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과장은 전형적인 자립형 인간, 즉 맡겨주면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굳이 출퇴근을 신경 쓸 것도 없고 가급적 관여를 안하는게 그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런 서과장이 요즘 극도의 통제를 받고 있다. 새상사 박부장은 부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파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서과장의 업무스타일은 용납될 수 없었다. 급기야 이런 일까지 발생했다.

"나의 새 상사(통제광)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 동 아파트를 샀다고 말했다. 비록 나는 자주 출장을 다니지만, 그가 나의 집 부근에 왔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아니 그가 불편하다. 잘 알려진 대로 통제형 관리자는 부하직원의 스케줄을 알고 싶어하고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싶어 한다. 그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 같다."

Q. 박부장 스타일의 관리방식을 특별히 못견디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A. 가장 큰 저의 장점은 창의력과 추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제만 정확하게 주어지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해내서 가장 빠르고 완벽하게 처리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동안 상사들께서 이런 저의 장점을 인정해주시고 편의를 봐주셨는데 박부장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Q. 박부장의 장점과 단점을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A. 자기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시하니까 적어도 결과에 대해선 책임을 지겠지요. 설사 실패해도 다른 사람 핑계를 댈 수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윗사람들에게 저희 부서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즉시 보고할 수 있어서 지원을 받기가 쉽다는 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속도는 정말 느려터집니다. 개인의 크리에이티브도 거의 인정이 안되고, 마치 군대처럼 움직이게 될 겁니다.

Q. 그분이 옆동으로 이사오실 모양인데 그러면 좀 친해지지 않을까요?

A. 저는 누가 제 사생활에 간섭하는게 딱 질색입니다. 보나마나 박부장은 툭하면 전화를 걸어서 뭐하느냐고 묻고 집으로 오라고 하거나 집앞에서 맥주나 한잔 하자며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을 겁니다. 그러면 거절도 못하고 아주 피곤하겠지요. 서로 코드가 맞는다면야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Q. 박부장하고 회사에서나 직장에서나 잘 지내는게 좋겠지요? 어떻게 하면 두 사람 모두 잘 지낼 수 있을까요?

A. 물론 좋은게 좋은 거 아닙니까? 아마 박부장도 그걸 원하고 있긴 할겁니다. 자기 방식을 따라줄 것을 바라고 있겠지만.

Q. 당신이 들어줄 수 있는 것과 죽어도 양보 못하는 것을 나눠보십시오.

A. 이를테면 현재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고하는 것은 신경만 쓰면 가능할 거구요, 출퇴근시간도 지키는게 원칙이니까 맞춰출 수 있겠고, 기안결재를 상세히 하라는 것도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죽어도 싫은 것은 이를테면 너 지금 어디있느냐, 누구 만나고 있느냐, 왜 안들어오느냐 그일은 왜 그렇게 하고 있느냐 같은 잔소리와 참견입니다. 박부장은 제가 아무리 싫어해도 할 겁니다. 

Q. 박부장은 자기 관리 방식에 대단한 확신을 갖고 있나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A. 부하직원들의 자율성을 대체로 못믿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미리 대비하려고 노력하지요. 더구나 이번 이사진급때문에 더 확실하게 관리하려고 할 겁니다.

Q. 그렇다면 박부장의 우려를 해소시킬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해서 누구보다 정확하게 실천한다면 서과장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A. 딴은 그렇군요. 매일 정해진 양식에 맞춰 업무보고를 차질없이 해주면, 솔직히 저도 업무가 정리가 되서 편합니다. 그동안은 귀찮아서 안했는데 가끔 상사들도 불만스러워 했고 저도 하는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봐도 문제가 될만한 행동, 이를테면 무단 지각을 한다든가, 업무시간중에 개인행동을 한다든가해서 매니저가 불신하게 만들면 안되겠지요.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그때그때 보고하는 습관을 들이겠습니다. 어쩌겠어요. 맞춰줘야지.

Q. 혹시 서과장님이 가장 필요한 관리자는 어떤 유형인지요?

A. 혼자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가끔 일이 삼천포로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 기획한대로 되지 않고 엉뚱한 결론이 나는 경우가 있지요. 그리고 저같은 유형은 아홉번 잘하다가 한번 실수하면 그것 때문에 욕을 많이 먹게 됩니다. 제 일에 간섭은 최대한 자제해도 책임은 같이 질 수 있는 의리파를 원합니다.

Q. 의외로 꼼꼼한 매니저가 필요하시군요. 프로젝트의 진행을 모니터링해주고 적극적으로 책임질 의사가 있는 매니저 말입니다. 박부장님이 코드만 맞는다면 좋은 궁합이 될 것 같은데.

A. 잘만 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개인감정 같은 건 없으니까.

Q. 집도 가까운데 한번 초대를 하세요. 대개 남의 집에 초대받으면 말도 조심하게 되고 주인에 대한 배려와 덕담부터 하니까 비록 상사라 해도 그날은 서과장님이 대화를 주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서과장님이 매사에 딱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것. 그렇지만 불필요한 통제는 매우 싫어한다는 것. 박부장에게 오히려 부탁할 일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세요. 특히 맨 뒤의 건은 박부장이 만날 때마다 부채의식을 갖게 되니까 적당히 활용하시면 좋겠지요.

A. 이사오는 걸 싫어만 했는데 어차피 한번은 초대해야하니까 곧바로 기회를 만들어야 겠군요. 일방 통제만 받지말고 서로 부담과 도움을 주고 받는 교감의 관계로 만들어라.  이 얘기 아닌가요. 그런데 그렇게 해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어떻하지요? 즉 친해지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통제만 하려 들면 말입니다. 그러면 못참을 것 같은데.

Q. 박부장 같은 흔한 매니저와의 문제도 못풀면서 다른 일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부서나 직장에 가면 언제나 맘에 드는 상사만 만나란 법 있습니까?

A. 맞습니다. 갈등이 생겨 좋을 건 없지요. 박부장도 제가 오래 꾸준하게 실천하면 믿게 될 겁니다. 때론 지나치다 싶어도 일단은 그냥 따라주고 나중에 기회봐서 시정요청을 하는게 순서일 겁니다. 

Q. 잘 생각하셨습니다. 오늘 나눈 얘기 정리해주십시오.

A. 안맞는다 선입관이 들면 공연히 서먹해지고 오해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새 상사로 오신 박부장에 대해서도 만나 얘기도 안해보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따져보니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장점들을 많이 갖고 계신 분이던데 말입니다. 우선 박부장이 요구하는 사항중에 기꺼이, 반드시 해야할 일부터 빼놓지 않고 할 계획입니다. 신뢰를 갖게 만드는 거죠. 자세한 제 요망사항은 나중에 집에 초대해서 부드럽게 전달해볼 작정이구요.  

 Q.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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