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P씨는 우울하다. 자신은 건축을 최고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고객이 존재하는 한 좌절과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갈수록 절감하고 있다. 그는 건축에 무지한 고객들이 자기 설계에 이러쿵저러쿵 말도 안되는 얘길 늘어놓는게 못마땅하다. 그들이 적반하장격으로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데는 기가 막힐 뿐이다.
"나는 항상 건축가가 된 것을 좋아했다. 나는 새로운 건물을 설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고객에게 나의 설계도를 프리젠테이션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나는 항상 일단 설계를 시작하면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전체 설계를 마친다. 하지만 고객과 함께 검토할 때 설계가 변경되거나 뜯어고치는 일이 생긴다. 나는 무엇이 가장 효과가 있을지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할 것 같지는 않다. 고객들은 나의 접근 방법이 부분적으로 낡은 스킬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들이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Q. 멋진 고객을 만나보신 적 있나요? 아니면 어디 이런 고객 없나 생각해두신 건 없습니까?
A. 건축가에게 최고의 고객은 건축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건축가의 설계에 공감해줄 수 있는 고객입니다. 즉 건축가에게 믿고 맡기되 그 작업의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분이지요. 물론 그 설계를 사줄 수 있는 재력이 전제되지만요.
Q. 건축가에 대한 신뢰와 건축에 대한 안목과 재력까지. 정말 그런 고객은 몇 안될 것 같군요. 보통 만나는 고객들이 요구하거나 지적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A. 뭐니뭐니해도 가격대비 효과인 것 같아요. 겉으로는 이런게 문제다 저렇게 하면 어떠냐 하지만 나중에 결론은 가격대비 효과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최선을 선택하지 못하고 차선이나 차악을 고르게 되지요. 그런게 아니면 자신의 독특한 취향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축가는 여러가지 상황변수들을 고려하는데 반해 고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나 어디서 본 것을 고집하곤 합니다. 심지어 전혀 다른 두가지를 절충하려는 경우도 많습니다.
Q. 일반적으로 전문가와 고객들 사이에서 종종 발생하는 갈등인 것 같습니다만. 건축에서 이런 문제가 특별히 심각한 이유가 있는지요?
A. 건축은 과학이며 예술이고 또 생활입니다. 아닌 것을 선택했을 때 그 영향은 매우 포괄적이며 아주 오래갑니다. 잘못 지어진 집에서 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랬을 때 고객들은 건축가의 잘못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어떤 건축가도 그렇게 짓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당장 고객들의 변덕에 맞춰 주면 좋다고 하겠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고객 책임이라고 발뺌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게 제 지론입니다.
Q. 고객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건축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객들은 왜 자기를 생각해주는 P선생님께 불만을 갖고 있는지 이해가 안되는데요.
A.아마 고객들은 제가 예술가연하는게 아닌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객은 제쳐두고 자기 예술혼만 고집한다는 거죠. 제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그 벽이 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저도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하게 되지요. 주위 사람들은 '너무 고객에게 잘난 척 하는 거 아니냐''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봐라' 그러지만 속사정은 좀 다릅니다.
Q. 그렇군요. 선생님께선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을 고객들이 좀 오해없이 받아들여 주길 바라시는 거군요. 설계작업을 혼자 집중적으로 하신다고 했는데 고객 의견을 들을 기회는 열어주시나요?
A. 사실 그런 작업방식은 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구상하면 실체가 완성될 때까지 멈추질 못합니다. 중간에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그 결과물에 대해 저도 고집을 갖게 되고, 고객들은 자기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니까 더 민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구상을 하고 설계가 완성되기까지 수시로 고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Q. 고객들도 전문가가 아니니까 정확한 시점에 정확하게 문제제기를 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구상에 대해선 좋다고 하다가 설계가 끝날 무렵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있을텐데.
A. 맞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문제때문에 고객과 큰 갈등을 빚은 적도 있었지요. 그래서 고객의 요구를 일찌감치 간파해서 수시로 확인하는게 상책입니다. 경험이 없는 고객들에겐 건축과정에 이런 점들을 중점적으로 보시라고 먼저 설명도 드립니다.
Q. 작업과정에 고객들의 주요 관심사인 가격대비 효과나 독특한 취향을 감안해서 설명해준다면 정말 좋겠군요. 이렇게 고객중심 마인드를 갖고 대하지만 또다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없습니까?
A. 주의는 하겠지만 솔직히 아직은 고객마인드와 제 주관을 이상적으로 조화시키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의식중에 제 고집을 부린다거나 고객을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Q. 그런 점은 어떻게 극복하시겠습니까.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
A. 생각해보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은 외통수에 몰렸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율할 시간과 여유가 충분하면 그럴 일도 없겠지요. 작업에 들어간 후에 고치는 것은 여러가지로 힘드니까 사전작업을 충실히 하는게 좋겠습니다. 고객이 시간을 낼 수 있다면 함께 투어를 하는 것도 의견을 조화시키는데 좋을 것 같습니다. 함께 돌아다니면서 인간적으로도 친해지고, 그들의 원하는게 어떤 것이라는 점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시간내기가 어렵다면 자료 사진을 많이 준비해서 고객의 취향을 반영하도록 사전에 준비해야겠지요. 건축비에 대해서도 충분히 자료를 준비해서 고객이 적정한 요구를 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Q. 고객들이 다 몰리겠는걸요.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A. 코칭받기 전에는 제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왜 나만 싫어하는 건지 혹시 대인관계에 장애가 있는게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코칭을 받고 나니 고객을 생각하는 내 마음을 정확하게 고객이 받아들이기 좋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객들은 비용을 생각하고 저마다 취향이 다릅니다. 고객중심이라면 그들의 관점에서 충분히 정보를 주고,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는 사전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작업중에도 고객의 의견을 묻는 기회를 자주 만들고, 그 이전에 준비단계에서 충분한 사전교감을 할 계획입니다.
Q. 저역시 이런 경우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대충 선입관을 갖는데 P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문제의 핵심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