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와 사랑할 수 있는가.  창녀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가. 잘못하면 이 책은 3류 소설로 급전직하할 위험이 큰 소재를 취급하고 있다.  미녀 직업여성들에게 애인이나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보면 답은 한결같다. 이런 직업에 애인이라니 가당찮다. 일 시작하기 전에 깨끗이 정리했다. 어떤 남자가 자기 애인이 이런 일하는 걸 보겠느냐. 적어도 그녀들은 그 직업을 갖고 있는 동안엔 정상적인 사랑은 할 수 없다고 체념한 듯하다. 가끔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내내 안정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걸 본 적은 없다. 성을 상품으로 파는 그녀들에게 행복한 섹스란 없다. 돈을 받고 말고를 떠나 자기 성에 대한 치명적인 컴플렉스에 사로잡혀있다.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창녀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가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고,  행복한 섹스의 절정을 꿈꾼다는 스토리는  억지에 불과하다.     

코엘료는 창녀라는 직업에 대한 편협한 선입관을 처음부터 모른 척한다. 오히려 그 직업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가능하게 하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회의하게 만드는 훌륭한 기제로 작동한다. 브라질의 평범한 시골처녀 마리아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적당히 무지한 덕분에 성격까지 용감한 그녀는 스위스까지 흘러왔다. 참 멀리까지 와서 하필 창녀가 됐다. 그러나 그녀에겐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었다. 강제로 몸을 버리고 몇날며칠 펑펑 울다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창녀가 된게 아니다. 고향의 부모형제와 이웃들에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대로 돌아갈 순 없었던게다. 따라서 수입이 뒷받침되지 않는 구멍가게 점원이나 공장 노동자가 될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그녀는 자기 얼굴과 잘빠진 몸이 돈버는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돈을 받고 옷을 벗는 게 두려울 것도, 수치스러울 것도 없다. 적어도 마리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렇다고 평생 이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 조그만 목장을 살 만한 돈을 모으기로 했다. 일년만 일하면 그 정도는 어려울게 없었다. 물론 몇년 더 일해도 상관없지만, 그러다간 끝도없이 계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딱잘라 결정했다. 그녀에게 두명의 남자가 다가왔다. 한 사람은 마리아처럼 영혼과 육체의 소외때문에 무력감에 빠진 화가 랄프, 다른 사람은 새디스트 취향의 쾌락주의자인 영국인 부자 테렌스. 결국 마리아는 랄프와 사랑에 빠지고, 급기야 헤어지기로 한 마지막 날(브라질로 떠나기 전날) 영혼과 육체의 합일된 사랑을 맛보게 됐다.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와 공항으로 갔지만 그녀의 두리번거리는 마음은 랄프를 찾고 있다. 비행기를 갈아타기위해 파리에 내린 마리아는 꽃다발을 들고 있는 랄프를 만나게 된다.

이제까지 읽었던 코엘료의 작품들에 비하면 밀도가 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이정도 주제와 소재로 이만큼 격을 지켜낸 것이 그가 대가임을 입증해준다. 중간중간 그는 썩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툭 던진다. 마치 '끝까지 들어봐, 혹시 알아? 가끔 이런 얘기를 만나게 될지.'라고 계면쩍은 윙크를 하듯.

'그녀는 서둘러 떠나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꽃으로 만들어진 시계를 ,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들과 그 주위에서 뛰노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슬픔의 이유를 깨달았다. 그녀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랄프때문도, 스위스가 좋아서도, 모험때문도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그건 바로 돈이었다.  돈! 모든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칙칙한 색깔의 특별한 종이쪽. 그녀는 그것을 믿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믿었다. 산더미처럼 쌓은 그 종이쪽을 가지고 대형 스위스 은행을 찾아가 "이 돈으로 내 인생의 몇시간을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는 팔지는 않고 사기만 합니다."라는 답변을 듣게 될때까지는.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행인들은 '난 좀더 기다릴 수 있어. 오늘은 돈을 벌어야 하니가, 당장 내꿈을 실현할 필요는 없어. 오늘을 돈을 벌어야하니까, 당장 내꿈을 실현할 필요는 없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인 채 직장으로, 학교로, 직업 소개소로, 베른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직업은 저주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그것 역시 모든 사람들이 그러듯이 자신의 시간을 파는 것일 뿌닝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듯이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을 견뎌내는 것, 모든 사람들이 그러듯이 결코 도래하지 않는 미래의 이름으로 자신의 귀중한 육체와 영혼을 내놓는 것, 모든 사람들이 그러듯이 아직 충분히 모으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 모든 사람들이 그러듯이 조금만 더 기다리는 것, 기다리고, 조금 더 벌고, 욕망의 실현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 당장은 몹시 바쁘니까. '

하나 더 찾았다. '명예, 긍지, 나 자신에 대한 존중.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이 세가지 중 어느 것도 가진 적이 없다.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사랑받는데에도 성공하지 못했고, 늘 옳지 않은 결정만 내려왔다. 이제 나는 삶이 나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그동안 내 운명을 끌고 오느라 모든 힘이 소진됐다. 이젠 무력해졌다는 것을 고백하고 무릎을 꿇을 때가 됐다. 운명의 신이시여. 제 남은 삶을 당신에게 맡깁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까지 내가 앞장서는 건방은 이제 없을겁니다. 그렇게 반년을 살았다. 운명의 신은 얄미울 정도로 무심했다. 아니 내 고백과 결심이 진정인가를 시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제안이 들어와도 나는 가지런히 내 운명앞으로 밀쳐놓았다. 그가 아무 말하지 않으면 잠시 서성대다가 잊어버렸다. 이제 생각하면 그 역시 잘한 선택이었다. 방정맞은 내 마음을 누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핀 다음에 생각해도 결코 늦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잡아야하는 기회가 있다면, 아마 나를 기다려줄 것이다. 서두르지 않아 놓친 기회라면 그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고 잊으면 그뿐이다.

오늘 산을 오르면서 복잡한 심사를 가닥가닥 정리했다.  예전보다 좋아진 게 있다면 이런 것이다. 이것저것 닥친 일이 모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냥 마음 가는대로 하면  결과도 그게 나을 듯 싶다. 어깨에 잔뜩 힘주고 머리굴려봐야 예전처럼 왕따가 되거나 외통수로 몰리기 십상이다. 못난 듯 허허 웃으면 될 일이다. 물론 내 시간을 허투루 팔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러자면 남의 시간을 갖는데 욕심을 부려선 안될 것이다. 자꾸 내가 마리아 같아서 쑥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