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 『이코노미스트』가 본 근대 조선
최성락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는 기록하는 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했던가. 

어떤 사실은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로 펼쳐지기도 한다.

한 때 나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외국인들의 눈으로 바라봤던 조선에 대한 책들을 탐독했던 적이 있다.

비숍여사,스웨덴 기자의 책, 고종의 의사였던 독일인 의사의 기록, 독일인 부부의 조선 신혼여행기까지 그 당시 외부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 사회는 어땠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서구 열강 중 하나였던 영국 언론인 이코노미스트가 본 근대 조선은 어땠을까? 책을 읽으면서 느낀 바를 간단하게 정리해보려 한다.


1. 오페르트


우리나라는 물론 자국에서도 쌍놈 취급받은 오페르트가 조선 정부는 무능하다 욕했지만 조선 자체, 조선인들의 숨겨진 저력이나 국민성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2. 중개무역


영국과 조선 사이에 중국과 일본의 상인들의 중개무역은 30여년 동안이나 이루어졌다. 물론 그 긴 세월동안 중간에서 엄청난 이득을 취했음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예전에도 문득 '우리나라 상인들은 왜 직접 수입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이제서야 새삼스레 아주 간결하고도 명확한 진실을 알았다.

'상인들이 마음대로 외국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

쇄국정책에 대해 배웠으면서도 시험에 나오는 부분만 생각했지, 이렇게 연관지어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면직물이 생산되는 멘체스터, 인도의 봄베이에 가는 것이 우리 상인들은 아예 불가능 했던 것이다. 덕분에 중국과 일본 상인들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되었다.


3. '조선인들은 무기력하다'


예전에는 이러한 관점을 제국주의 열강이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시선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그러한 부분도 있겠지만,결론적으로는 '관료들의 부정부패'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우호적인 기록을 남겼던 비숍여사도 처음에는 조선과 조선사람에 대해 비관적이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만주에 여행을 갔을때 그곳에 이주한 조선인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들은 본국에서와 달리 성실하고 빠릿빠릿함을 자랑했다. 심지어 조선에서 이주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조차도 말이다.

조선에서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관료들이 다 수탈해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거나 빼앗길 뿐이었다. 그리고 대가족사회였던 조선은 관료가 친척을 가두고 인질삼아 돈을 수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주에서는 자신이 버는만큼 모두 나의 자산이 되었다. 조선인들 역시 관료만큼 지혜롭고 합리적이었다. 그들은 합리성을 발휘한 결과 아무일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중요한 시기를 맞이했던 구 한말 부정부패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허비하게 되다니... 백년이 넘은 지금에도 안타깝고 통탄스러운 일이다.


4. 서양의 동양 시장 개방에 대한 새로운 시각


기존의 시각 : 아시아 국가의 완전한 시장 개방을 목적으로 삼고 그에 따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진행함. 처음부터 완전한 시장개방을 요구하면 엄청난 반발을 받을 수 있음. 따라서 하나 또는 두개의 항구를 먼저 개방한 뒤 점차 늘려가거나 무력을 동원했다.


이코노미스트의 시각 : 군대를 동원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생김->군대 동원에 의한 손해를 메꿀 이권을 요구함-> 또 다른 사건 발생->군대 파견->또 군대 파견에 의해 일어난 손해를 메꿀 이권 요구

따라서 의도적인 시장 개방이 아니었음


이 시각에 입각하여 좀 더 살펴보면 서양은 법치주의가 잘 지켜지고, 서로 정정당당하게 누가 물건을 많이 파는가로 경쟁했지 국가가 개입하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동양은 국가를 개입시키고, 자신들의 룰 대로만 하려고 했다. 그렇기에 서구 열강도 군대를 파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상인들은 정부의 뒷배와 보호를 고수하며, 자신들의 방식을 막무가내로 적용하려 든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의견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으나 서양 열강들의 눈에 보이는 뻔한 꼼수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당시 서구 열강은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가져가려고 했을 것이고, 동양권 문화나 감성에 익숙하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반발과 충돌이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물건을 팔거나 사길 원한다면 배고픈자가 능력껏 상대를 설득하여 이득을 취하는게 시장 원리가 아닌가? 저들의 항변은 '너네가 너무 막무가내여서 어쩔 수 없었어'같은 알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5. 중국, 이홍장


