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땀 - 여섯 살 소년의 인생 스케치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스몰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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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생각없이 읽기를 시작했다가 가슴이 먹먹해지며 끝난 책. 엄청난 쓰나미가 가슴속에 휩쓸고 지나간 듯한 기분이다. 경쾌하고 암울한 느낌이 모두 느껴지는 스케치가 인상적인 노블책.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린 시절 가족에게 당했던 아동학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던 부모님의 이야기, 암에 걸려 목소리를 잃었던 이야기…모두 어떻게 풀어내야할 지 막막하여 리뷰를 쓰는 지금도 막막함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바늘땀이라는 제목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야기. 한땀 한땀 엮어내는 바늘땀처럼 덤덤하게 자신의 암울했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의미에서도 잘 어울리고, 날카로운 바늘이 손끝에 파고드는 식은땀나게 아픈 감정도 들게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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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 - 5년 만에 40대 조기 은퇴에 성공한, 금융맹 부부의 인생리셋 프로젝트
김다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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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흔히 은퇴라는 단어는 60세 이후의 삶을 떠올리는데, 한창 일할 나이인 40세 그것도 부부가 함께 은퇴라니…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궁금했다. 

딩크족인 부부가 마흔에 은퇴하고 삶의 여유를 찾는 과정을 그려낸 책으로 은퇴를 하기로한 사정, 준비과정 등이 일기처럼 담담하게 잘 담겨있다. 저자 부부는 주식은커녕 재테크도 잘 모르고 월급나오면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소고기를 사먹으며 행복해하는, 그저 적금을 열심히 들던 우리 주위의 흔한 소시민이었다.


“ 경제적 여유를 위해 삶의 여유를 포기하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하고. 우리는 오랜 고민 끝에 삶의 여유를  ‘선택’했을 뿐이다.”



매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마약에 중독되어 사는 흔한 이 시대 직장인들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 것이다. 나 또한 그렇기에 그들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마음이다. 아이가 있어도 은퇴는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나의 마음 한켠에서는 아이가 없기때문에 그나마 마흔 은퇴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하는 삐딱한 생각은 여전히 변함은 없다.


“ 하지만 회사에서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난 회사 안의 기획자 역할이 힘들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었다. 계속된 야근으로 건강을 잃은지 오래고,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숨을 참는 버릇까지 생겼다. “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숨을 참는 버릇이 들었다는 저자의 말, 금방이라도 질식해 죽을 것같던 회사 공간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너무나 이해가되고, 살기위해 은퇴를 결심했다는 말이 너무나 공감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출근한 순간부터 퇴근까지 이를 악무는 버릇이 있었다. 덕분에 턱관절이 망가져서 꽤나 오랜기간 치료받으며 고생해야 했다. 그런 나도 살기 위해 퇴사를 선택했다. 나는 모아둔 돈이 쥐뿔도 없어서 은퇴는커녕 더 열심히 일을 해야하지만, 저자는 일할만큼 일했기에 이제 인생을 찾아 은퇴를 선택했다. 

저자가 오랜세월 몸담아 청춘과 건강을 불살라가며 일했던 업종이 예전에 내가 일했던 직종과 엇비슷했기에 더더욱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저자가 16년이나 그 직장에서 버텼는지, 왜 은퇴를 결심했는지 너무나 잘 알겠어서 부디 그들의 은퇴가 계속 성공적이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나 또한 마흔은 아니어도 50세 언저리에서 은퇴해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현재 내 자금사정이 어떠한지, 어느 정도 모으면. 마흔 조금 넘어 조기 은퇴가 가능할지 계속해서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1. 아슬아슬한 은퇴자금이 불안하다면, 몸값 올리는 이직으로 해결
- 나는 이전 직장을 그만 둔 후 새로 입사한 곳에서 꽤나 만족하고 지냈다. 업종을 완전히 바꾼것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으니, 이제 명예퇴직 나이까지 무조건 버티고 다니자라는 마음을 가졌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했던가… 내 안에서 불만과 답답함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처음에는 몰랐던 부조리도 눈에 보이고, 미래에 대한 내 계획의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조기은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을 때는 그냥 막연하게 답답했는데, 이제는 조금 더 준비해서 돈을 좀 더 주는 곳으로 이직하자는 다짐을 하게 되니 견딜만하다. 저자 부부는 그래도 알만한 대기업에 다닌 것같은데, 대부분의 20-30대는 최저임금에 허덕여서 조기은퇴는커녕 퇴직 후의 삶이 더 불안한 세대라 돈을 모으는 것이 가장 큰 관문이 될 것같다.

