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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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잊고, 자연은 우리를 기억한다

-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온 존재에게 배운다는 것



엔리크 살라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자연에 대한 본질적인 생각을 조금 더 바꿔 보고자였던 것 같다.

자연 과학을 좋아하면서도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이 상태를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단순한 자연을 사랑합시다라는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단순한 생태 에세이를 넘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태롭게 이 지구의 균형을 흔들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다소 전문적인 용어나 실험 이야기들이 많아서 처음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설명은 매우 친절하고도 따뜻하다.

이 책을 옮긴 양병찬님이 각주까지 세심하게 챙긴 덕분에

나처럼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충분히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다.


이 책 속에서는 모든 내용이 흥미롭지만 유독 흥미를 느낀 것은 생명체들을 통한 다양한 실험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보고 직접 하라고 하면 겁이 날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겠지만,

누군가의 손끝에서 이루어진 그 실험들이 자연의 신비를 증명해낼 때의 경이로움은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율과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였다.


생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체계적이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물론 긍정적인 영향을....

그 과정을 따라 읽는 동안에 문득, 우리는 자연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라는 종이 이 지구에 있어서 정말로 필요한 존재인가를 자문하게 되는데,

우리는 누구보다 자연을 이용하면서도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고 애쓴다.

자연은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은 빠르게 진행되지만, 자연 보전에는 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뒤로 미뤄진다.

인간의 이런 이기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숱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데 대체 언제 자연을 보전한단 말인가?

이런 속도라면 우리가 개발을 다 끝내기도 전에 생태계가 파괴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우리는 후회만 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산불 이후의 생태계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지역 근처에서 큰 산불이 자주 발생했던 터라, 이 주제는 더욱 깊게 와닿았다.

인간은 불을 끄는 것에 나름 능숙해졌지만, 여전히 완벽하진 못하고 결국 자연을 까맣게 소실하고 말았다.

이 이후의 회복은 결국 전적으로 자연에게 의존해야 한다.

씨앗 하나가 불타버린 산을 다시 푸르게 만드는 그 기적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과학이나 기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이 이 지구를 다시 살리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연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질서 있고, 정의롭다는 사실도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생태계에도 경쟁이 존재하고, 약한 종은 도태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이 등장하기 전까지 자연은 나름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반면,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고 난 이후로 너무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사라져버렸다.

멸종된 동물, 파괴된 숲, 바닷속의 플라스틱...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나 역시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자연을 완벽히 지키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연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환경보호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내가 쓰는 전기와 내가 버리는 쓰레기를 한 번쯤 더 생각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환경보호자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들의 폭력적인 환경 시위에 대해서

규탄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멀쩡한 환경보호 운동이 그렇게 힘든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긍정적인 태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책의 마지막에는 코로나와 생태계의 연결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전염병의 근원이 야생에서 비롯되었다는 과학적인 사실은,

인간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자연을 침범하고 선을 넘고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이는 단순히 위기 상황이 아니라, 자연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경청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솔직히 그렇게 쉽지는 않은 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남는 감정은 아주 또렷하다.

흥미로움, 아픔, 미안함, 고마움과 경의로움 그리고 조금은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감각을 되찾는다면, 세상은 조금 더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작될 수 있는 아주 조용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환경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한 번쯤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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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갈까마귀 캐드펠 수사 시리즈 12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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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스터리」가 침묵이 가진 무게를 다루었다면,

「어둠 속의 갈까마귀」는 신념이 가진 위험성을 다룬다.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념은 때때로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배제하고 결국엔 파국으로 향하게 만든다.

이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눈 덮인 겨울, 조용한 수도원 저수지에서 한 사람의 시신이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망한 사람은 에일노스 신부로 신념이 너무나 엄격했고, 타인의 고통이나 사정엔 귀를 닫은 채

정의만을 외쳤기에 살아있는 동안에도 원성을 산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래서 나에겐 그다지 놀랍지 않게 다가왔던 것 같다. 모두가 언젠가 오고야 말 비극을 맞이한 느낌이랄까?



