는 사랑, 그리고 라이언의 작고 단단한 용기


'그래도 라이언'은 카카오 프렌즈의 프리퀄 웹툰으로 3월부터 연재되고 있었던 웹툰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이다.

웹툰이지만, 대사가 없이 일러스트만으로 연출을 시도한 작품인데, 서양의 그래픽 노블과 비슷하게 통 일러스트를 사용했다는 점이 재밌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대부분 대사가 없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몇 장의 짧은 설명을 제외하면 오롯이 그림만으로 감정을 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말 없는 이야기들이 더 마음에 깊이 스며든다. 라이언이라는 캐릭터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일까?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 깊고 다정한 사자, 라이언의 이야기는 목소리가 없어도 온기가 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 라이언의 일상을 그려낸 것이 아니다. 처음엔 꽤 엉뚱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에 많은 감정과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생각보다 라이언이라는 캐릭터는 더 무겁고 묵직한 존재였다.


언제나 둥둥섬을 탈출해서 떠나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왕위 계승을 결심한 라이언과 그런 손주의 마음을 이해하고  기꺼이 대신 왕관을 쓴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가는 갈기 없는 사자 라이언의 이야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세계 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라이언이 자신의 꿈을 사진으로 만들어 벽에 액자로 걸어둔 장면이었다. 액자 속엔 라이언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상상 속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귀엽기보다는 먹먹함이 먼저 밀려왔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렇게라도 꿈을 품고 싶었을까?

너무 오래 바라기만 하면, 꿈은 점점 현실과 멀어지고 결국 벽 속에만 남는 환상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라이언은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위해서 달리고 또 달렸겠지 결국 실패로 남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끝내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하나 모았던 보물들을 버리는 장면에서는 이제는 꿈도, 욕망도, 기대도 내려놓겠다는

쓸쓸한 결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렸다. 그렇게 왕위를 계승하고 나면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그래도 라이언이라는 책의 제목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해 보려는 라이언의 작고 단단한 용기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카카오 프렌즈가 이제는 단순한 캐릭터 브랜드가 아니라, 캐릭터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담긴 거대한 세계관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카카오 프렌즈들이 어느새 우리에게 자신들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은 만화책과 일러스트북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작은 동화, 한 편의 짧은 애니메이션 같은 감동을 준다.

단순히 귀여움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잔잔한 진심이 담긴 주인공들.​


카카오 프렌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충분히 소장용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림 한 장 한 장의 완성도가 높고 그림 속에 감정도 깊게 들어 있어서 보면 볼수록 오래 그 장면에 머무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카카오 프렌즈 중에서 무지와 콘의 서사를 좋아하는 편인데, 둘의 이야기도 꼭 책으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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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의 바다 - 백은별 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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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사랑,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뜨겁게

– 풋풋함을 넘어서 진심을 담아낸 순수한 로맨스 판타지



'윤슬의 바다' 이름처럼 예쁜 표지를 가진 이 책은 내 기준 아주 어린 작가님의 손끝에서 태어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다.

2009년생 아직 고등학생 작가님의 이력을 접하게 되면 놀라움과 동시에 얼마나 잘 썼을까? 하는 의문부터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그런 선입견은 빠르게 무너진다. 물론 아직 가능성이 높은 작가님의 작품이다 보니까 성장의 길을 열어놔야겠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진솔하고, 더 오래 남는 소설이었다.


​소설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이 너무 진하고, 그 서사의 방식은 생각보다 더 단단하다.

고등학생, 그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감정의 깊이와 감정의 표현에 무척이나 감탄했다.

유명 작가분들의 정제된 문장과는 사뭇 다른 날 것의 솔직함,

그리고 그 솔직함에서 오는 진심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무기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초능력이 존재하는 사회다. 하지만 그 능력은 존중의 대상이 아닌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사회는 초능력자들을 위험 요소로 분류하고, 이들을 수용하거나 제거해야 할 존재로 규정한다.

이런 세계에서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진 소녀 '윤슬'과 초능력 연수소 소장의 아들이자 일반인인 '바다'는

여느 10대들처럼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게 끌리며 풋풋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시스템적으로 금지되고, 억압된 상황에서 그들의 감정은 순수하지만, 그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한 현실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특히나 둘은 아직까지 어린 학생들이라서 자신들이 놓인 상황에서 많은 사유에 의해 흔들리고 흔들린다.


