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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권윤주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가 꼭 그랬다.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나를 지워버리고 싶은 날이었다. 사람 때문에 생긴 상처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쓸려서 아물만 하면 벌어지곤한다. 그 상처가 쓰라려서 머리가 다 아프고 심장이 갑갑하게 조였다. 길지않게 사는 동안 하느라고 하고 살았는데, 뒤돌아보면 허무한 일 뿐이다. 삶이 왜 이리 편치가 않을까? 당분간 사람들이 날 기억하지도 않고 내 과거 일에 관심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지난 일에 대한 충고만 늘어 놓는 것도 이제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친구도 다 필요없이 혼자 있는게 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도서관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냥 스노우켓 새 책이 나왔구나 했다. 제목 처럼 스노우켓 손에 들려있는 자신만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너무나 탐이 났다. 사라져야할 때를 알 수 있다면, 지우개로 나를 지우고 사라지면 누군가 쓸어다가 버리는 것으로 작별을 고하는 깔끔한 일. 멋지다. 그림 중에 오지랖, 친구란/적이란/엄마란, 구석, 우리는 왜 침대 위에서 일을 할 수 없는가는 너무 마음에 들었고 지우개의 다양한 활용에 대한 만화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책은 두툼한 양장으로 양장 앞쪽에 두툼한 종이가 한장 더 붙어 있다. 열릴까 싶어 몇번 시도해봤는데, 단단하게 붙어 있는 표지였다. 스타일은 여전하고 그림체도 여전하다. 읽으려고 작정하면 금방 읽는 책에 책갈피 끈이 있다. 책갈피 끈이 꼭 필요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