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사랑이 없다면, 그 무엇이 의미 있으랴 - 에리히 프롬편 세계철학전집 4
에리히 프롬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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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보통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함께 그려진다.

철학이라는 단어랑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그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요즘 사회에서는 너무 가볍게 쓰이고, 때로는 많이 왜곡된 감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연애, 집착, 폭력까지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지,

누군가와 건강하게 마음을 나누며 사는 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번 책은 모티브에서 출간된 세계철학전집의 4번째 권인데

이전에 정약용의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를 읽으면서

좋은 가르침과 기억이 생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에리히 프롬편을 읽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단순히 감정이나 로맨스의 영역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능력이라고 말한다.

즉,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나 자신을 존중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랑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훈련과 노력, 의지가 필요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현실 속 인간관계와 연애에서 얼마나 자주 잊히는 원칙인지 모른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책이 사랑을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사랑 한다고 말하면서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집착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의 자유를 빼앗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겐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프롬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과 불안이 만들어낸 가짜 사랑이라고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 스토킹, 지나친 집착을 떠올리면, 그의 말은 결코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다.

좋아한다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상대방도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지 단순히 나만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될 수는 없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좀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행동을 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변화를 가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사랑을 건강하게 하고 싶고,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존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그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렀던 여러 실수들을 떠올렸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해 한 행동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던 말들

상대의 집착에도 억지에도 그저 나혼자서 참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억지도 참았던 것들

그 모든 감정들과 행동들이 진짜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고 서로 재밌으면 그냥 누구 한 명이라도 좋으면 그게 괜찮은 사랑인 줄 알았다.

가짜 사랑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프롬은 사랑을 네 가지 요소를 '배려, 책임, 존경, 이해'라고 설명한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때 비로소 성숙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에서 단 한 가지라도 빠지면, 사랑은 쉽게 변질된다고 한다.

나는 이 네 가지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지금까지의 내 사랑에서 제대로 이루어졌던 건 없었다. 참 큰 실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위에서도 그렇게 말렸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관계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계속 점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책 속 문장 중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제목처럼 단호하면서도 묵직한 그 질문이다. 

'삶에 사랑이 없다면, 그 무엇이 의미 있을까?'

이것은 단순히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거나 연애를 하라는 권장의 말이 아니다.

나의 하루, 나의 관계, 나의 일에 사랑이 없다면 즉, 애정과 열정

그리고 타인에 대한 진심이 없다면 과연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을 덮고 나서, 사랑이란 단어가 훨씬 무겁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열렬하게 좋아하는 마음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사랑이란 나와 타인을 함께 성장시키는 행위라는 것을 조금은 더 알 것 같다.

이 책은 사랑을 감정에서 능력으로 끌어올리고, 그 능력을 어떻게 단련해야 하는지 조용히, 그러나 명확하게 알려준다.


나는 이제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말이 무게를 가질 수 있도록 나 자신부터 단단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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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남은 보통 사람들의 독립운동
이동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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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용사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독립운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먼저 느꼈다.

얼핏 생각하면 교과서 속 사건과 몇 개의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이야기들,

역사 속 먼 나라의 일이자 먼 시간 속의 단어라고 생각되지만,

언제나 우리 생활 가까이 있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단어니까 말이다.


​사실 우리 가족에게도 독립운동의 역사가 전해진다.

우리 증조할아버지, 즉 아빠의 할아버지이신 그분은 시골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다.

주도적으로 운동을 이끌지는 않으셨지만, 주도자들을 도우며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이끌었던 분이다.

결국 주도하신 분과 다른 몇 분과 함께 투옥되어 옥살이를 하셨다. 그 위험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무사히 풀려나셨지만, 그 긴박했던 순간과 두려움은 단 몇 줄의 기록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로써 인정받은 것은 내가 20살 때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조국을 위해서 독립을 외쳤지만, 그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사실 큰 공로가 없는 이상 인정받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인정을 받았다는 것,

조국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였었다는 걸 알아주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때의 증조할아버지와 같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학생, 교사, 청년, 노동자, 여성 등 다양한 신분과 나이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거대한 억압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저항했다.

