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마음이 즐거운 그림책

고릴라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50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1998년 10월

<고릴라>는 가영이가 올해 가장 좋아했던 책 중 한 권입니다. 얼마나 여러번 읽었는지 이젠 다 외울 지경이니까요. 이 책의 주인공 한나처럼 가영이는 고릴라를 무척 좋아합니다. 덕분에 동물원도 몇 번 다녀왔답니다. 고릴라를 보기 위해서요!

이 책을 알게 된 건 한겨레 신문을 통해서였습니다. 사실 <고릴라>를 읽기 전까지는 앤서니 브라운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잘 몰랐죠. 이 책을 읽고나서 가영이는 고릴라의 팬이 되었고, 전 앤서니 브라운의 팬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림책을 읽는 내내 눈과 마음이 즐겁고, 책을 덮은 후에도 그 여운이 계속되는 그런 책이랍니다.

<고릴라>는 우선 그림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작가가 되기 전에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해부학 도감 등을 그리는 일을 몇 년동안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에서 앤서니 브라운은 그러한 경험을 통해 그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또한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게다가 앤서니 브라운은 카드 일러스트레이터 경력도 꽤 된답니다. 그런 경력 덕분인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은 세밀화를 연상시키듯 정교하고 세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환상적입니다.

<고릴라>는 글을 읽지 않더라도 그림을 통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답니다. 그림을 통해 상황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심리까지도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무심한 얼굴로 신문을 읽는 냉랭한 식탁 장면이나, 책상에서 일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나의 엉거주춤한 뒷모습, 한나가 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우두커니 텔레비전을 보며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장면에선 아이의 외로움이 묻어나오고, 고릴라와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반대로 푸근함이 묻어나는 것이죠.

또한 <고릴라>는 숨은 그림찾기와 같은 재미꺼리를 제공합니다. 그림책 곳곳에 앤서니 브라운이 고릴라를 숨겨 놓았거든요. 아이와 함께 숨은 고릴라를 찾는 재미가 만만치 않답니다. 여기저기에 숨은 고릴라들이 '나 찾아봐라!'하며 기다리고 있거든요. 시리얼 상자 속의 고릴라부터 찰리 채플린 복장을 한 고릴라나 자유의 여신상 모습을 한 고릴라 등등... 게다가 한나의 침대 머리맡에 있는 전등갓에 그려진 고릴라들은 처음엔 춤을 추고 있다가 장면이 바뀌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답니다. 작가의 유머가 돋보이는 부분이지요.

흔히들 현실에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동화같은 이야기'라고 하지 않나요. 하지만 앤서니 브라운이 다루는 주제는 '현실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특별히 아름다울 것도 없는 일상의 지지고 볶는, 갈등이 내재된 평범한 이야기를 주제로 다루는 것 같습니다. <고릴라>는 아빠와 둘이서만 사는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흔히 결손가정이라고 하지요. 아이는 아빠와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도 보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외식도 하고 싶고, 춤도 추고 싶지만 아빠가 너무 바빠 꿈 속에서 고릴라와 함께 놀며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즐거운 마음으로 꿈을 깨고나니 아빠가 아이와 함께 동물원에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는 무척 행복'하답니다.

해피앤딩으로 끝나긴 하지만 <고릴라>는 마냥 즐거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꿈 속에서 고릴라와 정말 꿈같은 하루를 보내고, 그 꿈이 깨자 아빠가 동물원에 가자고 하는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지지만... 그러기까지 한나는 정말 외롭고 쓸쓸했거든요. 그게 일상인 거지요. 하지만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로 옮겨졌기에 <고릴라>는 우리를 안심하게 하고 행복하게 해줍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은 이처럼 일상의 갈등을 환상을 통해 풀어나가고 가족간의 애정을 보여주는 게 매력인 것 같습니다.(물론 <동물원>처럼 시니컬한 작품도 있습니다만...)

이것저것 말이 많았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한다는 것이겠지요.
그건 고릴라의 인상이 참 푸근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책 속의 고릴라를 보다보면 정말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를 직접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