자존심강한 중국이 왜 문호개방을 했을까? 이에 대한 의문은 학창시절 역사시간에도 가졌던 의문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것이 자기들이라고 믿는 민족인데, 뭐가 아쉬워서? 물론 서양의 과학 기술 도입의 필요성을 느껴서 일 수도 있지만, 산업혁명 이전에는 동양권이 서양보다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개방 이유는 '이거 먹고 떨어져라'였던 것. '이런 것을 내어줄테니 우리말 잘 들어라'라는 선민의식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부분 때문에 자멸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당시 조선인들이 모두 무식했기에 일본의 침략은 당연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들의 잘못이라면 세계정세에 어두웠고,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는 이들이 너무나 적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일본, 러시아 등 세계 열강들과 인접한 국가로서 "외교"가 가장 중요한 나라인데, 그 당시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배불리기에만 급급했다. 이러한 안일함이 결국 우리가 잘 아는 근대사회를 만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서구열강의 시각에서 쓰였기에 그 한계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객관적으로 당시 조선과 정세를 살펴볼 수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 않던가 우리는 백 여년 전의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인적인 택시
이모세 지음 / 밝은세상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추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 동물이다.

여행지를 추억하는 방법 중 하나도 '음악'이 아닌가 싶다.

여행지에서 하루종일 귀에 꽂고 듣고 다니던 음악을

사람이 그립고 외로운 날 다시 들으면

그때의 기억, 바람, 햇살 등 여행지에서의 모든 기억과 감각이

오소소돋는 소름처럼 되살아나서

어떻게든 거지같은 삶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하고 싶었던 것도 없고, 모든 것이 구름낀 하늘같이

답답하기만 했던 시절

친구 관계도, 학교도 모든 것이 의미없고 부질없어 

지쳤던 십대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단순한 코드진행의 발랄한 멜로디의 펑크락에

마음을 위안받았던 기억이 있다.



까짓것 괜찮아 신경 쓸 것없어 너무 걱정하지마
심각하게 고민하며 생각해봤자 달라질 건 없잖아
긴긴 겨울지나 봄날 오듯이 좀 더 참고 기다려봐
사는 게 힘든 것만은 아냐 언젠가 해 뜰 날이 올거야


게토밤즈의 ok ok라는 곡인데, 가사 자체는 평범하고

멜로디도 전형적인 펑크락 음악이었지만

노래를 듣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때로는 평범하고 단순하다 생각했던 것에도 크게 위안을 받게 된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모티브로 단편을 끄적거렸던 적이 있다.

너무 유치하고 견딜 수 없이 오글거려서 다 지워버렸지만....

이 책은 특정한 단골손님만 받는 특별한 택시 운전사의 시선으로

13개의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추억의 노래와 혹은 상황에 적절한 음악을 통해

위안을 받는 공간인 개인적인 택시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어렸을 때 노래듣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용돈을 받아 소중하게 CD를 하나하나 사 모았던 기억이 있다.
공CD에는 몇 백 곡이나 좋아하던 노래를 담아 소중하게 구웠던 추억도 있다.

노래 한 곡 한 곡이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소중하게 들었던 그 기억을 잊고 산 것같다.

노래를 들어도 예전같지 않고, '귀함'이란 감정을 잃어버린 것같다.

나는 '불편한 것'을 좋아한다.
e-book보단 종이책을, 
카톡보단 편지를,
엽서와 우표를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왜 그런 것을 선호하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 안에 담긴 '기억과 역사'를 사랑한다.

모든 것을 쉽게 살 수 있고, 쉽게 취급하는 사회에서
다시 소중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물음에
택시운전사는 다시 '불편함'으로 돌아가보라고 , 어렵게 얻어보라고 조언한다.

나도 다시 시디와 테이프로 듣던 소중한 시절로 돌아가보려고 준비 중이다.



추억은 음악에 숨어 길을 가는 내 앞에 우연히,
혹은 카페에서 멍때리고 있을 때 어딘선가 갑자가 내 앞에 나타나

우르르 감당할 수 없는 기억과 감정을 쏟아내기도 한다.



