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제국 - 개정판
이인화 지음 / 세계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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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을 읽고 창덕궁에 가보고 싶어졌다. "아름답게 살고 싶다"고 유약하나 강단 있는 말을 외쳤던 <영원한 제국>속 이인몽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 어차피 소설은 허구, 역사는 해석하는 자의 허구. 나는 그 허구 속에 한번 몸을 담그는 것이겠지.

 

며칠 전, 흔해빠진 묘사지만 정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위로 하고 창덕궁에 갔다. 정조의 자취를 따라가 보고 노론과 남인의 사람들이 종종 걸음을 치며 달려 나갔을 그 궁궐을 내 발로 걸어보았다. 규장각 서고가 있는 주현루에는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표지판이 계단에 살포시 놓여있었다. 나는 발을 쫑긋 세우고 그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여기서 이인몽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이 길을 정약용과 함께 걸었을 것이다.’

‘여기서 장종오는 <시경천견록고>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쇠락한 누각. 빛이 바랜 단청이 스산한 느낌을 더했다. 정조가 학문연구를 위해 만들었다는 2층 누각 주합루. 1층은 규장각 서고이고, 바로 거기서 장종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영원한 제국>의 기나긴 하루 여정이 시작된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은 결코 만만치 않은 소설이다. 역사적 사실에 무지몽매하기도 했지만, 저자의 “유신”에 대한 입장에 언뜻 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과연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정조는 강력한 왕권중심주의 국가를 원했으나 당시 실권세력이었던 노론은 신권을 중히 여겼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고, 그로인해 자주국가를 수립한 모든 국가들이 겪었던 절대주의 국가체계를 우리는 수립하지 못해 조선이 망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홍재유신이 실패함으로써 우리의 역사는 160년이나 후퇴했으며 후에 박정희의 10월 유신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의 논리는 뭔가 그 극단성으로 인해 무서운 감이 없지 않지만 정조의 개혁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여지를 준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상관없이 내가 이 <영원한 제국>에 빠져들었던 이유는 ‘이인몽’이란 인간에 대한 매력 때문이었다. 유약하고 성실하며 융통성 없고, 꿈과 희망은 큰 그런 선비였다.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고 부당한 처사에도 굴하지 않으며 한 점 티끌없는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순수청년.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특히 내시감 서인성이 정조를 시해하려고 했을 때 이인몽이 몸을 날려 임금을 엄호했던 때와, 그 모든 것들이 정조의 조종에 의해서 였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가 느끼는 충격-저자는 ‘삶의 심연’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이 추악한 권모술수라고, 더러워진 전하에게 충성하며 자신도 더러워 질 것이라고 고뇌하는 이인몽 옆에서 나도 같이 울고 싶어졌다.

 

결국 저자가 꿈꿨던, 혹은 주인공 이인몽이 꿈꿨던 '영원한 제국'에 대한 이상은 한갓 꿈으로 끝나버린다. 정조는 갑작스레 죽게 되고 노론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했던 이인몽은 그후 30여 년을 떠돌아 다니며 이름 없이 살다가 정조의 곁으로 돌아간다. 그간 벌어졌던 수많은 일이 일장춘몽처럼 표표히 흩어져버린다. 정조의 부름을 받았던 추억이 이인몽의 스치고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제국’은 이제 꿈으로만 남는다.

 

아주 오랜만에 생각의 표피를 떠도는 소설이 아니라 곰곰이, 마음 속 깊이 느낄 수 있는 소설을 만나서 참 즐거웠다. 저자와 생각이 다른 부분에 대해 내가 혼자 고민했던 것도 좋은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인몽과 박지원의 대화가 생각난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린 일. 사람은 그저 묵묵히 제 소신대로 사는 것이오. 내 피가 뛰는 가슴으로 느끼고 내 머리로 생각한 것이 그렇거늘, 날더러 어쩌란 말이야?” 2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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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지음, 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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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25일 읽고 쓰다

 

낡은 정설이 도전받는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이 더 많은 관념에 의문을 던지도록 추동하기에 충분했다.

