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기자를 딱 한번 본 적이 있다. 그가 월간조선에 있을 때였던가.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공손하게 인사를 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시원한 이마와 조금은 이국적인 눈자위가 인상적이었고, 몇마디 말도 없었지만 참 겸손한 친구라는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놀랍다.

그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갔다는 얘길 얼핏 들었는데, 이번 이라크 종군기자로 참가했다는 소식은 전혀 뜻밖이었다. 그리고 그가 위성전화로 불러대는 이라크 전 기사는 수천킬로 밖의 전장 분위기를 전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언젠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당시 현장에 남아있던 모방송국의 여기자가 중계하던 목소리와는 달랐다. 이것도 발전이라고 해야하는지. 후자의 경우는 "여자가 어떻게 그 위험한 현장에 있단 말인가"에 무게가 훨씬 더 많이 실려있었다. 그녀 특유의 느릿느릿하면서 권위적인 목소리가 점점 떨리고 다급해져갈 수록 사람들은  기꺼이 감동할 준비가 돼있었다. 

그러나 강인선의 경우는 매우 달랐다. 우선 TV가 아니기 때문에 애당초 멀티미디어적 긴박감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여자라는 점도 감안은 되지만 두번째 일이라 그저 놀람의 강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이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강인선은 앞선 그녀의 선배보다 월등한 감동을 내게 안겨주었다. 솔직함의 승리였다.

그의 기사를 읽고 책 <사막의 전쟁터에도 장미꽃은 핀다>도 사서 읽었다. 연말의 쓸데없는 분주함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지 못했는데, 으레 그럴 경우 침대 머리맡이나 탁자위에서 한 열흘 맴돌다가 책꽂이에 무성의하고 폭력적으로 꽂혀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만은 눈꺼풀에 성냥개비를 세우면서까지 하루에 열대여섯 페이지라도 붙들고 있었으니, 요즘 저자들에게선 좀처럼 보기드문 그 솔직함과 겸손함이 그 이유라고 하겠다.

사상 최대규모의 반전시위가 계속되고, 전후 세계의 헌병으로 자임했던 미국이 별 수없이 세계의 건달로 급전직하하던 와중이었다. 어쩌면 겉멋으로라도 미국이 어떻네, 이라크가 어떻네하고 한마디해도 누가 감히 뭐랄 수 없는 종군기자 강인선은 그런 거드름 따윈 한마디도 늘어놓지 않는다. 비록 힘센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에 서고싶다는 생각은 있었으되, 미국에 대한 감상적 분노와 비하도 없고, 이라크에 대한 근거없는 동정도 피력하지 않는다. 그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 처한 무력한 한 개인의 종군기록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 극적인 일상의 감동은 그가 가감없이 전하는 무서움과 불안, 소시민적 겁남과 안도감에서 비롯된다.

전쟁은 절대로 겪지 않고 일생을 사는게 최선이며, 최고의 행운이다. 미국이 동원한 병사가 수십만명이다. 그들의 부모형제와 처자식, 가까운 친구까지 포함하면 수천만이 넘는다. 이라크의 군인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인까지 포함해 전쟁에 완전히 노출된 사람들의 숫자도 역시 수천만명이다. 어림잡아도 1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전쟁의 도가니에 휩쓸려 들어갔다. 미사일을 쏘고 맞는 전쟁의 당사자도 죽을 맛이지겠지만, 사상자 한명이 생겼다는 뉴스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친지들도 환장할 노릇이다. 우리나라도 이라크에 3천명을 파병한다는데 그러면 우리 주변에 최소한 3만명에 해당하는 사람이 편한 잠을 자긴 글렀다고 봐야한다. 

만일 우리나라가 전쟁의 당사국이 된다면 이런 변이 따로 없을 것이다. 몇천만명의 운명이 고스란히 바닥에 처박히게 된다. 나는 참혹한 변사체를 직접 본 적이 없다. 간혹 교통사고가 난 근처를 지나가면서 무언가 덮어높은 물체를 보게되면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고속도로에 가끔 방치돼있는 짐승들의 사체도 끔찍스러워 한다. 전쟁이 나면 그보다 열곱은 더 참혹한 장면을 무수히 목격하게 될게다. 보기만 하면 그나마 행운이다. 입장이 바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겁난다. 무섭다. 내가 아무리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데 전쟁을 무서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전쟁을 무슨 비즈니스나 게임으로 생각하는 강심장들이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전쟁이나 게임이나 모니터보고 쏘아대는 건 똑같지 않느냐고 생각할까봐 큰 걱정이다.  

