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
서윤빈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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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종말은 폭발이 아닌 스며듦으로 온다

- 기후 위기, 우리 안에 이미 시작된 이야기



우리는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을까? 지구는 끊임없이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고, 그 신호는 이제 일상 속 깊숙이 들어왔다.

폭우와 가뭄, 산불과 미세먼지, 바다와 육지에서 죽어가는 생물들.

먼 미래에나 찾아올 줄 알았던 종말의 징후들이 현실이 되었다.


​서윤빈 작가님의 연작 소설집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는 이 지금 우리 곁에 조용히 스며든 재난의 감각들을 문학적으로 포착해낸 작품이다.

클라이 파이(Cli-fi, 기후 소설)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단지 환경 문제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작가님은 그 재난의 한가운데에 있는 인간의 감정과 관계의 온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기후재난을 소재로 한 소설은 많아지고 있지만, 이토록 기묘하고 조용한 방식으로 종말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드물다. 

기후 재난을 다룬 소설이 이토록 흥미롭고 독특할 수 있다는걸,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를 읽으며 처음 알았다.


최근 들어 기후변화와 재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른바 클라이 파이(Cli-fi), 즉 기후 SF 소설들이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도 최근엔 무의식적으로 그런 주제를 다룬 책들에 손이 자주 가곤 했다.


총 일곱 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각각의 단편이 독립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인물들의 정서와 세계관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연작소설이 가진 장점인 단편의 날카로움과 장편의 밀도를 동시에 품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느새 하나의 거대한 재난의 시간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흔들림과 사투를 목격하게 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얼굴로 동일한 세계의 균열을 보여주고 있다.

종말을 겪는 여러 시선, 다양한 방식, 반복되는 현실의 균열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단연 첫 번째 이야기, '게'였다.

배달 라이더인 주인공은 궂은 날씨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어딘가 믿음직하지 않은 연인, 아픈 어머니, 고장 나버린 도시. 그 모든 상황이 주인공의 삶을 짓누른다.

마지막에 가서 배달을 받은 사람의 정체나 마지막 순간의 설명을 보았을 때 떠오르는 모든 것들이 애매하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잊히지가 않았다.

이게 재난 소설이 맞나 싶으면서도 아니라고 하지도 못하겠고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이 단편에서 특히 반가웠던 이름이 나오는데 바로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다.

하와이의 상징적인 물고기인데, 워낙 특이한 이름 때문에 언젠가 무심코 듣고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 물고기의 이름이 소설 속에 등장했을 때는 반가움과 동시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 생물의 낯선 이름은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 담긴 허무와 무기력은 결코 의미가 없거나 가볍지 않다.

지극히 현실적인 배달원의 삶 속에 문득 스쳐 지나가는 그 이름이나 금액은, 회색빛 도시의 풍경처럼 이질적이고 쓸쓸하다.

어쩌면 작가님은 물고기의 이름과 가격에서 현실의 무게가 얼마나 기묘하게 덧입혀질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게'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에서도 기후 재난으로 인해 달라진 사람들의 일상,

그 속에서 깨어지는 감정과 이어지려는 손길을 묘사한다.

두 번째 이야기였던 '농담이 죽음이 아니듯 우리는 땀 대신 눈물을 흘리는데'의 경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픈 감정에 떠밀려서 이게 기후 재난을 가지고 쓴 소설인지,

누군가의 감정을 떠미는 소설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소설의 배경은 참혹할 정도의 기후 위기 속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지 기후 소설이 아니라, 기후 속의 인간을 다룬 소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읽는 내내 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여러 번 반복해 읽고 곱씹을수록 보이는 결이 있었다.

몇몇 문장은 되돌아가 다시 읽기도 했다.

연작소설이 가진 단편과 장편의 중간지점, 그 흐릿한 형식이 이 책과 유난히 잘 어울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종말이라는 건 대단한 폭발이나 붕괴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느린 파국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도 웃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모르고 지나친다.

그 느슨한 인식이 오히려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닐까.


​종말이 차오르는 중입니다는 SF 소설이지만, 너무 멀리 있는 세계를 상상하게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 이 시대, 이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문득문득 자각하게 만든다.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유쾌하고 위트 있다.

그러나 그 유쾌함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시대에 우리가 읽어야 할 소설은, 어쩌면 이런 소설이 아닐까.


단편소설의 속도감, 장편소설의 서사적 깊이,

그리고 연작이라는 낯선 매체가 만나 한 편의 클라이 파이 SF 소설집이 종말의 방식을 제시한다.

