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하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하루키를 잘 모른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수업이었던가? '상실의 시대'를 읽고 독후감을 쓰는 숙제가 있어서 그때 하루키를 접한 것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이 이 작가에 대해서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후로 몇년 후에 다시한번 시도해 보았으나 그다지 재미를 느끼거나 감동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상실의 시대'가 그나마 하루키의 소설 중 멀쩡(?!)한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하루키 팬의 말을 듣고 하루키와 더 멀어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내가 이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이 소설을 원작으로 무대에 올린 [해변의 카프카]를 보았기 때문이다. 모호한 이야기들의 연속,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과 환상-눈으로 볼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의 경계 모호한  연극을 보며, 꽤나 즐거웠다. 그래서 원작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연극의 축약으로 그저 가볍게 변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게 표현된 '오시마'의 소설 상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소설은 연극보다 더 상세하고 더 복잡하고 더 치밀한데, 더 친절했다. 같은 연극을 두번 보와서 그런지 몇가지 선명하게 기억나는 대사들이 연극에 그대로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소년이 되고 싶은 열다섯살 '다무라 카프카'가 가출을 한다. 똑똑하고 건강하나 미래에 대한 기대도, 삶에 대한 애착도, 누군가에 대한 애정도 갖지 못한 카프카는 친절에 익숙하지 못할만큼 마음이 메마른 아이다. 그 아이가 집에서 아주 먼 '다카마스'라는 곳으로 향하고 그곳에 미리 알아봐 두고 간 '고무라 도서관'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누구도 쉽게 경험하지 못할 삶의 경계까지 가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그 경험은 다른 사람들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어 소년 카프카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까지 발을 내딛게 되는데, 이런 이야기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설명이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든다.

어떤 사건으로 아홉살에 텅 비어 버린 나카타 노인은 느닷없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스스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텅 비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받아들이기 쉬운 나카타 노인의 투영과 발산은 기적과도 같다. 사건과 알수 없는 계시 속에 호시노와 짝을 이루는 나카타 노인의 이야기도 어떤 면에서는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만나게 하고 스스로를 열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나카타 노인. 생각보다 끔찍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도 빛을 바라는 나카타 노인의 케릭터가 몹시 마음에 든다. 그리고, 카프카에게 균형감각을 만들어 주는 균형을 잡을 수 없는 오시마라는 케릭터는 여성운동가의 방문으로 정체를 밝히게 되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아프다.

 

책 상태는,

평범하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각 장의 제목만으로도 이 책의 의도와 내용을 어느 정도 추적해 보고 알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 듯 하다. 

 

오시마의 말 중에서..

"차별당하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인지, 그것은 차별 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지. 아픔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것이어서, 그 뒤에는 개벌적인 상처 자국이 남아. 그렇기 때문에 공평함이나 공정함을 추구하는 데에는 나도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만 내가 그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이야. T.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이지.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정상인이든, 페미니스트든, 파시스트의 돼지든, 공산주의자든, 힌두교 신자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떤 깃발을 내걸든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나.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공허한 사람들이야.

 

1권, 351-352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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