책은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 부딪히는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풀어낸다.

소년과 소녀가 서로를 향해 천천히 스며들고, 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감정의 수위를 높여가는 장면들에서는

10대만이 가질 수 있는 날것의 정서가 느껴졌다. 낭만적인 로맨스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 그 자체가 얼마나 순수하면서도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를 절절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쉽게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나는 책에 줄을 긋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 플래그를 주로 사용하는데 정말 여기저기 다 붙여서 표시하고 적어놓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서 참느라고 꽤 고생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 청소년인 작가님의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문장들은 어른들의 소설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던 감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너라도 밝게 남아줄 수 있어서. 빛보다 어둠이 익숙한 나에게 빛 같은 네가 있어서.

아마도 우린 함께할 것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내 빛으로.


조금은 오글거리지만 예쁜 저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서 문장이 되었다. 저 감성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이 소설의 제목인 '윤슬의 바다'는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사실 요즘 SNS에서는 '윤슬'이나 '안온' 같은 단어들을 두고 과도하게 감성에 취한 언어고 남용되는 언어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 책만큼은 그 비판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슬'이라는 단어는 책 속의 인물의 이름이자,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감정의 결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쁜 소녀의 마음이 윤슬처럼 일렁이고, 우리의 마음에 조용히 파문을 남긴다.

작위적인 느낌이 아니라 제목과 작가님과 작품 모두가 하나의 톤으로 어우러져 있다는 인상을 주고

주인공들의 이름과 상관없이 이 책은 저 제목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작품의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겠지만 다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소설은 단순히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랑을 지킬 것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를 질문한다.

그 질문의 대상이 성인이 아닌 오히려 가장 순수한 감정을 가진 10대들이기에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마치 바다의 파도가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 듯,

아득한 감정의 바다에서 빠져 있다가 조용히 떠밀려 나오는 기분이다.


이 책은 완성형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안에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님의 감정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젊은 작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분명 가능성 그 자체로 나에게 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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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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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을 잊고, 자연은 우리를 기억한다

-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온 존재에게 배운다는 것



엔리크 살라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자연에 대한 본질적인 생각을 조금 더 바꿔 보고자였던 것 같다.

자연 과학을 좋아하면서도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이 상태를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단순한 자연을 사랑합시다라는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단순한 생태 에세이를 넘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태롭게 이 지구의 균형을 흔들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다소 전문적인 용어나 실험 이야기들이 많아서 처음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설명은 매우 친절하고도 따뜻하다.

이 책을 옮긴 양병찬님이 각주까지 세심하게 챙긴 덕분에

나처럼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충분히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다.


이 책 속에서는 모든 내용이 흥미롭지만 유독 흥미를 느낀 것은 생명체들을 통한 다양한 실험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보고 직접 하라고 하면 겁이 날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겠지만,

누군가의 손끝에서 이루어진 그 실험들이 자연의 신비를 증명해낼 때의 경이로움은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율과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였다.


생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체계적이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영향을....

그 과정을 따라 읽는 동안에 문득, 우리는 자연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라는 종이 이 지구에 있어서 정말로 필요한 존재인가를 자문하게 되는데,

우리는 누구보다 자연을 이용하면서도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고 애쓴다.

자연은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은 빠르게 진행되지만, 자연 보전에는 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뒤로 미뤄진다.

인간의 이런 이기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숱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데 대체 언제 자연을 보전한단 말인가?

이런 속도라면 우리가 개발을 다 끝내기도 전에 생태계가 파괴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우리는 후회만 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산불 이후의 생태계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지역 근처에서 큰 산불이 자주 발생했던 터라, 이 주제는 더욱 깊게 와닿았다.

인간은 불을 끄는 것에 나름 능숙해졌지만, 여전히 완벽하진 못하고 결국 자연을 까맣게 소실하고 말았다.

이 이후의 회복은 결국 전적으로 자연에게 의존해야 한다.

씨앗 하나가 불타버린 산을 다시 푸르게 만드는 그 기적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과학이나 기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이 이 지구를 다시 살리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연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질서 있고, 정의롭다는 사실도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생태계에도 경쟁이 존재하고, 약한 종은 도태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이 등장하기 전까지 자연은 나름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반면,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고 난 이후로 너무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사라져버렸다.