소리 없는 침몰처럼, 차오르는 파국처럼. 지금, 종말은 여전히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 이 더운 여름, 집 안에서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잠시 망설이며 앉아 있던 시간조차 갑자기 낯설어졌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 속에 살고 있는 걸까. 언제부터 이렇게 무감각해졌을까?


​나는 이 책을 통해 기후 소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서윤빈이라는 작가도 이번에 처음 만났지만,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이 묘하고도 서늘한 감각을 가진 작가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또 다른 종말을 이야기해 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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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기약없는 이별
진현석 지음 / 반석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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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읽는 내내, 나는 울었다.
- 그 섬의 이름은 다카시마였다.



외딴섬 기약 없는 이별은 참담하다.
그리고 조용히 무너진다. 한 장, 또 한 장 넘길수록 마음에 거센 파도가 밀려왔다. 너무도 선명한 고통.
이 책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기억의 현재형이다.

진현석 작가님의 이 소설은 일제 강점 시기, 조선인 청년들이 강제 징용되어 끌려간 일본 나가사키 근해의 작은 섬 '다카시마'를 배경으로 한다. 많은 사람이 '군함도'라고 알려진 하시마섬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고 있다. 지금에서는 관광지로 소비되어서 검색만 해도 쏟아지는 사진 속 모습도 익숙하다. 그러나 이 책이 조명하는 다카시마는 군함도보다 더 잊혀진 장소였다. 말 그대로, 죽어야만 나올 수 있었던 그 '외딴섬'의 이야기


소설은 한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기영은 일본으로 떠난 형을 찾아 가족 몰래 오사카로 향하며, 자신도 모르게 이 거대한 비극에 휘말린다. 그리고 그 이후는, 누가 주인공인지도 모를 정도로 수많은 얼굴들이 차례로 등장했고, 다카시마에 갇힌 이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두 실존했던 이들이다. 이 소설은 그냥 단지 이야기라기보다, 누군가들의 기록이다.
논픽션 소설이라는 말이 이 책의 무게를 말할 수 없이 더 깊게 만들고 마음 아프게 만들었다.

읽으면서 나는 수없이 울었다. 감정적으로 무너졌고, 또 무력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떻게 이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조용히 지워질 수 있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끝없이 머릿속을 울렸다.우리는 왜 항상 이런 역사를 뒤늦게야 알게 되는 걸까?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진실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이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너무 끔찍했다.



강제 노역, 굶주림, 구타, 실종, 죽음.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서 정말 어지럽고 참담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아팠던 건, 살아남은 사람들이 안고 갈 죄책감과 자책과 고통이었다.



작가님이 직접 일본을 여러 계절에 걸쳐 방문하고, 생존자들과 유족을 만나 나눈 인터뷰는

이야기의 틀을 넘어서 기억의 조각으로 남는다.

다카시마의 탄광에서, 한 명씩 죽어 나가는 동료를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이들.

도망치다 붙잡혀 목숨을 잃은 사람.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이들.

가장 고통스러운 건, 누가 죽었는지조차 모른 채 그 자리를 비워둬야 했던 기억이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우리는 이 역사를 모르고 있었을까? 왜 이토록 쉽게 잊었을까?
왜 지금도 군함도와 그 근처 섬들이 관광지로만 소비되고 있을까?
화려하게 포장된 사진 아래, 그날의 고통이 묻혀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무서웠던 건, 이 모든 고통이 시간이 지나며 "무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고 있다는 현실이었다.
슬프고, 무서웠고, 고통스러웠다. 읽고 난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울컥거린다.

외딴섬 기약 없는 이별은 단순하게 그때 그 사람들이 당한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알려주려는 책이 아니다.
그 고통이 어떻게 지워졌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또다시 잊고 있는지를 묻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속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사람들에게 이 책은 늦은 위로이자, 작은 애도의 꽃 한 송이 같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읽고 기억해야 할 기억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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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고전이 좋았을까 - 오래된 문장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신은하 지음 / 더케이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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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고전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

- 고전이 스며든 소소한 일상 이야기



최근에 다시 고전 문학에 꽂혀서 읽게 되었는데 우연하게도 주변에서도 고전 열풍이 부는 모양이다.

고전에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서 관련된 책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흐름 속에 나도 자연스럽게 편승해서 조금 더 고전에 대한 공부를 해보기로 했고, 이 책도 그런 흐름 속에서 만나게 되었다.



