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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남은 보통 사람들의 독립운동
이동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5년 7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름 없는 용사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독립운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먼저 느꼈다.
얼핏 생각하면 교과서 속 사건과 몇 개의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이야기들,
역사 속 먼 나라의 일이자 먼 시간 속의 단어라고 생각되지만,
언제나 우리 생활 가까이 있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단어니까 말이다.
사실 우리 가족에게도 독립운동의 역사가 전해진다.
우리 증조할아버지, 즉 아빠의 할아버지이신 그분은 시골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다.
주도적으로 운동을 이끌지는 않으셨지만, 주도자들을 도우며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이끌었던 분이다.
결국 주도하신 분과 다른 몇 분과 함께 투옥되어 옥살이를 하셨다. 그 위험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무사히 풀려나셨지만, 그 긴박했던 순간과 두려움은 단 몇 줄의 기록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로써 인정받은 것은 내가 20살 때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조국을 위해서 독립을 외쳤지만, 그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사실 큰 공로가 없는 이상 인정받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인정을 받았다는 것,
조국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였었다는 걸 알아주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때의 증조할아버지와 같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학생, 교사, 청년, 노동자, 여성 등 다양한 신분과 나이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거대한 억압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저항했다.
어린 학생들이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여학생들은 금지된 행동에도 용기를 냈으며, 노동자들은 조용히 투쟁을 이어갔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용기와 결단을 보여준다.
이제는 그들을 이름 없는 용사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 책 속에서 그들의 흔적은 우리에게 살아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은 서글펐다. 기록조차 남지 못한 더 많은 보통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어린 학생 운동가들, 불타오르던 청년들,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여성들까지.
자신의 위치에 목소리를 냈을 그분들의 희생과 용기를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과 감사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들이 겪은 위험과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책을 통해 우리는 조금이라도 그 흔적을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책은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지 않는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 상황과 선택,
그리고 행동에 담긴 용기와 결단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보여준다.
제목처럼, '꽃이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든 사람들처럼,
어둡고 흔적 없는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의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들이다.
그분들이 뿌린 피와 눈물의 씨앗 덕분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책은 잊지 않게 해준다.
읽는 내내 나는 생각했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모두가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우리는 지금 불평하거나 불만을 말하기 전에, 이런 땅을 지키기 위해 쓰러져간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들의 얼굴을, 행동을, 정신을 기억하며, 우리가 그 후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마음 깊이 감사함과 책임감을 느꼈다.
증조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분과 함께한 무수한 이름 없는 용사들의 이야기를 마주했다.
그분들의 선택과 용기, 그리고 헌신 덕분에 우리는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그 희생을 잊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감사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고, 그들의 용기와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게 만드는 책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라고. 그러나 이 책은 조용히 말한다.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것처럼, 작은 행동 하나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고.
그분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이 동산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8월 15일은 바로 광복절이다.
역사를 위해 목소리를 낸 위대한 그분들과 우리 땅을 지키 위해서 목소리를 울리며 쓰러진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그들이 보지 못했던 독립된 나라의 모습을 우리의 눈에라도 가득 담아서
나중에 나중에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면 이런 일이 있었고, 우리는 세계적으로 뻗어나고 있었다며 알려드리고 싶다.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 감사함과 책임감을 마음 깊이 새겼다.
우리의 삶과 권리가 그들의 희생 위에 서 있음을 잊지 않으면서, 앞으로도 기억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용사들에게, 그리고 우리 증조할아버지에게, 마음속 깊이 경의를 표하며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