어린 학생들이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여학생들은 금지된 행동에도 용기를 냈으며, 노동자들은 조용히 투쟁을 이어갔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용기와 결단을 보여준다.

이제는 그들을 이름 없는 용사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 책 속에서 그들의 흔적은 우리에게 살아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은 서글펐다. 기록조차 남지 못한 더 많은 보통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어린 학생 운동가들, 불타오르던 청년들,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여성들까지.

자신의 위치에 목소리를 냈을 그분들의 희생과 용기를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과 감사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들이 겪은 위험과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책을 통해 우리는 조금이라도 그 흔적을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책은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지 않는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 상황과 선택,

그리고 행동에 담긴 용기와 결단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보여준다.

제목처럼, '꽃이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든 사람들처럼,

어둡고 흔적 없는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의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들이다.

그분들이 뿌린 피와 눈물의 씨앗 덕분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책은 잊지 않게 해준다.


읽는 내내 나는 생각했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모두가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우리는 지금 불평하거나 불만을 말하기 전에, 이런 땅을 지키기 위해 쓰러져간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들의 얼굴을, 행동을, 정신을 기억하며, 우리가 그 후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마음 깊이 감사함과 책임감을 느꼈다.

증조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분과 함께한 무수한 이름 없는 용사들의 이야기를 마주했다.

그분들의 선택과 용기, 그리고 헌신 덕분에 우리는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그 희생을 잊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감사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고, 그들의 용기와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게 만드는 책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라고. 그러나 이 책은 조용히 말한다.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것처럼, 작은 행동 하나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그분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이 동산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8월 15일은 바로 광복절이다.

역사를 위해 목소리를 낸 위대한 그분들과 우리 땅을 지키 위해서 목소리를 울리며 쓰러진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그들이 보지 못했던 독립된 나라의 모습을 우리의 눈에라도 가득 담아서

나중에 나중에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면 이런 일이 있었고, 우리는 세계적으로 뻗어나고 있었다며 알려드리고 싶다.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감사함과 책임감을 마음 깊이 새겼다.

우리의 삶과 권리가 그들의 희생 위에 서 있음을 잊지 않으면서, 앞으로도 기억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용사들에게, 그리고 우리 증조할아버지에게, 마음속 깊이 경의를 표하며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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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 고양이
이준희 지음 / 폴앤니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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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 속, 발견한 온기



처음 이 책 제목을 봤을 때, 솔직히 말해 고양이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미스터리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생명이 여기저기 다른 우주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지 않나?

그런데 막상 책장을 열어보니, 고양이는 이야기의 한 장면, 혹은 하나의 키워드에 불과했다.

그보다 훨씬 깊고, 훨씬 심오한 이야기가 여섯 편의 단편 속에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이 책은 단편집이다. 그러나 단순히 여러 이야기의 묶음이라고만 말하긴 어렵다.

서로 전혀 다른 주제와 배경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하나의 감정선이 남는다.

마치 각각의 이야기가 다른 악기 같지만, 연주가 끝나고 나면 같은 멜로디가 귓가에 맴도는 것처럼.


첫 번째 이야기 '루디'는 화재 현장에서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소방관 태주와, 그의 기억을 긍정적으로 덮어 씌워 깨어나게 하려는 인공지능의 이야기다.

AI가 인간의 기억을 조작한다는 설정은 분명 SF 적인 긴장감을 가진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것은 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어진다. 비슷한 계열의 영화가 많이 생각났다.

기술의 차가움 속에 스며든 인간적인 온기. 그것이 첫 번째 이야기에서 느낀 핵심이었다고 본다.


