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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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은 이 책 덕분에 [안나 카레니나]를 만나게 되었다면서 이 책을 추천했다. 책 소개 하는 책 중에 옥석을 가려준 지인에게 감사하며 읽게 되었는데, 여러가지 책을 섞어 이야기 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이야기가 연결되어 보기좋고 읽기도 좋고, 책에 대한 호기심도 불러온다. 강독회의 성격이었던 것을 글로 옮긴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감탄하게 된다. 강독회를 들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 읽기에 답이 있을까?

이렇게 읽어라 저렇게 읽어라 하는 방법론 중 한 책을 최근에 읽고 참 못난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책에 실망한 까닭에 오래 전에 읽고 책장에만 꼽아 두었던 이 책이 떠올랐다. 저자는 책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 앞선 생각들, 경험들, 그리고 자신이 느꼈던 느낌들을 되살려 낸다. 책 이야기가 책 이야기 만은 아닌 것이다. 이야기는 차분하고 쉬운 말로 설명하여 분명, 읽고 있는데도 듣는 듯하다. 나에게는 책 읽는 시야를 넓혀준 책이다. 그리고 지인들과 책 한가지를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 이야기에 연결되어 이런 저런 책 이야기도 가능하고 더 넘어가서 다른 책으로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 아닌가 한다. 내가 이미 읽었던 책과 저자의 독서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저자의 느낌을 읽으며 나도 그랬을 것이라고 상상해 봤지만 10년 전쯤에 내가 쓴 리뷰를 찾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뭘 느끼긴 느꼈던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뭘 느꼈는지 알 수는 없다. 이 책을 읽고 후 전보다는 문장을 꼼꼼하게 읽게 되었는데, 줄 긋고 표시하고 책을 다 읽은 후에 그 부분만 다시 읽어보는 맛도 생각보다 괜찮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설피 읽는 독서를 하는 터라 오독이 여전하다. 책 읽는 것이 무조건 공부나 자기 개발과 발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책 읽은 지식이 켜켜히 쌓여 더 즐거워지는 것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더 즐겁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가 번역이 잘못되었다고-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타박만 했지 어떤 사람이 번역을 잘 하는가에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었다. 잘 읽히면 넘어가고 안 읽히면 타박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역자에 대한 생각이라니!  무엇보다 김화영 선생을 알게 된 것은 큰 성과였다.

 

책상태는,

몹시 좋다. 더할나위 없이 좋다. 공들여 편집한 듯 보인다. 독서에 길을 잃었다면 읽으며 재미도 있고 길도 찾고 생각도 하게될 좋은 책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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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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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면 군말 없이 사게 되는 몇 작가가 있다. 최규석이 그렇다. 만화가 나올때마다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그린 듯 한 그림체와 다른사람의 시선과 묘하게 위치가 다르면서도 선명하고 따뜻한 시선을 갖은 작가이다. 최근 네이버 웹툰에서 "송곳"이라는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데, 그 연재를 보면 송곳으로 찔리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맛이 있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사서 읽고 '감상을 쓰지 못한 책들의 책꽂이'에서 꽂혀 있다가 최근 다시 꺼내 들었다.

 

저자 서문을 읽다가 문득,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은 제목이 떠올랐다. 내 손에는 들어왔었으나 내 상식으로 아픈 것을 강요하는 것은 변태들이나 할 짓이라는 생각에 안읽었었는데 그 제목이 생각나며 우리는 너무 강요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살고 있으니 알겠지만, 인생 어짜피 다 아프다. 살면 당연히 아픈걸 청춘이라고 인정하면서 살으란 말인가?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지 청춘이라고 아픈게 당연하다니, 고통 강요 문화는 옳지 않아고 생각한다. 왜 힘없는 사람에게만 자꾸 아픈 것은 덜 노력해서, 덜 공부해서, 덜 애쓰니까라고 자꾸 밀어붙이는지 모르겠다. 치즈가 사라지면 왜 찾아야 하며, 오체가 불만족인데 왜 웃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극복과 성공은 그것으로 축복하고 감사하는 걸로 하고, 그러니까 니들도 반성하라고 참으라고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TV없이 산지 10개월이 넘고나니 가끔 식당에서 보게되는 TV프로그램 내용을 보며, 섬뜩한 강요를 자주 보게된다. 자주 접하면 강요도 자연스러울 수 있으니 TV부터 끊을 일이다.

