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떠 있는 것 같아도 비상하고 있다네 : 니체 시 필사집 쓰는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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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시, 한 줌의 빛

니체의 시에서 발견한 조용한 위로와 철학 너머의 감정



니체라는 이름은 언제나 단단하게 다가온다. 권력 의지, 초인, 영원회귀.

그가 남긴 말들은 냉철하고 논리적인 철학의 언어로 우리의 삶을 통과해왔다.

그렇기에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 ‘니체의 시’라는 말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 니체가 시를 썼다고? 부드럽고, 아득한 말들이 가득한 그 시말인가?



그동안 철학자 중에서 니체를 좋아한다고 여러 번 말을 했지만 사실 니체의 시는 들은 적이 없었다.

‘니체의 시’라는 낯선 조합, 그리고 필사본이라는 형식이 꼭 이 책을 읽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평소에 좋아했던 고전 철학자의 무게 있는 문장들이 고스란히 내 손끝에서 살아난다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았기도 하고...


표지부터 적혀 있는 '쓰는 행위' 자체가 독서의 완성을 넘어선다고 느꼈다.

최근에 내가 필사를 많이 하면서 느낀 것들도 있고, 이 책을 통해서 한 편의 시를 천천히 손으로 옮기며,

문장 하나하나의 호흡과 감정을 담고, 그렇게 니체의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언어가 손끝으로 전해지니,

필사가 독서와 동시대의 독백이 된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니체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표지 제목처럼 ‘뜬 것 같지만 비상하고 있다’는 문장은 니체 철학의 핵심을 조용히 드러낸다.

자유로운 존재, 일시적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

읽고 쓸수록, 그 의미가 머릿속에서 맴돌며 나 스스로에게도 묘한 울림을 줬다.



니체는 흔히 무겁고 난해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 시집은 달랐다. 짧지만 뜨겁고, 냉철하지만 따뜻했고 당당했다.

철학자의 단단한 걸음걸이를 느끼는 동시에, 어쩐지 애잔하고 친숙함마저 느껴졌던 건

평소에 좋아하던 철학자의 말이기 이전에 직접 써보는 이 필사라는 접근 방식 덕분이겠지?



책은 정말 표지도 특별했고 마음에 쏙 들었지만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필사를 해야 하는 페이지가 줄이 아닌 페이지가 꽤 많았다는 거다 페이지 디자인들도 너무 예뻤고 구성도 좋았지만 그 감성보다는 필사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좀 걱정스러울 수 있는 페이지라고 봤다 나는 일단 그냥 쓰기는 했는데 줄이 없는 페이지에 글을 쓴다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기 때문에.... 사실 나도 몇 번이나 펜을 다시 놨다 들었다를 반복했다 다른 페이지를 먼저 할까? 하다가 결국 적고야 말았지만!

나처럼 용기가 없는 사람이들이라면 조금 힘들게 느껴진다는 점이 아쉬워서 다음엔 줄이 있는 페이지가 많았으면 좋겠다


시를 읽고 읽으면서 느낀 건 니체는 시에서조차 삶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되, 마치 그 삶을 사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말한다. 그러면서도 철학에선 느낄 수 없었던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 절망 너머에서 희망의 잔해를 어루만지는 듯한 시선도 보였다. 그건 철학자가 아니라, 외로운 시인으로써의 니체가 말하고 싶었던 숨겨진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철학자는 고뇌 속에서 질문하고, 시인은 고요한 숨결로 그 질문을 껴안는다고. 그리고 니체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단지 시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읽고 따라 쓰면서부터 스스로 무언가를 쓰고 싶게 만들고, 조용히 마음을 열게 만드는 책이다.


새로운 니체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나 철학자로서의 니체가 어렵다고 느낀 분들이라면 이 책으로 니체를 시작해 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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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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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피어난 서정

- 디아스포라, 그리고 잊히지 않는 울림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작품의 내용보다도 폴 윤이라는 작가의 이력 때문이었다.