눈 작은 사람은 겁이 없다고 하지만 세상에 겁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천하장사 강호동도 밤에 문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머리털이 곤두선다고 한다. 언제 가장 겁이 났을까. 가장 무서웠던 순간을 더듬어본다. 대학다닐 때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했던 순간도 무척 겁이 났다. 잡히면 제적당하고 군대간다는데 짭새들은 눈앞에 쫙 깔렸고, 그렇다고 뒤로 도망갈 수도 없고, "학우여!"라고 주동자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자마자 귀청을 찢는 사과탄소리, 우르르 달려드는 은색 헬멧의 백골단 무리들, 여학생들의 비명과 앞에서 넘어지는 학생들. 생전 처음 확인한 나의 엄청난 순발력으로 혼비백산 저만치 도망치다가 그만 왈칵 눈물이 났다.  아, 나의 비겁함이여. 이런 나약한 소시민이 무슨 혁명을 장담하고 투쟁을 부르짖는가. 그 당시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무섭고 겁났던 것은 오랫동안 예정돼있던 내 삶의 행로가 뒤틀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함때문이었다. 그 퉁겨짐을 감당할 수없을 것 같아 내내 고통스러웠다.

군대생활, 사회생활 십수년을 보내면서 겁없는 하룻강아지처럼 행세할 수 있었던 것도 어린나이에 호된 마음고생을 해서였을게다. 그러다가 정말 무서웠던 경험을 다시 하게 됐다. 사업을 엉터리로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밀쳐놓고 전주에 내려가 있던 어느날 검찰로부터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무실에 압수수색영장을 들고와서 서류와 컴퓨터를 몽땅 쓸어갔다는 얘기도 들었다. 가슴이 무겁고 답답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때문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사람은 죄짓고 못산다 하더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중에 확인하고나서 좀 허탈했지만, 사람을 그토록 닦아세웠던 건에 대해서 나는 완전히 결백했다.

전주에서 전화를 받고 터미널로 가서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그리고 터미널에서 친구와 직원들을 만나 들어가지 않는 밥을 대충 뜬 후 서울지검으로 들어가던 순간. 무려 세시간 가까이 대기실에 앉혀놓고 사람 미치게 만들던 그 시간들. 모두 내겐 무섭고 겁났던 하루였다. 그때 나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번다해도 이런 짓은 피하겠다고 작심하고 또 결심했다. 돈없이는 살아도 이렇게 무섭고 창피하게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아무 죄도 없다, 평생 그렇게 살지않았다고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떠들면서 지독하게 부끄러웠다. 정말 아무 죄도 없었나, 하늘을 우러러 한점도 부끄럽지 않나, 그렇다면 당당했어야 했다. 바쁜 사람 불러놓고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고 호통쳤어야 마땅했다. 새벽녘에 검찰청을 나와 집으로 오는데 창피하게 자꾸 눈물이 났다.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내가 무섭고 겁났던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무력하게 서있을 때였고, 자칫 그로인해 불명예스러운 일이 닥쳤을 때 감당할 수 없겠다는 나약한 생각이 들었을 때였으며, 그것을 떳떳지 못하게 회피하고 나서 스스로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워 눈물이 날 때였다. 나는 내 앞날에 이런 경우가 다신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쟁은 그 최악의 케이스가 될 것이기에 나는 단연코 반대한다.    

나는 젊은 아이들의 만용과 객기를 용기라 부르지 않는다. 정말 무서운 것과 겁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용기란 가당치 않다. 마치 죽음을 생각해본 적 없는 자의 인생예찬이 유치하고 허황돼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무력해보이고 때론 가증스러울 정도로 이기적이며 비겁한 사람이 치명적 상황에서 보여주는 용기가 정말 용기인 것이다. 그래서 못난 아비라 손가락질 당할 지언정 자식들은 그를 욕해선 안된다. 그는 다만 참고 있을 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세상이 한없이 무섭고 주눅들게 하지만, 그는 어른이기에 지켜야할 가치가 있다. 그것이 가족의 안위이든,  회사의 발전이든, 나라의 독립이든 끝까지 책임져야할 것이 하나쯤은 있다.   

총성이 들리지 않으면 그것이 평화인가. 강인선씨가 전장터인 이라크의 국경을 넘어 쿠웨이트를 지나 돌아온 평화의 도시 워싱턴과 서울은 과연 평화로왔나. 그는 말한다. 이라크에서 생물학전 경보가 울리면 방독면과 화생방복을 서둘러 입으면 됐다. 귀찮고 힘들지만 그렇게 해서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 와서 맞닥뜨린 유명세와 온갖 부탁, 거절, 험담, 황당한 비난은 무엇으로 막아낼 것인지 망연자실할 뿐이다. 총알과 미사일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말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잔인하다."

이 전쟁이 끝나고 난 후 당신은 예전의 그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땅에서도 하루가 지나면 어제의 그 사람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문득 이 도시에서 벌어졌던 지겨운 시가전 끝에 선이 끊어진 채 환자트에 지친 몸을 뒤척이고 있는 몇몇 전사들을 떠올린다. 이젠 많이 솔직해지고 겸손해졌으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