나의 십대시절은 ROCK이 자리했다.
20대는 Jazz가 자리했다.
나와 같은 노래를 듣던 사람들에게는
그 노래에 어떤 추억을 담아놨을까

(여담이지만 만화를 그린 작가분이 나랑 동년배인듯....
노래와 에피소드의 상황이 너무나 내 세대에서 나오는 짬바(?)라서
보면서 '나도 저랬었지, 저 노래를 좋아했었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Every moment spent with you is moment I treasure라는 에어로스미스의 노래가사처럼

힘들고 외로웠을 때 들었던 노래도, 기쁠 때 들었던 노래도 모두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져 지치고 힘들 때 버텨나갈 수 있는 원동력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코올과 작가들 - 위대한 작가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음주열전
그렉 클라크.몬티 보챔프 지음, 이재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부터 술냄새가 물씬 풍기는 책이다. 

음주독서는 겨울날 유일한 나의 취미 중 하나이다. 내가 책을 읽을 때면 신성한 의식처럼 치르는 단계가 있다. 먼저 냉동실에 차갑게 얼린 맥주잔을 꺼낸다. 그리고 맥주하나를 꺼내서 거품이 넘칠 듯 말듯 잔 입구까지 찰랑찰랑하게 맥주를 따른다. 그런 뒤 따뜻한 방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그날의 기분, 맥주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책을 펴든다. 여기에 음악까지 더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겨울 밤을 보낼 수 있다.


책을 펴든 순간부터 끝까지 각 챕터에 나온 술이 마시고 싶어지는 위험한 책이다. 해당 술을 좋아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 그 작가가 마셨던 술과 함께 한다면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당 주종에 대한 간략한 역사적 배경과 그 술과 관련된 작가와 일화가 다채로운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와인


제이 매키너니의 와인 칼럼은 유독 내 맘에 들어왔다. 전형적인 백단향이 어쩌고 오크가 어떻고 하는 틀에 박힌 와인평이 아닌, 작가의 특성에 대입한 와인평이 오히려 더 그 와인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같다.

톨스토이같은 보르도와 투르게네프같은 부르고뉴...도스토옙스키같은 남부 론 와인...와인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막연하게나마 해당 와인이 어떤 느낌인지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맥주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맥주 제조 또한 오래된 것이다. 주로 여성 신관들이 맥주 제조를 담당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왜 진작 생각을 못했을까 술은 제례의식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인데...당연히 턱수염 가득한 아저씨들이 제조했을 것이란 고정관념에 빠져있었다. 

제인오스틴이 맥주를 즐기기도 하고 양조까지 했었다니! 어쩐지 시원하게 얼린 맥주컵에 맥주를 한 가득 담아 마시면서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으면 왠지모르게 더 이해가 잘 되는 기분이들었다. 와인이 아닌 맥주라니 마시면서도 이상했지만, 맥주가 어울리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정확한 양조법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으나, 추정하여 나온 전나무 맥주 양조법은 책에 잘 소개가 되어있다. 언젠가 한번 전나무 맥주를 구해서 제인오스틴의 책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영국에 가서 찰스디킨스의 선술집 투어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작가와 함께하는 음주투어도 꽤나 인상적일 것같다.


톰 로빈스의 'B는 Beer지'라는 어린이용 맥주소개 도서가 꽤나 인상적이다. 일상에 찌든 어른들이 왜 퇴근하면 냉장고 속에 시원하게 몸을 얼린 맥주를 찾는지, 왜 맥주거품이 마음의 위안을 주는지 어린이에게 이해시키려는 책인데, 웃음도 나지만 한번 읽어보고 싶어진 책이다.



보드카


러시아 문학하면 바로 보드카와 매서운 추위가 떠오른다. 그러나 책에 나온대로 다른 서양문학에 비해 술을 찬양하는 경우가 비교적 적다는 말에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흥미로웠다. 늘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면 보트카(스크루드라이버)를 마시며 읽었는데,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는 먼 미래에 자신의 독자가 보트카를 마시며 책을 읽으리라 생각했을까? 문득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압생트


압생트는 최근까지도 독약과 다름 없는 술, 작가들의 뮤즈가 되는 술이라는 거의 신화적인 이미지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유독 압생트를 제물 삼아 치를 떨었는데, 그 반대적으로 창의력을 불어 넣어주는 금단의 열매같은 이미지도 자라났다.  이 모든것이 압생트를 만든 회사의 마케팅이었다면 그 마케팅은 정말 성공적이다. 



