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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호랑이가 눈을 부라리며 걸어 나올 듯한 표지는 강렬하다. [그림 속에 노닐다]에서 만난 적이 있는 호랑이로 그림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그 책을 읽기 전까지 안면이 있는 듯 없는 듯한 호랑이었다. 이 책에서 자세히 들여다 본 호랑이 그림은 몸에 털이 곤두서는 듯 깜짝 놀랄만 했다. 분명 그림인데, 털이 진짜 털인 호랑이를 만나다니! 어떻게 그렸을지 놀라울 따름이다. 각기 다른 색으로 털을 그려넣은 호랑이는 아름다운 존재감을 발산했다. 스케치 하겠다고 책 사두고 몇줄 그어 놓고도 너무 어색해서 얼굴 붉히는 나로써는 엄두도 못낼 선들이다. 옛사람이 후 불면 바람에 따라 흔들릴 듯한 털그림을 만들어내다니, 그렇게 감탄했던 픽사의 디지털로 그려낸 휘날리는 머리카락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놀라운 그림이었다!
김홍도의 《단원풍속첩》 중 <씨름>은 너무나 많이 봐서 눈에 익을대로 익은 그림이다. 하지만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본 일이 없기에 그림 속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리도 많은 표정으로, 각기 처한 상황을 재미나게 표현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눈에 익었다고 말은 했지만 사람 몇을 빼도 전혀 몰랐을 것 같다. 놀라웠다. 평면이었던 그림이 설명을 읽은 후에 입체로 보이는 경험을 했다. 씨름꾼의 옷주름이 움직이는 듯 하다. 그뿐인가 <무동>의 그림 풀이를 읽다보니, 삼현육각(三鉉六角) 풍류와 어우러진 소년의 춤사위는 날아갈 듯 하다. <기로세련계도>의 삼현육각의 배치와 비교해보니, <무동>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놓은 화면은 이리도 그림을 살리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무슨 금강산을 이리도 성의없이 단순하게 그렸나 싶었던 정선의 <금강전도>가 설명을 읽고 나니 꿈틀거리면서 태극의 형상으로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의 강연을 책으로 펴낸 것이 이 책이다. 강연에서도 그랬겠지만, 책으로 옮기면서 그림에 낯선 사람들이 잘 못찾을까봐 확대된 그림을 글과 함께 배치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그림 위에 구도를 선으로 표현하여 곁들여 놓아, 그림에 지식이 없는 내 눈에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눈높이를 낮춘 놀라운 설명에 놀라운 배려다.
분명 알고 있었고 봤던 그림인데, 천천히 구석구석 나눠보고 나니 이렇게 그림이 다르다. 이 책에 나온 그림을 하나하나 되새김질 하며 감탄해 본다. 옛날 그림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우리 옛모습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알아 볼 눈이 없어서였다는 걸 이 책을 보고 절실하게 느꼈다. 저자의 다정한 일깨움에 감동하며 책을 덮었다. 아래 감상 원칙을 지키며 우리 그림을 감상하러 가봐야겠다.
저자가 전하는 그림 감상의 원칙
첫째, 그림의 대각선 길이 1∼1.5배 거리에서
둘째,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셋째, 천천히
2003년도 올해의 책 후보에 이 책이 올라가 있었을 때, 나는 뭐했나 모르겠다. 아마도 콧방귀 뀌면서 '안봐' 했을 듯 하다. 검색해 보니, 간송미술관은 간혹 점심먹으러 가는 돼지불백집 근처 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