멸종된 동물, 파괴된 숲, 바닷속의 플라스틱...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나 역시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자연을 완벽히 지키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연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환경보호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내가 쓰는 전기와 내가 버리는 쓰레기를 한 번쯤 더 생각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환경보호자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들의 폭력적인 환경 시위에 대해서

규탄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멀쩡한 환경보호 운동이 그렇게 힘든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긍정적인 태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책의 마지막에는 코로나와 생태계의 연결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전염병의 근원이 야생에서 비롯되었다는 과학적인 사실은,

인간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자연을 침범하고 선을 넘고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이는 단순히 위기 상황이 아니라, 자연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경청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솔직히 그렇게 쉽지는 않은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남는 감정은 아주 또렷하다.

흥미로움, 아픔, 미안함, 고마움과 경의로움 그리고 조금은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감각을 되찾는다면, 세상은 조금 더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작될 수 있는 아주 조용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환경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한 번쯤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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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갈까마귀 캐드펠 수사 시리즈 12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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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스터리」가 침묵이 가진 무게를 다루었다면,

「어둠 속의 갈까마귀」는 신념이 가진 위험성을 다룬다.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념은 때때로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배제하고 결국엔 파국으로 향하게 만든다.

이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눈 덮인 겨울, 조용한 수도원 저수지에서 한 사람의 시신이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망한 사람은 에일노스 신부로 신념이 너무나 엄격했고, 타인의 고통이나 사정엔 귀를 닫은 채

정의만을 외쳤기에 살아있는 동안에도 원성을 산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래서 나에겐 그다지 놀랍지 않게 다가왔던 것 같다. 모두가 언젠가 오고야 말 비극을 맞이한 느낌이랄까?



사건은 일어났지만, 캐드펠 시리즈가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도 단순한 범인 찾기 추리극이 아니다.

그래서 누가 죽였냐보다는 왜 죽였냐가 더 중요했고, 나 역시 그저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 어둠을 함께 걸으며 들여다 보며, 그 이유에 대해서 찾아보려고 애썼다.



캐드펠은 언제나처럼 차분한 시선으로 공동체 내부의 긴장과 인물들이 품고 있는 갈등과 비밀을 들여다 봤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리서 냉정하게 모든 상황을 들여다 보는 그 모습이 늘 감탄스럽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 역시 단순하지 않다.
중세 수도원의 삶은 외견상 평온하지만, 그 내부는 결코 조용하지 않다.

후계자 경쟁, 상처받은 과거, 용서받지 못한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물들이 모두 에일노스 신부와 얽힌 갈등을 품고 있고, 그 갈등은 어떤 경우엔 사랑이었고,

또 어떤 경우엔 복수였으며, 결국은 인간의 고독한 선택으로 귀결된다.

비밀스러우면서도 어두운 인간들의 이면들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것들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들과 다를까?

정의란 누군가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진실을, 어떤 상처를 끝까지 껴안고 갈 수 있는가에 따라

그 무게부터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 이야기는 단지 범인을 찾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오래 기억하게 되고 누군가의 모습에 감탄을 남기게 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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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니카의 아이들
미치 앨봄 지음, 장성주 옮김 / 윌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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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로 유명한 미치 앨봄, 그의 새로운 소설이자 그가 꼭 하고자 했던 이야기라는 말에 끌려서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아프고 조용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절규하지 않으면서도

한 줄 한 줄이 뼛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처음에 봤던 살로니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다 하지만 읽고 나니, 낯선 도시의 이름이 내 마음속에서 오래 반향을 울린다. 그곳에 살았던 아이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을 기억하고, 그날의 진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책은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절절하다. 작가인 미치 앨봄은 유대인 공동체의 삶과 그들의 비극을 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것도 아이들의 이야기로 말이다. 무언가 거대한 비극을 말할 때, '아이들'로 시작한다는 것은 가슴이 많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다큐 시사를 볼 때도, 사건 사고 이야기를 볼 때도 아이들이 나오는 것은 최대한 피한다.

옛날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언젠가부터 그랬는데 너무 힘들어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객관적으로도...