책을 펼치고 18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바로 '케렌시아'라는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하는 단어 때문이었는데,

작가님이 케렌시아에 대해서 말하면서 쓰인 문장 중에 하나가 내 마음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 케렌시아가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동네 카페일 수도 있고,

무인 책방이나 뒷산 산책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채, 차 안에서 한참을 머물다 나온다고도 한다.

바로 이 문장인데, 나도 몇 년 전 답답하고 고단했던 시기가 있었다.

어떤 위로도 와닿지 않고, 누구와 있어도 마음이 쉬지 못하던 날들. 그 시기 내 유일한 안식처는,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주차장의 차 안이었다. 일부러 차를 끌고 나가 한적한 곳에 세워두고, 음악도 끄고, 핸드폰도 멀리한 채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없이. 숨을 내쉴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는 그 고요함이, 유일하게 나를 편안하게 해줬다. 그래서였을까. 작가님이 말한 ‘차 안의 케렌시아’에 유난히도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고전이 좋았을까'는 단순히 고전 문학을 분석하거나 해석하는 책이 아니었다.

고전을 좋아하게 된 작가님의 삶과, 그 고전들이 스며든 일상의 기록이었다.

처음엔 고전에 대한 소개하는 게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지만, 페이지가 더해질수록 누군가의 다정한 일기장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방과 후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던 기억, 책 속 문장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순간, 그리고 어느 날의 마음을 붙잡아준 이야기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겪어왔기에, 이 책 속 일상과 고전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마음에 들어왔다.



책 속의 고전은 단지 위대한 책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과 함께한 책들이다.

작가님은 문학을 학문처럼 대하지 않고, 마치 친구처럼 곁에 두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더 와닿았다.

고전이 좋았다는 고백은 결국 내 삶이, 나의 감정이, 나의 시간들이 그 책과 함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고전, 자신만의 옛이야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고전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해외의 작품을 먼저 떠올린다.

이 책 속에 나오는 변신, 호밀밭의 파수꾼, 인간실격, 고리오 영감, 안나 카레니나, 어린 왕자, 세일즈맨의 죽음, 스토너, 야간비행, 이방인, 파리대왕, 모비딕, 달과 6펜스, 월든, 노인과 바다 같은 서양의 고전 문학들은 굉장히 유명하고 깊이 있는 작품들이지만, 이렇게 고전 문학의 기준이 해외에만 머무는 듯한 분위기는 조금 아쉬울 때도 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 책에서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가 언급된 것이 유독 반가웠다.

토지는 비교적 근래에 쓰인 작품처럼 느껴지지만, 1969년부터 26년 동안 집필되었고,

시대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은 대하소설이라는 점에서 현대 고전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국내에도 충분히 ‘고전’이라 부를 수 있는 훌륭한 현대 문학들이 많다.

조세희 작가님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황석영 작가님의 삼포 가는 길, 채만식 작가님의 태평천하, 최인훈 작가님의 광장, 오정희 작가님의 장마, 이문구 작가님의 관촌수필 등은 각각의 시대를 꿰뚫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다.


고전이란 결국, 오래도록 살아남는 문장과 감정이 있고,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삶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책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 꼭 해외의 고전에만 집중할 필요 없이, 우리의 언어로 쓰인 한국의 현대 고전 문학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책과 멀어지고 있다. 빠르게 소비되는 컨텐츠, 점점 짧아지는 글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책은 여전히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고, 방향을 바꾸고, 마음을 위로해 주는 존재라고 말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고전이 아니더라도, 어떤 책이든 그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 책은 충분히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작가님 역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주는 고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었지만, 굳이 고전이라고 특정하지 않더라도, 한 권의 책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고...


그래서 더욱 아쉽다. 지금의 독서 환경이, 더 많은 사람이 그런 경험을 누리기에는 너무 척박하다는 게 말이다.

우리는 너무 바쁘고, 너무 지쳐 있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기엔 마음에 여유가 부족하다.

그럴수록 이런 책이 더 소중하다. 고전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책이란 무엇인가, 왜 읽는가를 되묻는 이 책이 말이다.

그리고 나는 텍스트힙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현상도 꽤 마음에 든다.

보여주기식 독서라도 누군가의 삶에, 시간에, 책이 함께 할 수 있는 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모든 건 시작이 중요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한 번 더 지금의 '케렌시아'를 떠올렸다.

한때는 차 안이었던 나의 케렌시아가 지금은 조용한 방 안으로 옮겨졌다.