2. 연금저축은 가능한 빨리
-코로나로 월급이 줄어서 일단 어느정도 월급이 복구되면 개인연금을 만들 예정이다.

3. 배당금이 나오는 국내외 주식 시작
- 전 회사에서 반 강제적으로 자사주를 받으면서 억지로 시작한 주식이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되어주었다.

4. 고정비 파악하기
- 나는 엥겔지수가 높은 편이다.(가난의 증거 ㅠㅠ)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내가 이렇게 일하는데 이것도 못사먹어?’하는 맘으로 즐겼던(?) 음식들…. 이젠 조금 줄이고 조기은퇴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데 오롯이 신경을 써야겠다.

5. 월 생활비 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맞춰 살 수 있는지 미리 연습하기
- 매 월 도전하고 있는데, 늘 화남비용(스트레스 받으면 지르는…)때문에 무산된다.

6. 작더라도 성취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일을 계획하기
- 이것은 조기은퇴가 아니더라도 현재에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자격증을 따거나, 이벤트에 당첨되는 등 뭔가 나에게 소소한 보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것을 하기 전에는 늘 삶이 재미없고 지쳤는데, 자기개발도 되고 정신적으로 만족감을 주니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7. 내가 꼭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금액은 따로 모아두기
- 저자처럼 나도 자주는 아니지만 일년에 한번은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소소하게 여행을 즐겼었다. 나 또한 은퇴 후 여행을 위한 자금을 따로 모을 예정이다.


은퇴를 이야기하면 주위에서는 걱정을 빙자하여 오지랖을 떠는 얘기를 해서 사람 속을 뒤집어놓거나, 부모님은 일할 나이에 일을 해야지 벌써부터 놀 생각만 한다고 핀잔을 할 것이다. 이런것을 미리 겪어본 저자는 조기 은퇴를 위한 마음가짐부터, 주위의 공격(?)으로부터 내 마음을 보호하는 법, 금융계획까지 조근조근 우리에게 알려준다. 조기은퇴는 마냥 좋기만 하지도 않을 것이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지출에, 사건에 위기를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뜬구름 잡는 소리한다고 좋지 않은 소리를 하겠지만, 조기은퇴를 하겠다는 용기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의 소임은 다 한 것이 아닐까?

멍청한 회사놈들아 난 마흔 넘어 떠난다! 잘 있어라!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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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 떠나는 지옥 관광 - 고전문학, 회화, 신화로 만나는 리얼 지옥 가이드
김태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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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옥' 에 대한 작가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고전문학,신화,회화가 총 집합된 지옥입문서이다.

나는 어릴 때 단테 신곡 중 지옥편에 푹 빠져서 여러 번 탐독했었다. 이 책에도 단테의 신곡이 여러 번 나오는데, 아무래도 지옥하면 대표적인 저서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뭔가 문화권 별로 지옥을 나눠서 설명해줄 것을 기대했는데, 작가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역사적 사실, 고전문학 등을 넘나들며 지옥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서 기대에는 조금 못 미쳤다.(그래도 재밌었다.)

