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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롭, 드롭, 드롭
설재인 지음 / 슬로우리드 / 2025년 7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기이한 상상, 너무도 현실적인 감정

요즘 SF소설에 재미를 붙이고 싶어서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읽고 있는데,
이번 책도 대놓고 SF는 아니지만 SF적인 상상이 담긴 소설이다.
설재인 작가님의 단편소설집 드롭 드롭 드롭에 실린 네 편의 단편은
멸종, 종말, 변이 등 흔히 SF에서 기대하는 소재들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 소재들을 가정폭력과 지방소멸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풀어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이야기들 속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감정과 관계, 공포 같은 것들이 존재하고 하나같이 분명한 목소리로 마음에 박힌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책의 제목과도 같았던 작품 '드롭, 드롭, 드롭'이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아주 황당하다.
어느 날 갑자기 어른들은 어린아이의 몸이 되고, 아이들은 어른의 몸으로 변하게 되는 상황.
이 급작스러운 전환 속에서 주인공 예원은 자신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는 반려견 꼬똥과 마주한다.
사실 처음에는 낯설었다. 체취나 익숙한 습관 같은 걸로 주인을 알아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소설은 그 단절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낸다.
예원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려 하고, 꼬똥은 그때마다 더 깊이 움츠러들고, 더 멀리 도망친다.
동물을 키우는 입장에서 이 설정은 꽤 마음을 흔들었다.
내가 아는 나와, 반려동물이 기억하는 나 사이의 간극이 하루아침에 벌어졌을 때 그 상실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예원이 겪는 당황스러움, 안타까움, 절망 같은 감정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하게 될 법한 감정이다.

그 외에도 미림 한 스푼에서는 사람들이 증발하는 와중에 솜새끼라는 어이없는 외계인이 등장하고,
쓰리 코드는 음악과 과학이 뒤섞인 기묘한 세계로 이끄는데 개인적으로는 문명의 탄생 설화라는 이 이야기가 썩 좋진 않았다.
멸종의 자국은 이상한 종족들과 이상한 현상 등 SF다운 방식으로 신화적 서사를 보여준다
물론 그 마지막은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불쾌한 또 한 편의 가정 폭력에 대한 이야기 였지만....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결국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감정들이 있다.
두려움, 분노, 상처, 회복, 그리고 다시 누군가를 믿고 싶다는 마음 같은 복잡한 것들.
이 소설집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비슷하기 보다 색다른 상상력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런 상상력을 지금의 학생들이 많이 읽고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멸종이라는 단어와 몇 가지 요소들은 미래적이고 낯설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과 메시지는 너무도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단순히 기이한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드롭 드롭 드롭'은 사실 꽤 무겁다면 무거운 이야기는 맞는 것 같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가정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도무지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가볍게 읽히는 단편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마음 한구석을 오래도록 건드리는 질문을 남겼다.
수 많은 감정에 대해 곱씹게 됐으니까.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그리고 조금 이상한 꿈을 꾼 것처럼 마음이 뒤숭숭해지는데 그 기분이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그만큼 여운이 긴 소설이라는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