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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신은 고양이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9
샤를 페로 글, 프레드 마르셀리노 그림,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고양이를 좋아하는 가영이는 고양이가 나오는 책이라면 대부분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장 많이 읽은 고양이 책을 꼽으라면 단연 <장화신은 고양이>입니다.
이 책은 가영이가 보기엔 글이 좀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차피 책을 읽어주는 것은 저이고 가영이도 책을 읽어줄 때면 참을성이 있는지라 즐겨읽곤 했습니다. 사실 이 책을 많이 읽은 건 제가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옛날에 세계명작동화 전집에서 읽은 것 같은 기억이 가물가물 나서 어릴적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니까요. 거기에다 프레드 마르셀리노의 멋진 그림까지 어우러진 훌륭한! 그림책이랍니다. 한마디로 달리는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잘 알려진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그림책으로 만들곤 하는 것 같던데 제 생각에는 단연 프레드 마르셀리노의 그림이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화체 그림을 좋아하는 제가 빠져들 정도이니까요.
<장화신은 고양이>의 가장 큰 매력은 '순 뻥'이라는 데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고양이가 어떻게 말을 하고, 자루로 토끼며 새들을 잡는단 말입니까. 발로 잡으면 모를까. 게다가 정체모를 고양이를 순순히 왕궁으로 들여보낼 파수병이 어디 있으며, 만나줄 왕은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왕은 자기 나라에 가장 큰 부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단 말인가... 저같이 쫀쫀한 어른은 책을 읽으면서도 가끔 그 속에 몰입하지 못하고 가끔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읽다보면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시치미 딱 떼고 그럴듯하게 풀어놓는 페로의 입담에 빠져들고 말지요. 현실에선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걸 잊고 즐기게 하는 매력, 그게 바로 이야기꾼 페로의 재능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야 다들 잘 아실테니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한데,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어 하는 대목은 두 군데입니다. 먼저 고양이 푸스가 농부들을 협박하며 '토막토막 잘라서 소시지로 만들어 주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음... 굉장히 무시무시한데 무섭기는 커녕 웃음이 나오는군요. 그건 가영이도 마찬가지랍니다. 겁쟁이 가영이도 푸스의 협박엔 절대 겁을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을 읽다 이 대목이 나오면 '소시지를 만들어 줄테다!'하고 따라하며 웃지요.
사실 처음엔 아이들에게 이렇게 끔찍한 걸 읽어주어도 될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가영이가 무서워 하기보단 즐거워 하는 걸 보면 아이들도 나름대로 걸러서 듣는 정화능력이 있는 듯 합니다. 아님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서 그럴려나? 그런데 농부들은 왜 푸스가 시키는대로 하는 걸까요? 말을 하는 고양이라서?? 두번째는 거인이 생쥐로 변신하는 장면입니다. 푸하하... 고양이 앞에서 생쥐로 변신하다니... 뻔히 아는 결말이지만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먹히는 순간 코끼리로 변신하면 살지 않았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도 해봅니다. 그러면 푸스가 너무 가여운가요?
가영이는 이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답니다. 가끔은 '다시~!' 읽자고 해서 저를 혹사시키곤 하죠. 이 책은 그림책은 역시 그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가영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책에도 <장화신은 고양이> 이야기가 있는데 가영이가 그건 잘 안읽더라구요...
리뷰를 쓰며 다시 책을 보니 고양이 푸스의 표정이 잘 살아있네요. 능청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저도 푸스 같은 고양이 한마리 있으면 팔자 피는 건데 말입니다. 아무튼 이 책은 교훈이라곤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즐겁습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생각할 줄 아는 것은 고양이 푸스밖에 없습니다. 고양이 주인인 방앗간 세째아들은 모든 걸 고양이에게 맡기고 푸스가 시키는 대로만 하고, 왕은 많은 재산에 반해 딸을 시집보내며, 공주는 외모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거인은 생각없이 생쥐로 변하고요... 하지만 세상이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