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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ㅣ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평점 :
책이 나오면 군말 없이 사게 되는 몇 작가가 있다. 최규석이 그렇다. 만화가 나올때마다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그린 듯 한 그림체와 다른사람의 시선과 묘하게 위치가 다르면서도 선명하고 따뜻한 시선을 갖은 작가이다. 최근 네이버 웹툰에서 "송곳"이라는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데, 그 연재를 보면 송곳으로 찔리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맛이 있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사서 읽고 '감상을 쓰지 못한 책들의 책꽂이'에서 꽂혀 있다가 최근 다시 꺼내 들었다.
저자 서문을 읽다가 문득,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은 제목이 떠올랐다. 내 손에는 들어왔었으나 내 상식으로 아픈 것을 강요하는 것은 변태들이나 할 짓이라는 생각에 안읽었었는데 그 제목이 생각나며 우리는 너무 강요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살고 있으니 알겠지만, 인생 어짜피 다 아프다. 살면 당연히 아픈걸 청춘이라고 인정하면서 살으란 말인가?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지 청춘이라고 아픈게 당연하다니, 고통 강요 문화는 옳지 않아고 생각한다. 왜 힘없는 사람에게만 자꾸 아픈 것은 덜 노력해서, 덜 공부해서, 덜 애쓰니까라고 자꾸 밀어붙이는지 모르겠다. 치즈가 사라지면 왜 찾아야 하며, 오체가 불만족인데 왜 웃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극복과 성공은 그것으로 축복하고 감사하는 걸로 하고, 그러니까 니들도 반성하라고 참으라고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TV없이 산지 10개월이 넘고나니 가끔 식당에서 보게되는 TV프로그램 내용을 보며, 섬뜩한 강요를 자주 보게된다. 자주 접하면 강요도 자연스러울 수 있으니 TV부터 끊을 일이다.
이 책에는 여러개의 우화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갑옷을 입고 있는 "갑옷도시"에 갑옷을 입지 않은 남자가 하늘에서 곧 물이 쏟아지니 갑옷은 쓸모 없어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그 예언이 맞는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녹슨 갑옷을 벗고 나왔으나, 노인이 삶의 지혜를 전하려는 순간 녹슬지 않은 갑옷 광고를 보고 흩어져 버린다.
"불행한 소년"은 천사에 말에 따라 모든것을 참고 용서하며 열심히 살지만, 결국 혼자 가난하고 외롭게 죽게되면서 천사를 죽여버린다. "가위바위보"는 사회의 규칙을 지키다가 주먹 밖에 낼 수 없는 사람에게 가위바위보로 공평하게 의사를 정하란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괴물들이 사람을 흉내내며 친구가 되려니까, 분노하다 괴물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괴물", 연대를 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기회가 있었는데도 시샘하다가 남 좋은 일만 시칸 "농장의 일꾼"과 똑같은 일을 하는 원숭이에게 차등을 주어 밥을 주니 둘이 경쟁하다 하나만 남게 되는 "원숭이 두마리"는 다른 이야기지만 닮을 꼴이다. 다른 것을 배척하다가 스스로 망해버린 "어떤 동물", 확인되지도 않는 정보를 자신들의 멱살을 잡은 고양이에게 듣고서 스스로 희생하며 사회를 유지하는 "흰쥐"는 너무 현실적이라 섬뜩했다. 그리고, 흰염소와 흑염소가 있는 곳에서 서로를 지키며 살고 있다가 늑대가 흰 염소만 잡으니, 흑염소는 흰염소를 외면하고 결국 흑염소만 남게된다. 늑대들은 이제 사냥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대장 늑대는 이제 흑염소끼리도 잡히는데는 다른 사유가 있어서 잡혔을 것이라 생각하고 대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섬뜩한 이야기 "늑대와 염소"는 조금 다르다고 편 가르다가 더 중요한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샘내다가 죄다 쑥쑥 자라다보니, 숲에 빛이 들지 않아 다 죽게 생긴 "숲" 이야기 등, 서로 돌보고 위하고 나누면 안생길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화라는게 대부분 쉽고 짧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형식이지만, 갖다 붙이기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발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우화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아프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말랑말랑한 이야기인 반면에 최규석의 우화들은 기존의 우화와는 다른 느낌이다. 각 이야기의 화살의 방향이 달라 사회로 쏘기도 하고 조직에게 쏘기도 하고 어리석은 자신들에게 쏘기도 한다. 현실의 세상에 여기 끼워도 저기 끼워도 어디든 잘 맞을 내용의 우화들이다. 이 우화 중 일부는 어린이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하던 것이란다. 애들한테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읽혀도 되나 싶다.
책 상태,
생각보다 몹시 가볍다. 처음 읽으면 살짝 속았다는 느낌도 든다. 이야기마다 다른 그림은 볼만하다만 '이 손바닥만한 책을 13,000원에 양장으로 해서 팔다니 이제 명성을 등에 업고 대충 만들어 팔며 거들먹거리는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분해서 다시 한번 더 읽으면 뭔가 찡한 느낌이 오고, 세번쯤 읽으면 역시 최규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