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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니카의 아이들
미치 앨봄 지음, 장성주 옮김 / 윌북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로 유명한 미치 앨봄, 그의 새로운 소설이자 그가 꼭 하고자 했던 이야기라는 말에 끌려서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아프고 조용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절규하지 않으면서도
한 줄 한 줄이 뼛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처음에 봤던 살로니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다 하지만 읽고 나니, 낯선 도시의 이름이 내 마음속에서 오래 반향을 울린다. 그곳에 살았던 아이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을 기억하고, 그날의 진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책은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절절하다. 작가인 미치 앨봄은 유대인 공동체의 삶과 그들의 비극을 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것도 아이들의 이야기로 말이다. 무언가 거대한 비극을 말할 때, '아이들'로 시작한다는 것은 가슴이 많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다큐 시사를 볼 때도, 사건 사고 이야기를 볼 때도 아이들이 나오는 것은 최대한 피한다.
옛날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언젠가부터 그랬는데 너무 힘들어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객관적으로도...
그리스의 작은 마을 '살로니카'는 원래 작은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도시였다고 한다.
세파에 밀려 떠나온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살았던 그곳.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모든 것을 차례대로 집어삼켰고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늑대들에 의해서 하나둘 집어삼켜지는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말할 수 없어서, 말하지 못해서, 결국 잊힌 기억으로 남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너무 아리고 시렸다. 누군가에게는 역사이고,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인 이야기
나는 사실 전쟁도, 홀로코스트도, 유대인 문제도 언제나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휴전국이긴 해도 당장에 전쟁이 날 거란 생각도 안 했으니까 말이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다만 이것이 잊히고 지나간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문득 며칠 전에 보았던 이스라엘 폭격 영상이 떠올랐다.
음속 미사일이 떨어지는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촬영한 영상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있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면서도 높은 건물에서 대피하지도 못하고
그저 창문 밖으로 마치 별처럼 쏟아지는 미사일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반격으로 지상에서 쏘아 올려지는 미사일의 모습들도 보였다.
순식간에 주변에 떨어져서 폭발하는 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전쟁은 그렇게 우리랑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우크라이나도 그렇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불과 8000km 떨어진 나라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과거와 현재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이라는 것도 떠올랐다.
어른들의 전쟁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아이들. 전쟁과 유대인 학살은 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과 사람들은 철저히 이용당하고, 상처받고, 사라져 갔다.
니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소년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옳다고 믿었고, 그 신념은 그 아이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 그 자체였다.
니코의 금발 머리와 푸른 눈동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가려주었고,
그 외모는 그를 그 시대에서 살아남기 좋은 '도구'였다.

하지만 진실만을 말하던 아이가 결국 그 누구보다도 거짓을 깊이 등에 업고 살아가야 했다는
사실이 이 책의 가장 큰 슬픔이자 모순이다.
니코는 소년으로써 짊어지기에는 너무 가혹한 죄의식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 그것도 아무한테도 말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결국 진실만을 말하고, 사람을 믿었기에 이용당한 아이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을 전하게 된 비극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니코의 형인 세바스티안은 외모도, 성격도, 모든 것이 동생인 니코와 달랐다.
동생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는 점점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깊어졌고,
사랑도, 인정도 모든 것을 니코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세바스티안의 내면은 전쟁과 함께 더욱 어두워진다.
그는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 소년이자, 자신 스스로를 잃어버린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파니.... 전쟁과 학살이라는 이름 앞에서 여성이라는 것은 늘 위험한 요소로 작용한다.
파니는 전쟁 속에서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사건 속에서 순수함을 읽고 현실을 깨닫게 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당장 전쟁이 아니더라도 보호받지 못하는 제3국의 여자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많이 먹먹했다.
아이들이 내몰린 현실이 너무나 잔혹하다는 걸 다시 한번 곱씹었다.
파니는 그런 시련 속에서 살아남아 진실을 말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비극을 완성 시키는 장본인인 말도 꺼내기 싫을 정도로 불쾌했던 남자 우도 그라프...
히틀러를 추종하며, 자신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이용하는 정말 너무 싫은 사람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로 니코와 수많은 유대인들의 삶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정말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홀로코스트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살로니카의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잔인함을 앞세오지도 않는다.
그저 그날의 공기와 냄새와 침묵을 천천히 따라가게 한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말이 이토록 절절하게 다가오는 책은 드물다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 책은 묻지 않고 가르쳐 준다.
어째서 미치 앨봄이라는 작가가 이 이야기를 그 토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잊어선 안된다. 잊혀선 안된다. 끝까지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런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홀로코스트 서사가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유대인 학살의 이야기 너머, 그리스의 살로니카에서 일어났던 비극을 담고 있다.
그동안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그리스 유대인들에 대한 잔혹한 학살,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
작가는 잊힌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직접 발로 뛰고, 수십 명의 생존자와 유족을 인터뷰하며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의 따뜻한 시선은 이번에도 여전하지만, 이번엔 그 따뜻함이 더 차갑고 어두운 진실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작가의 진심이 한 줄 한 줄 꾹꾹 눌려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감히 말하자면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살로니카의 아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곁에서 기억해 달라고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나치로부터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단지 '사람' 이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