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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살인
카라 헌터 지음, 장선하 옮김 / 청미래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진실은 우리가 믿는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 추리를 넘어 심리와 미디어를 이용한 새로운 형식의 소설

가끔, 소설이 아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카라 헌터의 '가족 살인'이 딱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잘 만든 추리소설이라고 표현하기엔 그 틀을 한참이나 넘어섰다고 느꼈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나는 문득문득 "진짜 있었던 일인가?" 하고 착각했다.
그만큼 현실적인 구성과 리얼한 연출, 그리고 정교한 몰입도는 지금껏 경험해 본 어떤 추리소설과도 달랐다.

'가족 살인'은 다큐멘터리 감독인 가이 하워드가 20년 전 자신의 의붓아버지인 '루크 라이더'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서
리얼 크라임쇼 '인퍼머스'를 제작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나는 청미래 까치 북클럽을 통해 이 책을 함께 읽고 추리를 해보는 추리단 활동을 했는데, 실제 범죄 다큐멘터리를 보고 사람들과 추리하고 분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용의자를 추측하고, 중간중간 드러나는 단서들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고, 진실에 다가가는 그 과정 자체가 이 책의 큰 재미 중 하나였다. 마케터님이 던져주는 다양한 질문들도 이 책을 더 꼼꼼하게 읽을 수 있게 도움을 준 것 같다.


책은 전통적인 소설 문체가 아닌, 다양한 형식의 문서와 미디어 조각들로 구성된다.
인터뷰 스크립트, 이메일 내용, 경찰 보고서, 제작 노트, 커뮤니티 포럼의 댓글, SNS 피드백 등등
그야말로 지금 우리가 실제로 접하는 콘텐츠의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아니 오히려 더 꼼꼼하고 자세하게 자료들이 정리되어 보여진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마치 한 편의 리얼 크라임 쇼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듯한 기분에 빠져드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계속해서 의심하게 된다. 가족들은 과연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저 사람의 말은 진실인가? 다큐 제작자는 중립적인가?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인가?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서사와 진실을 품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100% 신뢰할 수 없다. 모두가 너무 의심스럽다.
게다가 이야기 중반을 넘어가면서 드러나는 충격적인 반전들은, 그야말로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든다.
진짜 계속해서 '헐' 소리를 내뱉게 되고, 가끔은 어이가 없기도 했고, 다시 한번 책을 앞으로 넘기면서 단서를 되짚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의 묘미는 단순히 범인을 찾는 데 있지 않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거짓과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끝없이 되묻고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이 미디어화가 된다면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페이크 다큐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 영상이 그려졌다. 단순한 스릴러 영화가 아니라, 넷플릭스나 HBO에서 방영되는 고퀄리티 페이크 다큐.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 화면, 관계자의 목소리, 당시 사건 현장을 재현한 영상.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퍼즐을 조립하게끔 만드는 이 구조는 오히려 전통적인 드라마보다도 훨씬 강력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이건 진짜 미디어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물론, 책이 주는 특유의 몰입감은 영상과는 또 다른 맛이겠지만, 이 설정과 구성이라면
충분히 넷플릭스식 다큐 시리즈로 제작해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는 순간, 진실은 또 다른 얼굴을 한다 '가족 살인'은 단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소설이 아니었다. 이 책은 미디어가 진실을 어떻게 비추는지, 우리는 어떤 프레임으로 그것을 소비하는지, 그리고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진실은 늘 하나일까? 아니면 보는 사람의 시선과 믿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까?
책을 덮고 나서도 머릿속을 맴도는 이 질문이야말로, '가족 살인'이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선 이유다.
지금 이순간에도 이 작품은 나에게 "당신이 믿는 진실은 정말 진실인가요?"라고 되묻는다.
만약 정통 추리소설의 형식을 벗어난 새로운 형식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넷플릭스의 실제 범죄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처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추리하고 이야기하며 함께 읽기를 하는 것도 권하고 싶다. 그 경험은 정말 특별하니까...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날 책이 아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단서가 보이고, 사람들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새로운 진실들이 보일 테니까 말이다. 나 역시 아마도 몇 번이고 이 책을 다시 들춰보게 될 것 같다. 마지막의 충격적인 결말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들을 되짚으며 내가 놓쳤던 부분을 다시 바라보고 추리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땐 또 어떤 감정이 들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