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드보이였다. 어머니는 그맘때 아이들에게 무제한 허용되었던 실수들을 전혀 허용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종교는 완벽주의였다. 예외도 인정하지 않았고 단 한번의 용서도 없었다. 당신의 계산법은 매우 독특했다. 백점이 아닌 99점은 곧 빵점이라고 간주했다. 말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당신의 아들이 일등 자리를 뺏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글짓기도 잘해야하고, 웅변도 잘해야하며, 그림그리기, 반장선거 모두 최고로 잘해야 했다. 나는 사춘기도 없었던 늙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철부지였다. 3학년때까지 오줌을 쌌고, 어른들이라면 금방 눈치챌 거짓말을 했으며, 한 문제만 틀려도 창피한 줄 모르고 대성통곡하는 <재수없는 녀석>이었다. 동네에서 소문은 좋게 났지만, 실제 내 모습은 그렇게 한심했다. 어느 새 나는 싸움의 종류와 무관하게 절대로 져선 안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그런 강박은 중,고, 대학을 뛰어넘어 직장생활하는 동안에도 어김없이 나의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잡았다.
사실 운이 좋았다. 욕심도 많았다. 다 해보고 싶었다. 해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저렇게 리스크가 큰 일을, 어쩌면 저렇게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된다고 밀어부치는 지 모르겠다고 다들 혀를 찼다. 내 힘이 모자랐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참 운이 좋았다. 일잘하고 욕심많은 나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나중엔 어떤 후회를 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일하는 동안엔 재미있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었다. 열정과 재미, 동료, 그리고 보람. 이 네가지가 한데 엉켜 돌아갔다. 그래서 운좋게 성공했다. 실패했어도 후회는 안했을 거다. 아마 다신 그런 행운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순신은 해질녘 붉은 바다를 바라본다. 오늘 싸움에서 이긴 바다일수도, 내일 큰 싸움이 벌어질 바다일 수도 있다. 마음이 구릿덩어리처럼 무겁다. 이길 수록 이길 확률은 점점 낮아진다. 적들은 이제 거북선을 보아도 놀라지 않는다. 웬만한 물길은 손바닥보듯 숙달돼있다. 처음엔 왜적을 보고 도망가기 바빴던 조선사람들도 이제는 적의 편에 붙어 간자를 하거나 심지어 아군에게 총질을 해대곤 한다. 연승이 거듭될 수록 한번은 질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 때가 바로 내일인지도 모른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상사라고 했다. 그러나 순신은 지금도 여전히 칼 끝위에 서있다. 한걸음 물러서도, 한발자국 내딛어도 천길 벼랑이다. 의주에선 승리의 소식이 아직 멀다. 전라도를 지켜내는 것 만으로도 힘에 겹다. 그나마 수군이 뚫리면 전라도도 떨어지고, 의주에서 계속 밀리면 내부(국경을 넘어가는 것)밖에 없다. 나라가 망한다. 왜에 망하든, 명에 망하든 조선은 없어질 것이다. 순신은 안다. 이 바다에서 단 한번의 패배로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단 한번의 싸움도 져선 안된다. 단 한척의 배도 살려보내선 안된다. 이것이 순신의 원칙이었다. 그는 이 원칙대로 때를 기다렸고, 물과 바람의 흐름을 살폈다. 도망병의 목을 예외없이 베었고, 성급한 장수들을 설득했다. 필승의 책략이 없으면 이 원칙은 무너진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모든 신경과 모든 촉수를 이기는 것에, 결코 패하지 않는 것에 걸어야 했다.
전쟁에서는 행운아였지만, 정치적으론 더없이 불행했다. 순신의 고뇌는 < 이런 나라를 지켜야하는가 >였다. 나와 내 사랑하는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것이 바로 이 썩은 나라였단 말인가. 조정의 모리배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순신을 의심했다. 순신이 과연 자기들같은 인간들을 지켜주기 위해 저리 분골쇄신하는가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럴리 없었다. 순신이 필시 전쟁 영웅이 되어 민심을 크게 얻고 병사들을 몰아 조정을 뒤엎을 생각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저리 핍박을 당하고도 늠름할 수 있느냐 말이다. 더구나 그는 조정암의 끄나풀로 자신을 <사람을 지키는 장군>이라 칭하지 않았던가.
이순신을 둘러싼 미스테리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왜 그는 노량에서 죽을 생각을 했던 것일까? 군신으로서 그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와 장졸들의 충성이 있었음에도 전사를 가장한 자살을 하고 만 까닭은? 게다가 그는 명명백백 사림이 아니었던가. 바로 이것이 조선의 한계였다. 대단한 통치 이데올로기 아닌가. 썩은 짚둥치같은 왕조였건만 절대로 안에서 무너지진 않았다. 공맹의 유학은 군자와 사대부를 키운 것이 아니라 천세만손 왕조전승의 정당성을 세뇌시켰다. 걸출한 장수이며 좋은 세상을 꿈꾸었던 순신이 스스로 갑주를 벗고 적의 유탄을 청하고야 말았던 것은 그 넘지못할 벽 때문이었다. 순신은 승리하였으되 결국 패했다.