와인부터 데킬라,럼까지 전 주종을 넘나들며 재미있는 일화가 소개되어있어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금방 읽을 수있었다.

창작의 고통은 작가를 늘 따라다닌다. 창작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알콜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면 어느 날은 유독 일이 술술 풀린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서 술을 친구처럼 여겼던 작가들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있을 것같다. 요즘은 알콜의 위험성에 대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술 이름에 유독 생명의 물이란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옛 사람들은 술이 영감을 일깨우는 생명수처럼 여겼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하지만 술이 있어야 늘 위대한 작품이 나온다는 이런 생각도 하나의 고정관념이 될 수 있으니.... 계속 술을 마시는 작가는 오래버티지 못하지만, 세심하게 술을 마시는 작가는 더 나은 작가라는 스티븐 킹의 말처럼 술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생명수가 될 수도, 목숨과 창의성을 앗아가는 금단의 사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량이 적어서 아쉬웠지만, 가볍게 술과 관련된 작가와 일화를 훑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면의 고백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전형적인 일본식 탐미주의' 그리고 읽는 동안 왠지모를 괴로움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작가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나, 필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가 맛있다고 해야하나....곱씹어 느끼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탓에 할머니의 과보호 속에서 자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도니스같은 육체적으로 활력있고, 생기 넘치는 소년이나 청년에 대한 동경을 품고 이어 욕망이라는 것의 감정을 깨닫게된다. 구이도 레니의 '성세바스티아누스' 그림을 보며 처음으로 성적 욕망을 경험한다. 이것이 옳지 못한, 사회적으로 나쁜 것으로 취급되는 감정임을 알고 있는 주인공은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해 고민하고 남과 다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연기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는 이를 '타고난 결함' ,타고난 죄악으로 이를 여긴다. 



 남의 눈에 나의 연기로 비치는 것이 나로서는 본질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었고 남의 눈에 자연스러운 나로 비치는 것이 곧 나의 연기라는 메커니즘을 그 무렵부터 나는 희미하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한 때 남의 눈에 비치는 나,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괴리감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눈에 비치는 나도 나이고 내가 생각하는 나도 '나'라는 존재가 아닐까 나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남의 눈에 보이는 나도 내가 만들어 낸 나의 모습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과연 본질적인 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뭐가 되었든 나는 '나'라는 생각이다.  '본질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 그래서 더욱 이 문장에 공감한다.



'살에까지 파고든 가면, 살집이 달린 가면만이 고백을 할 수있다. 고백의 본질은 불가능이다라는 것이다'



고백의 본질은 불가능함이라고 정의내림으로써 작가는 독자와 나아가 자기 자신도 배제시킨다. 자신의 불완전함, 운명적으로 타고난 결함을 숨기고도 싶었지만, 또한 이를 직시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진다. 가면을 벗겨내고 이것에 좌지우지 되지 않으려는 노력,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가면의 고백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술봉과 분홍 제복 - 세일러 문부터 헬렌 켈러까지, 여주인공의 왜곡된 성역할
사이토 미나코 지음, 권서경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어렸을 때 내가 아이돌처럼 좋아했던 세일러문의 주제곡이다.

화려한 변신장면, 악당들을 무찌르는 세일러 전사들의 모습은 나같은 어린 여자아이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당시 세일러문은 가히 신드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일러문 신드롬은 신문 기사에도 나올 정도였는데, 당시 유치원 여자 아이들이 세일러문 요정들처럼 날씬해지고 싶어서 밥을 굶고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것이 문제라는 내용이었다.


p.92

어릴 때부터 익히 봐 온 이 이름들을 살펴볼 때 '누가 선택받았는지'가 아니라 '누가 선택받지 못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위인전이 소년만화의 구성과 닮아있다는 것, 누군가의 의도적인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고 어린시절 읽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다. 이처럼 만화, 그리고 만화만큼이나 어린이들 누구라면 필수적으로 본다는 위인전은 아주 어릴 적 우리의 사고와 세계를 지배한다.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메세지를 은연중 노출한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만화 속에 뿌리깊은 여성 차별적 요소들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나서야 깨닫게 된 부분이다.



