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 - 고택 송석헌과 노인 권헌조 이야기
권산 글.사진 / 반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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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신간 코너에 있는 책을 표지만 보고 들고 나왔다. 비가 오는 날 이런 두껍고 하얀표지의 양장 책이 비에 젖을까 싶어 손목으로 책을 감싸다 보니 손목 안쪽이 벌겋게 긁히고 간질간질 했다. 그렇게 힘겹게 들고온 책을 열어보니 글과 사진이 어우러진 사진집, 고택과 노인의 이야기다. 표지만 보고 빌렸음에도 깜짝 놀랄만큼 만족도가 높은 책이었다.

 

작가가 송석헌이라는 고택의 보수 전 마지막 모습을 촬영하러 봉하로 향한다. 영상 작업 중에 사진이 필요하단 요청 때문이었다. 작가는 짧은 시간에 서둘로 고택을 찍다가 노인의 걸음과 말씀에 매료된 듯 하다. 몇 번 들르지도 않았건만 고택 송석헌에서 노인 권헌조 노인을 만나 그 노인의 사진을 찍고 말씀을 듣고 바라봤으며, 돌아가시는 길까지 사진으로 책에 담았다. 그리고 제목과는 다르게 권헌조 조인은 권산 작가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나는 뒤에 나올 내용도 모르면서 100쪽 넘겨 읽으며 이미 목구멍이 시큰하고 눈이 달아 올라 사진과 글을 읽기가 힘들어졌다. 생면부지의 작가와 생면부지의 노인이 덤덤하게 사진과 글을 풀어내는데 그게 뭐가 서럽다고 이렇게 혼자 꺽꺽 거리나 싶었다.

 

새것을 싫어한 것은 아니지만 각별한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고 낡고 오래된 것을 추종하지는 않았지만 선호했다._10쪽

이 책 전체의 이야기가 위 문장에 스며있는 듯 했다. 노인의 이야기도 아니고 작가의 이야기도 아니고 다큐멘터리 PD의 취향을 이야기 하는 부분이었는데도 말이다. 삶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삶을 되밟아 가보지 않아도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이유로 그 짧은 만남이 이런 책으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고택을 덤덤하게 찍었다. 노인이 혼자 사는 고택이었는지라 깨끗하거나 정리된 느낌이 아니라 뭔가가 허물어가는 모습이었건만, 쓸쓸함 속에 온기가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특히나 흐트러짐 없이 글을 써내려가시는 권헌조 선생님의 모습과 카메라를 응시하는 시선, 그리고 병원에서의 모습이 대비되어 안타깝게 읽었다. 고택과 어르신은 한몸 같았다.

 

책 상태는,

사진집이다.  양장은 무겁지만 넘기기 쉽게 뒷면만 붙어 있다. 신경쓴 편집이 예쁘다. 글씨만 읽는다면 한시간도 안되어 다 읽겠지만, 무겁기도 하고 호흡을 두고 읽혔으면하니 조용하게 책상에 두고 읽는 것이 좋을 듯한 책이다.  다 읽고, 조용히 구입했다. KBS 스페셜도 찾아 볼 참이다. 잘 팔리지도 않을 것 같은 책을 곱게 만들어 세상에 내 놓은 출판사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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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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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세번째 읽는 듯 하다. 첫번째 읽을 때는 개츠비를 세상에서 제일 찌질한 남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두번째는 여행길에 친구의 책을 빌려 읽고 '읽을만하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메모도 남기지 않아 그 당시의 느낌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으나, 책은 책장에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는 다시 읽겠다고 생각한 듯 하다. 잊고 있던 '개츠비'는 영화가 개봉하면서 다시 기억의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나이 들어가는 '디카프리오'가 좋아지는 참이기도 해서, 영화를 예매해두었는데, 때마침 지인이 개츠비가 셔츠를 던지는 장면에 대해서 언급했다. 나는 그 장면이 기억이 나지 않았고, 최근 번역되어 출판된 [위대한 개츠비] 중에 그 장면을 아주 단편적으로 보고 데이지가 영국산 셔츠를 보고 우는 천박한 여자라고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데이지도 잘 기억나지 않아 내 시선으로 보고 싶어서 세 번째로 읽기 시작했다.

