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것은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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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최영미란 사람과 몇번 마주친 적이 있다

보기 드물게 훤칠하고 늘씬한 그는

내 기억속에 항상 청바지와 짙푸른 색깔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후로 십여년이 지난 후

신문에 난 그녀 사진의 크기를 보고 놀랐고

그녀가 시인이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몇권의 책을 더 사봤지만

아직도 나는 책 내용의 느낌과 예전 기억을 일치시키기 어렵다

그녀가 들으면 싸늘하게 웃겠지만

언제쯤이면 처음의 느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다

삭막했던 시절 밟혀 찌그러졌어도

푸른 청춘이 좋았다. 비장해서 좋았다.

이 시에는

비장했던 사랑의 추억이 흐릿하게나마

남아있다.

 


 

 

 

 

 

 

 

 

아깝게 동백이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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