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을 만났던 때가 언제였던가. 마포의 어느 아파트로 찾아갔던 목적은 선생으로부터 <전국노동자신문>제호를 받고자 함이었다. 그러고 보니 90년겨울쯤이었나 보다. 몇몇 전노협 간사들과 함께, 손에는 꿀단지로 기억되는 선물을 들고 찾아간 우리들을 선생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때 내주신 이름모를 차는 정말 향기가 좋았다. 출소후 만나 갓 결혼하신 사모님도 정감있는 미인이셨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하실까. 각진 하늘을 바라보며 사신 세월만큼 오래오래 그 모습 그대로이길 바란다. 정작 이몸은 세파에 찌들고 때묻어 누더기가 됐으니 염치없을 따름이다.

<감옥으로부터 사색>을 읽으면서 20년동안 옥살이를 해야했던 한 남자를 생각했다. 어처구니없는 세상의 광기에  그만 꽃같은 젊음을 고스란히 감옥에서 썩어야 했던, 그 어처구니 없는 운명 말이다. 신선생 이후에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신영복선생이 출소한 지 꼭 십년후인 1998년 10월 황대권이라는 사람이13년 2개월의 영어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복귀(?)했다. 1985년이라면 내가 막 입대할 즈음이니 이른바 <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이란 걸 들어보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형편없는 조작극인데, 어떻게 그토록 오랜 수감생활을 했는지. 

<야생초편지>라는 책이 TV에서 읽으라고 떠드는 책중에 하나였다는 점은 오랫동안 그 책을 멀리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심지어 책을 사놓고도 몇장 훑어보고 '내 그럴 줄 알았다'라며 책장속에 구겨넣고 잊어버렸으니. 그러다 아주 우연히 산에서 나는 약초에 관해 기획안을 쓰다가 참고도서로 빼들었고 내친 김에 끝까지 읽기로 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내가 온갖 풀이 무성한 수풀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이런 정성과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 >

황씨는 <산에 있는 풀숲 한평만 떼어 옮길 수 만 있다면..>. 하고 갇혀있는 척박한 삶을 안타까워 한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지금 야생초에 쏟고 있는 정성과 열심은 곧 부족함에서 오는 것임을 깨닫는다. 누가 거들떠나 보았던가. 잡초를 그나마 긍정적 의미로 쓰는 경우는 잡초같은 끈기와 근성을 얘기할 때 정도. 그러나 황씨는 급기야 잡초를 통해 세상을 본다. 세상이 옥담 밑 한평반의 야생초밭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慢. 현상뒤에 숨어있는 초자연적인 힘. 아만(我慢). 자신이 남보다 훌륭하다고 망상하여 남에게 뽐내려드는 방자한 마음. 인간의 해탈을 막는 열가지 족쇄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속한다. 황씨는 자신의 교만을 스스로 잘 안다고 했다. 사주에 나올 만큼 뿌리가 깊다고 했다. <이것을 다스릴 수 있느냐 그 성패가 인생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일임을 알고 있지만 나만의 특이한 습성과 결부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다스리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듣고 보니 나또한 그에 못지않다. 말하고 나면 후회하는데 자꾸 입이 가벼워진다. 남들 일할 때 책장 좀 넘긴다고 자못 현학적이기까지 하다. 황씨의 말처럼 신이 한가지 재능을 주면서 하나를 덤으로 준 것이 바로 만인 모양이다. 모르면 모르되 그걸 알고나면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다. 이렇듯 후회하고 고통스러워 하면서 점점 자제하고 겸손해지도록 만들려는게 신의 예지력아닌가 싶다.

황씨가 야생초 화단에서 얻은 깨달음은 야생초 안에는 그 만이 없다는 것이다. 관상용꽃처럼 누가 더 아름다운가를 경쟁하려 들지도 않고, 크거나 작거나 예쁘거나 밉거나 타고난 제 모습의 꽃만을 피워내는 소박함을 배운다.

내 본래의 근기를 되찾자. 본성을 깨닫고 그 자연스러운 발현을 겸손하게 지켜보자. 흔들리지 말고, 초조해하지도 말고, 용맹정진을 통해 만을 벗어버린 참된 나를 찾자. 그리하여 골방에 앉았으니 청하지도 않은 세상이 제발로 기어들어와 녹차 한 잔 청할 때 조용히 웃고 춘설 햇잎을 주전자에 담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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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서를 쓰다가 프로덕션을 수소문하는 와중에 박춘우형에게 전화를 했다. 삼년여 된 것 같은데. 화이트에서 떨어져 나와 와신상담하는 모양이다. 31일밤 열시쯤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음성메시지가 들어왔다. "야 네가 옛날에 부르던 빗속의 여인이야," 혀꼬부라진 춘우형의 목소리다. 봄비가 빗속의 여인을 부르는구나.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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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효자 2004-01-0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3년 마지막 책으로 <야생초편지>를 읽다. 소박한 지혜도 함께 달력을 넘어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