 

중서부와 동부, 1차 세계대전으로 군수품의 생산과 소모 대량 학살 끝에 경제적으로 부흥한 미국, 물질적인 부 속에 도덕성을 상실하고 타락해 가는 사람들, 풍요와 정신적 공황의 오묘한 짝, 대량 학살에서 이어진 부흥이라 그런지 참으로 위태로운데, 이런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재밌었다. 화자 '닉'의 시선을 통해 전해지는 개츠비의 이야기는 개츠비의 공허함을 그대로 전해준다. 부유하지만 가까이에서 마음 둘 사람 조차 없고, 간절하게 원하는 사랑도 자신이 데이지를 자체를 사랑하는 것인지 동경인지도 모호하다. 사랑의 대상인 데이지도 지극히 평범한 인간일 뿐이고, 더 나아가서는 인격적으로 완성되어 있지 못한 불행한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말하는 자신이 자신이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 이 끔찍한 결말은 왠지 좀 시원하다는 느낌마져 든다.

 

다 읽고 접으면서, 왜 데이지를 영국산 셔츠를 보고 우는 천박한 여자라고 단정적으로 생각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게 번역한 다른 번역본까지 읽어볼 열정은 없으니 상상만 해본다. 나는 이 소설의 모든 주인공이 허영에 울고, 허무에 울고, 사랑받지 못해서 운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노력은 하지만 방향성이 전혀 다르고, 마음은 있으되 서로 배려하지 않는다. 모두 울지만 마음을 내어주지 않아, 모두 슬프지만 적지 않게 천박했다. 화자인 '닉' 또한 마찮가지. 나이를 먹고 바라보게 되는 이 소설의 맛은 전과 다르다는 생각이다. 또 후에 읽으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위로하며 누구에게 위로받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책 상태는, 한손으로 들고 읽을만한 사이즈와 가벼운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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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하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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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키를 잘 모른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수업이었던가? '상실의 시대'를 읽고 독후감을 쓰는 숙제가 있어서 그때 하루키를 접한 것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이 작가에 대해서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후로 몇년 후에 다시한번 시도해 보았으나 그다지 재미를 느끼거나 감동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상실의 시대'가 그나마 하루키의 소설 중 멀쩡(?!)한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하루키 팬의 말을 듣고 하루키와 더 멀어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내가 이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이 소설을 원작으로 무대에 올린 [해변의 카프카]를 보았기 때문이다. 모호한 이야기들의 연속,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과 환상-눈으로 볼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의 경계 모호한  연극을 보며, 꽤나 즐거웠다. 그래서 원작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연극의 축약으로 그저 가볍게 변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게 표현된 '오시마'의 소설 상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소설은 연극보다 더 상세하고 더 복잡하고 더 치밀한데, 더 친절했다. 같은 연극을 두번 보와서 그런지 몇가지 선명하게 기억나는 대사들이 연극에 그대로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소년이 되고 싶은 열다섯살 '다무라 카프카'가 가출을 한다. 똑똑하고 건강하나 미래에 대한 기대도, 삶에 대한 애착도, 누군가에 대한 애정도 갖지 못한 카프카는 친절에 익숙하지 못할만큼 마음이 메마른 아이다. 그 아이가 집에서 아주 먼 '다카마스'라는 곳으로 향하고 그곳에 미리 알아봐 두고 간 '고무라 도서관'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누구도 쉽게 경험하지 못할 삶의 경계까지 가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그 경험은 다른 사람들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어 소년 카프카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까지 발을 내딛게 되는데, 이런 이야기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설명이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든다.

어떤 사건으로 아홉살에 텅 비어 버린 나카타 노인은 느닷없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스스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텅 비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받아들이기 쉬운 나카타 노인의 투영과 발산은 기적과도 같다. 사건과 알수 없는 계시 속에 호시노와 짝을 이루는 나카타 노인의 이야기도 어떤 면에서는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만나게 하고 스스로를 열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나카타 노인. 생각보다 끔찍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도 빛을 바라는 나카타 노인의 케릭터가 몹시 마음에 든다. 그리고, 카프카에게 균형감각을 만들어 주는 균형을 잡을 수 없는 오시마라는 케릭터는 여성운동가의 방문으로 정체를 밝히게 되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아프다.

