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은 후 처음인 듯 하다. 분명 그 책을 괜찮게 읽었음에도 작가의 소설을 다시 찾아 읽지  않았던 이유는 소설의 지독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작가 신경숙의 소설을 손에 잡으면 공기 조차도 멈추는 느낌이 든다. 모든 상황이 정지되고 감정과 말과 눈빛만 움직이는 듯한 느낌. 그 느낌이 강렬해서 숨이 턱턱막히고 한동안 힘이 들었던 것 같아 일부러 피했다. 힘드니 다시 읽지 말자했던 작가 신경숙의 소설을 책 욕심에 냉큼 받아들고 와서는 읽어야 할지 잠깐 망설였었다.

결국 읽었으나, 또 힘들다. 아픔과 외로움이 지뢰밭처럼 깔려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수차례 감정의 지뢰를 밟고 허우적거리게 된다. 왜 경험하지도 않았던 일 때문에 힘들까 싶다가도 책에 몰입하다보면 이게 내 이야긴지, 소설가의 이야긴지, 주인공의 이야긴지도 모르게 되어버린다. [종소리]를 읽어보니, 살 붙이고 살아도 결국에는 타인인 남편과의 묘한 관계가 손에 잡힐 듯 느껴지다가, 각자의 아픔이 남편의 '음식을 먹을 수 없으나 먹기 시작하면 나을 수 있는' 병으로 인해 아내가 남편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풀어지는 모습이 씁쓸하게 안스러웠다. 누군가 마음을 털어놓는게 이렇게 어렵나 싶기도 했다.  [우물을 들여다보다]를 보면서는, 성격도 이상하다 생각했다. 이사 올 사람에게 귀신 나오는 방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이가 없다. 뭐, 지지리 궁상맞은 사연은 알겠으나, 이사 온 사람은 뭐가 되는지. 혹여나 이사가서 이런 편지 받을까 무섭다. ㅡㅡ; 
[물 속의 사원]은 의지할 곳은 없는 두 여자의 만남에서 이어지는 조용한 우정과 보살핌이 애뜻했으나, 느닷없는 악어의 등장과 방화가 참으로 통쾌했다. 그리고 노래갔다는 생각을 했다. [달의 물]은 뭐.. [혼자 간 사람]은 친구에게 이렇게 이상하게 통화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지만 이런 전화 받고 싶지 않아서 패스!  그리고, [부석사]. 제목은 [부석사]이나 절대로 부석사에 도착하지 못하는 여행기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읽고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이가 들어가니 대놓고 치사하게 살아지기도 하지만, 그 치사함들에 상처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 인지라 가해자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 모습이 뒤돌아 봐졌다. 그렇다고 나에게 피해자의 모습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그 두 경험이 충돌하는 경험을 겪었다. 소설 속 '그'와 '그녀'는 과연 '그'의 옛집터에 가게 되려나? 못 갔으면 좋겠다.

난 작가가 등장인물의 이름을 알파벳으로 지칭하거나 인칭대명사를 쓰는게 참으로 좋다. 어려운 이름 외울 필요도 없어서 좋다. 책은 편집도 평범하고 무게도 평범해서 휴대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감정때문에 자꾸 미간에 굵은 주름이 생기게 되니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다니기는 부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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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중학생
타무라 히로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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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학생이 홈리스가 되었다라는 설정에 끌려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설 속의 내용이 사실이고 일본의 타무라 히로시라는 개그맨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한다. 그 사실을 소설을 읽는 중반에야 알았다. 미리 알고 봤으면 더 재밌었으려나?  다 읽고나니 험한 상황에서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자신으로 성장했음을 말하며 주변 사람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인 듯 느껴진다.

