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SBS ‘라인업’에 출연해 그동안 고생한 사연을 말하고 있는 필자 김경민 씨.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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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 연예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다. 여러 연예인과 함께 인터뷰를 하겠다는 얘기였다.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지 못한 지 5년쯤이 지났을 때였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던 아버님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나는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사흘 밤을 새워 개그를 짰다. 단 한 컷이라도 더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5년 만의 방송 기회. 2시간을 기다려 30분을 촬영했다.
집에서 프로그램 방송을 기다렸다. 아내 손을 잡고,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TV를 켰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 출연 장면이 ‘통으로’ 편집 당한 것이다.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이럴 거면 날 왜 불렀어”란 말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개그맨이 재미없어서 잘렸다”는 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탤런트들도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연기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개그맨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직접 개그를 짜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남을 즐겁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안에 가득 찬 즐거움을 밖으로 넘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대 위의 개그맨도 무대 밖에선 한 사람의 생활인이고, 세상을 사는 보통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이 있듯, 아무리 잘 웃기는 개그맨도 자기만의 아픔이 있고, 힘들 때가 있다. 그래도 개그맨은 웃겨야 한다. 머릿속에 아버지 건강 걱정이 가득할 때도, 가슴속에 아이 고민이 들끓어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웃게 만들까’ 고민하는 것이 개그맨인 나의 숙명이다.
개그맨들은 ‘롱 런’하기가 힘들다. 하루아침에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그만큼 쉽게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인기를 얻었을 때는 불러주는 곳이 많아서 여기저기 겹치기 출연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머릿속은 말라붙는다. 밖에서 볼 때는 푸른 초원이지만, 그 안쪽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 갈라져 있다. 이런 사실은 개그맨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무리하게 되고, 자기 페이스대로 천천히 가는 건 생각지도 못한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자기가 하지 못할 만큼 일을 벌여 놓고서야 나중에 깨닫는다. “요즘 쟤 안 웃긴다”고 수군거리는 말을 뒤늦게 듣고서야 알게 된다. 땅 위에 푸른 빛깔은 한 조각도 남지 않았음을.
노련한 농사꾼은 풍년이 들수록 밑거름을 풍족히 준다고 한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한 풋내기 농사꾼은 그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밑거름을 준다는 건 당장 소출을 줄이는 일이 된다. 거름을 주는 시간만큼 다른 작물을 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막 히트작을 뽑아낸 개그맨도 마찬가지다. 쉬어가면 더 나은 개그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의 히트작을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이상 남을 웃길 수 없을 때까지 매달리곤 한다.
방송에서 출연이 끊기자 사람들이 물어봤다. “요즘 왜 안 나와요? 쉬는 거예요?” “아, 예, 뭐.” “이제 그만 충전하고 나와야죠?” “예, 그렇죠.” 그런 질문도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자 사라졌다.
대중 앞에 서지 못하는 개그맨은 실업자나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잘리면 의기소침해지듯, 개그맨도 방송에서 잘리면 쪼그라든다. 동료의 결혼식장에 나가기도, 친구들의 모임에 얼굴을 비추기도 어려워진다.
고통은 나누면 줄어든다지만, 무명 개그맨의 고통은 가족과 함께할 때 더 커진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편의점에 갔다. 내가 물건을 고르는 사이에 주변에 있던 젊은 학생 둘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쟤 개그맨 아냐?” “그래? 잘 모르겠는데?” “김경민이잖아. 김경민.” “아… 그 한물간 애!” 혼자였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았다. 방송에 안 나오는 남편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는지 그때서야 안 것이다.
그래도 내가 개그를 하는 이유는, 개그가 나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개그는 가장 절실한 것이며, 유일한 살길이다. 의류 사업도 해봤지만 실패했고, 다른 일도 잘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 개그를 보고 웃어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내 가족을 부양하고, 나보다 어려운 후배들을 도와줘야 한다. 힘든 후배가 찾아와 “형, 저 돈 좀 꿔주세요”라고 했을 때, 후배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개그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방송을 즐기면서 한다지만, 나는 부럽다. 진심으로 그들이 부럽다. 방송은 언제나 긴장되기 때문이다. 처음 방송에 출연했을 때도 많이 긴장했지만, 지금의 긴장과 비교할 수 없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 혼자 망가지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꿈도 꿀 수 없다. 마흔 살 가장으로 가정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반드시 사람들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 객석에서 제발 웃음이 터졌으면 하는 절실함으로 산다.
그래서 매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즐겁게 웃을 수 있을지 연구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개그를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지금은 안 웃겨도 10년쯤 지나서 피식 웃을 수 있는 개그, 잘 들어보면 ‘정말 어이없다’며 웃을 수 있는 개그를 하려고 한다.
얼마 전 다섯 살 난 아들이 내가 나온 공중파 방송을 처음 봤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녀석은 “친구들이 아빠 텔레비전에 나온 거 봤는데, 엄청 재미있대”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들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내 개그에 웃어준 사람들에게 더욱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