 

이 책에는 여러개의 우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갑옷을 입고 있는 "갑옷도시"에 갑옷을 입지 않은 남자가 하늘에서 곧 물이 쏟아지니 갑옷은 쓸모 없어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그 예언이 맞는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녹슨 갑옷을 벗고 나왔으나, 노인이 삶의 지혜를 전하려는 순간 녹슬지 않은 갑옷 광고를 보고 흩어져 버린다.

"불행한 소년"은 천사에 말에 따라 모든것을 참고 용서하며 열심히 살지만, 결국 혼자 가난하고 외롭게 죽게되면서 천사를 죽여버린다. "가위바위보"는 사회의 규칙을 지키다가 주먹 밖에 낼 수 없는 사람에게 가위바위보로 공평하게 의사를 정하란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괴물들이 사람을 흉내내며 친구가 되려니까, 분노하다 괴물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괴물", 연대를 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기회가 있었는데도 시샘하다가 남 좋은 일만 시칸 "농장의 일꾼"과 똑같은 일을 하는 원숭이에게 차등을 주어 밥을 주니 둘이 경쟁하다 하나만 남게 되는 "원숭이 두마리"는 다른 이야기지만 닮을 꼴이다. 다른 것을 배척하다가 스스로 망해버린 "어떤 동물", 확인되지도 않는 정보를 자신들의 멱살을 잡은 고양이에게 듣고서 스스로 희생하며 사회를 유지하는 "흰쥐"는 너무 현실적이라 섬뜩했다. 그리고, 흰염소와 흑염소가 있는 곳에서 서로를 지키며 살고 있다가 늑대가 흰 염소만 잡으니, 흑염소는 흰염소를 외면하고 결국 흑염소만 남게된다. 늑대들은 이제 사냥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대장 늑대는 이제 흑염소끼리도 잡히는데는 다른 사유가 있어서 잡혔을 것이라 생각하고 대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섬뜩한 이야기 "늑대와 염소"는 조금 다르다고 편 가르다가 더 중요한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샘내다가 죄다 쑥쑥 자라다보니, 숲에 빛이 들지 않아 다 죽게 생긴 "숲" 이야기 등, 서로 돌보고 위하고 나누면 안생길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화라는게 대부분 쉽고 짧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형식이지만, 갖다 붙이기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발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우화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아프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말랑말랑한 이야기인 반면에 최규석의 우화들은 기존의 우화와는 다른 느낌이다. 각 이야기의 화살의 방향이 달라 사회로 쏘기도 하고 조직에게 쏘기도 하고 어리석은 자신들에게 쏘기도 한다. 현실의 세상에 여기 끼워도 저기 끼워도 어디든 잘 맞을 내용의 우화들이다. 이 우화 중 일부는 어린이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하던 것이란다. 애들한테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읽혀도 되나 싶다.

 

책 상태,

생각보다 몹시 가볍다. 처음 읽으면 살짝 속았다는 느낌도 든다. 이야기마다 다른 그림은 볼만하다만 '이 손바닥만한 책을 13,000원에 양장으로 해서 팔다니 이제 명성을 등에 업고 대충 만들어 팔며 거들먹거리는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분해서 다시 한번 더 읽으면 뭔가 찡한 느낌이 오고, 세번쯤 읽으면 역시 최규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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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플레이트 - 세계를 감동시킨 기계 인간의 모험
폴 기난 & 아니나 베넷 지음, 김지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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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 여름 배에 구멍을 뚫는 수술을 한 일이 있다. 그 전해에 디스크로 누워 있으면서도 누워서 책 주문해 읽었던 경험이 있기에 작은 아이폰 화면으로 결재하는 불편을 덜 겸해서 미리 이런저런 책을 주문하여 입원 할때 가지고 갔다. 오랜 입원도 아니고 급작스러운 입원도 아닌지라 수트케이스에 내가 내 짐을 싸서 입원하는 기분은 남달랐다. 특히나 환자복입고 올컬러 로봇 역사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좋았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내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몇일 간의 단식 때문에 이 책의 무게 1kg을 감당하지 못하는 굵기만하고 허약한 팔을 원망하게 되었고,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쓸리고 땡기고 아픈 수술 부위를 참아내며 퇴원 전에 다 읽고 나왔다. 여러가지 악조건을 무릅쓸만큼 흥미롭고 재밌는 책이다. 