지옥과 관련된, 누구나 할 법한 의문들(예수탄생 이전의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가야하는가? 지옥의 형벌은 영원한가? 기독교,불교,천주교 등 모든 종교를 믿는 자는 천국에 갈 것인가? 등)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 읽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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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을유세계문학전집 112
요시야 노부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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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의아니게 근대 여성작가의 글을 연달아서 읽게되었다. 얼마 전 우리나라 근대 여성 작가들의 수필집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일본 근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만났다. 읽으면서 느꼈지만,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문장마다 심어져있어 그것을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물망초라는 책을 처음 펴들었을때는 '아 내 취향이 아니다, 괜히 읽기 시작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기우는 잠시, 곧 나는 소설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시 판에 박힌 여성캐릭터가 나오는 타 소설과는 달리 다양한 특성을 지닌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 시대에는 대부분 주인공이 남성이고, 여성은 보조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소설이 대부분인데, 물망초에서는 자아 형성기 소녀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지금은 '그냥 평범한 소설이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이 쓰인 당시를 생각하면 꽤나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고등여학교라는 공간에서 3명의 여학생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며 전개된다. 사랑과 우정, 질투, 번민 등의 감정이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소설이었지만, 작가가 세밀하게 풀어내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은 마키코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십대 소녀들이 모인 학교에서는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온건파와 이론과 권위, 도덕, 이성을 중시하는 강경파 그리고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파의 자유주의자들이 있다. 마키코는 자유주의자들 중에서도 더 강경한 중립파라고 볼 수 있다. 마치 절벽위에 피어있는 고고한 한 송이 꽃처럼 말이다. 고고한 마키코에게 장미같이 화려한 팜므파탈, 온건파의 여왕 요코가 나타난다. 요코는 부잣집 딸로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정을 이루는 인물이다. 공부보다는 사랑과 낭만을, 책임과 의무보다는 멋과 파티,자유를 쫓는 꿈과 환상의 인물화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요코는 마키코를 보는 순간 그녀를 정복하겠다 다짐한다. 완고한 마키코도 요코의 매력앞에서 속수무책 무너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단순 정복욕으로 시작했던 요코는 체면도 던져버릴만큼 마키코에게 빠지게된다. 사랑과 우정사이의 묘한 감정이 둘 사이에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미안해, 아까부터 내 맘대로 끌고다녀서 약간 땀이 났지?"


그때, 마키코는 상냥하게 땀을 닦아 주는 요코의 손수건에서 풍기는 짙은 향수 냄새를 느꼈다.


"물망초 향수야. 마음에 드니? 이 향기......"


마키코는 말이 없었다. 이럴 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평소에 연습해 본 적이 없어서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네가 이 냄새를 좋아한다면, 나는 언제든 이 향수만 쓸 거야"


마키코는 긴장해서 몸이 굳어 버렸다.



물망초의 꽃말 ' 나를 잊지 말아요 '라는 서정적인 의미는 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요코가 마키코에게 전하는 마음인 양 말이다. 단순 소녀들의 사랑과 우정만 표현된다면 이 소설은 통속적인 그렇고 그런 소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각자의 사정에서 치열하게 고뇌하는 사춘기 소녀들의 모습도 나타난다. 마키코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의 불화 속에서 미래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과 현실사이의 괴리에서 괴로워한다. 무엇이 되어야할 지,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현모양처가 되는 법만 배워야하는 것인지, 뿌연 안개같은 자신의 답없는 미래가 괴로운 마키코는 어느날 서점에서 책 한권을 발견한다.


"엄마, 나 오늘 멋진 책을 찾았어. 그런데 영어로 쓰여 있더라고. 아직 읽을 수가 없어서 정말 아쉬웠어. 하지만 제목은 읽을 줄 알아. What should we do!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뜻이지? 무슨 내용이 쓰여 있을까. 빨리 읽을 수있으면 좋겠어"


"그건 아마 톨스토이가 인간의 의무에 때해 쓴 논문이 아닐까 싶네"


어머니는 지식이 상당한 사람이었다.


"맞아, 엄마 대단해. 거기 대체 뭐라고 쓰여 있어?"


