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 P씨에겐 고1짜리 외아들이 있다. 공부도 꽤 잘하고 용모도 준수해서 P씨에겐 더없이 소중한 자랑거리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여자친구를 사귀더니 성적도 떨어지고 통 주의가 산만해진 것 같아 걱정이다. 이성교제를 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진 않지만 오래 방치할 순 없다고 생각한 P씨는 아들에게 몇 번 주의를 주었지만 별 변화가 없다. 다시 대화기회를 만들려고 하는데 아들은 눈치를 채고 자꾸 피한다.


P: 아들에게 이야기할 타이밍 잡기도 쉽지 않지만 막상 뭐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춘기인데 괜히 반발심만 생기게 하면 혹떼려다 붙이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구요.


C: 여자친구를 사귄 후로 아들의 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P: 우선 외모에 무척 신경을 씁니다. 예전엔 소탈하게 아무거나 입던 녀석이 지금은 거의 엄마 화장하는 수준이고 옷이나 신발도 엄청 까다로와졌습니다. 여자친구 만나는 시간은 그리 잦은 것 같지 않구요. 왜냐하면 학교끝나고 학원가서 밤늦게 오기때문에 주로 토요일날 만나는 것 같더군요. 가급적 집으로 오라고 하니까 밖에서 시간을 보내진 않습니다. 여자친구 집에서도 알고 있구요.


C: 성적이 떨어져서 걱정이라고 하셨는데 얼마나 떨어졌나요? 당사자도 그게 이성교제때문에 떨어진 것이라고 동의합니까?


P: 뭐 아주 많이 떨어지진 않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영향이 있겠지요. 물론 아들녀석은 그것과 아무 상관없는데 괜히 그런다고 합니다. 요즘 몸이 피곤해서 그렇다나요. 괜히 몸이 피곤하겠습니까. 여자친구 생각나고 그러니까 자꾸 주의도 산만해지고 그런거겠지요.


C. 혹시 아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 건 아닐까요? 선생님께서도 짐작으로 아마 그러지 않겠느냐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선생님께선 그 나이 때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P: 저도 사춘기때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꽤 많았지요. 그래도 워낙 어르신들이 무서워 엄두도 못냈습니다. 하지만 동네 여학생을 짝사랑해서 한참 고생했습니다. 누구나 한때 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 여자친구가 있든 없든 그 나이 땐 열병을 앓는게 당연합니다. 한참 크느라고 신체적으로도 피곤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현상을 모두 여자친구 때문이라고 몰아부치는 것도 조심은 해야겠군요.


C: 몇번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대화하셨습니까?


P: 고등학교땐 공부 열심히 하고 나중에 대학가서 맘대로 만나라고 했지요. 딱히 할말도 없더라구요. 그랬더니 이 녀석 하는 말이 "여자친구 있다고 공부 못하는 거 아니다. 우리반 애들도 다 있는데 다른 부모들은 암말 안한다. 그런 문제는 그냥 제게 맡겨라" 고 하더군요. 그래서 성적이 계속 떨어지면 아빠 말을 들어야한다고 하고 나왔지요뭐. 녀석이 그후론 슬슬 피하는게 얼굴 못본지 꽤 됐어요. 공연히 신경질부터 내고 말이죠. 말을 못붙이게 해요.


C: 알았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선 어떻게 되면 가장 바람직하겠습니까?


P: 저도 굳이 이성교제를 무조건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이성교제를 해서 오히려 더 어른스러워지고 이성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요. 다만 이성에 대한 과도한 관심, 성적 부진 등이 걱정될 뿐입니다. 녀석이 예전처럼 제 앞가림도 알아서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이성교제도 잘만하면 오히려 성적을 쑥쑥 올리는 자극제가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자기 여자친구한테 잘보이려고 하잖아요? 이 녀석은 그런덴 도통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C: 그러면 그 여학생은 아들의 어떤 점이 좋다고 하던가요? 반대로 아들은 여자친구의 어떤 점을 좋아합니까?


P: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몇번 봤지만 글쎄요. 여학생은 그냥 참하고 착해서 별 걱정 안했습니다. 둘다 농구를 좋아해서 함께 프로농구 구경을 가끔 간다는 건 알고 있는데.


C: 아마 아들도 성적때문에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이 영 편치 않을 겁니다. 아빠 엄마 눈치도 보이고. 공부만 잘하면 떳떳할텐데 말이죠. 선생님께서는 아들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제대로 하는구나 라는 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성적같은 결과말고 과정으로 말입니다.


P: 글쎄요. 예전에는 계획을 세워서 부족한 과목 공부도 자기가 알아서 보충하고, 잘하는 과목은 가끔 아빠엄마한테 자랑도 하더니만 요즘은 통 그런 꼴을 보지 못했네요. 자기 공부계획을 잘 세워서 또박또박 지켜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성적이야 자연히 오르겠지요. 근데 이 녀석이 대화를 자꾸 피하니까 이런 얘기도 할 기회가 없어요.


C: 대화를 피하는 이유가 뭘까요?


P: 뻔하죠. 지가 좋아하는 여자친구한테 싫은 소리를 할 것 같으니까 아예 안들으려고 하는 거겠죠. 보나마나 잔소리할 거구. 그러면 기분나빠지니까 안보는게 상책이다 싶겠지요.


C; 아들이 선생님으로부터 여자친구에 관해 어떤 얘기를 들으면 좋아할까요? 처음 말문을 열 때 그런 얘기부터 해보시지요. 


P: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네 여자친구 가만히 보니까 엄청 예쁘더라. 여자 보는 눈은 있어갖구. 근데 그 친구는 네 어떤 점이 매력이라고 하더냐. 하기야 아빠도 인기만점이었으니 부전자전 아니겠냐. 뭐 이런 식으로 가면 어떨까요? 그리고 나서 임마 그 아이 괜찮으면 딴 놈 못채가게 꽉잡어 하면서 용돈 좀 주고 ... 괜찮겠는데. 이달 말이 녀석 생일이니까 친구 오라고 해서 재미있게 만들어줘 볼까요. 그런 다음에 너희들이 서로 공부도 잘 할 수 있게 격려해주는 좋은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슬쩍 한마디 하는거에요.


C: 그런 아이디어가 술술 나오시는거 보니까 선생님도 경력이 화려하셨겠는대요.


P: 하하하. 뭘요. 코치님 말씀 듣고 보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떠올라서 생각해본 겁니다. 아들이 동의하지 않는데  자꾸 잔소리하는 것보다 좋은 감정으로 유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C: 오늘 코칭받으신 소감을 한 말씀 해주십시오.


P;  제가 어느새 이성교제에 대해 보수적인 세대가 됐나봅니다. 아이가 사춘기 때문에 겪는 이런저런 변화를 무조건 이성교제의 부작용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다른 애들보다 훨씬 건전하게 사귀고 있는데 자꾸 나중에 사귀라고만 하니까 반발심도 생기겠다 싶습니다. 저는 예전처럼 공부습관을 스스로 잘 키면 별 문제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아이들한테 다정다감하게 긍정적으로 접근하겠습니다. 애들도 부모가 자기들을 믿는다는걸 알면 훨씬 더 열심히 하겠지요. 덕분에 좋은 아빠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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