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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이름으로 (라울 뒤피 에디션) - 꽃과 함께 떠나는 지적이고 황홀한 여행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라울 뒤피 그림, 위효정 옮김, 이소영 해설 / 문예출판사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책장 사이로 피어나는 봄의 얼굴
-글과 그림이 만든 작은 정원

'봄의 이름으로'는 단순한 식물 에세이나 화집이 아니다. 이 책은 식물이라는 언어로 쓰인 인생의 짧은 기록이며, 동시에 예술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계절의 감각이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가 남긴 문장 하나하나에는 오랜 관찰과 생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고, 라울 뒤피의 그림은 마치 그 문장에 색을 입히듯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보태니컬 아트에 관심이 많아 식물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이 있다.
그리고 평소에도 식물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좋아하는 편이라, 이 책은 첫 장을 넘기자마자 내게 말 그대로 봄의 선물처럼 다가왔다.


처음에는 솔직히 예쁜 그림과 어우러지는 평범한 에세이겠지 하고 넘길 뻔했지만, 곧 콜레트의 문장이 얼마나 치밀하고 감각적인지를 알게 되었다. 콜레트는 식물을 그저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식물이 자라는 방식, 토양과 날씨, 그리고 생의 조건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문장에 향기가 있다면, 아마도 이 책은 신선한 흙냄새와 꽃잎 사이의 봄바람이 섞인 그런 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뒤피의 그림들. 나는 디자인을 공부하면서도 색채가 갖는 정서적 효과를 항상 중요하게 여겼고, 색감에 꽤 민감하게 생각하는데 이 책 속에 수록된 뒤피의 그림은 정말 독보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선과 색은 식물의 생동감과 자유로움과 감성을 더 잘 드러낸다. 그가 그린 식물들은 땅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람과 햇살에 스치는 기억처럼 책장 사이를 떠다닌다.
콜레트의 글과 뒤피의 그림이 만난 이 책은, 문학과 미술이 경쟁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고 조율하며 하나의 장면을 완성해 나간다. 마치 작은 정원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서 각자의 방식으로 봄을 기록하는 것처럼.....
책장을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내 기억 속 봄들이 떠올랐다. 시골 마당에서 맡던 풀 내음과 흙냄새,
보태니컬 드로잉 수업 시간에 처음 꽃잎을 따라 그리던 그 손끝의 긴장감,
그리고 우연히 찍은 들풀 사진을 확대해서 보다 줄기의 잔털에 놀랐던 순간들까지....

콜레트는 말한다. "나는 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말은 단순히 정원사로서의 고백이 아니다.
그건 자연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연과 맺는 정직한 관계에 대한 선언이다.
'봄의 이름으로'는 그런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게 해준다.

이 책은 봄을 상징하거나 이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봄이라는 계절을 통해 삶과 식물의 본질을 함께 들여다보게 만든다.
우리는 바쁘게 걷다 보면 길가에 핀 꽃 하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그러나 '봄의 이름으로'는 그 꽃을 잠시 바라보게 하고, 그 잎맥 사이에 인생의 문장을 읽게 해준다.
이 책은 식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물론이고, 삶의 리듬을 잠시 멈추고 싶은 이들에게도 따뜻한 쉼표가 될 것이다.
책장 사이로 봄이 피어난다. 잊고 살았던, 가장 순한 봄의 얼굴이 나를 마주 보며 수줍게 웃었다.
내가 봄을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무심하게 지나쳤던 그 계절이 다시금 살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콜레트의 문장과 라울 뒤피의 그림이 한 겨울처럼 차갑게 얼어 있던 내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어 단숨에 되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