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04. 2.16~20)는 평생 가장 많은 영화를 보았던 한 주로 기록될 것이다. 닷새동안 열편 정도의 비디오(DVD)를 보았으니 말이다. 어느날은 무려 세 편을 본 적도 있으니 무슨 곡절이 있지않고서야 그런 무작시런 짓을 할 리 없음을 가까운 분들은 능히 짐작하리라. 

잠깐 내가 눈으로 꿀떡 삼켜버린 영화 메뉴를 상기해본다. 빌리 엘리어트, 인생은 아름다워, 드럼라인, 로렌조오일, 록키, 쥬라기공원3, 미세스 다웃파이어, 오즈의 마법사,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콘택트, 파인딩 포레스터,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면면히 만만찮은 영화들이다. 가족영화 아니면 우정, 꿈, 도전, 사랑에 관한 매우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들이다. 죄다 추천영화로 지목될 만큼 작품성과 주제의식이 뛰어난 작품들이지만 민망하게도 나의 비디오 취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출발비디오여행>같은 영화 소개 프로그램의 덕으로 스토리야 뜨르르 꿰고 있지만 내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그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공부잘하는 아이들의 습관> 12회차 교육프로그램중에서 8차시까지 회당 두세개의 영화자료가 등장하는데 한 편당 10~15분 상당으로 압축하는 일이 맡겨졌다. 교육용이므로 예고편처럼 날라리 편집을 해선 못쓴다. 나름대로 줄거리가 잡혀야하고, 감동도 주어야 하며 메시지도 분명히 전달돼야한다. 두시간짜리 영화를 냄비에 넣고 사정없이 졸이되, 탄 내가 나거나 모양이 구겨지면 안된다. 그러자면 타임코드를 정신없이 잘게 잘라서 연결해야 한다. 

소파에 앉아서 땅콩을 오독오독 씹으며 느긋하게 보긴 애전에 틀린 노릇이다. TV에 코를 바짝 대고 두 눈은 화면과 액정시계를 번갈아 쳐다봐야 하니 영락없는 이경규 눈깔이다. 한편을 처음 볼 때는 대충 타임코드를 딴다. 두번째는 일이초를 면도칼로 저미듯이 비디오를 난도질친다. 그리고 나서 잊어먹을까봐 얼른 컴퓨터에 타임코드를 적고 나래이션을 박는다. 그렇게 열몇편을 본 것이다. 

이번 작업은 내게 매우 유익했다. 우선 심란하던 차에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일에 푹 빠져 있었다. 둘째, 어떤 책에서(선물이란 책) 당면한 한가지 일에 집중해야 성공한다던데 지난 날 능력도 없는 주제에 너무 많은 일을 펼쳐놓고 동분서주한 탓에 이 모양이 됐나 싶어 자책하고 있던 차에 제대로 집중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이렇게 한가지 패턴의 일을 일주일동안이나 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세째, 영화 하나를 진중하게 본 적이 없었는데 무려 열두세편을 눈이 빠지게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까지 재가면서 보게 됐으니 대단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네째,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이런 나의 노동이 학동들에게 우정과 사랑, 꿈과 실천의 중요성을 감동적으로 환기시키는 교육물로 쓰인다니. 그 정도의 노고로 이만한 업적을 남겨주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이문을 크게 남긴 장사꾼처럼 가슴이 뿌듯하다.

영화<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는 지난주에 주마등처럼 지나간 영화가운데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새삼스럽게 줄거리를 소개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웬만한 영화포털을 검색해보면 하나같이 영화 줄거리를 절반만 소개하고 끝이다. 독자에 대한 상당한 배려임에 분명하다. 나같으면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겠구마는. 여하간 어떻게 신세 좀 질 요량으로 뒤지다 헛물만 켰다.) 반성하건데 나는 이른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착한 일을 해본 기억이 없다. 전철에서 껌 한통 사본 적 없고, 구세군 냄비에 돈 천원을 넣어본 일이 없다. 소년소녀 가장돕기 모금도 자발적으로 해 보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서 한조각의 마음조차 써 본 일이 없다는 뜻이다.

내 마음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마는, 솔직히 그다지 악질은 아닌 것 같다. 천성이 물러터진 탓에 냉정해지려고 애를 쓴다. 사람들이 나보고 냉정하다고 하는 걸 보면 후천적인 노력이 제법 효과를 본 모양이다. 그렇다고 착하다는 얘긴 절대 아니다. 착하려면 적어도 일관돼야 한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일관된 관심을 보여야 하며, 일관되게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할 것없이 일관되게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 그렇길래 착한 일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평생을 남몰래 선행을 베풀어온 분들을 보면 옷깃을 여미게 된다. 전재산을 아낌없이 장학기금으로 기부하고 다시 막노동을 시작하는 거친 손을 보면 부끄러워진다. 

한사람이 세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자는 소년의 <도움주기> 캠페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엄청난 연쇄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즉 여섯명만 거치면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케빈베이컨의 이론>에 따르면 이 캠페인은 아주 짧은 시간에 전세계 사람들을 선행의 고리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훌륭함은 단 세명의 사람에게 착한 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를 간파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하물며 소년은 자기의 생명까지 바쳐야 했다. 

나는 세상과 어떻게 교류하고 있는가. 내가 있다는 것이 이 세계에 어떤 의미인가. 가까운 사람들에게라도 무슨 의미를 주고 있기는 한 것인가. 허황되게 이름 석자 남겨보겠다고 설쳐댔던 자국이 깊어 앞으로는 일삼아 그 이름을 지우고 다녀야할 판이다. 아이들에겐 이렇게 가르쳐야겠다. 네가 세상에 무슨 선행을 하리라 뜻과 계산이 서지 않은 채 섣불리 이름을 남기려다간 짧은 인생 영광은 짧고 후회만 길게 남으리라.

친구는 우스개로 내게 '세상에 폐나 끼치지 말라'고 했다. 그말이 옳다. 난세에 사업한다고 몫돈 깨먹지 말고 가만히 앉아있는게 돈 버는 일이라 한다. 한 평생 자연이 감당 못할 오염물질이나 잔뜩 내놓고, 그보다 더한 악덕을 일삼으며(대부분 자기는 잘하는 일이랍시고 하는 짓이다), 사람들이 성악설을 믿게끔하는데 톡톡히 일조하는, 그런 삶을 살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조심해야겠다. 몰라서 그랬다는 말이 통하는 나이가 지났다. 이제부터 그런 말을 하면 몇가지 죄가 더 추가될 뿐이다. 골방문을 걸어 잠그고 앉았어도 죄를 짓게 되니 이도저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저 부지런히 착한 생각과 착한 행동을 이어가는 것이 궁여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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