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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The Tempest (1611년)

윌리엄 셰익스피어 |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템페스트, 윌리엄 셰익스피어. 응?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라면 영국이 인도와도 안바꾼다 했던 그 대작가 셰익스피어?

그렇담, 4대 비극과 5대 희극은 모두가 줄줄 외워도, 

정작 그 외의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바로 그 분이로세...!


이 작품은 생의 찬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은 악의와 불의와 배반으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역시 살아볼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_ 이경식(옮긴이, 서울대 명예교수)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은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5대희극은 <한여름밤의 꿈>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

이렇게 9작품이 있다. 그리고 이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




“오 놀랍구나! 훌륭한 사람들이 여기에 이렇게도 많다니! 인간은 정말 아름답구나! 

이런 분들이 존재하다니, 참 찬란한 신세계로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 역시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감명을 받아 쓰였다고 한다.)



_『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으로서는 드물게 당시 극작의 중요한 규칙이었던, 하루 시간 안에, 한 장소에서, 한 줄거리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른바 세 가지 일치들 혹은 삼단일(three unities)을 준수한 희곡이다. 관용과 용서, 화해가 이 극의 주제이며 선은 악과의 투쟁에서 승리하고, 복수와 처벌 대신에 용서와 관용이 있으며, 절망과 암흑 대신에 희망과 빛이 있음을 보여준다. 인생은 악의와 불의와 배반으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비극적인 결말 대신에 행복한 결말로 셰익스피어는 말해준다. 



(미리보기 페이지 링크 바로가기 ▶ http://cafe.naver.com/mhdn/46172)



애석하게도 우리는 위의 9편으로 소개되는 희극, 비극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대충 '안다'라고 말하겠지만, 사실 그는 '영국이 사랑한 대작가'의 칭호를 얻은 위인인 만큼

우리에겐, 아직 다 소개되지 않은 엄청난 작품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중 한 작품이 바로 『템페스트』일 것이다.


우선 미리보기로 살짝 작품의 맛을 본 뒤, 

주말에 베토벤의 소나타와 함께 이 작품을 감상한다면…

나도 '제법 셰익스피어 읽는 독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마침, 알라딘에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을 40% 특가 세일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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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Poisson D'or (1997년)

르 클레지오 장편소설 |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은 20세기 작가, 그것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이 많아서 참 좋다.


주변에 책을 조금씩(^^;) 보는 지인들이 대뜸 고전 혹은 해외 명작들을 추천해달라 할 때,

이 책 알아? '세계문학전집'이고 '노벨상 수상작가 책'이야 라고 하면 바로 눈을 빛내기 때문이다.

아아……. 이런 노벨상의 위엄이란!



‘라일라’라는 생명력 넘치는 한 소녀가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 눈부시다.

자기를 찾기 위한 지난한 항해는 언제나 황금빛 물고기처럼 아름답다._ 황석영




개인적으로 '그런 노벨상' 수상작가 리스트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 꼽을 만한 한 사람!

최근에 내한 행사도 있었기에 냉큼 뵙고 왔던 훈중년의 상징, 바로 르 클레지오 님이시다!




“나는 그 동안 너무 오래 갇혀 살아온데다가, 자유에 취해 있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두려 하면 달아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카페 꼼마에서 진행된 낭독회 모습. 이 분이, 무려 1940년 생이라고… 허엇!)



_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나고 자랐는지도 모른 어린 나이에 인신매매단에 납치된 한 흑인 소녀의 인생역정을 다루고 있다.‘밤’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녀 ‘라일라’는 어릴 적 누군가에게 유괴되었다. 그녀의 기억이라곤 자신을 잡아 검은 자루 속에 집어넣은 커다란 손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들뿐이다. 팔려온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지내던 그녀는 주인 노파가 죽자 가혹하게 자신을 부리는 아들 부부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 프랑스로 떠난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이후의 삶 역시 녹록지만은 않다.



아! 물론 이 작품, 결코 쉽지 않다. 발랄하거나 유쾌하지도 않고.

처음 만난 르 클레지오 작가님의 작품이라면 더더욱 어려움이 따를거다.


프랑스 예술이 대체로 좀 그런 편이니까. 유명하다, 수상했다~

해서 냉큼 열어보면 ‘아아, 이게 무슨 소리야, 현기증나’ 싶은 그런거?


(미리보기 페이지 링크 바로가기 ▶ http://cafe.naver.com/mhdn/46109)


하지만 최근에 『라가』라는 에세이를 통해 독서 토론까지 마치고 보니

왜 그토록 세계 만인이 ‘프랑스 예술’을 숭상하는지 어렴풋이 알겠단 느낌이랄까.


이 날, 강연회 겸 낭독회 현장에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 놓친 분들은 미리보기로 책 내용을 살짝 엿보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은 어디가서 ‘나 세계문학 좀 읽었소’라고 말하려면, 

꼭 만나고 넘어가야 할 필독서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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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Pantaleon Y Las Visitadoras (1973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장편소설 |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안나 카레니나』에 이어 두번째로 소개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도서는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작가님의 책!