....종교적 예언들과 갖가지 성경 해석의 불협화음 속에서 사람들은 그 모든 것에 대한 의구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있음을 난생 처음 깨달았다.

-316p

 

계몽사상가들은 혁명가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상층 계급 인사들의 후에 의존하는 반대파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의 희망은 사회 전복이 아니라 사회 개혁이었고, 그것은 사상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달성된다는 것이었다.

-319p

 

그들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선언한 다음 비(非)백인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331p

 

노예제가 자본주의의 성장을 낳은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성장이 노예제를 낳았다.

-334p

 

 

꽤나 오랜만에 사회과학서적을 읽었다.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이라 읽는 도중 생각의 여로에서

헤매기도 했고 저자가 간략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참 많아서

지식이 부족을 여실히 느끼기도 했다.

많은 역사서가 승리한 사람, 그 지도자를 중심으로 서술된 데에 비해 이 책은 말그대로 '민중', 일반 사람들의 세계사를 다루고 있다. 유럽의 세계사책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서유럽 중심의 역사서술이긴 하지만 간간히 동양-그래봤자 중국-의 역사도 들어가 있다.

 

어떤 상황 혹은 사건이 뒷 사건의 배경이 될 때

그에 대한 설명이 좀 미약해서 고민하게 했다.

또, 산업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노예제가 발달했고

그러한 노예제의 발달이 인종차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새로웠다.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부분이었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제3세계, 아프리카 문화의 발전에 대해

다시금 생객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교 1,2학년때 수업때문에 읽은 것을 제외하곤

정말 오랜만이네, 이런 책.

홍세화씨가 말한 대로 '세상에 대한 무관심은 불의의 토양'이라고

생각하니까 능력부족이어도 찬찬히 이런 서적 읽어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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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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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20일 읽고 쓰다

 

사실 목적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그가 결론을 내린 대로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보들레르) 어디로라도 떠나는 것.

-52p

 

가정적 환경은 우리를 일상 생활 속의 나라는 인간, 본질적으로는 내가 아닐 수도 있는 인간에게 계속 묶어두려 한다.

-85p

 

매혹적인 사람이 이국적인 땅에 가게 되면 자신의 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매력에 그 사람이 있는 장소가 주는 매력이 보태진다.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사랑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사랑할 때는 우리 자신의 문화에는 빠져 있는 가치들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도 따라갈 것이다.

-125p

 

"....이 시들은 괴로운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것이고, 날빛에 햇빛을 더하듯이 행복한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할 것이고, 젊은 사람들과 나이를 막론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고 생각하고 느끼도록, 그리하여 좀 더 적극적으로 또 안정되게 덕을 드러내도록 가르칠 것입니다. 이것이 내 시들의 임무이며, 나는 이 시들이 우리가, 즉 우리 가운데 죽을 운명인 모든 것이 무덤에서 썩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충실하게 그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워즈워스)

-188p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작은 공간을......생각해본다......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또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한히 광대한 공간들이 이 작은 공간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는 것이 무섭고 놀랍다. 나는 저기가 아닌 여기에 있을 이유도 없고, 따른 대가 아닌 지금 있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여기에 갖다 놓았는가?

<팡세>, 단장 68

-217p

 

우리는 현재의 밑에 겹겹이 쌓여 있는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334p

 

우리가 10년 이상 산 곳에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다. 우리는 습관화되어 있고, 따라서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

그들은 자신의 우주가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습관에 빠져 있다. 실제로 그들의 우주는 그들의 기대에 적당히 맞추어져 있다.

-335p

 

혼자 여행을 하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함게 가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어 버린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도록 우리의 호기심을 다듬기 때문이다.

-341p

 

 

 

 

처음 손에 잡은 것은 굉장히 오래 전의 일같은데...