 

이 이야기는 과거의 로봇이 이야기로 1893년에 아치볼트 캠피언 교수가 발명한 기계인간, 보일러플레이트의 이야기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싶겠지만, 이 책의 내용은 분명 그렇다. 직립보행 로봇이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두 발로 걷는다고 하더라도 기계인간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로봇들 뿐이지 않나. 그런 로봇이 없으니 일본 영화 [로봇G]에서는 사람이 로봇옷 안에 들어가 있질 않나. 그런데 1893년에 직립보행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이라니! 믿을 수 있나?

그 시대에 로봇을 만들 상상을 한 사람은 누굴까?  보일러플레이트를 만든 아치볼트 캠피언에게는 릴리라는 누나가 있었고 누나는 열린 사고를 지닌 휴 W.매키라는 해군장교를 만나 결혼한다. 아치는 결혼 전부터 휴를 친형처럼 사랑했다. 그러나 휴는 낯선 땅 조선으로 배치되었고, 1871년에 신미양요-미국이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개항시키려고 무력 침략한 사건-에서 목숨을 잃는다. 휴의 죽음 릴리 뿐만 아니라 아치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어 아치가 인간 병사를 대신할 기계를 발명하는 데 재능을 쏟는다. 휴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카고 대화재에서 부모를 여읜다. 온전히 누나와 단둘이 남은 아치에게 누나는 여러가지 많은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은 보일러플레이트의 인간적인 면으로 이어진다.

보일러플레이트는 1893년 컬럼비아 만국 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실종된 연합군 병사를 찾아 아르곤 숲으로 홀러 걸어 들어간 후 종적을 감추기 까지, 세계를 돌며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기록을 남기며 환상적인 모험을 펼친다. 격변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역사적 현장들 속에 희미하게 자취만을 찾을 수 있을 뿐, 설계도와 어떤 부품을 썼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기에 다시 만들어지지 못했다. 남극에 가기도 하고 다양한 모험과 탐험에 앞장 섰으며, 여러가지 전쟁에 참여 했다. 인간을 대신하여 황금을 찾아 떠나기도 하고 위험한 파나마 운하 건설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 

보일러플레이트가 의도한 일은 아니겠지만 아동 노동자들에 대한 루이스 하인의 사진들로 아동 노동 착취를 고발하게 되기도 하고 릴리의 영향을 받아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예술활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지만, 흐름을 흐림없는 시선으로 보는 듯 하고 그 결과가 따뜻한 쪽으로 흐른다. 로봇이 살던 시대의 배경을 이해하고 있지 못해 로봇의 행동과 성격에 대해 규정할 수는 없지만, 로봇판 [포레스트 검프]라는 소개에는 이의가 없다.

 

책 상태는,

정말 좋다. 올 컬러로 빽빽한 자료구성은 놀랍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수 없는 이 책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이야기와 이야기를 증거하는 자료들에 매료된다. 사진, 만화, 펜화, 기사, 포스터 등으로 표현된 자료는 놀랍다. 다 읽고 나면 보일러플레이트의 존재를 믿게 된다. 보일러플레이트의 생김새가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양철 나무꾼과 20세기 초 회회를 비롯해 건축, 조각, 공예 등의 큐비즘 작품들에 영향을 주었다는데 어떻게 안믿을 수가! 똑같잖아. 양철 나무꾼!!

책 편집도 훌륭하다 마지막에는 보일러플레이트의 연대표와 주석 그리고 찾아보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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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의 만찬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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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본적이 있었다. 그때는 한창 남들이 안보는 영화를 찾아 다니던 시절이어서 이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로도 왠지 뿌듯함이 있었던 듯 하다. 그때는 분명 허영이었으나 그 허영들이 최근의 나에게는 세상을 보는 밑거름이 되고 있는 듯 하여 좋다.

그때는 황량한 분위기와 경직된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 그리고 이상한 이웃들과 더불어 바베트가 왜 가정부로 들어가 묵묵하게 살아내는지를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바베트가 차려내는 만찬의 모습에 넋을 놓았었고 이 영화는 나에게 밥상 영화로 기억되고 있었다.