마키코가 눈을 반짝이자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모르겠어. 그저 그런 책이 있다는 걸 언젠가 어떤 잡지에서 소개했던 것 같아. 마키코가 어서 열심히 공부해서 읽은 뒤에 엄마한테 알려주렴"


마키코의 지식욕은 눈동자와 함께 반짝이며 타올랐다.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키코, 그런 책은 읽지 않아도 다 안다.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람의 의무는 말이지. 남자는 똑똑하게 머리를 굴려 학문을 하고 과학으로 연구를 거듭해서 업적을 쌓아 인류에 공헌하고, 여자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양육하는 천직이 의무다. 그것 말고는 없어. 알았느냐"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미래를 꿈꾸는 마키코는 가부장적인 세상, 아버지가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자신을 인형처럼 조종하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다른 등장인물 가즈에는 가부장제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복종하며 살아가는 순종적인 인물이다. 가즈에는 현실적일 수 밖에 없는 인물로 살아간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유언장에 너는 장녀이므로 책임을 다하고,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라고 가즈에에게 전한다. 어머니는 매년 아버지의 기일마다 이 유언장을 읽으며 가즈에를 옭아 매고, 동생들을 위해 희생해야함을 반복 교육 시킨다. 가즈에는 부모님을 따르고 순종한다. 


자신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마키코는 가즈에와 같은 세계에서 살기를 강요당하며, 세뇌받는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반항심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마음이 공존한다. 가즈에가 마키코의 현실과 같다면 요코는 마키코의 꿈과 환상이다. 요코는 상심한 마키코를 데리고 금기를 부수며, 일탈을 하여 마키코에게 해방감을 선물한다. 꿈만 쫓을 수 없듯 현실도 중요함을 인지한 마키코는 결국 요코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가즈에에게 간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병에 걸린 요코를 찾아가 그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운다. 마키코는 꿈과 현실 그 어느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자의식을 구축해가는 사춘기 소녀들의 사랑과 우정, 성장, 고뇌와 갈등을 통해 현실과 꿈 그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삶, 이것이 그녀들이 나아가야할 길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마키코와 아버지의 화해가 너무 급작스럽게 전개되어 당황스러운 점 정도?


요시야 노부코는 이번에 처음 알게된 인물인데, 이미 그녀 자체가 그 당시 하나의 '브랜드'였다는 것을 해설을 보고 알게되었다. 그당시 흔치 않았던 숏컷에 당당한 표정, 결혼하지 않고 좋아하는 여성과 사는 동성애적 사생활 등 모든것이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고 하니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싶다. 남편이 필요없는 사람이라고 외치고 다니는 성공한 작가는 그 존재 자체로 이미 가부장제를 깨부수는 창같은 존재였다. 이런 노부코를 기득권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당연하다. What should we do, 노부코는 자신의 존재와 작품으로 이 메세지를 모든 여성들에게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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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수필집 : 내 머릿속에 푸른 사슴 - 현대어로 쉽게 풀어 쓴 근대 여성 문학 모던걸
강경애 외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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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책 ‘모던걸 시리즈-수필집 내 머릿속에 푸른 사슴’.  현대어로 쉽게 풀어쓴 근대 여성 문학 작품집이다. 현대어로 번역이 잘 되어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근대 여성 작가라하면 노천명, 나혜석밖에 몰랐는지라 나의 무지에 부끄러워하며 책을 펴들었다. 

근대 문학이라고 하면 흔히 일제 강점기의 암흑, 우울함, 가난, 비참함만 떠올리게 되는데 그 시대의 또 다른 면을 근대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신혼의 기억을 떠올리는 슈크림, 작가의 최애 종달새와 얽힌 이야기, 묘한 분위기의 눈오던 그날 밤 등 첫번째 수필의 주인공인 백신애의 수필은 가볍게, 훌훌,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노천명의 수필은 다른 수필에 비해 더 친숙함을 느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녀의 글을 읽는 내내 만약 그녀가 현대의 인물이라면 소주 한잔 기울이며 돈벌이 생활의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직장 선배같다는 이유모를 생각이 들었다. 친일행적만 아니었어도 그녀에 대한 호감은 계속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글만보면 내 주위의 평범한 직장 언니, 친구같은 느낌인데 도대체 일본의 무엇이 그녀를 매료시켰던 것일까?
‘직장의 변’ 이라는 수필은 시대적 배경이 근대라는 것을 몰랐더라면 현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해도 깜빡 속아넘어갈 정도이다. 

