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유괴증후군

유괴증후군 ㅣ 증후군 시리즈 2
누쿠이 도쿠로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5월

내 아이가 괴한에게 유괴당했다?! 단 한 통의 전화가 단란하고 평범한 가정을 송두리째 뽑아버린다.

누쿠이 도쿠로 作 '유괴 증후군'은 증후군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로서, 제목 그대로 '어린이 유괴'를 소재로 하고 있다. 

아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부모가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는 찰나, 유괴범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아이 몸값으로는 적다고 할 수 있는 액수의 돈을 요구한다. 부모가 돈을 입금하자 아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피해자 중 한 명이 이를 경찰에 신고하지만, 제대로 된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다마키 비밀 수사팀이 맡게 된다.

한편 전직 형사였으나 현재는 탁발승으로 살아가고 있는 무토는 자신의 가족 및 부귀영화를 포기하면서까지 사랑하는 한국인 부인과 갓 태어난 아들을 위하여 노력하며 살아가는 '다카나시'라는 청년을 만난다. 이후 청년의 아들이 유괴를 당하고, 유괴 사건에 무토가 휘말리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악질적인 범죄는 유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살인, 사기 등 범죄도 있어서는 안 될 몹쓸 것이지만... 특히 유괴는 주로 어린 아이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때, 그리고 최근에도 어린이 유괴 사건은 종종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아이가 사라지고 게다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면... 그 부모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소액유괴사건'이라는 말이 무척 생소했으나 기발했다. 유괴범을 잡는 과정에서 다마키 팀의 활약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마지막 범인을 궁지에 몰아넣는 방법은 무서웠다. (정말 증거 조작도 서슴치 않는...)

'실종 증후군'이 하라다 중심이었다면, 이번 편은 무토의 과거 및 다카나시와의 관계가 중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과 일본인의 갈등이 그려져 있어서 마음이 다소 불편했다. 일본인 전체가 반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현재 반한류 움직임도 있기 때문에...

유괴범의 정체 및 추리 자체는 기운이 빠질 정도로 실망스러웠지만, 인터넷 범죄의 위험성과 한일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소설] 실종증후군

실종증후군 ㅣ 증후군 시리즈 1
누쿠이 도쿠로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5월

어느 날 갑자기, 누가 보아도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납치 또는 가출? 영문 모를 행방불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누쿠이 도쿠로 作 '실종 증후군'은 증후군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로서, '실종'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가 고질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특히 세대 차이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를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도쿄 내에서 부모의 기대를 받으며 평범하게 살아온 20대 젊은이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이어진다. 그저 단순 가출로 단정짓기에는 실종자들이 너무나 성실한 삶을 살아왔고, 그렇다고 이를 하나의 납치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실종자들 사이에 연결점이 전혀 없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실종 사건은 미해결 사건을 조사하는 경시청 비밀 수사관인 다마키에게 맡겨지고, 그의 팀원인 전직 경찰 출신의 하라다, 무도, 구라모치가 각각 실종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조사 과정에서 그들은 실종자들이 서로의 신원을 바꿔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실종 사건의 전모가 드러남과 동시에 유명 정치가의 아들인 '고누마 유타카'라는 청년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자발적 실종'이라는 말 자체가 무척 생소하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그 방법도 실제로 활용이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기발했다. 

나 역시, 내 생활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또는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면,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같아서 거부감이 든다. 또한 지금까지 내 곁에 있어 준 가족들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려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의 인생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다마키가 한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닿았다. 

후회하지 않을, 내 자신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한편 실종 사건과 함께, 어쩔 수 없이 형사를 그만 두고 탐정으로서 일을 시작한 하라다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딸 마리코의 갈등이 그려졌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실망과 증오로 바뀐 사춘기 딸이 엇나가는 모습이 안쓰럽고, 또 화가 나기도 했다. (요즘 애들 참 격하다... 라는 생각도 잠시...) 그래도 오해가 풀리는 과정을 보면서 마음이 놓였다.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말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말에 깊이 동감한다.

단순한 추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소설] 임신 캘린더

임신 캘린더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6년 2월

'박사가 사랑한 수학'으로 유명한 오가와 요코(小川洋子) 作 '임신 캘린더'는 세 가지 단편을 담고 있다.  

임신 캘린더는 여동생이 임신한 언니의 변화를 관찰하는 내용이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다거나 엄마가 된다는 기쁨 및 이에 대한 준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심한 입덧이 끝난 후에는 멈추지 않는 식욕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모습을 여동생인 '나'는 무덤덤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이...  

