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과 작가들 - 위대한 작가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음주열전
그렉 클라크.몬티 보챔프 지음, 이재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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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술냄새가 물씬 풍기는 책이다. 

음주독서는 겨울날 유일한 나의 취미 중 하나이다. 내가 책을 읽을 때면 신성한 의식처럼 치르는 단계가 있다. 먼저 냉동실에 차갑게 얼린 맥주잔을 꺼낸다. 그리고 맥주하나를 꺼내서 거품이 넘칠 듯 말듯 잔 입구까지 찰랑찰랑하게 맥주를 따른다. 그런 뒤 따뜻한 방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그날의 기분, 맥주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책을 펴든다. 여기에 음악까지 더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겨울 밤을 보낼 수 있다.


책을 펴든 순간부터 끝까지 각 챕터에 나온 술이 마시고 싶어지는 위험한 책이다. 해당 술을 좋아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 그 작가가 마셨던 술과 함께 한다면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당 주종에 대한 간략한 역사적 배경과 그 술과 관련된 작가와 일화가 다채로운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와인


제이 매키너니의 와인 칼럼은 유독 내 맘에 들어왔다. 전형적인 백단향이 어쩌고 오크가 어떻고 하는 틀에 박힌 와인평이 아닌, 작가의 특성에 대입한 와인평이 오히려 더 그 와인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같다.

톨스토이같은 보르도와 투르게네프같은 부르고뉴...도스토옙스키같은 남부 론 와인...와인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막연하게나마 해당 와인이 어떤 느낌인지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맥주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맥주 제조 또한 오래된 것이다. 주로 여성 신관들이 맥주 제조를 담당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왜 진작 생각을 못했을까 술은 제례의식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인데...당연히 턱수염 가득한 아저씨들이 제조했을 것이란 고정관념에 빠져있었다. 

제인오스틴이 맥주를 즐기기도 하고 양조까지 했었다니! 어쩐지 시원하게 얼린 맥주컵에 맥주를 한 가득 담아 마시면서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으면 왠지모르게 더 이해가 잘 되는 기분이들었다. 와인이 아닌 맥주라니 마시면서도 이상했지만, 맥주가 어울리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정확한 양조법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으나, 추정하여 나온 전나무 맥주 양조법은 책에 잘 소개가 되어있다. 언젠가 한번 전나무 맥주를 구해서 제인오스틴의 책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영국에 가서 찰스디킨스의 선술집 투어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작가와 함께하는 음주투어도 꽤나 인상적일 것같다.


톰 로빈스의 'B는 Beer지'라는 어린이용 맥주소개 도서가 꽤나 인상적이다. 일상에 찌든 어른들이 왜 퇴근하면 냉장고 속에 시원하게 몸을 얼린 맥주를 찾는지, 왜 맥주거품이 마음의 위안을 주는지 어린이에게 이해시키려는 책인데, 웃음도 나지만 한번 읽어보고 싶어진 책이다.



보드카


러시아 문학하면 바로 보드카와 매서운 추위가 떠오른다. 그러나 책에 나온대로 다른 서양문학에 비해 술을 찬양하는 경우가 비교적 적다는 말에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흥미로웠다. 늘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면 보트카(스크루드라이버)를 마시며 읽었는데,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는 먼 미래에 자신의 독자가 보트카를 마시며 책을 읽으리라 생각했을까? 문득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압생트


압생트는 최근까지도 독약과 다름 없는 술, 작가들의 뮤즈가 되는 술이라는 거의 신화적인 이미지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유독 압생트를 제물 삼아 치를 떨었는데, 그 반대적으로 창의력을 불어 넣어주는 금단의 열매같은 이미지도 자라났다.  이 모든것이 압생트를 만든 회사의 마케팅이었다면 그 마케팅은 정말 성공적이다. 



와인부터 데킬라,럼까지 전 주종을 넘나들며 재미있는 일화가 소개되어있어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금방 읽을 수있었다.

창작의 고통은 작가를 늘 따라다닌다. 창작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알콜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면 어느 날은 유독 일이 술술 풀린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서 술을 친구처럼 여겼던 작가들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있을 것같다. 요즘은 알콜의 위험성에 대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술 이름에 유독 생명의 물이란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옛 사람들은 술이 영감을 일깨우는 생명수처럼 여겼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하지만 술이 있어야 늘 위대한 작품이 나온다는 이런 생각도 하나의 고정관념이 될 수 있으니.... 계속 술을 마시는 작가는 오래버티지 못하지만, 세심하게 술을 마시는 작가는 더 나은 작가라는 스티븐 킹의 말처럼 술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생명수가 될 수도, 목숨과 창의성을 앗아가는 금단의 사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량이 적어서 아쉬웠지만, 가볍게 술과 관련된 작가와 일화를 훑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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