'이주민 가정에서 성장한 체험을 바탕으로 정체성과 갈망, 시간과 역사 속에 놓인 인간이라는 문제를

독특하고 고요한 서정으로 그려낸다.'는 이 한 문장이 이상하리만큼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던 것 같다.


이주민이라는 말.

같은 뿌리를 가졌지만 다른 땅으로 밀려나서 자란 사람들.

나는 그들의 감수성이 궁금했고, 그들이 어떤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지,

그 마음의 풍경이 나와 닮았을까? 아니면 아주 다를까? 하는 그 질문이

바로 이 책을 펼치게 만든 시작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문득,

나는 어째서 이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나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고, 또 닮았는데, 그 다름을 궁금해하면서도

동시에 어쩐지 구분 지으려고 했던 그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는 '디아스포라'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몰랐다.

낯선 단어였다.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특정 민족이나 집단이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면서

자신들의 문화나 정체성을 유지하는 현상, 또는 그 흩어진 사람들"


그 자체가 이주민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들의 상황과 감정과 정체성,

그 모든 것을 이토록 단단히 담고 있는 단어가 있었다고

나는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단어 하나를 배웠고, 그 뜻을 마음속에 새긴 채

'벌집과 꿀' 속의 7편의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 이야기들은 모두 달랐다. 시간도, 공간도, 인물의 얼굴도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담긴 것은

자신의 자리를 끊임없이 묻고, 붙잡고, 외면하고, 결국엔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위치를 알지 못해서 방황하는 사람, 정체성을 부정당해 조용히 무너지는 사람,

사랑을 안고 떠났지만 삶의 무게 앞에서 그 사랑마저 흔들리는 사람

그 하나하나의 삶이 어쩌면 나와는 전혀 닿지 않는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아리고 먹먹했다.



벌집과 꿀을 처음 만났을 땐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정말 익숙하지 않은 아무 멀고 먼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문화, 역사, 고통은 냉정하게 말해서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에 대한 그리움과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은 어쩌면 닮아 있다.


떠밀려 떠난 자라에서도, 낯선 땅에서도, 사람들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이어간다.

무언가를 잃었기 때문에 가 아니라, 무언가를 여전히 지키고 싶기 때문에...

그런 삶의 방식은 나에게 너무나 위대하게 느껴졌다.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그리고 벌집과 꿀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나 아름답고 섬세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래서인지 점차 이 책 속의 이야기가 단순히 낯선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나 사랑을 품는 방식, 고요히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생경한 동시에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깊이 파고든 이야기는 '역참에서'였다.


주인공 ‘유미’는 조선인이지만, 일본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 길다.

그에게 조선은 단지 출생지일 뿐, 살았던 곳도 사랑했던 곳도 아니었다.

그의 언어, 정서, 일상은 모두 일본에 있었고, 어쩌면 그 누구보다 일본인으로서 살아온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 사회로부터 ‘진짜 일본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다시 조선으로 입양을 보내지게 된다.


문제는, 정작 그 자신은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조선은 그에게 너무 낯설고, 이미 뿌리내렸던 땅은 그를 거부했다.

유미는 어디에서도 온전한 내가 될 수 없는, 완전히 고립된 나로 남는다.

그리고 그가 돌아갈 조선에서의 그를 향한 침묵과 눈빛이 어떨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격투기 선수 추성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추성훈 선수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완전한 일본인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한국계라는 점 때문에 일본 내에서 일종의 차별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일본으로 귀화한 사실 때문에 비판과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마치 한국을 버리고 일본을 선택했다는 인식이 강했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에서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서 살게 되면서 자신은 사실은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

유미 또한 그런 상황에 마주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는 외부인이었고, 조선에서는 일본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를 온전히 받아들일 곳은 어디에 있을까?


'역참에서'는 나에게 국적이나 출신이라는 것이 단순히 여권에 적힌 단어 이상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했다.

이건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이고 외로운 질문으로 이어진다.


벌집과 꿀이라는 책은 그 자체로도 깊고 조용한 물결 같은 작품이라서,

그 서정과 울림이 문장에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는 것 같았다.