p.22-23 소년/소녀 왕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 제목

소년 왕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G,D,B음에 중점을 두어 강인한 느낌을 준다. 반면 소녀 왕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M,R,S음에 중점을 두어 귀여운 어감을 살린다. "자아, 강하게 들리는 이 소리가 남자 어린이 거예요. 앗, 안돼요. 우리 여자 어린이 건 그게 아니라 여기 있는 귀여운 소리란다" 이렇게 일본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각자 다른 길로 유도된다.


p. 25 소년 왕국의 전투는 이질적 존재를 배척하는 전쟁이다.

​그런데 적이란 누구를 말하는걸까. 흔히 침략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겉모습이 보통 사람과 다르거나 사회 기준에 맞지 않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괴수, 괴물, 로봇 등 동식물이나 기계가 진화하다 만 것 같은 모습을 띤다. 소년 왕국에서 전투란 곧 이질적 존재를 배철하는 전쟁을 말하며, 소년 왕국에서 말하는 정의란 '지구적 민족주의' 또는 '인류에고이즘'이라 할 수 있다....지구 대 외계에서 온 침략자 라는 대립구도는 일본 대 이국에서 온 침략자 또는 일본 민족 대 비(非)일본 민족이라는 대립구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할 수 있다.


p.32 소년 왕국에는 성희롱이 난무한다. 

소년 왕국에서 흔히 발생하는 성희롱은 '욕실 엿보기'라는 저질스러운 행위다. 언제부터인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앞다퉈 샤워신을 집어 넣기 시작했다는 것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팬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남학생들이 "나도 좀 보자"라며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여학생에게 들켜서 반나체 차림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여주인공이 밖으로 나와  "뭐하는 짓들이야!"라며 호통친다. 이처럼 익숙한 고전적인 장면은 훈훈한(그렇게 여겨지는) '개그'로 통한다.


아주 어렸을 때 봤던 만화는 지금까지고 내 정서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만화 제목부터 남자용, 여자용으로 나누기, 성희롱을 아무렇지 않는 개그와 농담으로 취급하는 메세지, 남자일 여자일을 구분짓는 만화, 어른의 시각으로 악을 정의하는 만화...과연 뿌리깊은 차별의 사회화는 언제 없어질 수 있을까?


p.72 악의 여왕은 요술을 부리는 마녀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유형의 성인여자와 악의 여왕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정말로 어린아이일까? 어쩌면 성인남자(정확히 말하자면 미성숙한 여성관을 지닌 성인남자)가 이들을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흔히 능력치가 놓고 돈도 많으며, 남자들의 시선에서 말하는 소위 '기 쌘 여자' 이들이 바로 만화 속에 나오는 악녀의 모티브가 아닐까?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능력치가 쩌는 악당이 어렸을 적 내 눈에는 진짜 악당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p.78 TV앞 꼬마 도련님들에게

네가 소년왕국(전쟁터)에서 활약하려면 사생활을 포기하고 조직에 들어가 다같이 힘을 합쳐 이질적 존재를 배척해야해. 그게 바로 정의란다. 여차할 땐 무장(변신)을 하고 악당과 끝까지 맞서 싸워야해. 그 중에는 무서운 여자 어른들도 있단다. 그 여자들은 요술을 부리니까 아주 조심해야해. 하지만 걱정 말렴, 어떤 문제라도 과학기술이 해결해 줄 테고, 조직에는 섹시한 여자가 있으니까 한숨 돌리면서 성희롱을 할 수도 있단다.


전근대적인 남성우월적 시각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만화,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만화,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는 인식은 아주 어릴 적 부터 영향을 주는 이러한 매체 때문이리라...



p.101 여성위인은 남초 사회에서 성공한 붉은 전사다.