책으로 둘러싸인 나만의 공간. 어릴 적엔 몰랐던, 지금은 너무도 소중한 이 고요한 시간.

책장을 넘기며 마음을 들여다보고, 과거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이런 시간이 결국 나를 살게 하는 게 아닐까?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따뜻한 선물과 같은 책이다.

그리고 아직 책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고전이나 책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다정한 손길이다. 누군가의 삶에 책이 어떻게 녹아드는지를 보여주는 너무나 따뜻한 책, 우리 모두 이 책 속의 일상처럼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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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무지개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용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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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죽음을 결심했던 이의 삶에, 과잉된 빛이 스며들다



이 책을 처음 만나게 된 이유는 아마도 이 책의 설명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밀스럽게 이루어진 계약, 죽음을 향한 백 일의 카운트다운" 이 얼마나 흥미로운 설명인가?

살짝 장르 소설틱한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 란 상상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내 생각과 다르게 이 책은 조금 더 말랑하면서도 울컥거리는 감정을 끌어올리는 책이었다.


​소나기가 그친 후 문득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보면, 우리는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이 단순한 기상현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찰나의 순간을 통해 사람들은 희망과 기다림을 떠올린다.

이 책 '과잉 무지개'는 이처럼 짧고 아름다운 순간, 그 뒤편에 숨겨진 감정과 서사를 정교하게 풀어낸다. 그것도 삶을 끝내기로 결심한 한 인물의 시선을 통해서 말이다.


이야기는 부모님을 연달아 잃고, 보험 사기까지 당하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청년 준재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이미 삶의 의미도, 의지도 모두 잃어버린 준재는 하루하루를 무력하게 견디며 살아간다.

죽음을 생각하지만, 죽을 용기조차 없다는 자조감에 빠져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한 게시글이 눈에 들어온다.

"죽음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단, 헛된 죽음은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앞세운 단체의 메시지는 어쩐지 마지막 희망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게 찾아간 낯선 동네, 재개발이 예정된 이 회색빛 장소에서 준재는 단체와의 계약서를 쓰게 된다.

준재에게는 백일의 시간이 주어지고, 의문의 단체는 준재의 모든 빚을 정리해 주고 생활비까지 지원해 주지만, 결국 정해진 기한이 끝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의 죽음 역시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라 장기기증이라는 이름 아래 의미 있는 죽음처럼 보이게끔 만든다.

하지만 진짜 그것이 의미 있는 죽음이 맞을까? 어차피 모든 게 만들어진 판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죽음이 아니게 되는 것인데.......


​죽음보다는 확실히 백일이라는 죽음을 앞둔 시간이 전해준,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님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설정을 빌려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하여금 삶의 현실을 더 또렷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준재는 백 일 동안 정해진 규칙을 따르며 살아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사람을 만나고, 봉사하고, 식사를 챙기고, 운동을 한다. 처음엔 불편했던 그 시간이, 아주 천천히 준재의 생활을 변하게 만들고 결국엔 그의 감정까지 바꿔놓는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고, 의외의 유대감을 느끼게 되고, 간만에 크게 웃게 된다.

자신을 기억해 줄 사람도, 자신이 다시 보고 싶은 얼굴도 생기게 된다.

죽음을 선택했던 사람이 어느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다양한 이유를 만들게 되는 이 과정들은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생각과 울림을 전한다.


​사실 나 역시 그랬다. 죽음을 여러 번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에 그저 공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뼈저리게 느껴졌다.

나는 왜 죽지 못하고 사는 걸까. 겁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아주 희미하게나마 삶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결국 그 애매한 경계, 그 아이러니야말로 나를 오늘 하루도 살게 한 힘이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직면하게 됐다.



삶은 늘 무겁지만, 그 끝에 깃드는 무지개처럼 여러 색으로 빛나고 있다. 지금은 힘든 빛이라도 그 이면에 새로운 빛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책은 굳이 삶과 죽음을 무겁게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외롭고 어두운 자리에서 피어나는 작은 온기와 소소한 변화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누구나 인생의 끝자락에 설 수 있다. 그때 누군가 곁에 있어 주고, 너의 삶은 의미 있었다고 말해줄 수 있다면, 믿어 준다면,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중간 정도 지나면 우리는 문득 궁금해진다. 준재는 정말 백 일 뒤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아니면, 그 안에서 피어난 삶의 온기를 붙잡고 어떻게든 다시 걸어가게 될까? 그 약속은 어떻게 깨버릴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 결말은 이 책의 핵심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준재가 다시 살아가고 싶다는 그 마음 자체를 갖게 된 그 과정 그 자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삶을 돌아봤다. 무너진 사람을 일으키는 건 거창한 성공이나 감동적인 한 방이 아니라,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의 손길, 의미 있는 하루라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불안한 시대에도, 여전히 그런 무지개 같은 순간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싶어졌다.


