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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나무 아래의 죽음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3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장미는 기억하고 있었다
– 사라진 사람과 꺾인 장미, 그리고 남겨진 진실

장미나무 아래의 죽음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열세 번째 이야기이지만,
숫자는 이 이야기의 무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마치 독립적인 작은 세계 같아서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사람의 삶을 따라 걷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앞선 시리즈를 읽지 않아도 이해하는데에 어려움은 없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는 '주디스'라는 여성이 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도, 그와의 추억이 깃든 집을
수도원에 기부한 젊은 미망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집에 완전히 등을 돌리지 않았다.
수도원에 집을 기부하는 대신에 매년 성 위니프리드의 축일에
정원에서 자란 장미 한 송이를 받는 조건을 걸었다.
그 한 송이의 장미가 주디스에게는 사랑과 기억, 그리고 삶의 의지였던 것 같다.
그래서 단지 그것만으로 집을 기부하고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누군가 장미나무를 훼손하려고 했고,
그 장면을 목격한 수사가 장미나무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잔잔하게 시작되던 이야기가 이 장면을 기점으로 서서히 긴장을 끌어올린다.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주디스가 사라지고,
곧이어 또 다른 시신이 강가에서 발견된다.
죽음과 실종,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혼란.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에도
캐드펠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사건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다.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조용하게 진행되는 수사는 있지만
캐드펠을 중심으로 깊게 관여하는 추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감정,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집중해서 보여주면서,
이 이야기와 사람들이 진짜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사건을 마주한 캐드펠은 주디스를 돕기 위해,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만의 방식으로 마을을 누비고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살인의 동기가 아니라,
오래 묻혀 있던 감정의 파편들이다. 사랑, 시기, 외로움, 그리고 회한.
특히 주디스라는 인물은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상처 입은 여인이지만 연약하지 않고, 고통을 품고 있지만 당당해보였다.
그녀를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들은 마치
그녀의 마음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결말에 다다랐을 때, 나는 범인이 누구였는가보다
주디스가 마지막 선택이 더 눈에 보였다.
매번 이 시리즈가 단순한 추리 소설이 아니라고 느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추리 소설과 다르게 범인이 아니라 다른 인물의 선택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장미 한 송이처럼 아름답지만 가시를 품은 이야기.
그 아래엔 때로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캐드펠은 이번에도 그런 진실을, 침묵 속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