이기고 나서 지는 경우가 몇가지 있다. 싸울 가치도 없는 싸움을 벌이고 이기는 것이 첫째요. 상대를 이겼으되 내 원칙이 무너졌으면 결국 패한 셈이니 두번째요, 이기고서 자만하여 다음 싸움에 크게 패한다면 그 역시 이긴 것이 아니었으니 세번째다.
나의 전쟁 역시 단 한번도 패해선 안된다. 내가 지켜야할 바다는 어디 있나? 순신에게 배운다. 내 바다를 알아야 한다. 적과의 싸움에서 나를 지켜주고 도와줄 바다. 바다는 나의 퇴로이며 동시에 나의 진격을 위한 첫번째 교두보다. 바다를 달래고 다스려야 한다. 바다가 내 배를 띄울 때 즐거워 너울거려야 한다. 그래야 패배하지 않는다.
원칙이 없으면 흔들린다. 작은 유혹에, 작은 위협에 쉽게 흔들거린다. 나의 칼이다. 군령을 어기는 자를 가차없이 베는 것이 바로 이 칼이다. 적의 심장을 향해 힘차게 내지르는 것도 바로 이 칼이다. 장군선에 뛰쳐 올라오는 적의 목을 베어 날리는 것 또한 이 칼이다. 장수가 칼을 놓으면 불안한 법이다. 회의를 하든, 잠을 자든 칼을 손에서 놓는 일은 없다. 나의 칼은 무엇인가?
큰 생각이 없으면 큰 싸움에서 지게 된다. 순신은 큰 생각을 하였으되, 큰 생각에 눌려 그만 지고 말았다. 퇴로 없는 싸움이었으므로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살아야겠다 생각했다면 그는 배를 돌려 한양으로 갔어야 했다. 거기가서 조정 간신배들을 쳐없애고 어리석은 왕을 벤 후 나라를 새로 세워야했다. 가능여부를 떠나 자신이 그 일을 한다는 것이 용납될 수있는지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앞으로 십년 후, 십오년 후 내가 이 싸움의 끝을 회의하거나, 무력감에 빠진다면 나는 모든 싸움에 지고 만 셈이다. 큰 생각을 해야 한다. 멀리 내다봐야 한다.
큰 생각을 하자. 내 삶의 큰 목표를 정하자. 그리고 내 바다를 택하자. 어떤 싸움이든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그 어느 바다에서 시작하자. 싸움을 하겠다고 생각한 날부터 나는 칼을 점검한다. 내 원칙이요, 전략이며 전술이다. 그 바다에서 이기면 나는 곧바로 다음 싸움터로 옮겨갈 것이다. 맹수는 결코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사냥이 끝나면 지체없이 자리를 옮겨야 한다.
나의 전반생은 큰 생각이 있었으되 내 생각이 아니었다. 내 칼은 굳고 날카로왔으나 내 칼집에서 뽑은 것이 아니었다. 항구를 나가자 마자 순풍과 큰 바다를 만났다. 그러나 나에겐 해도가 없었다. 다른 바다로 옮기려 했으나 미련이 많았고 결단이 약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 생각한다. 십년 후 나의 모습도 좋아야 하지만 일년 후 모습도 좋아야 한다. 나는 끝까지 주도적인 삶, 계획적이고 자기성찰이 있는 삶, 더불어 승승하기 위해 시너지를 내는 삶, 끊임없이 단련하는 삶을 원칙으로 지키겠다. 타율적이고 무계획적이며, 독선적이고, 소모적인 삶을 거부하겠다. 그런 원칙을 지키는 것을 즐거움(FUN)으로 받아들이겠다.
엊그제 미국의 모 사이트에서 시키는대로 설문을 메꿨더니 내게 맞는 직업에 대해 간단한 메일을 보내왔다. 세가지 키워드가 있었다. Creative, Communication Value, Vision. 사물을 보는 기본적인 입장이 크리에이티브하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 상황에 내재한 미래를 간파하는 힘이 있다는 것. 좋은 얘기다. 묶어서 얘기하자면, 어떤 것에서 창조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이 내게 맞단 뜻인가 보다. 그 사이트가 내게 추천해준 직업이 세개 있다는데 돈을 내야 보여준다고 그래서 열어보지 않았다. 다만 MERCHANDISING 분야가 적합하다고 그런다. 워낙 해석이 분분한 단어라서 꼭 집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무척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