언어 하나하나가 서정적이고, 마음에 깊게 박혔다. 이 책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삶은 언제나 부서지고, 다시 이어지고, 결국엔 기억으로 남는다.

벌집과 꿀은 그러한 삶을 꿀처럼 천천히 흘러내리게 한다.

아팠지만 아름다웠던 시간을 한 방울씩 떠올리며, 나는 이 이야기를 오래도록 간직할 것 같다.


나는 그들 중 누구의 삶도 정확하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결국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걸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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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층 탐정
정명섭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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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쌓는 사람들, 그걸 지켜보는 한 사람

- 이웃의 민낯, 그리고 거짓의 이유들



처음에 이 책의 줄거리나 정보를 보고 여성 중심 서사라는 점에서 흥미를 가졌다. 특히 여성이 탐정이 등장한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은 내게 충분히 신선하고 끌리는 설정이었다. 여성 탐정이 등장하는 작품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도 '76층 탐정'은 이런 장르 소설 안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고 느꼈다. 여성 탐정이 사건을 해결해 가는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의 중심에 선 여성’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흥미롭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떠오른 작품들도 있었다. '환락송' 같은 중국이나 대만의 여성 중심 드라마들, 혹은 우리나라의 ‘그린 마더스 클럽’ 같은 드라마. 물론 이 소설은 전형적인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거나 우정을 다루거나 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고급 아파트’라는 밀집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갈등, 비밀은 꽤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더욱 흥미로웠다.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가볍게 읽히는 추리소설에 가까웠다. 미스테리의 밀도나 서사의 복잡함보다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과 ‘관계성’에 좀 더 방점이 찍혀 있는 느낌이다. 누가 범인인지 맞히는 추리의 쾌감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진짜 마음’이 밝혀지는 과정이 더 중요한 작품이었다. 그 안에는 질투와 오해, 외로움 같은 감정이 얽혀 있고, 그러한 갈등은 아파트의 구조처럼 층층이 쌓여 있다.


​이 책이 내게 인상 깊었던 이유는, 바로 아파트의 구조처럼 쌓인 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많은 감정을 숨기게 된다. 걱정될까 봐, 부담스러울까 봐, 혹은 그 진심이 들킬까 봐. 그래서 우리는 종종 거짓말을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또 가끔은 이유도 모른 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나?


​책 속 인물들도 그런 감정을 안고 있다.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조심스레 다가가다 멀어진다. 한 사람이 진실을 말하면, 나도 진실을 꺼내야 할까 봐 두려워서 오히려 더 철저히 숨긴다. 그런 마음들이 반복되며 얽히고설켜, 이야기는 한 층 한 층 깊어져 간다. 사람의 마음도 건물처럼 층을 이루고 있다면, 진심은 아마 가장 위나, 혹은 가장 아래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단, 사람들의 감정을 추적해가는 심리 소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누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들의 진심은 어디에 있었는지. 탐정이 밝혀낸 건 범인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무거운 분위기의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이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따라가기 쉬운 구성, 공감 가능한 갈등, 그리고 여성 탐정이라는 신선한 설정이 추리소설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사뭇 다르게 다가갈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명탐정 코난의 쿠도 신이치(남도일)나 셜록 홈즈, 아르센 뤼팽이나 포와로 등등 이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유명하고, 뛰어난 명탐정이라는 것,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여유, 지적 여유, 시간의 여유. 삶에 치여 허덕이는 사람에겐 남의 거짓을 파헤치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불행하거나 바쁜 사람은 진실을 추적할 수 없다. 그들에겐 숨겨진 진실보다 당장의 삶이 더 중요하니까. 어쩌면 진실을 쫓는다는 건, 삶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종의 유희인지도 모른다.

'76층 탐정'의 여자 탐정 역시 그런 인물이다. 부유하고 심심하며 외로운 여자. 자신이 사는 고층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며 ‘탐정 놀이’를 한다. 그 모습은 처음엔 조금 가볍게 느껴졌지만, 읽을수록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질투와 불신, 비밀과 위선이 얽혀 있는 고급 아파트 속 사람들의 민낯.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 없고, 모두가 조금씩 숨기고 있는 그 진실. 하지만 진실을 추적하는 동안, 우리도 우리 자신과 닮은 인물을 조용히 의심하고 있을지 모른다.