 

조그만 마을에 유행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고 있는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가 있었다. 자매의 아버지는 독실한 교파를 일군 목사이며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자매는 아버지의 사망 이후에도 그 마을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남아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에게도 젊은 시절은 있어, 언니 마르티네는 청년 장교의 사랑을,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는 필리파는 아실 파팽이라는 유명한 가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가난한 살림에 빠듯하게 마을 사람들을 돌보던 자매에게 잊고 있었던 과거가 찾아온다. 가수 아실 파팽이 프랑스 여인에게 편지를 들려보내는데, 혁명 와중에 가족을 잃은 이 편지를 들고온 바베트를 받아달라는 편지였다. 두명 살림으로도 빠듯한 자매는 거절하지만, 바베트의 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바베트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 십여년을 살다가 만프랑 짜리의 복권이 당첨되고, 자매의 아버지 목사의 탄생 100주년 생일 만찬을 자신이 준비하겠다고 하고, 근사한 만찬을 차려 낸다.

 

이야기는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바베트는 프랑스 일류 요리사였다. 최고급 요리를 만들고 고위층 사람들의 식탁에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 그러나 밥벌이와 상관없이 혁명의 불씨를 품은 여인이다. 그 바베트에게 두 자매는 자신들의 요리법을 가르친다. 프랑스인인 바베트의 낭비가 염려되는 두 자매는 요리법을 아주 꼼꼼하게 가르친다. 바베트가 부엌을 장악한 후, 자매의 집에는 한 사람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대가 줄어드는 기적이 일어난다. 바베트는 서툰 말에도 불구하고 상인과 흥정하고 변변치 않은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살다가 복권에 당첨되는데, 복권에 당첨된 바베트를 보며 자매는 축하하지만 바베트가 떠날까봐 전전긍긍한다.

목사 탄생 100주년프랑스 만찬을 준비하겠다며 재료를 구하러 떠났던 바베트가 자매로써는 용납할 수 없는 식재료를 집에 들임으로써, 자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거북이 같은 식재료에 깜짝 놀라 평생 단촐한 식탁만 맞이했던 자매는 용납할 수 없는 악마의 요리들이 나올 것겉어 두려워한다. 자매들은 두렵지만 자신들이 준비를 허락했으니 바베트를 말릴 수도 없다. 목사의 사망 이후 반목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자매는 바베트의 음식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은 자매의 뜻을 받들어 음식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자매를 포함하여 모두 천재 요리사 바베트의 만찬에 매료된다. 그때 중요한 역활을 하는 사람이 마르티네를 사랑했던 청년 장교로 이제는 중년의 장군이 된 사람이다. 바베트의 요리를 맛본적이 있는 장군은 그 진귀한 요리에 끊임 없이 감탄한다.  늙은 신도들은 마지막까지 맹세를 되새기며 묵묵히 음식을 즐기게 된다. 먹을수록 분위기는 온화해지고 사람들의 관계는 회복되고, 잊혀지고 햘퀴었던 사랑은 다시 불을 밝힌다. 바베트는 만프랑을 식재료 구입에 다 쓰고, 만찬을 준비한 열기가 남은 부엌에서 자신을 위한 와인을 따라 마신다. 자매는 만프랑을 식대로 썼다는데 놀라지만, 바베트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기뻐하면서바베트의 행운을 자신들이 먹어 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돌아갈 수 없지만, 한번이라도 열정으로 자신을 다시 불태워보고 싶었던 바베트의 마음을. 이야기는 간단하나 곱씹을 수록 할말이 많은 소설이라는 생각과 그 조용한 와중에 사람들의 삶을 되짚어 보면 연상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어 이 소설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책 상태는,

가로 편집으로 문학동네의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명작 시리즈 중 하나이다. 절제된 문장과 잘 어울리는 따뜻한 그림이 좋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도 함께보면 더 좋을 듯 하다. 부엌과 만찬 장면은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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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
테렌스 데 프레 지음, 차미례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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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알고 있다. 정확하고 자세히는 아니라도 누구든 몇마디 쯤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월이 지나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로 양산되고, 여러가지 형식의 소재가 되어 책이나 영화로 되풀이 되었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수용소 관련 본 것과 읽은 것을 읊으라면, 드라마 [밴드오브브라더스] 전쟁과 함께 수용소의 적막한 풍경장면을 본 것, [수용소군도],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안네의 일기], [더 리더]와 영화 [더 리더], 러시아 수용소 탈출 영화 [웨이 백], 영화 [피아니스트] 등이 있고 그 이외에도 다수의 영상을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들 본 만큼은 본 듯하다고 생각했었고,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하여 누구나 그렇겠지만 위에 언급된 영상물이나 책을 안락하고 평온한 곳에서 읽고 봤을 것이고, 어떤 날은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갑논을박 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내가 함부로 이야기 했던 것들이 부끄러워졌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리뷰를 쓰면서 특별판을 읽었다고 써 놓은 리뷰를 읽자니 더 부끄러워진다. 그거 갖겠다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특별판을 구입하고 얼마나 허세를 떨었던가. 이 책은 그런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었다.

