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한 하루
마이클 모리스 지음, 김양희 옮김 / 꽃삽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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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44쪽)
    여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나뿐 아니라 내 주위 몇몇 녀석들도 아버지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다. 지역색과는 다른 듯하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처럼 살갑지 못한 이유가 왜일까. 
    <아버지와 함께한 하루> (이하 <아버지와>)는 여로형 소설이다. '나'(네이선 비숍)은 제지공장에 청춘을 투자한, 일명 일중독자다.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아버지인 '나'의 존재는 대들보이다. '나' 없이 이 가정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 모든 일은 결국 가정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만, 그러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오로지 일을 통해서만 위안을, 평정심을 찾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산업재해 이후에 발견하게 된다. 모두 내 가정을 위해서 헌신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나'는 기적적으로 회생해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고로 발견된 하얀 반점, 허파에 그런 것을 가지고 살았다니... 그래 가족은 외할머니가 있는 곳을 찾아가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가게 된다. 
    병실에서 고통스럽게, 외롭게 운명한 어머니, '나'는 그 책임을 아버지의 독선적인 생활방식 탓이라고 단정짓고 여태 관계를 끊어온 셈이다. 그러던 아버지가 이동주택 차량을 끌고 와서 여행을 간다고 한다. 일평생 제 고장을 떠나지 않은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보는 '나'는 망설이다가 함께 떠난다. <아버지와 함께한 하루>는 초반부의 '나'의 이야기와 '나'가 회상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틀에 맞춘 듯이 닮아 있다. 그리고 아무리 싫다, 밉다 해도 '나'는 곧 아버지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많은 아들이 아버지를 닮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처럼 행동한다. 부정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인정하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대학 동아리의 한 여자 선배는 재혼한 어머니를 닮고 싶지 않다고, 그러나 그렇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며 술을 먹으면 늘 울었다. 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떠올랐을까. 가족이라는 것은 무섭다. 가족 구성원이 하늘아래 함께 생존해 있는 동안 싫든 좋든 우리는 가족으로 돌아간다. 여기에서 '가족'은 내 아버지의 집일 수도 있고, 하늘이 주신 내 아이가 있는 집일 수도 있다. 소설 <아버지와>는 가족의 중요성, 특히나 애정과 관심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함께 마주보고 얼마나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을까. 물질적으로 더욱 편리해진 지금 세상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생각만으로도 부담을 느낀다. 참으로 힘든 일이다. 어디서부터 비끄러졌을까. 오로지 '아버지' 때문이라고 몰아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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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윤석전 지음 / 연세말씀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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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19쪽)
     교회에 다녔다. 과거형이다. 아마 앞으로도 다녔다로 마칠지도 모른다. 보통 종교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은 사람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나는 어떠했을까. 그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잠시 얻어탄 버스는 심하게 흔들리고 어깨가 좌우로 치우쳤다가 오똑 제자리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차분히 읽었다. 주일 예배를 드린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하 <하나님 사람>)은 윤석전 목사의 설교가 이러하지 않았을까 연상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경 구절을 선별 인용한 부분이 있어서 윤석전 목사가 어떠한 내용을 신도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기독교. 역사적이든 사회적인 측면에서든지 기독교는 우리 사회에 큰 역할을 했다. 모든 사물에는 장단점이 있게 마련, 구태여 <하나님 사람>에서 그러한 측면을 이야기할 필요는, 이유가 없다. 윤석전 목사의 설교를 우리는 듣는다. <하나님 사람>은 어떠한 자세로 일상에 임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일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하나님 사람>은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바울'의 예화가 부분부분 많이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소원하고 바라시는 뜻을 이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그의 뜻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218쪽)

    이 문구는 윤석전 목사가 말하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정의이다.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을 기쁨,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위한 사람이 곧 <하나님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설교를 위해서 <하나님 사람>는 219쪽의 적지 않은 분량과 성경에서 많은 부분 인용을 하고, 어떻게 종교에 봉사할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비교적 많은 설교를 하나님께 바치는 성스러운 재목이 되기 위한 방법을 다루고 있다. 
    종교서적에서는 왜,라는 말을 삼가야 한다. <하나님 사람>에서도 마찬가지로 왜라 따지는 세속적 분별을 경계하고 있다. 종교를 통해서 위안을 얻고, 신실히 살아갈 수 있는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일차적 희원을 달성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 사람>은 독신자를 위한 기독교 서적이다.  처음 기독교를 접하는 분들보다는 이미 기독교에 헌신을 하고 있는 분들께 거부감 없이 읽힐 만한 책이라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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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현대시
김권섭 지음 / 산소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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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57쪽)

 

    제목에서 이 책의 성격을 느낄 수 있다. 학생들을 위한 책이다. 현대시 전반을 개괄적으로 만나는 이점이 있다. 단순히 문학을 향유하고자 하는 분들께는 다소 부족한, 그러나 수험생과 시를 생경하게 느끼며 주저하는 분들께는 친절한 학습서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시 해설집... 한 편 짧은 시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은 해설이 붙은 글이 다반사다. 복잡하다. 태생불분명한 문체와 외래어, 서양인의 이름으로 도배를 한 해설 한 편을 읽고 나면 눈앞이 핑그르르 돈다. 어떤 경우는 해설을 읽는 데에 종일 걸릴 때도 있다. 시를 우리의 일상에서 완전히 들어내는 특효약이다. 시는 어렵다. 아니다. 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를 풀어내는 그들의 글말이 난해할 뿐이다.