사건은 일어났지만, 캐드펠 시리즈가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도 단순한 범인 찾기 추리극이 아니다.

그래서 누가 죽였냐보다는 왜 죽였냐가 더 중요했고, 나 역시 그저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 어둠을 함께 걸으며 들여다 보며, 그 이유에 대해서 찾아보려고 애썼다.



캐드펠은 언제나처럼 차분한 시선으로 공동체 내부의 긴장과 인물들이 품고 있는 갈등과 비밀을 들여다 봤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리서 냉정하게 모든 상황을 들여다 보는 그 모습이 늘 감탄스럽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 역시 단순하지 않다.
중세 수도원의 삶은 외견상 평온하지만, 그 내부는 결코 조용하지 않다.

후계자 경쟁, 상처받은 과거, 용서받지 못한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물들이 모두 에일노스 신부와 얽힌 갈등을 품고 있고, 그 갈등은 어떤 경우엔 사랑이었고,

또 어떤 경우엔 복수였으며, 결국은 인간의 고독한 선택으로 귀결된다.

비밀스러우면서도 어두운 인간들의 이면들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것들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들과 다를까?

정의란 누군가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진실을, 어떤 상처를 끝까지 껴안고 갈 수 있는가에 따라

그 무게부터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 이야기는 단지 범인을 찾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오래 기억하게 되고 누군가의 모습에 감탄을 남기게 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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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니카의 아이들
미치 앨봄 지음, 장성주 옮김 / 윌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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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로 유명한 미치 앨봄, 그의 새로운 소설이자 그가 꼭 하고자 했던 이야기라는 말에 끌려서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아프고 조용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절규하지 않으면서도

한 줄 한 줄이 뼛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처음에 봤던 살로니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다 하지만 읽고 나니, 낯선 도시의 이름이 내 마음속에서 오래 반향을 울린다. 그곳에 살았던 아이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을 기억하고, 그날의 진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책은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절절하다. 작가인 미치 앨봄은 유대인 공동체의 삶과 그들의 비극을 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것도 아이들의 이야기로 말이다. 무언가 거대한 비극을 말할 때, '아이들'로 시작한다는 것은 가슴이 많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다큐 시사를 볼 때도, 사건 사고 이야기를 볼 때도 아이들이 나오는 것은 최대한 피한다.

옛날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언젠가부터 그랬는데 너무 힘들어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객관적으로도...


그리스의 작은 마을 '살로니카'는 원래 작은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도시였다고 한다.

세파에 밀려 떠나온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살았던 그곳.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모든 것을 차례대로 집어삼켰고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늑대들에 의해서 하나둘 집어삼켜지는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말할 수 없어서, 말하지 못해서, 결국 잊힌 기억으로 남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너무 아리고 시렸다. 누군가에게는 역사이고,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인 이야기


나는 사실 전쟁도, 홀로코스트도, 유대인 문제도 언제나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휴전국이긴 해도 당장에 전쟁이 날 거란 생각도 안 했으니까 말이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다만 이것이 잊히고 지나간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문득 며칠 전에 보았던 이스라엘 폭격 영상이 떠올랐다.

음속 미사일이 떨어지는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촬영한 영상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있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면서도 높은 건물에서 대피하지도 못하고

그저 창문 밖으로 마치 별처럼 쏟아지는 미사일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반격으로 지상에서 쏘아 올려지는 미사일의 모습들도 보였다.

순식간에 주변에 떨어져서 폭발하는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전쟁은 그렇게 우리랑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우크라이나도 그렇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불과 8000km 떨어진 나라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과거와 현재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이라는 것도 떠올랐다.

어른들의 전쟁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아이들. 전쟁과 유대인 학살은 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과 사람들은 철저히 이용당하고, 상처받고, 사라져 갔다.


니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소년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옳다고 믿었고, 그 신념은 그 아이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 그 자체였다.

니코의 금발 머리와 푸른 눈동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가려주었고,

그 외모는 그를 그 시대에서 살아남기 좋은 '도구'였다.