한편 또 다른 단편인 기숙사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촌 남동생에게 몸이 불편한 나이든 선생이 운영하는 옛 기숙사를 소개한다. 스웨덴에 파견된 남편이 부르기만을 기다리는 '나'는 몸이 불편한 선생이 신경쓰이고, 사촌 남동생을 만날 겸 기숙사에 찾아간다. 그러나 매번 만날 수 없는 사촌 남동생... 그리고 기숙사의 경영 상태가 좋지 않게 된 것은 실종된 남학생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나'는 사촌 남동생도 혹시 살해당한 것은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된다. 

세 명의 여자들이 바라보는 임신, 이민, 결혼 등에 대하여 기대보다는 다소 방관적인 시각으로 쓰여져 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씁쓸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소설] 면장선거

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오쿠다 히데오(奥田英朗) 作 '면장선거'는 정신과의 이라부 시리즈 제3탄으로서, 각 계층의 유명 인사를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섯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표 제목의 면장 선거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안퐁맨'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컴퓨터, 기계 문화가 일상 속에 깊게 자리잡은 현대 사회에서 컴퓨터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자판에만 익숙한 나머지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을 너무나 낯설어 하는 요즘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 역시 일본어는 자판으로만 쓰는 것이 익숙해져서 손으로 한자를 쓰는 것이 낯설고 기억이 잘 안나는 경우가 많다. (한자를 읽을 줄은 아는데 쓰지는 못하다니... 정말 유치원생만도 못하다... 부끄럽다...) 또한 '구단주'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현상에만 집중하고 그 원인은 파악하지 못하는 현 세대를 바라보는 기성 세대의 관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크게 공감이 갔다. 기성 세대가 보수적이라고 비난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 역시 과거에는 젊은이였으며 사회 문제를 온 몸으로 부딪혀 겪어온 세대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은 보다 멀리 바라보고 판단하는 점도 있을 것이다. 기성 세대와 현 세대가 조화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다면 사회는 좀 더 나아질 텐데...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에피소드였다.  

여전히 이라부는 괴짜 의사로서 건재하고, 간호사 마유미는 늘씬한 몸매와 펑크 록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다. 이라부 같은 의사가 주치의라면 다소 황당하고 곤란한 점도 있겠지만, 생각이 자유로운 자에게 상담을 받으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소설] 심심풀이 살인

심심풀이 살인 - 하야카와家의 이중생활 ㅣ 하야카와가(家) 시리즈 1
아카가와 지로 지음, 이용택 옮김 / 리버스맵 / 2010년 8월

아카가와 지로(赤川次郎) 作 '심심풀이 살인'은 하야카와 가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로서, 석유왕 다치바나의 귀국과 함께 하야카와 가족의 비밀이 밝혀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하야카와 가의 가장이자 배의 선장이었던 아버지가 선박 사고로 사망하고, 어머니 기요코가 사남매를 홀로 키운다. 어머니의 고생에 보답하듯이 첫째 아들 가쓰미는 르포 작가, 둘째 아들 게이스케는 변호사, 막내 아들 마사미는 경찰, 딸 미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각각 훌륭히 자란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즉 가요코는 고가의 미술품을 훔치는 도둑, 가쓰미는 살인청부업자, 미카는 꽃뱀으로서 남자들의 등을 쳐 먹는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게이스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의사를 포기하고 변호사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어느 날, 석유왕 다치바나가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귀국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에 하야카와 가 가족들은 각자의 목적에 따라 - 즉 어머니는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하여, 가쓰미는 아버지의 원수를 죽이기 위하여, 미카는 다이아몬드 및 돈을 빼앗기 위하여, 마사미는 다치바나 및 보석을 지키기 위하여, 그리고 이들의 움직임을 알게 된 게이스케는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불안이 현실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다치바나에게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다치바나와는 상관없는 자들이 살해당하고, 게이스케는 살인자로 몰리게 되는 등 일이 점점 꼬여간다.  

도둑, 살인청부업자, 사기꾼, 게다가 경찰까지... 정말 골 때리는 가족 구성원이다.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가 가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笑) 처음에는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헛점 투성이인 게이스케의 행동이 웃기고, 나중에는 보석 절취 사건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눈길을 끈다. 게다가 충격적인 진실까지...! (나의 도덕 관념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가족애가 넘치는 따뜻한 분위기이며, 아카가와 지로 작품답게 유쾌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편 역시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