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내고 우쭐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걷어치운게 한 삼년된다. 윤기흐르는 코트에 멋진 양복과 구두, 비싼 차에 운전기사까지, 어울리지 않는 머리와 번질거리는 얼굴하며. 성공이 뭔지도 모르는 원숭이가 얼굴에 분칠하고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녔다. 세상이 돈짝만해보였다.

삼년동안 양복 한벌, 구두 한켤레 안샀다. 어깨에 가로질러 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탔다. 낡은 티셔츠를 걸치고 다니다가 옛날 사람을 만났다. 못 알아보는 건지 그런 척 하는 건지. 요새 뭐하길래 이러고 다니냐고 물었다. 껄껄 웃으며 그냥 논다고 했다. 나중에 밥 한번 먹자며 헤어졌다. 나는 안다. 그와는 다시 만날 일이 없다. 상관없다. 광내고 분바르는 일은 이제 끝이다.

마음이 편하다. 내 앞에 누가 있든 할 말 있으면 그냥 한다. 예전처럼 사람을 가리거나 말을 고르지 않는다. 되지도 않은 논리로 아는 척하면 바로 뒤집어 버린다. 이 나이에 잘못된 논리를 고쳐주지 않으면 버릇되어 큰 일을 그르친다. 청와대에 있는, 여당 국회의원이든 가리지 않고 노통 욕을 한다. 같이 웃으면 그나마 트인 놈이다. 낯빛이 변하면 적당히 일어나서 나온다. 저런 병신이 나라일을 하니 나같은 백수한테까지 욕을 먹는거다라고 한마디 빼놓지 않는다.  

여기다 글을 올릴 때 누가 볼 수도 있단 생각을 안했다. 왼쪽 아래 달력밑에 today 2 이라고 쓰여있는게 무슨 뜻일까? <오늘 두사람 들어왔다>는 뜻인지, <글을 두개 썼다>는 건지 확실히 모르겠다. 미련한 인물이  안하무인아닌가 욕해도 좋다. 하지만 난 앞으로도 누군가를 의식할 생각은 없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쓰고, 잊어버릴까봐 끄적거려 놓을란다.    

며칠전에 올려놓은 글(미술에 투신하겠노라 비분강개한)을 보고 어떤 분이 재미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정말 그렇게 할거냐고 물어보시길래 씩 웃었다. 블로그는 이래서 매력이 있다. 마치 하늘이 두쪽나도 결행할 것 처럼 써놓은 출사표라도 <아니면 말구> 한마디면 웃어 넘길 수 있다. 그 글 역시 머리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잊어버리지 않게 쏟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잘 읽어보면 눈치채겠지만 글의 논리도 없고 근거도 박약하다. 당연하다. 모르는 얘길 썼으니까.

내친 김에 좀 더 생각을 해봤다. 먹고 사는 문제가 빠졌다고 한다. 솔직히 별로 신경 안썼다. 중요한 문제지만 처음부터 그 생각을 하면 기개가 쪼그라들어 김샌다. 김 팍새고 쪽팔리면 재미없어진다. 그러면 그걸로 끝이다. 미술로 돈번 사람들 몇몇을 안다. 그림 팔아서 먹고사는 부류가 몇 있다. 화가가 첫째요, 갤러기가 둘째며, 옥션이 셋째다. 외국그림 떼어다 넘기는 오퍼상도 물론 있다. 미술계언저리에서 말과 글을 팔아 연명하는 자들도 있다. 교수와 선생이 있고, 전문매체 종사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큐레이터도 그 중의 하나다.

잘 먹고 사는 자들은 제법 폼나게 산다고 한다. 그림값이 제법 비싼 극소수의 작가들. 큼지막한 클라이언트를 물고 있는 갤러리들이 그렇단다. 외국 그림 걷어다 눈먼 국내 고객들에게 떠 안기는 오퍼상들도 짭짤하게 챙긴다고 그런다. 반면 대다수 무명작가들은 월급 30만원이라고 한다. 서른 다섯 이후에는 작업에 전념하지 못한다.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화가는 더이상 직업이 아니라 취미가 된다. 

이 고만고만한 바닥에서 나까지 먹고살자고 비벼댈 경우 필연적으로  밥그릇싸움이 일어난다.  각설하고 돈은 바깥에서 벌어야 할게다. 그렇다면 돈 나올 구멍은 어디있나? 정부 아니면 기업이다. 정부가 주는 돈은 묘하다. 그 어벙한 돈을 약싹빠르게 잡아채서 먹으면 좋다. 그런데 독이 있다. 그 돈 먹은 놈도 어리버리해진다. 결국 돈은 기업에서 나오는게 가장 편하고 실속있다.