이 책은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수많은 사람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진짜 죽음을 원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저 위로받고 싶었던 건가요?"

그리고 이 책은 그에 대한 작은 해답이 되어준다. 우리는 죽음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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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북투어
김미쇼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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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이야기의 순환을 따라가다

- 책 한 권이 건넨 위로, 그 너머의 사람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불편한 편의점 북투어'가 단순히 말 그대로 북투어의 이야기나 독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팬북 같은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몇 장 넘기고 나서부터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건 단지 어떤 책의 인기를 조명하거나,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 김미쇼님은 북 프로모터이자 김호연 작가님의 배우자이기도 한데, 그래서일까?

한 사람의 독자가 한 권의 책과 만나고, 그 책을 많은 사람들과 연결하고, 다시 그것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너무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처음엔 몰랐던 이 관계와 배경을 알고 나니, 이 책 속에 담긴 문장 하나하나가 훨씬 더 진심으로 다가왔다.


​사실 나는 불편한 편의점도 1권만 읽고 이후 시리즈나 비슷한 책들에는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다.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땐 소소한데 따뜻하네, 이런 이야기 참 좋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따뜻함이 너무 많은 곳에서 반복되기 시작했고, 거의 공식처럼 등장하는 힐링 소설들이 넘쳐나면서 조금은 피로함이 밀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편의점, 작은 서점, 동네 식당, 오래된 목욕탕 등, 공간은 다르지만 느낌은 다 비슷해졌고

어느새 내가 좋아하던 달팽이 식당조차 몇몇 사람들에겐 이런 힐링 소설의 아류작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류의 책들을 조금씩 피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편한 편의점 북투어를 읽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째서 이 책이, 그리고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들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만큼 세상이 각박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정말로 따뜻한 이야기 하나가 귀한 시대다.

선행이나 미담 같은 게 뉴스나 유튜브로도 소개될 만큼 그런 장면이 귀한 것이다.

그런 내용의 영상이 올라오면 '세상 아직 살만하다' '인류애가 충전된다'는 반응이 먼저 올라올 정도니까.....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이처럼 작은 친절과 소소한 온기를 품은 책이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걸 알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 반복되는 게 싫은 건 약간의 고집이려나...



불편한 편의점 북투어는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 어떤 많은 일이 있었는지, 이 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고,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책이 각자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었는지가 잔잔하게 담겨 있다.

어떤 이는 책 덕분에 오랜 시간 가슴에 묻어두었던 감정을 털어놓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현실에서 마주한 외로움을 이 책 한 권으로 위로받았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불편한 편의점이 단지 밀리언셀러여서가 아니라 정말로 누군가에게 중요한 책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책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고, 이 책은 그 사람들로부터 다시 또 이야기를 되돌려받는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건, 저자인 김미쇼 님이 북투어라는 형식을 통해 단순히 책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책이 한 공간에서만 읽히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새로운 경험과 감정을 만들며 살아 있는 무언가로 계속 순환하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단지 글자가 인쇄된 종이가 아니라, 그 글자가 누군가에게 닿아 어떤 위로가 되었는지를 함께 보여주는 책.

나는 불편한 편의점 북투어를 통해 그런 과정을 처음으로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거기다 이 책을 통해서 북 프로모터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아마도 엔터나 스포츠 업계의 프로모터의 활동에 더하여 출판 쪽의 업무가 복합적으로 들어간 직업 같은데 꽤 인상 깊었다.

특히나 프로모터이자 가족으로 얽힌 관계이기 때문에 조금 더 복잡한 사정들이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부분도 많았고 말이다.

일할 때 가족과 엮인 다는 건 장점인지 단점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결국 이 책은 어떤 작가의 배우자이기 이전에, 정말 책을 사랑하고 사람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 완성된 기록이었다.

단순한 책 소개도, 단순한 팬북도 아닌,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사람을 움직이고, 살아 있는 여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는 책.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작품이 좋았던 사람이라면 당연하고, 한때는 좋아했지만 그 따뜻함에 익숙해져 멀어졌던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다시 그 감정을 떠올리게 해주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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