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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 상식사전 프라임 Prime - 비범하고 기발하고 유쾌한 반전
롤프 브레드니히 지음, 문은실 옮김, 이관용 그림 / 보누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비범하고 기발하고 유쾌한 반전. 위트가 그런가 보다. 비범하고 기발하고 유쾌한... 책 표지에 박힌 수식구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비범, 기발, 유쾌한데... 그것은 반전을 중심으로 할 때 위트가 되는가? 가장 쉬운 농담은 신체를 들먹이는 것이다. 물론 뒤끝이 씁쓸하고 대인관계는 험악해지며 평판은 찌그러지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귀결을 알지만 손쉬운 방법으로 웃음을 탐한다. 그 사람 참 이상하게 생겼다... 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을 후회하며 개선하고도 싶어하지만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난 뒤다. 하얀 셔츠에 잉크를 찍은 뒤다. 지우려 할수록 먹칠은 번지고 잉크는 물로 지워낼 수 없다. 위트는 다르다. 반전이다. 그것도 비범하고 기발하고 유쾌한 반전이다. 우선 책을 집어든 순간에는 재미있기를 바라는 마음, 호기심이 앞선다. 때때로 재미있고, 때때로 문화적 상이함 때문인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때때로 신랄한 내용이 <위트 상식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신체 농담과 같은 단순 비하가 아니라 목적을 둔 예리함을 이 책에서 살필 수 있다. 픽 터져나는 웃음이 많았던 이유는 반전 때문일 것이다. 사회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반전 때문일 것이다.
2.
글쓴이, 즉 엮은이의 국적은 독일이다. 튀빙엔 대학, 마이츠 대학에서 민속학, 역사학, 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서양문화권에서 생활한 엮은이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인간이라는 보편성을 기대면 어느 정도 충분한 납득이 가능하다. 그래서 <선장과 해적> 같은 이야기는 아무리 궁리를 해도 이해를 못하지만 그외 사회적인 문제, 예술, 가정, 교육 등 특히 정치, 국제사회에 대한 힐난은 첨예한 문제를 융통성 있게 제대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인터넷은 우리 삶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위트에 대한 우리의 의식조차 바꾸어놓았다.(...) 이제 세상에는 인터넷을 통한 이야기라는 새로운 세계의 인류학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것을 이용해서 새로운 방법으로 이야기가 퍼져 나가고, 새로운 방법으로 이야기가 보관된다. (...) 전세게의 민속학자들도 최근에 인터넷을 매개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발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변화가 책과 구전 옆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는 곧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이 인쇄된 형태로 기록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하지만 누가 그 이야기들을 창조해냈건 간에 창의적이고 혁신적이고 촌철살인의 면모가 없다면 전자 미디어 이곳저곳에서 유통될 기회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머리말에서)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 위트는 인터넷 공간에서 회자되는 것들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멀어진 만큼 사람과 더 가까워졌다. 현실공간에서 제한된 참여가 인터넷에서는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탈바꿈한다. 사회참여의 장으로서 인터넷이 제대로 쓸모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위트 상식 사전>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한 지역,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전적으로 인터넷이라는 공간 때문이다.
3.
해서 엮인 이야기들은 동류항을 기준으로 묶여 있다. 모두 10개의 큰 장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각기 제 빛깔을 품어내고 있다. 모든 장의 첫머리에는 머리글처럼 이야기들을 꿰뚫는 소개글이 있다. 엮은이가 위트를 보는 관점과 기준항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위트가 이야기글, 혹은 짧은 정의문으로 서술되는 반면 첫머리에 소개되는 글은 엮은이가 이와 같은 이야기글을 수록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농경사회의 붕괴, 결혼기피증과 유행처럼 번지는 독신주의, 딩크족이나 여피족 등의 등장으로 가족의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가족의 붕괴가 인류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하고, 몇몇 국가에는 아기 낳기 캠페인을 추진하거나 심지어 외국인들의 귀화를 장려하기도 한다. (...) 이러한 골치 아픈 것들을 생각할 때면, 그냥 속편하게 혼자 살지 뭐, 라는 말이 쉽게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들 때마다 이 생각도 함께 해보면 어떨까? 가족없이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나 없이도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서 당장 오늘 저녁부터라도 이 책에 있는 위트를 당신의 가족에게 선물해보면 어떨까?
(86쪽)
굉장히 원칙적이고, 원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숨이 턱 막힐 수도 있다. 한데 글쓴이의 문장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사람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위트는 결국 어울려 함께 사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긴 이야기글일수록 위트의 힘이 떨어지는 것은 왜일까. 그만큼 우리는 오래 들어주기를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생활 틀에 스스로 포박해버린 것은 아닐까.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라는 기준점을 두고서 <위트 상식 사전>을 읽어보면 사람된 도리를 느낄 수 있다. 도리는 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내 육신이든 물건들이든 애오라지 내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위트는 타인과의 조화뿐 아니라 '나' 자신과의 화해에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식료품 리스트 : 쓰는데 30분이 걸리며, 마트에는 정작 가져가지 않는 것 (3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