 

    <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현대시>(이하 <현대시>)는 쉽게 해설하고 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각 시의 길이를 넘지 않는 해설을 하고자 애썼다는 글쓴이의 말이 제대로 이행된 책이다. 글쓴이는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어떠한 글이든 해설을 첨언하면 결국 상상력은 축소되게 마련인 듯하다. 특히나 시(詩)다. 다원적인, 다각적인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한 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 해설집도 완전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시는 사람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는 사람. 사람은 놓인 상황마다 다르게 반응(행동)하고 때로는 긍정적으로 변모하기도, 악랄해지기도, 비열해지기도 한다. 시를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해석도 다른 것은 마치 한 사람을 지켜보는 것과도 유사하다는 느낌이다. 

 

    가끔 서점에, 정말 가물에 콩나듯 가끔 서점에 들러서 학습서를 본다. 현대시 부분만 따로 구성된 책을 펼치면 알록달록 밑줄이 참 많이 그어져 있다. 색색이 그어진 밑줄 아래에는 깨알 글씨로 해석이 달려 있고, 반대편 책장에는 조밀한 인쇄체로 엄청나게 만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한 해설집, 학습지를 살피면 시 한 편의 여백이 참으로 고맙다. 학생들이 숨쉴 공간을 주고 있지 않나... 그 여백에 시와는 무관한 낙서도 하고, 만화 캐릭터를 그리기도 하면서 시험의 압박감에서 자생적 치유를 도모하지는 않을까... 시는 그 자체로도 고맙지만, 이러한 멋들어진 기능도 해낸다.  우리 시를 읽히기 위해서 실린 시가, 오히려 우리 시를 멀리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 현실태, 지금은 어떻게 변모했을까 제대로 가늠하지는 못하지만 서점에서 펼친 학습서를 보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듯싶다.

 

    그런 면에서 <현대시>는 많은 여백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숨쉴 수 있는 공간이다. 부록에 실린 시 용어들만을 빼면 ^ ^ 각 시들과 해설은 참으로 산뜻하다. 경쾌하다. 읽기가 편하다. 수험서의 성격으로 시 이해를 돕는 측면에서 씌어졌을 책이다. 시와 친해지기 위해서 <현대시>를 읽는 것도 좋을 성싶다. 좀 아쉬운 점이있다면, 각 시편을 쓴 시인들 소개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 그리고 기존에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른 시인 소개가 몇몇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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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권태현 지음, 조연상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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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323쪽)

 

    <공감하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이하 <공감하라>)은 라디오 방송의 일부 시간에 나경은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서 전파를 탄 내용을 다시 책을 엮은 책이다.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최근 들어 라디오 들은 적이 언제였나, 까마득하다고 느낀다. 이북에서 핵실험하고 주변국에서 난리가 났을 때도 나는 텔레비전 대신 라디오를 끼고 살았으면서도 까마득 옛일처럼 라디오는 멀다. 그래서 당시 이 방송 내용이 어떠했는지 잘 모르고 오로지 랜덤하우스에서 펴낸 책을 통해서서 느낄 뿐이다.

 

   글쓴이는 <국시> 동인. 책날개에 적힌 약력이 화려하다. 물론 <국시> 동인들의 화려함에 이 분도 꽤 유명한 분이겠구나, 지레짐작을 한다. <국시> 동인에는 박기영, 안도현, 장정일 등이 있다고 한다. 글쓴이는 그들과 함께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신춘문예로 소설이 당선되어 소설까지 영역을 확장했다는 정보도 약력에서 제공하고 있다.

 

   내가 쓴 원고는 때론 거칠고 또 때론 너무 독선적이었다. (들어가는 말)

 

   글쓴이의 고백을 먼저 노트에 적어놓고 책을 읽었다. 선물로 주면 좋을까, 책갈피 마다 그림빛이 번지는 구성이다. 누워서 책을 펼쳐 읽으면 삽화의 색감이 글자에까지 번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 구성을 봐도 디자인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문외한이면서 그러한 생각을 해본다. 조연상씨가 작업을 한 듯, 그리고 아베끄에서 책 디자인을 한 것으로 책날개에 표기되어 있다.

