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보고 가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포인트가 있다. 상대를 생각해 배려한답시고 후하게 베풀어준 선의가 타인에게는 당연한 권리처럼 취급되었을 때 나는 낙담하고 분노한다. 이렇듯 선의가 권리로 변모한 자연스러운 사고가 현대인들에게 스스럼없이 자리를 잡은 건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가장 최근의 경향처럼 보였다. 우리는 왜 이렇게 이기적인 사고를 개인주의라는 아름다운 해석으로 가공하여 자신을 가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또한, 나는 왜 환경을 아끼자는 작가의 책을 읽으며 뜬금없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지구를 위해 전기차단기를 내리고 물을 아끼고 대중교통조차 이용하지 않으며, 심지어 화장지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1년여간의 무모한 시도는 이상하게 다른 관점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시사점을 던진다. 왜 작가가 이런 황당하게 짝이 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다시 서두를 읽으면 그 이유를 알게 되겠지만) 엉뚱한 이유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나는 딱히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은 없다. 다만, 풍성하고 윤택하게 살아온 당연한 삶의 환경에 크게 의심하지 않는 대중들이 오히려 낯설었을 뿐이었다. 음식은 남을 만큼 주문하고 부족하지 않게 남겨둬야 품위가 있어 보였고, 매년 신제품 발표회로 출시되는 기기들에 관한 관심은 놓치지 말아야 할 당연한 관심사처럼 보였다. 주기적인 소비와 반복되는 광고에 길들어져서 구매를 위한 인생이 마치 나의 목적처럼 대두함에 조금의 의구심도 갖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에 호응하듯 어차피 짧게 살다가 죽을 거 남 눈치를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기업들은 외친다. 지금 당장 소비하고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었을 때 행복할 것이라고 뻔뻔하게 소비자의 마음을 구슬리려 하지도 않고 당연하게 제창한다. 그 가운데 사람들에게 자리를 잡은 새벽 배송은 직접 손으로 물건을 살펴보며 장을 보는 일상의 행복을 은근슬쩍 빼앗고, 버튼 하나로 배달되는 매일의 식사에서 요리하는 과정의 기쁨을 잊게 했다. 먹고 사는 노동의 아름다움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담기는 콘텐츠로 미화될 뿐이고, 개인에게는 지루하게 겪어야 할 직접적인 태만의 대상처럼 취급되었다. 이미 우리는 ‘누구나 쉽고 편하게’라는 신조 아래 남의 권리를 빼앗고 노동을 취하며 폐해를 묵인하는 중 인간의 됨됨이조차 쉽고 편하게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딱히 지구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아도 좋다. 지금 내 앞에 물건 하나, 음식 한 개조차 누군가의 손을 거치고 어떤 에너지를 소비하며 이 자리까지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는 겸허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잠시 왔다가 죽음으로 사그라지는 개인이 어떤 자세로 머물다 가야 하는지 고민해 볼 수 있다면 자연스레 빌려 쓰는 지구의 자원에 대한 배려심은 당연하게 자리를 잡지 않을까. 구태여 환경보호라는 타이틀을 앞세워서 어떤 구체적인 행위를 제창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어려운 시대를 우리가 공유하고 있음을 이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각자의 삶에 대한 의무가 있듯 당연한 존재에 대한 책임이 모두에게 달려있음을 조금이나마 깨닫기를 바라며 오늘도 조금이나마 덜 쓰고 아끼며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구의 선의는 권리가 아님을 끊임없이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평양에서 2년간 살 기회를 가졌던 영국사람의 아주 작은 에세이. 평양에서의 삶이라는 매우 특이한 경험치고는 사진이 꽤나 평범했다. 그들의 체제 안에서라는 특수한 상황도 이해가 안되는것은 아니지만 어떤 제지도 받지않았다는 컷들 안에서의 감흥은 거의 없다. 북한이라는 국가가 주는 이미지가 워낙 폐쇄적인 것도 있고 작가 자신이 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높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이 정도 선에서 정리하는 뜬금없는 마무리가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녀 조차도 폐쇄적인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이미 동일하게 물들어 있던걸까.
책은 참 곤란하다. 이사짐센터에서 견적 책정에 가장 먼저 눈길을 준다는것이 그 고객이 가진 책 분량이라던데, 무게는 일차로 치더라도 수량이 많으면 공간은 물론이거나 왠만하게 부지런하지 않으면 정리하는 방법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책이 좋아서 한 두권 모이다 헌책방까지 하시게된 작가의 소소한 얘기가 담겨있다. 유유 출판사에 걸맞는 귀엽고 가벼운 에세이였다.
음침한 책표지에 걸맞게 다섯편의 꺼림직한 단편이 모여있다. 책표지가 글을 담아내기 충분히 적당하듯 소설은 어둠이라는 삶을 배경을 바탕으로 그 무드를 철저하게 풀어낸다. “살인”이라는 다소 낯선 두 음절이 어색하게 단어로써만 존재하지 않도록 작가는 구체화된 공간으로 독자를 밀어낸다. 얇은 단편들을 통해 오랜만에 씁쓸하게 가슴 따뜻한 누군가의 삶을 엿본 느낌이다.
뭔가 의식적으로 이상하다고 늘 생각하고있었다. 새로운 상품들이 하루를 멀다하고 쏟아져나오고, 그 멋진 상품들은 왜 항상 나에게는 없는건지. 매력적인 문구로 맛깔스럽게 정점을 찍는 신제품은 마치 막연하게나마 부족한 나의 삶을 분명하게 완성시켜줄 최후의 수단같았다. 이 책은 물건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이건 단순히 물건이 아닌 물건을 향한 사람들의 사고에 대한 촉구였다. 저자는 다소 미국에 국한 대상을 목표로 두지만 그가 서울에 있든 뉴욕에 있든 지구 어디에 살고 있다면 반드시 귀기울여 들어봐야할 얘기를 조곤조곤 살펴준다. 물질의 풍요는 정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하고 있었던가? 바꾸고 개선하고 우리 상품을 선택하면 친환경이라는 기업의 알랑방귀는 점점 교묘하게 변모되고있다. 페트병을 모아 재활용해서 만들었다는 의류는 투명페트를 분리,활용할 기술이 없어 그 원재료 조차 외국에 수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아이러니를 암묵적으로 뒤로하고 친환경이라는 라벨만 뒤덮는다. 차라리 지금 가진 옷을 버리지말고 더 오래 입는게 더 환경을 위한 의식적인 행동임을 기만한채. 종이용기라는 겉포장 속 플라스틱 용기를 포함한 어느 화장품 회사의 쉽고 간편한 마케팅은 지금에야 매우 귀여운 논란거리 였다. 이렇듯 기묘하게 가려진 그린워싱은 마케팅의 한 수단이라는 짙은 의심을 지울수가 없다. 불편을 모르는 삶을 살아온 풍요의 세대에게 자연이라는건 누군가 매끄럽게 가공한 하나의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가 조금 불편해지고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준 당연한 이치라는것을 잊으면 안된다. 지구가 주는 선의가 더 이상 인간의 권리가 되는 기괴한 현대의 풍요에 젖어 있으면 후세대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