​페이지를 덮은 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한 번 더 살피게 되는 소설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마음이 저 안에 있지는 않을까, 혹은 나도 내 마음을 들킬까 봐 숨기고 있진 않았나? 같은 공간, 같은 층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진심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결국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 층계 어딘가에 진심을 숨긴 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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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이 우리 반 반장입니다 - 2025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청소년 단편 수상작품집 북다 청소년 문학 3
장아결 외 지음 / 북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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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시선, 어른의 마음으로 읽다

이름 하나로 이어진 깊고 조용한 울림



요즘 청소년 소설을 자주 읽는다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고,

기발한 내용이 많아서 읽기도 하지만, SF나 판타지처럼 책 속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교실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들에 자꾸 마음이 끌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아이가 자라면서 겪게 될 수많은 고민과 상처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내 아이들의 곁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미리 들여다보고, 미리 안아보고 싶었다.

이건 어쩌면 나만의 이기적인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읽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나름 최선의 사랑 중 하나이길 바란다.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씩, 아주 조용히 다시 한번 한 사람의 어른이자 부모로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을씨년이 우리 반 반장입니다'를 읽으면서도 그 마음은 조금 더 짙어졌다.



이 책에는 '믿을 만한 어른', '너만 빼고 완벽한 우리 반', '세 번째 눈을 뜰 때', '을씨년이 대관절 뽑히는 이야기', '다정의 온도'라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다섯 편의 이야기마다 각기 다른 배경과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들이 낯선 세계와 마주하면서, 마음속의 일렁이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본다는 것.


이야기 속에서 나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아이들의 감정을 '사춘기라서', '다 지나갈 거니까' 같은 안일한 말로 치부하고 가볍게 생각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가 어쩌면 가장 어른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쓰는, 누군가를 이해하면서 써야 하는 어렵고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속의 모든 이야기는 단순히 아이들의 이야기, 학급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상을 가진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을 내어주고 모든 것을 이해하며, 낯선 세계와 점점 가까워지는 그런 이야기들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이 너무나 대견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계를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어릴 때랑은 많이 달라진 지금의 아이들의 환경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게 생활하고 있을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이 좋았지만 내가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바로 '세 번째 눈을 뜰 때'였다.

사실 소설의 줄거리 때문이 아니라, 등장인물 이름이 '김다온'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네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단지 그 이름이, 내 사랑하는 아이의 이름과 같았다는 이유만으로....


물론 책 속의 다온이와 우리 다온이는 많이 다르다. 나이도, 성격도, 말투도, 살아가는 환경도....

그럼에도 그 이름을 볼 때마다 나는 문장을 넘어서 아이의 마음까지 꼭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 아이도 언젠가 이런 감정들과 마주할 것이다. 친구를 사귀고, 오해하고, 울고, 혼란스러워하며 스스로의 세계를 넓혀갈 것이다. 나는 그 곁에 온전히 있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나는 청소년 문학을 읽는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미리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미리 미안해지고 싶다. 어른으로서의 내 죄책감을 조용히 껴안기 위해서라도.


'을씨년이 우리 반 반장입니다'라는 제목과 달리 전혀 을씨년스럽지 않은 책이다. 오히려 따뜻하고, 웃기고,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우리가 쉽게 넘겨짚는 사춘기의 감정, 언젠가 다 지나갈 것이라고 말하며 외면해 버리는 그 시간들 속에는 이렇게도 복잡하고 다층적인 세계가 있다는 걸 이 책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도 분명 겪고 지나온 과정인데 왜 어른이 되면서 그때의 감정을 잃어버린 것 같을까?


나는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더 미안해졌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어졌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아이의 마음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였다.