두 번째 '대수롭지 않은'은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아주 작은 변화가, 대수롭지 않다고 넘겼던 사건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큰 사건이 아니어도, 사람의 하루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읽는 내내 내 일상에도 이런 변곡점이 있었나 떠올리게 된다.


세 번째이자 표제작 '평행 우주 고양이'는 주인공과 레나라는 인물의 복잡한 관계론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고양이가 뭔가 나오나 했는데 내 생각과 다르게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에 등장한 것뿐이었다.....

이 작품은 내용을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는데 복잡 미묘한 관계론이다.


네 번째 '심해의 파수꾼들'은 깊은 바닷속 도시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난 최초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심해라는 공간은 원래 압도적인 고립감과 두려움을 주지만, 이 책에선 조금 달랐다. 그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꿈도 있고 희망도 있고 온기가 느껴졌다.

차가운 물속에서 오히려 강하게 느껴지는 인간적인 체온이랄까? 약간 물속에 오래 들어가 있으면 물속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다섯 번째 '마인드 리셋'은 기억 삭제 시술이 까다로운 적합성 검사에 걸린 사람들을, 비공식 업체에 연결해 주는 브로커의 이야기다.

인간이 가장 바라는 것 중 하나는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 욕망의 이면을 찌른다. 과연 기억을 지우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혹시나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을까?

사람의 뇌와 마음은 연결되지 않아서 뇌로는 잊어도 마음으로는 남아 있어서 그 괴로움이 반복된다면,

사람은 그 괴로움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기억을 지울 바에는 과거로 돌아가는 게 빠르지 않을까란 상상을 했다.



마지막 '여자의 계단'은 사라져 버린 선배의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SF적이라기 보단 몽환적인 느낌이 꽤 강했는데 그림이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공감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주된 이야기는 이것 역시도 사람들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갑자기 증발해버린 여자 때문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초반에 나온 그 날아가버린 씨앗들이 의미하는 게 자기 자신이었나 싶기도 했다.


사람의 흔적과 부재가 만들어내는 서늘함과 쓸쓸함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사람들이 급하게 떠난 흉가나 폐가라고 불리는 곳에 들어간 본 적이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남자도 여자의 남겨진 물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단편집의 좋은 점은 다양한 이야기를 한 권에서 맛볼 수 있다는 거지만, 때론 작품들이 비슷한 톤을 가져서 읽는 재미가 단조로워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여섯 편 모두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고, 마치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아놓은 듯한 다양성이 있었다. 그런데도 다 읽고 나면 묘하게 하나의 정서가 흐른다. 아마도 그건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겠지.


작가님의 문체는 묘사력이 폭발적으로 화려한 편은 아니다. 대신 깔끔하다.

가끔 생소한 단어나 과학적 개념이 나와도, 그것 때문에 읽기가 불편하진 않았다.

SF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아, 이런 세계구나 정도로만 이해할 수 있어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는 책이다.


'평행 우주 고양이'는 SF 적인 설정 속에서도 사람을 먼저 본다.

기술, 이론, 가설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고 사랑하고 상처받는 사람들을.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면, 마음이 이상하게 차갑지 않다. 오히려 잔잔하게 데워진다.

그게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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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라, 튤립과 친구들 - 눈을 크게 뜨고 숨은그림찾기 TULiPE
소피 게리브 지음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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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그림 속, 또 다른 세상

- 아이들만의 책이라고요? 어른도 빠져듭니다


누가 봐도 아동용 책으로 보이는 '찾아라, 튤립과 친구들'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이 책을 꼭 가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바로 작가님의 그림체 때문이었다. 흔히 해외 작가분들이 많이 쓰는 형태의 두들링 기법스러운 그림이 너무나 내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저렇게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이 책을 가까이서 접하면 어쩐지 그런 상상력을 조금이나마 본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역시 크기가 크다는 것이였다.

한 손으로는 결코 감싸쥘 수 없는 커다란 판형, 그리고 그 속에 가득 채워진 풀컬러의 그림들.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마치 작은 전시회의 문을 열고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찾아라, 튤립과 친구들'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아동용 숨은그림찾기 책이다.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캐릭터를 찾아내는 놀이책.

