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의 책을 읽고나서 박영석의 책을 대하니 책장이 바람에 날리듯 넘어간다. 사실 두 사람은 당사자들이야 인정하든 안하든 한동안 경쟁관계에 있었다. 엄씨가 히말라야 14좌 도전의 막바지에 있을 때, 박씨는 그보다 약간 뒤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박씨는 아니더라도 그의 주변에서는 경쟁의식이 강했고 그렇잖아도 분주한 박씨의 발길을 재촉했던 게 사실이다.

두사람은 비슷한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면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처음 에베레스트 등정에서 똑같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는 신고식을 치른 것이나, 곧바로 재도전을 위해 에베레스트로 숨가쁘게 달려온 것도 그렇다.  박씨 역시 수많은 동료들과 세르파들을 히말라야에 묻고왔다. 죽음과 코를 맞댄 모험의 세월을 보내면서 목표보다 과정의 완전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1%의 가능성에 도전하면서도 운명을 넉넉히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된 것도 비슷하다. 

그는 지금 이미 히말라야 14좌 돌파를 끝내고 7대륙최고봉까지 섭렵했으며 마지막으로 3대극점 도전의 불꽃을 태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북극점 도전기는 여느 히말라야 등정 못지않게 위험천만하고 흥미진진하다. 산은 오르는 과정에서 열대, 온대, 한대를 거쳐 바위와 얼음, 눈을 만난다. 정상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잠시 베이스캠프에서 휴식을 취할 수있다. 그러다가 마지막 8천미터 이상의 도전에 하루 또는 이틀을 집중한다. 그러나 북극은 영판 다르다. 무려 50일의 빙하를 가로지르는 대장정인 것이다. 영하 40~50도로 내려꽂히는 혹한에 그대로 노출된 채 꽁꽁 얼어붙은 몸으로 끝없이 전진해야 한다. 아무리 깎아지른 빙벽도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보면 더이상 올라갈데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북극은 쏟아지는 눈보라, 그리고 닿기만 하면 치명적 동상에 걸리게 되는 리드, 그리고 끝없이 나락으로 빠지는 악마의 입 크레바스를 뚫고 가야한다.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전진했는데 다음날 위치추적위성을 통해 확인해보면 외려 뒤로 물러선 것으로 나타나기 일쑤다. 흘러가는 유빙위를 아무리 걸어봐야 조류를 타고 유빙이 저만치 뒤로 흘러간다면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시간이 사람 편을 드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않다. 겨울은 더욱 깊어가고, 리드는 점점 더 벌어지며, 귀환비행기는 뜰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결국 북위 86도50분에서 탐험대는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했다. 방송사와 신문사, 수많은 후원업체와 독지가들의 바램을 저버렸다는 자책감때문에 여기서 이대로 물러서기는 정말 고통스러운 결단이었을 것이다.  수십명에 달하는 탐험대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목표를 눈앞에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때때로 돌아설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 손에 잡힐 듯 한 지점에서 실패를 인정하고 포기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아량과 과정에 충실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생각하는 마음공부가 쌓여야 그 공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때 수백억의 돈이 눈앞에 쌓여있다가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중에는 홧병이 나서 망신을 하는 경우도 있고, 돈과 인생에 대한 달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에선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모양인데, 사실은 99%의 성공을 눈앞에 두고 뒤돌아서는 용기가 살다보면 훨씬 더 쓸모있다.

그는 이따끔 만취해서 이렇게 말한단다. "내가 산에 오르면서 보낸 아까운 목숨이 일곱이야, 내가 산에 오를 때면 애들이 사각사각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함께 걷는 것 같아, 나는 이들을 위해서도 더 할 일이 많아. 남아있는 자들, 후세들을 위해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을 해야돼." 그에게는 죽음을 함께한 7인의 동반자들이 있다. 그들은 박영석이 어디를 가든 묵묵히 뒤를 따른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외로와도 그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박영석은 한눈팔지 않고, 눈 속임하지 않고 길을 걸었으리라. 마귀라도 누군가 곁에 있어야 도를 깨칠 수 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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