아, 이 책(...) 여러모로 호평이 자자하던데, 나는 책 소개를 보자마자

우리의 지난 역사.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와 정신대 문제가 떠올라서 아찔했다.


“권력 구조의 지도를 그려냈고, 개인의 저항, 반역, 좌절을

통쾌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_ 노벨문학상 선정이유


뭐랄까 '풍자'나 '통쾌'라는 단어는 감히 매칭할 수 없겠단 생각..?


이게 바로 감정이입의 한계인데(...) 어쩌면 이 책을 보면서 

'문학이 지니는 사회적 가치와 힘'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을 수 있겠단 생각도 했다.




"무한한 냉소와 계속된 씨웃음을 감내할 수 있는 도덕적 요새나 신경계는 없다고 말입니다."


(완전 잘생긴 요사 선생님...! 저작의 제목 만큼,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_ 훌륭한 복무 태도, 탁월한 임수 수행 능력으로 상부의 사랑을 받는 모범 장교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 그에게 아마존 지역 병사들을 위한 ‘특별봉사대’를 창설하라는 비밀 임무가 주어진다. 과연 이 특별봉사대의 정체는 무엇이며, ‘바른 생활 사나이’ 판토하 대위는 이 비밀 임무를 잘 수행해낼 수 있을까?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아마존 밀림에서 펼쳐지는 블랙 코미디!



책 소개만 봐서는 '이런' 소재를 어떻게 '코미디'로 풀어냈을지 쉽사이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궁금한 사람들은 미리보기로 살짝 그 내용을 엿보면 좋을 터! 


(미리보기 페이지 링크 바로가기 ▶ http://cafe.naver.com/mhdn/46038)




근데, 이 작품은 영화나 뮤지컬로 누가 안만드나? 

영화도 영화지만 뮤지컬이나 오페라로 만들어지면 정말 대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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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Анна Каренина (1877년)

레프 톨스토이 장편소설 |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문학동네 카페에서 매일 세계문학전집 미리보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실 전집에 대한 로망이야, 책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원대한 꿈이지만,

모든 책을 한꺼번에 구입하자니 부담이 적잖이 들고

어떤 책부터 선택해서 읽을까(...) 하다보면 막대한 선택지로 고민에 빠지기 쉬울테니


매일 이 미리보기를 통해서 책에 대해 감을 잡고 끌리는 것 위주로

하나씩 사 모으다보면 어느새 전집 책장이 완성되지 않을까?



 마침내 바로 그 소설을 이루었다네.

무척이나 생생하고 격렬하며 또한 완벽한 소설을 말일세.

_ 톨스토이의 편지 중에서

 




첫번째 소개작은 영화 여신 '키아라 나이틀리'와 완벽 훈남 '주드로'의 주연으로

영화 개봉일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안나 카레니나』


(미리보기 페이지 링크 바로가기 ▶ http://cafe.naver.com/mhdn/45987)


(여신이다! 진짜 그 시절 톨스토이가 묘사했던 그 장면들이 그대로 톡 튀어나온 느낌)

 

“아아, 난 자신을 아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안나는 진지하고 생각에 잠긴 듯한 어조로 말했다.


“난 다른 사람들보다 나쁜 인간일까요, 좋은 인간일까요?

난 나쁜 편이려니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대표작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사랑과 결혼, 가족문제라는 보편적인 소재로 전 러시아인을 사로잡은 『안나 카레니나』는 농노제 붕괴에서 러시아 혁명에 이르는 19세기 후반 과도기 러시아 사회와 등장인물들의 육체적 특징뿐 아니라 심리 변화까지 뛰어나게 묘사한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는다.



이런 책 소개도 소개지만 특히 내가 좋아하는 백영옥 작가님의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전집' 칼럼에서 소개된 작품이 『안나 카레니나』라서

더 애정을 갖게 되었다. (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고전 문학 - 백영옥)


아, 이책 참 좋은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 궁금하다면 미리보기로 확인해보시길! 



근데 백영옥, 안나 카레니나.. 참 묘하게 잘 어울린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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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얼어붙듯 추운 것이 겨울의 책임이 아니듯,

따뜻하게 몸을 데워주는 것이 외투의 책임이 아니듯,

비록 외투 한 벌을 둘러싼 일이었지만 원인과 결과라는 것이 이렇게 적나라한 진실임을

원인과 결과를 향해 따질 수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원인과 결과의 굴레가 되어가는 것이 세월 탓은 아니었다.

일의 경과는 그랬다. 누구도 책임이 없었기에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었다.