팟케스트 "빨간 책방"에서 소개된 책이었고, 그 방송을 듣고 '어디한번 읽어보자'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내 귀를 사로잡았던 내용은 수용소 안에서는 깨끗한 물이 지급되지 않았고, 물이라고는 아침에 지급되는 형편없는 묽은 커피가 전부였는데, 그 커피의 일부로 씻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볼일 볼 자유 조차 없는 처절한 상황에 떨어져도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라는 이야기다. 책은 문학작품에서 나타난 '생존자'들의 이야기로 '생존자'를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살면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는 '영웅'에 관한 이야기였지, 오래 버텨내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래 버틴 사람들의 정신력에 대해 칭찬하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 안타까움을 말하지만, 그 사람들을 영웅 취급하진 않는다. 이 책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잘 준비된 영웅적 죽음과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답게 생존하는 일은 어느쪽이 쉬운 일일까?

살아 남았다는 것이 과연 비굴한 일일 것인가?

이런 질문을 받고 나니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 뒷통수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내 가까운 지인이라면,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휴전국이니 북한이 방귀만 꿔도 전쟁이 난다고 라면 사재기 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보니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읽고 본 것들로 공포는 더욱 증폭된다. 그리하여 어짜피 다들 굶는 상황에서 나 먹겠다고 라면이라도 끓이면 그 냄새가 천리 만리 퍼져나가 테러 당해 죽기 딱이다. 그럴바에야 미리 이런저런 꼴 안보고 미리 죽지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끝까지 살아남아 생존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 시작했다. 전쟁에 대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이 겪어야 하는 처절함에 대해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옳고 그래야, 안전한 곳에서 지휘봉이나 휘두르고 버튼이나 눌러대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들이 어떤 결과로 오는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사명'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전쟁이 난다는 소문이 돌면 파상풍 주사라도 맞으러 갈까 싶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다. 인간으로써의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런 말살 당할 위기에 몰린 사람들의 열망 중 '기록'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생존에 필요한 여건이 되지 않기에 '성욕'이 완전히 사라진 수용소 안에서 수면욕, 식욕과 더불어 기록에 대한 욕구가 생기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스러운 나날에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 남아 증언하겠다는 의지는 숭고했다. 수용소 안에서의 기록이라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종이도 없는 곳이고, 기록하는 것이 발견되면 살아남기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기록과 생존의 의지는 조직화 되어가고 생존을 없어서는 안될 일이 되어 간다. 생존에 필요한 물건이 지급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 가려면 조직화가 필요하고 그 조직화 된 집단은 서로를 돕는다. 또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전체의 생존을 위한 희생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관리직 유대인인 몇몇의 '카포'들이 나치 앞에서는 안심하도록 수용소 사람들에게 거칠게 굴면서도 아픈 재소자를 병원으로 빼돌리거나, 생존자와 죽은 사람을 바꿔처리하여 가스실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도 하고, 구하기 힘든 음식을 구했을 때 혼자 먹기도 바쁠 텐데 동료와 나누는 일, 누구나 혼자 서 있기도 힘든 상황임에도 아픈 사람을 부축하여 행군을 계속하는 일들 감행한다. 간결한 문체 속에서도 눈물이 날만큼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책 상태는,

읽기 좋고 평범한 책이다. 목차만 읽어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다. 어찌나 많이 접고 줄 그었는지 다 옮기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하다.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지만, 읽은 후에 남는 여운이 꽤 길고 힘들다. 단지 읽었을 뿐인데도 무거운 마음이 든다. 이 책의 작가의 죽음은 '자살'이었다. 생존자로써 생존할 수 없을만큼 이야기의 무게가 무거웠으리라 생각한다. 정신이 맑고 건전할 때 읽어야 여운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담담하고 깔끔한 문장 임에도 내용 상의 문제로 여러가지 의미의 비위가 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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