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라는 거장의 이름이 주는, 멀게만 느껴지는 무게와 권위 때문에 그의 생각까지 오해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스스로 듣고 겪고 생각하지 않으면 허상에 불과한 추측과 누군가의 판단에 기댄 편협한 의견에 그칠 뿐인데, 어찌 된 일인지 현대 사회는 사소한 착각을 진실과 뒤섞는 오묘한 재능으로 가득하다. 작가는 건넛집 아저씨마냥 투덜거리며 현실을 마주한 인간이었고, 피식거리며 웃어버릴 만한 이야기를 주저 없이 던져 댄다. ‘아니, 거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할 일이야?‘ 하고 반문해 보지만, 그 ‘거장‘이라는 게 진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무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던 내 판단에 왜 진작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는지는 스스로 답할 여지조차 두지 않았다. 생각은 계속된다. 진실은 있을 것이고, 결코 정의는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삶을 사는 가장 허망하고 나태한 방식일지라도, 나는 그렇게 게으르게 살아가고 싶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을 반으로 쪼개어 이해하려 든다. 삶과 죽음, 선과 악, 매움과 닒처럼 양극단으로 갈라진 이분법적 속성은 인간의 사고를 철저히 지배해 왔다. 명확하게 칼로 잘라낼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란 본래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그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고 그 균형을 유지하라고 강요한다.문제는 절대적인 학습에 의해 길들여진 이러한 사고방식이 인간이 지닌 인식의 한계를 더욱 분명하게 좁혀버린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삶과 죽음의 관계다. 본래 삶과 죽음은 하나의 연속선상에 놓인 본질적 과정임에도, 이분법의 틀 안에서 죽음은 완전히 배척된다. 삶은 오직 삶이라는 구역 안에서만 철저히 활기차게 존재해야 하며, 그 어떤 죽음의 그림자나 허무의 틈새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기만적인 강박이 작동한다.결국 양극단으로 극명하게 분리된 채 결코 다가설 수 없도록 고립된 두 이상을 다리로 이어보려는 모든 시도는 거부당한다. 아무리 저명한 철학이나 치밀한 논리가 이를 대변한다 할지라도, 현대 사회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행위를 그저 사회적 규범에 맞서지 못하는 ‘무례함‘이자 부질없는 ‘허무함‘으로 치부해 버릴 뿐이다. 이방인의 시선은 바로 이처럼 견고하고 공고한 이분법적 사회가 가진 폭력성과 그 허구성을 차갑게 폭로하고 있다.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기위해 인간은 막연하게 부단히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어느순간 그 노력마저 부담스럽게 다가올 시점이 온다. 작가들을 통해 놓치고 잊어버렸던 그 마음을 다시 돌이켜본다. 주변에 지나치고 당연시해왔던 그것들이 그것으로 남아있지 않기를. 예술은 당혹스런 내면을 끄집어내 현실로 선사하면서 그보다 더한 현실을 마주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말한다. 직시하고 지금을 살피라고. 망치로 연타를 내지르는 소음같은 충격을 잔잔하게 던지는 글이다.
우리는 편리한 일상이 당연한 듯 누리지만, 사실 수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노고가 매 순간 촘촘히 엮여 사회를 지탱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평범한 이들의 삶을 조명하며, 일상을 유지하는 평범한 노동의 가치와 그 소중함을 다시금 깊이 일깨워줍니다.