자전적인 소설이라도 재미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딱, 홈리스 상태일때까지 재밌었다. 그 후로는 힘이 쭉쭉빠지는 짧은 일기를 읽는 느낌인데, 이 개그맨을 알지도 못하는데다가 상황에 맞지 않는 불평과 누나와 형의 군더더기 이상의 장점이 느껴지지 않아서 조금은 짜증스러웠다. 책이 가벼워보이고 글자도 시원시원하게 커서 가볍게 읽겠다고 들고왔건만, 재미도 감동도 그냥 그랬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는 아버지의 행방은 어떻게 된 걸까? 어린 아이들을 두고 "해산"을 외친 강심장의 아버지가 어디서 뭘하면서 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끝까지 무책임하게 살았다면 제대로 빌어먹지도 못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쪽 양장 표지에는 타무라 히로시가 공원의 미끄럼틀 위에 서 있는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인상적이었다. 양장표지를 열면 안쪽은 그 미끄럼틀 위만 찍어 놓았는데, 마치 날아가려는 우주선 같이 느껴진다. 의도일까? 뒷쪽에는 누워있던 장소가 찍혀있는데 날이 맑아서 아늑해 보인다. 양장에 있어야 할 책갈피 끈이 잘 붙어 있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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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권윤주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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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제가 꼭 그랬다.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나를 지워버리고 싶은 날이었다. 사람 때문에 생긴 상처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쓸려서 아물만 하면 벌어지곤한다. 그 상처가 쓰라려서 머리가 다 아프고 심장이 갑갑하게 조였다. 길지않게 사는 동안 하느라고 하고 살았는데, 뒤돌아보면 허무한 일 뿐이다. 삶이 왜 이리 편치가 않을까? 당분간 사람들이 날 기억하지도 않고 내 과거 일에 관심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지난 일에 대한 충고만 늘어 놓는 것도 이제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친구도 다 필요없이 혼자 있는게 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도서관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냥 스노우켓 새 책이 나왔구나 했다. 제목 처럼 스노우켓 손에 들려있는 자신만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너무나 탐이 났다. 사라져야할 때를 알 수 있다면, 지우개로 나를 지우고 사라지면 누군가 쓸어다가 버리는 것으로 작별을 고하는 깔끔한 일. 멋지다. 그림 중에 오지랖, 친구란/적이란/엄마란, 구석, 우리는 왜 침대 위에서 일을 할 수 없는가는 너무 마음에 들었고 지우개의 다양한 활용에 대한 만화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책은 두툼한 양장으로 양장 앞쪽에 두툼한 종이가 한장 더 붙어 있다. 열릴까 싶어 몇번 시도해봤는데, 단단하게 붙어 있는 표지였다. 스타일은 여전하고 그림체도 여전하다. 읽으려고 작정하면 금방 읽는 책에 책갈피 끈이 있다. 책갈피 끈이 꼭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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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퍼마켓에 탐닉한다 작은 탐닉 시리즈 19
모리이 유카 지음, 노애선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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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시리즈를 보면서 참으로 쓸데 없는 것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들을 탐닉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그 탐닉의 일이 직업이 된 사람도 있었다. 부러울 따름이다. 취향을 갖는 일, 탐닉하고 몰입하는 일, 부럽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오해를 했다. 일본 작가이니 당연히 일본 슈퍼마켓 이야기일테고 일본 슈퍼마켓을 방문했다가 뭔지 몰라서 살 수 없었던 수 많은 물건들의 재미난 해답이 이 책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영국, 프랑스, 스웨덴, 독일의 슈퍼마켓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곳들의 오리지널 상품에 대한 이야기부터 오래된 역사, 가격과 감각의 십자그래프(맞나?)는 꽤 인상적이었다. 읽기 시작할 때는 관심도 없었던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절주절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끝까지 읽게되려나 생각했는데, 중반을 넘어갈수록 이 책에 더 많은 이야기가 없다는게 아쉬웠다. 여행지로써의 영국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 책을 읽고는 이 곳에 언급된 모든 슈퍼마켓에 방문해 보고 싶은 생각을 했다.

올 컬러에 재미난 구성으로 되어 있으나, 중간중간 그림과 글의 위치가 조금은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는 글이 사진에 묻히기도 하고 편집상의 잘못으로 글 위에 사진이 얹어져 있기도 하다. 잘 찾아서 보면 문제가 없지만 잘 만들어 놓고 사소한 실수로 망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약간 들게한다.

읽은, 작은 탐닉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 나는 아이디어 물건에 탐닉한다 / 나는 와인의 눈물에 탐닉한다 / 나는 소소한 일상에 탐닉한다 / 나는 아프리카에 탐닉한다 / 나는 부엌에 탐닉한다 /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 / 나는 바닥에 탐닉한다 / 나는 맛있는 파티에 탐닉한다 / 나는 티타임에 탐닉한다 / 나는 오후에 탐닉한다 / 나는 바늘에 탐닉한다 / 나는 팝업북에 탐닉한다 / 나는 부엉이에 탐닉한다 / 나는 허브에 탐닉한다 /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 나는 편의점에 탐닉한다 / 나는 우체국에 탐닉한다 / 나는 슈퍼마켓에 탐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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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수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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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든 생각 

'이 뜬 구름 잡는 이야기는 뭔지...' 

일곱번째날 사랑을 완성하는 이 이야기는 영 안읽혔다. 유리잔을 깨는 장면이 감명 깊었다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유리잔 깨는 장면 만을 기다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느닷없는 초대에 이어진 광년이 같은 여자와의 접촉, 그리고 이어지는 돌발적인 여행, 그리고 사랑고백과 갈등, 기적과 신념과 사랑과 일상의 격돌.

유리잔을 깨는 의도적인 일탈을 경험해본 사람에게 이 소설이 과연 얼마나 큰 감격을 줄지 모르겠다. 내가 이 소설에서 읽어낸 사랑은 저자가 깊고 큰 사랑이라 말한다고 해도 즉흥적이다 싶다. 소설 속 그에게는 오래 전에 시작된 사랑이고 사랑의 말을 건내기 위해 내야했던 많은 용기들이 여주인공에게는 단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속전속결로 주어졌다. 길에서 이루어지는 이 사랑의 여정이 자신을 버리고 사랑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며 스스로를 깨고 나아가 더 큰 것을 얻는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재미는 없다.

책을 읽으면서, 사랑과는 상관없는 내 어린시절 한 장면이 생각났다. 천주교를 믿는 우리집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고, 성당에도 성모 마리아상이 있어 나에게 성모 마리아는 낯설지 않았다. 어머니라는 이름답게 온화한 표정이고 성모상 주위에는 늘상 꽃이 피어있어 어린 마음을 풀 때 없을 때는 꽤 괜찮은 피난처였다. 정작 믿었던 하느님보다 가깝게 느꼈지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천주교는 마리아라는 여자를 믿는 교회라 이단이니 지옥에나 가라며 나에게 돌을 던졌다. 그 녀석 뒤에는 집사인지 권사인지 지금 내 나이보다 어린 놈이 아이들에게 이단에 대해 설파하며 그 아이들을 충동질하고 있는 터라 공격한번 제대로 못하고 물러나야했었다. 나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었다. 내가 예수쟁이를 싫어하게 된 최초의 경험인데, 신의 여성적인 면을 이야기하는 이 사랑소설을 읽으면서 그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났다. 더불어, 어릴 때 당했던 분함이 뭉게뭉게 올라오며, 오늘 아침 오만한 얼굴로 지하철에서 선교하던 아줌마 얼굴이 기분나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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