하지만 진실만을 말하던 아이가 결국 그 누구보다도 거짓을 깊이 등에 업고 살아가야 했다는

사실이 이 책의 가장 큰 슬픔이자 모순이다.

니코는 소년으로써 짊어지기에는 너무 가혹한 죄의식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 그것도 아무한테도 말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결국 진실만을 말하고, 사람을 믿었기에 이용당한 아이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을 전하게 된 비극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니코의 형인 세바스티안은 외모도, 성격도, 모든 것이 동생인 니코와 달랐다.

동생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는 점점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깊어졌고,

사랑도, 인정도 모든 것을 니코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세바스티안의 내면은 전쟁과 함께 더욱 어두워진다.

그는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 소년이자, 자신 스스로를 잃어버린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파니.... 전쟁과 학살이라는 이름 앞에서 여성이라는 것은 늘 위험한 요소로 작용한다.

파니는 전쟁 속에서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사건 속에서 순수함을 읽고 현실을 깨닫게 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당장 전쟁이 아니더라도 보호받지 못하는 제3국의 여자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많이 먹먹했다.

아이들이 내몰린 현실이 너무나 잔혹하다는 걸 다시 한번 곱씹었다.

파니는 그런 시련 속에서 살아남아 진실을 말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비극을 완성 시키는 장본인인 말도 꺼내기 싫을 정도로 불쾌했던 남자 우도 그라프...

히틀러를 추종하며, 자신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이용하는 정말 너무 싫은 사람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로 니코와 수많은 유대인들의 삶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정말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홀로코스트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살로니카의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잔인함을 앞세오지도 않는다.

그저 그날의 공기와 냄새와 침묵을 천천히 따라가게 한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말이 이토록 절절하게 다가오는 책은 드물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 책은 묻지 않고 가르쳐 준다.

어째서 미치 앨봄이라는 작가가 이 이야기를 그 토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잊어선 안된다. 잊혀선 안된다. 끝까지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런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홀로코스트 서사가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유대인 학살의 이야기 너머, 그리스의 살로니카에서 일어났던 비극을 담고 있다.

그동안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그리스 유대인들에 대한 잔혹한 학살,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

작가는 잊힌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직접 발로 뛰고, 수십 명의 생존자와 유족을 인터뷰하며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의 따뜻한 시선은 이번에도 여전하지만, 이번엔 그 따뜻함이 더 차갑고 어두운 진실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진심이 한 줄 한 줄 꾹꾹 눌려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감히 말하자면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살로니카의 아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곁에서 기억해 달라고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나치로부터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단지 '사람' 이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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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건너는 교실
이요하라 신 지음, 이선희 옮김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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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괜찮은 수업, 그때 우리가 꿈꾸던 교실

공식도, 정답도 중요하지 않아.



어릴 적 과학 시간은 늘 조금은 어려웠다.

자연이나 동식물 같은 것에 자연 과학에 대한 호기심은 늘 강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공식을 외우고, 실험 결과를 정확히 맞히는 것이 전부였던 과학 수업들이

시험 성적에 얽매여 모든 걸 외워야 하는 그런 수업 방식들이 숨 막히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랫동안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만약, 그때 이런 수업을 했더라면?"


이요하라 신 작가님의 '하늘을 건너는 교실'은 '야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지금은 잘 볼 수 없지만 국내도 얼마 전까지 야간 고등학교가 많았는데 대체적으로 야간 고등학교라고 하면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시선이 꽤 많았던 것 같다 특히나 상고에 야간반이라면 특히나 선입견이 많았던 모양인데

이 책을 읽으면 그 주인공들이 나쁜 행동을 해서, 어긋나서, 공부를 못해서 야간 고등학교를 갔다는 시선은 접게 된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야간 고등학교에 온 사람들이었으니까.