여성 위인의 첫번째 유형은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남성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업적을 이룬 사람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여자임에도 남자들의 활동 영역에서 업적을 남긴, 남자 못지않은 능력을 지닌 여자다. 과학자로서 노벨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퀴리 부인이 이에 해당한다. 퀴리부인에게는 '여성 최초 노벨상 수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여성 최초 000'라는 표현은 오늘 날에도 흔히 접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여자답지 않은 점이나 남자 못지 않은 점을 향한 칭송과 감탄이 담겨있다.


왜 성공의 기준은 당연하게 남성이며, 우리는 왜 늘 남자보다 월등히 잘해야만 대단하다고 칭송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일까?


p.104 위인전 왕국에는 남초사회를 위협하는 악의 여왕이 없다.

위인전 왕국에서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여성의 지위 향상에 공헌하는 사람은 위험한 사상을 지닌 악의 여왕으로 간주된다.

또한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하거나 결혼제도에 따르지 않는 여자도 악의 여왕으로 여겨진다.

...열렬한 페미니스트인데다가 남편을 갈아치우기까지 한 이토 노에는 어떠하랴. 이를 두고 "여성 해방 운동에 힘쓰고 차별과 맞서 싸운 여자야말로 아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진정한 구세주 아니겠는가"라고 반론해봤자 소용없다.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려면 이처럼 위험한 사상을 가진 사람보다 히미코나 무라사키 시키부가 그나마 적절하다. 이것이 위인전 왕국 논리다.


위인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이름이 지워지고 무시당했을까? 내 생각에는 헬렌켈러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읽고 느낀 헬렌켈러 위인전은 삼중고를 극복한 그녀가 대단하긴 했지만, 남의 불행을 바라보며 위안삼는 불행전시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그녀가 서프러제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될까? 그녀가 여성 평등을 주장했던 것은, 평화를 주장했던 사회주의자라는 것은 위인전 왕국에 맞지 않는 행실이었다. 그녀는 신체적 한계뿐만 아니라 눈멀고 귀머거리처럼 살아야만 했던 여성들의 자유를 주장했다. 이런 업적은 지워지고 2차 세계대전 후 당시 사회가 원하는 성녀의 상, 남성 중심 사회에 알맞게 재구성되었다.


p.105 여자가 위인이 되기 위한 조건

1) 백인여성

2)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모범생

3) 성적인 면에서의 정숙함

4) 남성 권력자의 인정

5) 뚜렷한 특징


나이팅게일은 성(姓)만 표기하고 퀴리부인은 부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헬렌켈러는 성과 이름이 모두 표기된다. 이 미세한 차이가 왠지 모르게 꺼림칙하지 않은가? 외국 출신 위인 이름은 보통 에디슨이나 슈바이처같이 성으로만 표기된다. 따라서 나이팅게일은 일반적인 표기법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퀴리부인의 부인은 무엇인가. 남편 피에르 퀴리와 구분하기 위해서라면 마리퀴리라 하면 되지 않는가

헬렌켈러에게 붙어있는 헬렌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냥 켈러라 하면 안 되는 걸까? 뭘 그리 세세하게 따지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여성의 이름을 표기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름을 부르는 방식은 곧 세상이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부르는 말, 이름'은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상대방을 평가하고 있는지, 그것이 반영되어 내뱉어지는 이름. 그 자체에 그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가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그 사람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이름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온갖 좋은 것을 따져 가장 좋은 이름을 주고싶어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언어라는 것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용자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그 상대의 존재가치가 어느정도 내 안에서 결정지어지는 것은 아닐까?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말이다.


늘 사회가 바라보는 여성은 왜  성녀 VS 악녀의 이분법으로만 구분되어야 하는걸까 하다못해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와 위인전에 그 영향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만화가, 위인전이 그동안 얼마나 남성중심 사회에 맞도록 구성되어 퍼졌는지...차별의 역사가 그만큼 뿌리가 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애니메이션과 위인전이 바라보는 여자 주인공에 대한 시선, 차별적 요소들을 유쾌한 말투로 풀어냈다.

더 이상 어린이들이 직장의 꽃이 되는 요정전사가 아닌 사람 그 자체로 인정받는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를 볼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어그러지고, 강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차별하고 배척하지 않는 캐릭터가 나오는 세상을 꿈꿀 수 있었음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번역하신 분이 문장이나 내용이 어색하지 않게 잘 번역하여 더욱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았다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