 

『숨그네』「일의 경과」중에서


 

 

외투 한 벌을 둘러싼 일의 경과는 이렇습니다. 과거 법무사였던 파울 가스트는 배고픔을 어쩌지 못해 아내 하이드룬 가스트의 수프를 훔쳐 먹고 하이드룬 가스트는 끝내 죽게 됩니다. 여가수 로니 미히는 하이드룬 가스트가 입던 낡은 외투를 차지하게 되고, 법무사의 아내 하이드룬 가스트의 빈자리를 대신해 파울 가스트와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나 로니 미히가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거나 외투를 갖고 싶었다고 해서 그녀를 나무랄 수 없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얼어붙듯 추운 것이 겨울의 책임이 아니듯, 따뜻하게 몸을 데워주는 것이 외투의 책임이 아니듯 말이지요.

 

처음 『숨그네』를 읽어 내려가다가 헉, 하고 숨이 멎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채 두 쪽이 안 되며, 단 세 문장으로 이루어진 바로 이 장(章)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상황은 말 그대로 섬뜩했지만, 이 아름다운 문장 앞에서 헉, 하는 것 말고는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아니, 어쩌면 이토록 섬뜩한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든 이 문장들에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이런 반응이 튀어나온 것인지도 모르구요.

 

‘수용소’라는 극단의 상황은 선과 악이 구분되는 일반적인 ‘사회’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배고픔, 추위, 혹독한 노동 앞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만이 남게 됩니다. 삶과 죽음만이 공동의 관심사이자 공동의 목표가 된 ‘수용소 사회’에서 선악을 따지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버립니다. 어쩌면 ‘선’을 따지는 것이야말로 ‘옳지 못한’ ‘악’이 되어버리는 거지요.『숨그네』는 이 지점에서 절대로 헐리우드식 장엄한 휴먼 드라마가 되지 않습니다.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독자의 눈물을 짜게 하거나 연민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살려내는 영웅적인 행동도 없습니다. 뮐러는 그럼으로써 결코 진실의 초점을 흐려놓지 않습니다. 그동안 수용소의 사람들을 ‘인간’이도록 만들었던 이성과 수많은 감정들은 마비되고, 그들 내면은 정신적 재난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탓이 아닙니다. 잘못된 시대와 역사 탓을, 그러므로 수용소의 어느 영웅이 바로잡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는 책을 읽으며 뮐러가 단 한 번도 사회운동가이기를 자처하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뮐러는 언어와 문학에 사로잡힌 예술가였습니다. 특히 뮐러에게 언어란 어떤 힘을 행사했음이 분명합니다. 루마니아에 거주하던 독일계 소수민으로서의 정체성의 혼란, 히틀러의 동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뮐러의 부모 세대가 짊어져야 했던 부당한 죄과, 부조리하고 모순에 찬 시대의 흐름 속에서 뮐러에게 유일하게 명징하고 가치중립적이었던 것이 언어였을 것입니다. 뮐러가 어떤 이념(루마니아의 공산주의 혹은 히틀러의 나치즘)으로부터도 세뇌되지 않았으며, 혼란스런 시대에도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뮐러가 갈고 닦은 언어의 힘이 아니었을까요? (스페셜북 <헤르타 뮐러에게 다가가기>에 실린 허수경, 강유일 선생님의 글, 특히 ‘낱말상자’에 대한 부분을 읽어보시면 뮐러의 언어에 대한 집착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명징한 언어의 세계에 파묻혀 있었던 뮐러는 그런 시대와 상황 속에서 다른 선택은 할 수조차 없었을 겁니다. 독재에 반대하고, 독일로 망명하고, 『숨그네』처럼 시대를 증언하는 작품을 써야겠다는 그녀의 선택 말입니다. 그 선택은 뮐러의 ‘의지’이기 이전에, 그러지 않을 수 없는 뮐러 ‘자체’인 것이죠.

 

뮐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누가 보기에도 잔혹한 현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뮐러의 손 안에서 이런 현실은, 어쩌다 차에 치인 동물의 잔해를 보듯, 두 번은 눈 뜨고 보고 싶지 않은 역겨운 경험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뮐러는 이 ‘불편한 진실’을 불편하기에 피하고만 싶게 만들지 않습니다. 분명 어느 독자는 뮐러를 두 번은 읽게 될 것입니다. 그녀의 문장이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

 

 

헤르타 뮐러의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문장들과 맞닥뜨릴 때 거의 본능적으로 그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니, 느끼게 됩니다. 때로 현실은 비현실이 되고, 비현실은 현실이 됩니다. 우리가 수용소에 없었던 이상, 수용소의 경험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수용소의 현실은 우리에게는 결코 현실로 다가올 수 없습니다. 뮐러는 그러한 현실을, 현실을 뛰어넘는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놓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비현실적인 언어를 통해서야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제대로 들여다보게 됩니다.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아이러니, 그것이 어쩌면 뮐러의 예술가로서의 본능이자, 뮐러 문학의 절묘함이 아닐까요?

 

이 책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살고 사랑하며 지지고 볶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진실’이라는 것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이 헤르타 뮐러식 사랑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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