하지만 이 책을 단순히 아동용 책이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아쉽다고 생각했다.

책 안에 들어 있는 그림은 하나하나가 완성된 예술 작품처럼 정성스럽고, 디테일이 살아 있다.

장면마다 색감이 다르고, 캐릭터들의 표정 하나, 동작 하나에도 이야기가 숨어 있다.

충분히 아트북으로써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책을 좋아하는 나한테 종종 묻는다. 성인이 이런 걸 봐서 뭐해?라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 책은 숨겨진 오브젝트나 캐릭터만 찾으면 끝나는 말 그대로 아이들의 짧은 호기심으로 끝나는 가벼운 놀이책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이 책 속에 표현된 작가님의 자유로운 방식의 그림이 너무나 좋았다.

모든 그림에서 작가님의 개성과 상상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규칙 속에서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와 설정, 그리고 그걸 찾아내는 동안의 몰입감은 다른 어떤 활동으로도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핸드폰 어플 '숩숩'을 떠올렸다. 그 앱에도 다양한 작가님들의 그림들이 숨은그림찾기 형태로 등록되어 있다. 나는 그걸 하면서 잠시 현실을 내려놓고, 그림 속 세계에 푹 빠진다.

화면 속 작은 세상에서 길을 잃는 기분, 그리고 우연히 숨겨진 물건을 발견하는 기쁨은 생각보다 강한 몰입을 준다.

'찾아라, 튤립과 친구들'은 그 경험을 한층 더 확장해준다. 어플과 차이는 있지만, 훨씬 넓고, 색감은 깊고 선명하며, 페이지마다 질감이 살아 있다.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종이를 넘기며 그 속을 탐험하는 즐거움이 있다.



책 속에서 숨겨진 오브젝트나 캐릭터를 찾는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작가의 시선과 호흡을 따라가게 된다. 여기에 이런 걸 숨겨놨구나, 이 장면에 이런 것들도 있었구나. 볼 때마다 새롭고 마치 작가님과 비밀을 공유하는 듯한 묘한 친밀감이 생긴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주인공 캐릭터 중 하나인 바이올렛을 찾는 중에 자꾸 비슷하게 생긴 파란새 한 마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이올렛을 찾았다 싶으면 저 파란새라서 자꾸 함정이 있다며 또 짝퉁 파란새에 속았다!했는데 마지막에 알고보니 바이올렛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바로 이런 숨겨진 오브젝트와 스토리를 뒤늦게 알아가면서 또 다른 재미를 얻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라면 순수한 호기심으로, 어른이라면 잠시 잊었던 유연한 상상력으로 즐길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건, 처음에 가졌던 마음처럼 이 책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또다시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보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숨은 이야기를 찾아가게 만드는 세계를 만드는 힘. 그건 기술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작가가 가진 상상력과 디테일을 향한 애정에서 비롯된다고 느꼈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책이면서 동시에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아트북이다.

아이들에게는 발견의 기쁨과 관찰의 즐거움을, 어른들에게는 잊고 있던 몰입과 호기심을 선물할 수 있는 책.

나에게는 작은 동경과 영감을 남겨준 고마운 책.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그 속에서 보았던 다채로운 장면과 숨겨진 보물들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나를 다시금 책 앞으로 불러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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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팅쌤 코바늘 키링 야채 편 - 작고 귀여운 캐릭터 키링 20종으로 코바늘 시작!
신은영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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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늘 초보도 완성하는 귀여운 야채 친구들

- 실과 바늘이 만드는 힐링



중학교 때 처음 대바늘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엔 서툴러서 코가 빠지기 일쑤였지만, 실이 손끝을 타고 넘어가는 그 감촉이 참 좋았다.