그리스의 작은 마을 '살로니카'는 원래 작은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도시였다고 한다.

세파에 밀려 떠나온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살았던 그곳.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모든 것을 차례대로 집어삼켰고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늑대들에 의해서 하나둘 집어삼켜지는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말할 수 없어서, 말하지 못해서, 결국 잊힌 기억으로 남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너무 아리고 시렸다. 누군가에게는 역사이고,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인 이야기


나는 사실 전쟁도, 홀로코스트도, 유대인 문제도 언제나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휴전국이긴 해도 당장에 전쟁이 날 거란 생각도 안 했으니까 말이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다만 이것이 잊히고 지나간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문득 며칠 전에 보았던 이스라엘 폭격 영상이 떠올랐다.

음속 미사일이 떨어지는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촬영한 영상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있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면서도 높은 건물에서 대피하지도 못하고

그저 창문 밖으로 마치 별처럼 쏟아지는 미사일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반격으로 지상에서 쏘아 올려지는 미사일의 모습들도 보였다.

순식간에 주변에 떨어져서 폭발하는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전쟁은 그렇게 우리랑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우크라이나도 그렇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불과 8000km 떨어진 나라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과거와 현재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이라는 것도 떠올랐다.

어른들의 전쟁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아이들. 전쟁과 유대인 학살은 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과 사람들은 철저히 이용당하고, 상처받고, 사라져 갔다.


니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소년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옳다고 믿었고, 그 신념은 그 아이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 그 자체였다.

니코의 금발 머리와 푸른 눈동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가려주었고,

그 외모는 그를 그 시대에서 살아남기 좋은 '도구'였다.

하지만 진실만을 말하던 아이가 결국 그 누구보다도 거짓을 깊이 등에 업고 살아가야 했다는

사실이 이 책의 가장 큰 슬픔이자 모순이다.

니코는 소년으로써 짊어지기에는 너무 가혹한 죄의식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 그것도 아무한테도 말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결국 진실만을 말하고, 사람을 믿었기에 이용당한 아이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을 전하게 된 비극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니코의 형인 세바스티안은 외모도, 성격도, 모든 것이 동생인 니코와 달랐다.

동생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는 점점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깊어졌고,

사랑도, 인정도 모든 것을 니코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세바스티안의 내면은 전쟁과 함께 더욱 어두워진다.

그는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 소년이자, 자신 스스로를 잃어버린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파니.... 전쟁과 학살이라는 이름 앞에서 여성이라는 것은 늘 위험한 요소로 작용한다.

파니는 전쟁 속에서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사건 속에서 순수함을 읽고 현실을 깨닫게 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당장 전쟁이 아니더라도 보호받지 못하는 제3국의 여자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많이 먹먹했다.

아이들이 내몰린 현실이 너무나 잔혹하다는 걸 다시 한번 곱씹었다.

파니는 그런 시련 속에서 살아남아 진실을 말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비극을 완성 시키는 장본인인 말도 꺼내기 싫을 정도로 불쾌했던 남자 우도 그라프...

히틀러를 추종하며, 자신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이용하는 정말 너무 싫은 사람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로 니코와 수많은 유대인들의 삶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정말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홀로코스트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살로니카의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잔인함을 앞세오지도 않는다.

그저 그날의 공기와 냄새와 침묵을 천천히 따라가게 한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말이 이토록 절절하게 다가오는 책은 드물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 책은 묻지 않고 가르쳐 준다.

어째서 미치 앨봄이라는 작가가 이 이야기를 그 토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잊어선 안된다. 잊혀선 안된다. 끝까지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런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홀로코스트 서사가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유대인 학살의 이야기 너머, 그리스의 살로니카에서 일어났던 비극을 담고 있다.

그동안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그리스 유대인들에 대한 잔혹한 학살,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

작가는 잊힌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직접 발로 뛰고, 수십 명의 생존자와 유족을 인터뷰하며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의 따뜻한 시선은 이번에도 여전하지만, 이번엔 그 따뜻함이 더 차갑고 어두운 진실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진심이 한 줄 한 줄 꾹꾹 눌려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감히 말하자면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살로니카의 아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곁에서 기억해 달라고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나치로부터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단지 '사람' 이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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