 

   <공감하라>는 시행갈이 형식을 차용했다. 그러나 시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글인 듯하다. 아주 단순하면서 그러나 보편적인 논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라디오 방송 대본을 목적으로 씌어졌을 내용이기 때문에, 그리고 감동과 교훈을 주기 위해서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각 마디마디의 분량은 적다. 읽기는 쉽다. 시간적 제약 때문인지, 각 글마다 간단명료한 비유, 아쉬운 예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좀 안타까웠다. 책으로 씌어질 때는 방송 내용과 무관하게 글쓴이가 좀 더 상세한 서술을 꾀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1장 새로운 시작이 두려운 나를 위해

    2장 사랑할 때 겪는 것들을 미리 알 수 있다면

    3장 좌절해도 실패해도 괜찮아

    4장 결국 행복은 내 곁에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공감하라>는  분주하고 조급한 현대인에게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거진 습관으로 기계적인 반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팍팍한 일상 속에 짧지만 진중한 화두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쓴이의 생각을 '공감'하게 된다.

 

      우리 삶을 여행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무수히 많은 역을 거치게 된다. (...) 가장 많은 사람이 이동하는 지점이 (...) 환승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는 지점이기도 하다. (...) 작정하고 길을 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엉뚱한 차를 갈아탄다. (...) 그러므로 환승역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혹독한 대가를 치러햐 할지도 모른다. (환승역, 156쪽)

 

   라디오 방송으로 이와같은 내용을 들으면 오래 생각에 잠길 것 같다. '환승역'에 대해서, 또 지금 나는 어디쯤에서 놓여 두리번거리고 있는지 단속도 하게 될 것이다. 각각의 짧은 이야기, 그러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글쓴이가 제시하는 이야깃거리를 목소리를 듣듯이 천천히 음미해 본다. 그러면 <공감하라>를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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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 - 잠든 뇌를 깨우는 건강한 습관-걷기
오시마 기요시 지음, 성기홍 외 옮김 / 전나무숲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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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212쪽) 
  

   2007년 읽은 일본 번역서의 공통점은 각 장()의 분량이 적다는 것이다. 잠시 앉아서 누구를 기다릴 때 읽어낼 만한 분량이다. 알맹이만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212쪽의 적은 분량이지만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가득 담고 있다. 한 바구니에 가득 든 감과 같은 느낌이 든다.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는 일상생활에, 규정화된 틀 속에서 자유를 얻는 기이한 현대인들에게 유용한 생활지침서이다. 

   휴일은 집에서 가만히 누워서 쉬자. 밥도 귀찮다. 텔레비전 브라운관이나 컴퓨터 모니터에 맺힌 영상만을 따라 안구만 활발히 움직인다. 그렇게 맞이한 월요일은 늘 피곤하다. 푹 쉬면 피로가 가실 것 같은데 생각같지가 않다. 왜일까.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는 그러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준다. 

   모든 신체 장기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신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발은 모든 장기가 모이는 중요한 지점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걷기가 몸에 좋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걷기는 참으로 쉽지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 중요성을 자주 잊고 만다.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는 '즐겁게 유쾌하게 걷기'(p.210)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한 번 걸어볼까. 그러나 혼자, 볼썽사납다. 이내 포기하고 만다. 그 무수한 포기는 일단 현관을 나서는 순간 일소되고 만다. 왜 그렇게 망설였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시쳇말로 집밖이 저승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집안도 무풍지대는 아니다. 성인병, 고혈압, 그외의 질병들. 우리는 집밖의 사고를 걱정하는 경우는 많지만 몸안의 질환을 대비해서 몸을 단속하는 경우는 적다. 막상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아차, 후회한다. 이승과 저승이 한곳에 어우러진 곳, 선택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곳을 천국으로 만드느냐, 지옥으로 만드느냐. 걷자. 그리고 좀더 활기찬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제대로 기능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걷자.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는 잠든 뇌를 깨우며 우리의 정신을 맑게, 시야를 깨끗하게 한다. 걷기와 뇌의 연관성을 간략히 살피고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는 우리에게 걷기의 방법들, 걷기를 즐기는 방법들을 짤막하게 알려준다. 현대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운동이 무엇인지, 그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고 집밖으로 나가서 휴일을 느긋하게 즐기도록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는 말하고 있다. 어떠한 방법들이 잠든 우리의 뇌를 깨울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걷기 위해서 나갈 참이다. 물론 헤드폰도 들고, 카메라도 들고 나간다. 한 손에는 시집 한 권과 연필도. 아무래도 자유인이 되기는 어려울 듯, 문명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하는 내 습성이 못마따하지만, 그래도 걷는다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걷기 위해 하늘 아래 바람이 넉넉한 곳으로 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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