그렇게 나름 꾸준히 손뜨개를 이어왔고, 성인이 된 후엔 코바늘에도 도전했다.

많이 하면 대바늘보다 쉽다던데, 내겐 여전히 코바늘이 조금은 복잡하고 헷갈리는 영역이다.


​선물용으로 귀여운 인형을 만든 적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 원데이 클래스에서 선생님들의 세심한 도움을 받으며 완성했다.

혼자서 시도할 때는 주로 작은 코스터나 사각 모티브를 떴다.

완성까지 부담이 적고, 짧은 시간에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귀여운 코바늘 키링이나 인형 제작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문제는, 코바늘 초보에게 인형 제작은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높다는 점이다.

코바늘 도안만 보고 만들기엔 아직 익숙하지 않고, 영상만 보자니 중요한 부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게다가 중간 스킵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방향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영상과 도안을 함께 볼 수 있는 코바늘책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취향에 맞고, 난이도도 적당한 책은 좀처럼 없었다.



그러던 중, 시원북스에서 출간된 '니팅쌤 코바늘 키링'이라는 책을 만났다.

제목만 봐서는 단순히 키링 만드는 책 같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귀여운 야채 캐릭터들이었다.

당근, 토마토, 땅콩, 옥수수 모두 동글납작하고 부드러운 형태라 손뜨개 초보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작품에 뜨개 과정 영상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책에는 상세한 코바늘 도안이 실려 있고, QR코드를 스캔하면 작가님의 시범 영상을 바로 볼 수 있어 영상과 도안을 번갈아가며 참고할 수 있다.



나의 첫 도전은 '토마토 키링'이었다.

모양이 단순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 책의 캐릭터마다 설정된 MBTI 중 토마토가 나와 같은 INFP였기 때문이다.

INFP 토마토라니, 뭔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땐 당연히 조금 버벅거렸다. 도안 기호를 다시 확인하고,

영상을 멈췄다 재생했다 하면서 실과 바늘을 번갈아 잡았다.

중간중간 실수도 있었지만, 의외로 완성해 놓고 보니 티가 거의 나지 않았다.

조금 비뚤어졌지만 나만의 토마토, 세상에 하나뿐인 키링이 완성된 순간, 묘한 성취감이 찾아왔다.


​이 책의 최대의 매력은 아주 당연하지만 부담 없는 형태로 이루어진 야채 인형들이다.

대부분의 인형이 복잡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아, 초보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완성할 수 있다.

책 속 설명도 친절하고, 영상에서는 손의 각도나 실의 당김까지 볼 수 있어 이해가 빠르다.

덕분에 나도 이렇게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조금씩 얻게 된다.


​아직 색실이 없어 만들지 못한 당근과 땅콩 캐릭터도 꼭 도전해보고 싶다.

특히 땅콩 키링은 통통하고 귀여운 실루엣이 매력적이고, 당근은 선명한 주황색이 보기만 해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이 책에는 코바늘 기초 기법에 대한 이야기도 꼼꼼하게 제공 되어서,

이걸 보고 한 번 익숙해지면 다양한 변형도 가능할 것 같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 책이 단순히 만드는 법만 알려주는 손뜨개 책 추천 목록의 한 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 속에서 캐릭터마다 개성을 부여하고, 작은 설정을 담아두어 마치 인형에 생명이 깃든 듯한 재미를 준다.

내 토마토 키링은 그저 인형이 아니라, 조금 삐뚤어졌지만 마음씨 좋은 INFP 토마토 친구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코바늘 초보부터 예쁜 소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취미인까지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만드는 과정에서 차분히 실과 바늘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손에 올려놓는 순간, 나도 해냈다는 기분 좋은 뿌듯함과 성취감이 찾아온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작품씩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올해는 이 귀여운 야채 친구들을 하나씩 완성해, 가방이나 파우치에 매달아볼 생각이다.

완성도가 높아지면 이 키링들을 본 지인들이 이거 어디서 났어요? 라고 묻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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