// 내 머릿속에 이런 푸른 사슴을 자유롭게 놓아기르기 위해서는 최소한도의 생활 보장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내게는 ‘짬’이 필요한 것이다. 난들 날마다 출근하는 것이 즐거울 리 있으랴. 더구나 한여름에 남들이 산으로, 바다로 놀러 다니는 것을 볼 때면 부러워 죽겠고, 요새 같이 단풍이 한창인 때에는 경주쯤에 찾아가보고 싶은 생각을 어디에다 비길 수 있으랴. 하지만 내 머릿속이 조금이라도 당황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또 내 마음이 과히 큰 불안에 억눌리지 않고 적으나마 일정한 수입을 갖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우리는 절대로 현실적인 생활을 무시하고 함부로 덤벼선 안 된다. 생활을 무시하는 태도가 오히려 무시를 가져오는 경우가 생긴다. 나는 내 최저 생활의 확보를 위해서 언제나 즐겁게 ‘짬’을 가질 각오를 하고 있다. //

내가 언젠가 지리멸렬한, 끝없는, 돈만 벌다가 끝나버릴 인생을 왜 견디는가에 대해 일기장에 하소연하듯 썼던 글과 엇비슷해서 놀랐다. 이런 면 때문에 그녀가 현대인이라면 나는 그녀와 꽤 잘 맞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나보다. 

‘지난 날의 여기자 생활’이라는 수필을 읽기 전 왜 굳이 제목에 ‘여기자’라는 지칭을 썼는지 불만이었다. 하지만 수필을 다 읽고나서 왜 원 제목인 ‘피해야 했던 남성’보다 지난 날의 여기자 생활이라는 제목을 썼는지 이해되었다. 이 제목이 훨씬 그녀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더 잘 표현했기 때문이리라. 여성이 직장에서, 사회에서 요구받는 역할에 대한 고충은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나혜석의 수필 또한 재미있게 읽었다. 그녀 또한 현대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노천명은 직장 내 친한 선배의 느낌이라면, 나혜석은 대학교에서 만난 마음맞는 친한 과동기같은 느낌이다. ‘연필로 쓴 편지’라는 수필은 처음에는 로맨스인줄 알았으나 그 끝은 스릴러로 끝나서 간담이 서늘했다. 요즘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는 감성적인 구애방식에 처음에는 가슴이 몽글몽글해졌으나, 점차 일방적인 강요와 먹잇감을 사냥하는 듯한 구애방식에 학을 떼려는 찰나 마지막엔 결국 요즘 시대에도 흔히 보이는 ‘왜 안만나줘, 너죽고 나죽자’ 방식이 나와서 오싹해졌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를바 없는 양상에 새삼스레 다시 서글퍼진다.

강경애의 수필은 감상적이고 문학적인 면모가 다른 작가들의 수필에 비해 두드러진다. ‘몽금포 구경’은 특히나 서정적인 표현이 내 마음에 콕 들어왔다. 

// 그 사이를 뱅글뱅글 도는 도라지꽃은 해쭉 웃고는 꼭꼭 숨어버린다.   에크! 또 나온다. 또 숨는다. 빛이 어쩜 저리도 푸를까. 깊은 산골짜기에 별만 보고 자라서인지 꽃송이가 별인 듯 속기 쉽고, 푸른 하늘이 그리워 애태웠는지 그 머리 다소곳이 숙이고 물빛으로 빛나네.//


모든 글은 필연 미래를 향해 쓰이고, 모든 독자는 과거의 작가와 만나기 때문에 우리의 독서는 모던걸들에게 보내는 응답이라는 소개글이 딱 들어맞는 책이다. 실제로 만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글을 통해 나는 잠시나마 그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근대 여성 문학(여성이라고 굳이 따로 지칭하여 분류하고 싶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이렇게 나누기에 썼음)에 대해 무지했는데, 조금 더 찾아보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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