책을 덮으며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자라서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또 어떤 방식의 사고를 하는 어른으로 변해 있을까? 그리고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부디 내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어른으로 조금 더 성장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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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내면의 지성을 깨우는 필사 노트
정이든 지음 / 세네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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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깨어나다



최근에 필사 책을 꽤 많이 쓰고 있다. 아무래도 예전에는 글을 많이 썼는데 최근에 글을 쓰는 게 많이 줄어들어서

다시 한번 습관을 잡고 좋은 문장들을 쓰고 읽으면서 읽지 않았던 혹은 잊고 있었던 책 속의 문장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즘 필사 책들이 유독 많이 나오는데 한 번씩 돌고 도는 그 유행의 주기에 편승해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필사 책들이 나온다는 게 조금은 반갑기도 하고 취미로 잡고 가기엔 좋을 시기라고 생각되어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신기하게도 수많은 필사 책들이 나오는데 문장이 겹치는 건 거의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책을 내기 전에 많은 검수와 검토를 통해서 체크를 하기 때문이겠지만

유명한 작가의 문장 중에 사람들에게 무수한 사랑을 받는 문장들은 한 번쯤은 겹칠 수도 있을 텐데

겹치지 않는 게 신기할 뿐이다


어쨌든 이번에 내가 선택한 필사 책은 세네카에서 출간된 '하루 한 장, 내면의 지성을 깨우는 필사 노트'다

파란색과 빈티지 꽃이 그려진 표지가 세련된 느낌이라서 눈길을 끌었다

표지는 책의 첫인상이기 때문에 표지에 관심이 많은 나한테는 딱이었던 것 같다



다른 필사 책과 마찬가지로 왼쪽엔 문장이 있고 오른쪽엔 문장을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건 비단 필사 책뿐만 아니라 그림이든 스티커북이든 다 변함없는 법칙이라고 생각이 된다

책의 진행 방향도 그렇고 대체적으로 그게 편하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 꽤 인상 깊었던 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4장 제1절 제66조가 나온다는 점이다

보통 필사라고 하면 소설, 시 등 문학 작품이나 비문학 작품에서 좋은 문장들을 가지고 오는 게 정석적인데


대한민국 헌법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특히나 대통령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는 것은

최근에 있었던 123사태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싫지만

그래도 대통령의 위치나 대통령의 책무나 그런 것들이 절실히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이 책이 다른 필사 책이랑 다른 점은 하나 더 있다 중간중간 필사를 하면서 든 생각이나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적어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인데 책을 따라서 적기만 하다가

직접 생각을 하고 생각하는 것을 적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건 꽤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만 적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읽으면서 적으면서 생각을 하고

마음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성장하는 것이니까

색감도 예뻐서 다른 필기도구랑 놔두면 좀 많이 예쁜 느낌도 받고 노출 바인딩을 좋아하는 나한테는

역시 노출 바인딩 자체도 매력적이고 넓게 펼칠 수 있으니까

글을 쓸 때마다 방해되는 것 없이 걸리는 것 없이 편하게 필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매일매일 쓰지 않더라도 한 번씩 쓰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길이의 문장들이 가득해서

그것 또한 장점 어쩔 땐 진짜 딱 한 줄만 나오기도 한다.



글씨를 못써서 필사를 하거나 필사 노트를 쓰는 걸 망설이는 분들도 꽤 많고,

역으로 글씨를 잘 쓰고 싶어서 필사 노트를 적는 사람들도 있는데

겁먹지 말고 내 글씨체로 편하게 쓰면 좋으니까 망설이지 말고

그렇게 쌓이고 쌓이면 글씨체가 점점 변하고 마음처럼 동글동글 예뻐질 것 같다

요즘은 사람들 각자 개성에 맞추어서 필체를 잘 활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내 글씨가 악필이라고 너무 낙담하지 말았으면!


그리고 그렇게 하루에 한 장씩 쌓이면 결국 이 책은 나만의 책이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내 글씨로 가득한 나의 생각이 차분하게 쌓인 멋진 필사 노트라니 너무 멋지지 않을까?


매일을 무기력하게 보내는 사람들이나 글을 쓰고 싶지만 막막한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다.

스마트폰보다 펜과 노트를 다시 찾게 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앞으로 남은 페이지도 가득가득 채워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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