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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무,라 하면 먼저 감나무가 먼저 떠오른다. 늦봄 나른한 볕에 어룽지는 감나무 그늘에서 할머니 주위에 둘러앉아 감꽃을 줍는 기억. 한여름 폭우에 떨어져 초가 되어가는 덜 여문 감. 늦가을 장대로 감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실한 감을 바구니에 담던 일. 기억 속에서는, 그렇게 감나무는 가깝다.
그런데 이순원 님의 소설 <나무>는 조금 다르다. 부엌 바깥에 심은 밤나무다. 밤나무가 이야기를 한다. 늙은 밤나무가 어린 밤나무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몸소 보여주는 이야기 <나무>.
감나무와 밤나무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은 집 마당에 밤나무를 키운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라는 것. 낮잠 자다가 얼굴에 밤송이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아이들 놀다가 밤송이에 찔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과실로서 밤나무는 다르겠지만 정원수로서는 그다지 좋은 수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소설 <나무>에서는 어린신랑과 어린신부가 이마를 맞대고 궁리 끝에 부엌 바깥에 심었다. 그렇게 심은 나무가 100년을 넘게 살고 손자나무(작은나무)에게 나무의 삶을 일러주는 것으로 소설 <나무>는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할아버지 나무가 하는 말씀 하나하나 어디 빼놓을 것 없이 귀한 진리이다. 한설에 가지가 부러질 수 있는 겨울에서부터 <나무>는 시작하고, 겨울에 다다른 뒤 <나무>는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풀어나가고 있다.
다시 말씀해주세요. 제가 제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요. (...) 우리 얘긴데도 전혀 몰랐어요. (p.144)
할아버지 나무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손자나무에게 많은 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가 쓰러지는 폭우 속에서도 제 열매를 사수하는 개똥참외의 이야기는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개똥참외가 도랑 둑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줄기의 힘만으로 거센 물결 속에 자기 열매를 꼭 붙들어 지키는 거야. 염래는 급물살 위에 공처럼 동동 떠 있는데, 그걸 뿌리와 줄기의 힘으로 말이지(...) 든든하게 뿌리를 내렸던 때문이지. (p.142)
짤막한 이야기들, 나무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전개방식은 마치 '어른들을 위한 동화'와도 같은 구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옛이야기처럼, 어른들에게는 삶을 돌아보는 혜안을 주는 이야기책 <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