완독하는 데 아주 오래 걸렸다. 보통 이렇게 오랜 걸리면

그냥 덮어버리는데 난해하긴 했지만 어느 챕터를 펼쳐도 그냥

읽을 수 있어서 밤에 자기 전에 조금씩 봤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읽을 때마다 점점 실망하지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제일 좋았다-

그래서 붙잡고 계속 읽는 이유는 그의 사유가 내 맘에 돌을 하나씩

던지기 때문이다.

늘 그러하다고 믿고 있던 많은 일상의 일에 대해

"왜"라는 물음을 던져 준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이 직접 여행을 하면서 느낀 감정들과

내용을 충분히 뒷받침해주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한 장소(혹은 비슷한 여러 곳)에 안내자를 한 명씩 지정해놓고 그의 사유 방식을 따라 이야기를 전개해나간 점은 흥미로웠지만 너무 어렵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곱씹어서 되풀이해야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 꽤 많았다.

그래서 그렇게도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던 거겠지.

으흠..

알랭 드 보통의 사유를 따라가기란 너무 힘들어. 좋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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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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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6년 6월 16일 읽고 쓰다

 

"진짜 남자란 학교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애송이들하고는 달라.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뭘 해주면 네가 좋아할지 미리 알고 있지. 그와 함께 있으면 넌 어린 계집아이가 아니라, 그가 호기심 가득한 신생아의 눈길로 바라보는 여신, 이미 모든 시대를 살아버린 늙은 영혼이 돼."

-57p

 

"죽음과 비열함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면

서슴지 말고 죽음을 택하거라."

-160p

 

나는 그를 그곳에 내버려두어야만 한다. 그가 가는 길 위에.

-239p

 

 

 

-----

그녀의 비유는 낯설다.

이게 무슨 뜻일까 하고 고민하게 했다.

빠르게 읽혀지는 문체와 달리,

중국여자. 프랑스로 유학가 7년만에 불어로 소설을 썼다 했다.

 

<바둑 두는 여자>는 격동기를 살아가는

성에 대해 눈 떠 가는 중국 소녀(15,16세쯤?)와

사무라이즘을 신봉했던(!) 일본의 젊은 장교를 둘러싼 이야기.

하루키의 소설처럼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점차 가까워지면서 하나로 합쳐진다.

왠지 좀더 긴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소설을

축약시키느라 서사의 비약과 단절이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긴하지만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들었던 소설.

 

다만, 좀 더 바둑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음 했다.

성적인 묘사와 일본병사들이 중국인들을 고문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그것이 적절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것들에 대한 묘사가 부족해서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어 보인다.

왠지 상업소설-사실 상업소설이 아닌 것이 어디있으랴-적인

냄새가 짙게 깔렸다.

 

바둑을 알고 있었다면,

그걸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법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더 재미있게 읽혔을 것 같은 책.

바둑을 함 배워볼까낭?

(주원오빠의 노친네 같다는 표현이 계속 생각나~~ㅡ.ㅡ;;)

 

 

담번엔

샨사의 원숙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을 읽어 보고 싶다.

(이번 책은 그녀의 세 번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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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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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1일 읽고 쓰다

 

"물론 아직은 미진하다고 생각해.

당신은 열의가 부족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시키면 표정이 변하고 한숨부터 쉬지.

그걸 내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그냥 당신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는 표시 정도였으면 해."

-275p

 

 

 

타인의 취향은 내가 말할 바가 아니나,

이 책(특히 2권)은 시간낭비. (쓰레기.라는 말을 가까스로 참았다)

1권의 수다스러움은 신선한 깜찍함이었으나

2권의 수다스러움은 정말....머리가 아플 정도.

 

세상에..

읽고 나서 이렇게 싫어진 이게 처음일 듯.

 

모든 책이 교훈이 이야기 할 필요도 없고

모든 책이 목적성이 뚜렷하게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읽고 나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책이란

참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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