 

책 상태는,

평범하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각 장의 제목만으로도 이 책의 의도와 내용을 어느 정도 추적해 보고 알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 듯 하다. 

 

오시마의 말 중에서..

"차별당하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인지, 그것은 차별 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지. 아픔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것이어서, 그 뒤에는 개벌적인 상처 자국이 남아. 그렇기 때문에 공평함이나 공정함을 추구하는 데에는 나도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만 내가 그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이야. T.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이지.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정상인이든, 페미니스트든, 파시스트의 돼지든, 공산주의자든, 힌두교 신자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떤 깃발을 내걸든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나.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공허한 사람들이야.

 

1권, 351-352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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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말을 걸다 - 백성현 포토 에세이
백성현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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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라는 것이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큰 감동을 줄 수도 있지만 귓등으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 이 책이 딱 그런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에게는 감동으로 누구에게는 밋밋한 느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TV를 자주 보지 않는 나로써는 '빽가'라는 이름을 알기는 하나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의 이미지가 없었고, 그랬기에 사진을 찍는다는 말에 흥미롭게 지켜보니 묘하게 풍기는 이미지가 있어서 재밌는 사람이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그룹에 들어가서 랩을 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책에 손에 들어왔고 이제서야 읽었는데, 그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다보면 얼굴은 알고 있었으나 이 사람의 목소리가 어떤지 어떤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만나 커피한잔 시켜놓고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는 기분이 든다. 글이 부드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툭툭 끊어지는 느낌 때문에 그저 친구의 이야기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상태는,

출판 중인 사진 에세이 중에서 글이 많은 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진도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고 사진이 전체적으로 휑한 느낌이라서 사진이 내 취향에 맞았다. 햇살 좋은 날 창 넓은 커피숍에 앉아서 읽으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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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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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책장에 있는지도 몰랐던 일본 작가의 추리소설. 증정도 아니고 책 상태가 멀쩡한 것으로 봐서는 구입했을 듯 싶은데, 이 책이 어떻게 내손에 들어왔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신변의 정리와 집정리, 업무의 정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와중이라 복잡한 책을 읽어낼 수 없는 상황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문장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하는 그런 책보다는 가벼운 소설류가 좋겠다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물론 추리 소설의 문제점이라는 것이 읽는 내내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어야 해서 피곤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곧 사형을 받게 될 죄수가 있다. 그 죄수의 구명을 위해 누군가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교도관 '난고'와 상해치사범 '준이치'가 이 일을 맡게 된다. 각기 다른 이유로 성공보수를 원하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이 일의 이유는 성공보수 뿐만이 아니었다. 각자 나름대로의 사연들이 사건과 겹치고 관계가 조금씩 늘어나고 더욱 촘촘해진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은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의 여러가지 면을 보게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 사형死刑이라는 법적 살인과 법으로 해결되지 못했을 때 시행하는 사형私刑. 추리소설이라고는 하나 꽤나 무거운 주제를 던진다. 죽어도 마땅한 놈의 경계와 죽을 죄를 지었으나 이제는 뉘우친 사람의 죄의 무게를 어떻게 저울질 해볼 것이며, 누가 그 일을 판단하여 인간의 목숨을 앗아갈 것인가.  나는 사형제도에 대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 의견을 내기에는 아직 생각할 것이 남아 있다. 이성으로는 '반대'이겠지만, 창졸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살인자 때문에 어이없이 잃는다면 과연 '찬성'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시는 공기까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쓰다보니 묵직한 주제로 소설이 재미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줄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은 이야기 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책 상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기 딱 좋은 사이즈다. 물론 조금 두껍기는 하지만 무게가 무거운 책이 아니라 편안하게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복잡하지 않고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문장들이 연이어 있어 사건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최근의 독서 상황이-원해서 읽었으나 읽다가 너무 어려워- 독서 슬럼프에 빠졌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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