나이도, 국적도, 삶의 경로도 모든 것이 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과학부 활동을 하며 '화성 크레이터를 재현하는 실험'을 함께한다. 처음에는 그저 실험의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소설은 점점 더 깊은 층위로 우리를 데려간다.그 실험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 작품이 특별하게 다가온 건,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한다'는 감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오랜만에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별빛, 물, 바람, 빛, 시간 같은 일상의 과학적 현상에 질문을 던지고, 그 궁금증을 실험으로 풀어나간다. 그 과정이 꼭 '배움' 같지 않아서 더 좋다. 마치 친구와 놀듯, 선생님과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탐구의 시간 속에서 독자인 나도 어느새 그 실험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소설의 줄거리는 어쩌면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정하고 유쾌한 선생님, 개성 강한 동료들, 소소한 갈등과 따뜻한 감동이 담긴 마무리.

하지만 이런 클리셰가 전혀 식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그 안에 담긴 진심이 너무도 따뜻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상 가능한 전개 안에서도 우리가 한때 품었던 꿈, 그리고 한때 잊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아무래도 나는 촌스러운 사람 같다.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뻔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아직도 이렇게 좋으니 말이다.



나는 과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조금 부럽게 느껴졌다.

'과학'이라는 것이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 아니라 세상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책은 궁금한 것을 떠올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시도하고,

그 끝에서 세상과 만나는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특별한 ‘배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장을 덮고 난 후, 나도 모르게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설 속 사람들처럼 어쩌면 나도, 조금은 엉뚱한 호기심을 품은 사람이던 그때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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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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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를 통과해 도달한 한 편의 영화 같은 서사

지독하게 낯익은 이야기, 그런데 눈을 뗄 수 없다



처음엔 제목이 조금 낯설었다.

‘밀항선’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간감과 ‘사냥꾼’이라는 단어의 날카로움이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며 이 두 단어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곧 이 소설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좌천당한 경찰, 넘지 말아야 할 선, 그리고 배신.

사실만 이것만 놓고 보면 어쩌면 너무나도 익숙하고 뻔한 구조다.

수많은 누아르 영화나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봐왔던 클리셰라고 해도 좋을 설정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한국식 액션 영화들도 생각났다.

'달콤한 인생'이나 '신세계', 요즘으로 따지면 '광장' 같은,

맨몸, 칼 하나, 총 하나만 들고도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장르들.


대사를 나누고, 감정은 숨긴 채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이 소설은 영화보다도 더 말이 없고, 더 고요하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읽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더 집중하게 만든다.

물론 이 고요함이 진짜 고요하다는 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익숙함과 고요함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어쩌면 뻔하게 보이는 서사의 틀 안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 자신만의 문장을 밀고 나가는 작가님의 힘이 느껴졌다. 남성적인 듯하면서도 절제되고 섬세한 문장, 그리고 촘촘하게 설계된 플롯이 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끝까지 놓지 않게 만들고, 결국 우리는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읽게 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클리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클리셰의 매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정확히 어디서 힘을 줘야 하는지를 아는 방식으로 써내려갔기 때문에 클리셰 속에 새로움을 읽게 되는 것이다.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사냥당하는가.'

이 질문은 이야기 내내 반복된다. 어쩌면 둘 다 사냥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둘 다 누군가에게 사냥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구조 속, 결국 그 누구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다 읽고 나서야 더 묵직하게 남는다. 이야기 속 결말보다도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사람들의 선택과 상처들이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특히 좋았던 건 인물들이 ‘감정을 겉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이고, 표현보다 선택이 앞서는 인물들. 이 무뚝뚝한 방식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감정을 눌러가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은 액션의 껍질을 두르고 있지만, 실은 관계와 인간에 대한 소설이다.

살기 위한 본능 속에 숨어 있는 외로움과 상처, 그 복잡한 감정들을 작가는 거칠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이 결말이 꽤 많이 씁쓸했다. 모든 사람들의 상황들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만큼이나 와닿았으니까 말이다. 한 편의 느리고 차가운, 그러나 지독히 뜨거운 영화 같은 소설 그래서 그런지 읽고 나면 그 날카로운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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