돈을 뜯을 요량이면 돈 줄 사람 생각도 해야 옳다. 기업이 원하는게 뭘까? 무엇을 주고 받을 수 있을까? 바쁜 사람들 갤러리로 오라고 해서 그림공부를 시켜준다? 필시 안좋아할 것이다. 좋은 그림을 값싸게 사준다. 이왕이면 재테크로 미술품사는데 컨설팅을 해준다? 고맙긴 하지만 역시 귀찮다. 어쭙잖게 메세나 어쩌구하면 줄 돈도 안줄지 모른다.

정공법으로 가야한다. CEO를 잡아야 한다. 타겟은 분명하다. CEO가 고민하는 건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 미술이 그 고민을 순발력있게 받아 넘겨야 한다. 미술이 미션 크리티컬한 솔루션이 되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미술은 그 자체로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툴이다. CI, BI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CI가 CEO의 비전과 골을 전 직원 내지 전세계에 널리 공포하는 툴이라는 걸 아는 CEO가 몇이나 될까? 어디 그뿐일까? 바깥으로 나가는 공식문서의 폼은 이제 웬만한 디자인북이나 화보집을 찜쪄먹게 화려하다. CEO가 하루에 서너번씩은 대하는 파워포인트의 페이지들도 기본적으로 미술의 영역이다. 이제 미술, 즉 이미지는 경영의 가장 강력한 VEHICLE이 되었다. 미술과 이미지를 모르는 자는 회계를 모르는 자와 비슷한 치명적 결격사유를 갖게 됐다.

꿀통을 깨야 꿀을 맛볼 수 있다. CEO가 고민하는 문제중에 요즘은 크리에이티브라는 아이템이 있다. 너나없이 패가 말려있는 작금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많은 업체들이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 성공확률 100%를 장담하는 멋진 그림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수십년 굳은 머리가 제대로 돌 리 없다. CEO는 닦아세우기만 할 뿐 자신도 이렇다할 솔루션을 내놓지 못한다. 단언컨데 마인드맵 한장,  파워포인트 한페이지만 제대로 그려서 내놓을 수 있다면  CEO를 움직이고 회사를 흔들 수 있다. 아마 쉽지 않을게다. 

힘을 낼 근거는 얼마든지 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적이론으로 노벨상를 거머쥐었을 때, 그것은 논리가 아니라 직관이었다. 천체가 마치 한편의 그림처럼 움직이는 그 영상. 그 직관을 숫자로 증명한 것이 상대성이론이다. 아트 앤 크리에이티브,   아트의 샘에서 길어올린 물로 머리를 적시면 새 생각, 한 생각들이 떠오를 것이다.  대표이사가 이젤위에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21세기 경영, 우리회사 십년후의 모습, 자신의 비전을 그려대기 시작한다. 잘그리면 이발소 그림된다. 못그릴 수록 감동이 크다. 그것이 현대그림 아닌가.

앞으로 3년 후에 프로그램을 잘 개발해서 리더십센터에 제안해볼까. 장님 문고리 만지드끼 컬러 경영이네 뭐네 뜬구름 잡기 할게 아니라 크리에이티브로 회사의 생산성과 비전을 확실히 올려보자고 하는 거다. 리더십센터와 윈윈하면 좋은 일이다. 몇몇 대기업 임원들이 받기 시작하면 돈벌이도 안정화될 것이다. 기업의 풀만 확보하면, CEO 리스트가 만들어지게 될거다.  그 다음부턴 식은 죽 먹기. 책을 내든, 잡지를 내든, 대안공간을 만들든 손님이 끊어질 염려는 안해도 된다.

이런 작업들을 미술인들이 알아서 해내기엔 무리가 있었을 성 싶다. 우선 기업, 특히 CEO의 생리를 모른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감잡기가 어렵다. 한번만 잘 만들면 되는게 아니다. 계속 바꿔주고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그렇다고 바깥사람이 하기엔 명함도 딸리고 자신이 없다. 방법은 미술인들이 경영학 공부도 하고 기업경험도 해보는 것 하나,  아니면  그 일을 징그럽게 해온 사람이 미술을 열심히 공부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 어느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자명하다. 

분명히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생각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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